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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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휴! 도저히 못 쓰겠어요.”
   “선생님, 이거 안 하면 안 돼요?”
   교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불평 소리. 기껏 네 다섯줄이나 될까 하는 짧은 문장을 적어 보라는데 금세 터져 나오는 아우성이다. 그래도 이런 불평이나 터트리면 좀 나은 편이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 몰라 멍하게 앉아 있는 학생들이 더 많다. 시간이 좀 지나도 멍한 표정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처럼 손도 못 대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에 끙끙대던 녀석들도 손을 놓아버리고 만다.
   요즘 내 수업시간에 자주 벌어지는 풍경이다. 2학년 문학 수업 시간에 문학작품의 수용 과정이라는 단원을 배우고 있는데, 이 단원의 맨 마지막 수업 내용이 작품의 창조적 재구성과 내면화를 연습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교과서 소설 속 인물들의 대화 내용을 재구성해 보거나 시를 읽고 자신의 느낌을 곁들여 비평하는 짧은 글짓기 시간이 주어지면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가 이내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숫제 하소연이다. 자기 생각을 글로 써 볼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을 누차 강조하고, 슬쩍 수능 공부에 실제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말도 보탠다. 이걸로도 통하지 않으면, 기말고사에 오늘 쓴 글쓰기도 시험 문제로 나올 수 있다는 점을 흘린다. 이 말이 끝나도 교실의 반 정도 학생은 멍한 상태, 그대로이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경력 10년차. 신임 국어교사 티를 벗어나고 있는 나는 아직도 아이들의 글쓰기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시간이 한참 더 지나도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나부터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을뿐더러-익숙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글쓰기 과제는 꼭 피하고 싶은 청소구역 당번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다.- 어떻게 가르쳐야 한다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이런 생각을 하니 도대체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글쓰기 수업을 할 때 글의 시작은 어때야 하는지, 마무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실제 글을 가지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학생들이 실제로 연습해 보도록 가르치기가 아주 어렵다. 아울러 자신들이 쓰려는 모든 글에 일관되게 담겨야 할 글쓰기의 자세나 태도를 가르치거나, 여러 가지 형식의 글을 쓸 때 꼭 필요한 각각의 특징을 이해하게 하고, 기능을 연마하게 하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꼭 이런 문제의식으로 이 책을 고른 건 아니었다. 제법 오래 전에 내 서재이웃인 ‘순대선생’님께서 이 책을 극찬했던 리뷰를 읽고 나서 당장 이 책을 샀었다. 그렇지만 내 머리의 말을 잘 듣는 내 손이 그때 같이 샀던 읽기 편한 책들을 항상 먼저 골라 들어서, 이 책은 내 책장 한 곳에 꽂혀있기를 벌써 몇 달!(그런 책이 꽤 많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올해는 책장에 묵혀둔 책을 좀 읽자는 결심으로 펼친 책이다.

 *


    3월 중순부터 거의 두 달 동안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를 띄엄띄엄 읽었다. 내가 쓰고 나서보니 이 첫 문장은, 혹시나 이 글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전혀 놀라움을 줄 수 없는 죽은 문장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은 탓이라고 해야 할까,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앞 문장에서 어떤 단어를 골랐든, 앞으로 내가 어떤 글을 쓸 때마다 이 책의 내용이 가물거려서 내 둔한 머리 수준을 탓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윌리엄 진서의 이 책을 통해 나는 좋은 글쓰기의 핵심 요소가 명료함, 간소함, 간결함, 인간미(154쪽)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글쓰기에 있어서 명료함이란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이 이 글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간소함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글쓰기 자료를 자기가 쓰는 글에 쏟아 부어 만들어나가지 않는 것이다. 또한 어떤 영역의 글이든 작가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글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간결함은 모든  문장에서 가장 분명한 요소만 남기고 군더더기를 걷어내어서 표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미. 인간미는 아무리 딱딱한 글이라도 결국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인간일 수밖에 없는 작가의 목소리가 글의 문체를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는 거다.
   이 책은 또 우리에게 이런 깨달음을 전해준다. 앞에서 말했던 글쓰기의 이런 기능을 익히는 것보다 진짜 글쓰기를 좋아하고, 자기가 쓰는 글의 내용에 대해 관심과 흥미, 애정을 갖는 것이 더 좋은 글을 쓰는 데 더욱 필요한 자세라는 것을 말이다.

   중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쓴 책은 아니지만, 교사들이 이 책을 곁에 두고 글쓰기 지도에 활용한다면 학생들이 어떻게 글을 시작하고 내용을 채워 넣고, 마무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히 학생들이 쓴 글에 대해서도 제대로 평가를 내리고, 평가 결과에 대해 일관되고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도 가능하다.

「뱀발」

   교사 자신이 글쓰기를 좋아하고, 평소에 자주 글을 써보는 것보다 좋은 글쓰기 수업 준비는 없다는데, 나는 리뷰 한 편 쓰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드니, 참……! (선생 노릇 제대로 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그러니 수 백 편의 리뷰를 쓴 사람들이 부럽다고 해야 하나, 두렵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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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이최고야 2008-05-24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읽고 써서 그런지 리뷰가 재미있으면서 지루하지 않네요.ㅋㅋ 좋은 글의 요건이라는 명료함, 간소함, 간결함, 인간미가 두루두루 갖춰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