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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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편. 책으로 바뀐 인생

   소설 동의보감(이윤성, 창작과비평)-그 때는 학력고사 시절이었으니까 고3겨울 방학에 들어가면서 읽었던 책.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세 권짜리 책을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작가가 이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작고한 것이 왜 그렇게 허전하고 아쉽던지… 

   임꺽정(홍명희, 사계절)-‘소설 동의보감’ 이후에 내 돈으로 한 권씩 사서 읽기 시작했던 열 권짜리 책. 낯선 단어들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대강의 줄거리만 더듬어가도 흥미진진해서 ‘얼른 돈을 모아서 다음 권 사러 가야지’ 하는, 내 마음을 들뜨게 만든 첫사랑의 책. 돈 들고 서점에 가는 게 참 뿌듯했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에 마땅히 겪어야 할 청소년기 자아의 성장이라는 통과 의례를 대학입시 이후로 미루는 게 당연시된다. 그러니까 덩치는 커지고 나이는 먹었어도, 사고 능력이나 자아 인식은 어린애 수준 그대로 정체되어 있다. 자아의 성장에는 자아 탐색, 자아 발견, 자아 확립의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 사색과 독서와 체험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독서는 사색의 계기나 내용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제한적인 체험과는 달리 무제한의 간접 경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자아 성장의 핵심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책을 읽지 않는 나를 상상할 수 없지만, 나 역시도 출발은 꽤나 늦었던 것 같다.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달리 말해서 자아 성장의 출발은 내 스스로 책을 골라 읽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랬다. 나의 책읽기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분명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진행형이라 아직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책을 통해 나만의 알에서 껍데기를 깨고 나와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기도 했으나, 이내 책을 사 보는 것으로 습관이 바뀌었다. 빌렸던 책을 돌려주고 나면 내 머리 속에 들어온 내용이 책과 함께 내 머리에서 빠져나가는 느낌 때문이었다. 두 번 보지 않을 책이라도 내 방에 있어야 그런 느낌이 덜했으니까 책을 사 모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나의 책읽기는 직업에 필요한 기본활동이자 중요한 취미활동이다. 책읽기를 통해 직접 만나지 못하는 낯선 세계와 만나고 있으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간접적인 만남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책을 통해 성장한 내 경험을 들려줄 때, 잠깐이라도 반짝거리는 눈빛을 던지는 아이들을 보는 게 좋고, 가끔은 고단하고 힘겨운 내 일상을 책 속에서 고통 받는 인물의 삶으로 대치시켜 감정을 정화시키기도 한다.

   내가 그 때 소설 동의보감이나 임꺽정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책읽기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겉으로는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내 생활보다는 조금 더 단조롭고 지루했을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지금보다 더 흐릿할 것이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는 배려와 여유가 부족했을 것이며, 내가 의식하며 살고 있는 세계의 범위는 턱없이 좁아졌을 것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알라딘의 ‘플래티넘’ 회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고,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가 무엇보다도 기쁘다.

   내가 새삼스럽게 이 기억을 떠올린 것은 책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한 소녀를 만났기 때문이다. 재봉사의 딸이었던 바느질처녀. 산골마을에서는 보기 드물게 예쁜 이 처녀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재교육을 받기 위해 농촌으로 내려온 소년들과 친하게 지낸다. 소년들은 당시에 금서였던 ‘발자크의 소설’을 구해 처녀에게 들려준다. 이후에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나고, ‘발자크의 소설’을 통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처녀는 산골마을을 떠나게 된다. 발자크의 소설을 읽은(여기서는, 들은) 처녀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산골 처녀가 아니다. 책이 한 사람을 변화시킨 것이다. 그렇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달라지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그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제 2편. 책이 없는 세상은…

   두 번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군대라는 곳은 가기 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군인으로 길러지는 첫 과정인 훈련소 시절에도 몸은 힘들었지만 의외로 재미도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니까 오히려 속은 편했다. 오히려 나는 새로 초등학교를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군대의 훈련소는 어른이 다니는 초등학교. 비록 남녀공학이 아니라 슬펐지만. 초등학교처럼 모든 게 낯선 환경이니까 몰라도, 틀려도, 죄가 되지 않는 독특한 상황! 그러나, 단 한 가지, 머릿속을 텅 비우게 만드는 그런 상황은 괴로웠다.

   명령대로 행동하는 인간으로 만들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걸 최소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시간과 거리를 주지 않는다. 하루 일과는 아침 여섯시 기상부터 저녁 열 시 점호할 때까지 아주 빡빡한 일정대로 움직여야 하며, 이후에도 책이나 잡지 등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재료는 차단한다.

   이미 어느 정도 책을 읽는 것에 길들여진 나는 훈련소에서는 읽을거리를 구할 수 없다는 게 아주 괴로웠다. 책은커녕 신문 한 장도 구경을 못 했으니까. 그 때 내가 읽을 수 있는 유일한 글은 편지였다. 그래도 입소하고 보름이 지나서야 쓸 수 있는 내 편지에 다시 답장이 오려면 너무 기간이 오래 걸려서 마음이 급했다. 그 때 친구에게 쓴 편지에 좋은 시를 좀 베껴서 답장으로 보내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허겁지겁 답장을 챙겨서 읽었던 그 순간이 짜릿함이란. 편지지 몇 장에 빼곡하게 담겨 있는 시를 밤마다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새삼 새롭다. 그 중에 한 편,

꽃들 3
-십오척 담장 밑을 거닐다 우연히 발견한 꽃. 나팔꽃보다 가는 줄기에 촘촘히 핀 붉은 꽃송이들. 누군가 일러준 그 꽃의 이름은 별꽃.......

구태여 물어보지 않아도 / 난 네 이름을 금방 / 알 수 있었다

별꽃

아름다운 것만 보면 / 불안한 시절에

더 이상 / 아무것도 감출 것이 없다는 듯 / 가는 줄기에 촘촘히 / 박힌 붉은 / 꽃

당신의 핏줄 한 올 뽑아 널면 / 이토록 붉고 선명한 꽃 / 피울 수 있나요

아직 / 가슴에 달린 붉은 수번 하나조차 / 힘겨운 내게 / 묻는가

붉은 것만 보면 / 가슴이 뛰던 시절에

별꽃

자세히 보면 / 그러나 아주 친숙한 얼굴로 너는 / 날마다

(꽃들, 문부식, 푸른숲, 1993)

   군대에 있던 나에게 이 시가 주었던 감동은, 지금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고 할까? 그랬다. 시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아도, 시 한 편이 사람 마음에 꽉 들어차면 그날부터 그의 삶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나마 알았다. 편지가 온 날부터 문부식의 ‘꽃들3’을 외면서 아침을 먹고, 제식훈련을 하고, 행군을 하고, 휴식을 하고, 뺑뺑이를 돌고, 점호를 하고… 그 때 훈련소 안에 핀 들꽃을 보면서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군대니까 처음부터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어떻게든 견뎌 나갔겠지만, 친구가 보내준 시가 아니었다면 훈련 기간이 무척 더디게 느껴졌을 것이다.

   내가 새삼스럽게 이 기억을 떠올린 것은 책을 읽는 것이 금지된 시대를 살아가는 두 소년을 책에서 오늘 만났기 때문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 부르주아 계급의 아들인지라 농민에게 재교육을 받기 위해 시골에서 지내는 두 소년은 언제 도시로 갈지 기약도 없는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가 이들은 우연히 당시에 금서였던 ‘발자크의 소설’을 구하여 읽게 되고, 이를 계기로 점차 새로운 사건이 펼쳐지게 된다. 이들에게 ‘발자크의 소설’은 하방 운동 당시의 불안한 현실을 더욱 위협하는 요인(금서를 읽다가 들키면 중국 공안부에 고발당한다.)인데다가, 현실의 절망적인 삶을 뒤바꿀 수단도 아니었지만, 새로운 의욕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게 하고, 삶의 의미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군대시절의 시(詩)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제 3편. 책의 효용에 대한 헌사

   우리나라 작가들이 ‘전쟁’이나 ‘독재’에 대해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중국의 작가들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아주 뿌리 깊이 박힌 듯하다. 중국 소설의 문외한이지만 몇 권 읽어 본 중국의 현대소설들은 대체로 문화대혁명 기간에 겪었던 부조리한 상황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기야 ‘문화대혁명’으로 불리는 그 잔혹한 코미디의 최대 피해자가 바로 부르주아 지식인들이었으니, 작가들의 그 공포감이 전혀 근거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 소설도 문화대혁명 기간에 부르주아 계급(의사)의 아들로, 젊은 지식인인 나와 ‘뤄’는 농민들에게 재교육을 받기 위해 ‘하늘긴꼬리닭’이라는 산 아래 마을로 오게 되었다. 이곳에 사는 농민들은 내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뤄’가 가진 자명종을 처음 보고 신기해할 만큼 문명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도시에서 재교육을 받기 위해 내려와 마을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은 나와 ‘뤄’의 순간적인 기지로 헤쳐 나가지만, 나와 ‘뤄’는 산골마을에서의 재교육이 끝나고 도시로 돌아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태(3/1000)라서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있다.

   이들이 이런 산골 생활의 절망감을 벗어나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발자크’가 쓴 소설들을 구하고 나서부터다. 온 세상의 책이 금서로 지정되어 읽을 책이 없던 문화대혁명의 시기에 이들은, 옆 마을에서 이들처럼 재교육을 받고 있던 ‘안경잡이’가 금서였던 ‘발자크의 소설’을 가지고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고, 이들은 ‘안경잡이’가 재교육이 끝나 도시로 떠나기 전날 밤, 그 책을 훔쳐 그들의 손에 넣게 된다.

   내 친구 ‘뤄’는 이 책을 자기가 좋아하고 있던, 마을 재봉사의 딸인 바느질하는 처녀에게 읽어주기로 결심하면서 “이 책들로 나는 바느질 처녀를 딴사람으로 만들어놓겠다. 그 애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산골처녀로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고 선언한다. ‘뤄’는 남들의 눈을 피해 밤마다 처녀의 집으로 가는데, 처녀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빨간부리까마귀’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낭떠러지를 지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매일 밤 힘겹게 낭떠러지를 건너 가 책을 읽어주던 ‘뤄’는 바느질 처녀와 깊은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뤄’가 촌장의 치아를 치료해준 덕에 휴가를 얻어 도시로 잠시 떠났을 때 바느질 처녀는 나에게 ‘뤄’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렸고, 나는 ‘용징’이라는 소읍의 병원을 찾아가 만난 산부인과 의사에게 ‘발자크’의 책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바느질 처녀의 낙태수술을 도와주었다. ‘뤄’는 다시 마을로 돌아왔지만, 석 달 후 바느질 처녀는 전혀 달라진 모습으로 도시로 떠나버렸다. 바느질 처녀는 뒤늦게 알고 쫓아간 나와 ‘뤄’에게 발자크를 통해서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 걸 깨달았다면서 가던 길을 가버렸다.

  산골처녀에게 ‘책’은 자신을 변화시킨 원동력이었고, 자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준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책이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건강한 믿음을 가진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요즘처럼 책이나 문학이 무가치하게 취급받는 시대에도 이런 책이 꾸준히 읽힌다는 것은 묘한 역설이다. 만약 이것이 역설적 상황이 아니라면, 겉으로 드러난 현상과는 달리,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는 책에서 지친 삶을 위로받거나, 책의 힘으로 자기 내면의 변화를 꿈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었을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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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10-29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자서전을 쓰셨군요. ^^
3학년 담임 하시면서 글쓰기가 고프셨던 모양입니다. ㅎㅎㅎ
이제 한 2주만 더 고생하시면 두어 달 쉬시겠네요. 독서적 자서전, 잘 읽었습니다.

느티나무 2007-10-29 16:21   좋아요 0 | URL
자서전은요, 제가 그럴 깜냥이 있나요?^^ 안 쓰니까 더 안 써지는 거, 알고는 있었지만 이 지경인 줄은 몰랐습니다. 수능은 17일 남았는데, 끝나도 여전히 바쁠 것 같은데, 진짜 쉴 수 있나 보네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심상이최고야 2007-11-01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어떤 이에게는 군대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는 군요. 시 읽는 군인 아저씨라.... 낭만적이다.ㅋㅋ리뷰를 보니 소설이 궁금해 집니다.

느티나무 2007-11-01 11:18   좋아요 0 | URL
낭만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단지 고통스러운 현실[바보가 된 느낌]을 견디기 위한 마취제였을 뿐! 이제는 그 때 정말 힘들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집니다. 소설은, 전에도 말했지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