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도 보충 수업 때문에 학교에 있었다. 그런데, 마침 2학기 인사이동이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학교 교감 선생님이 모 중학교 교장으로 발령이 났고, 중학교에서 근무하시던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새로 교감으로 오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새로 오신다는 그 분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내가 아는 분이셨다. 벌써 20년이나 된 기억인데, 어쩌면 그게 단박에 떠오를까, 신기할 뿐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수학 선생님이셨다. 사실 별다른 기억은 없고, 눈매가 날카롭고 무척 무서웠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 있다.(우리 학교에서 젤 무서운 선생님이라고 소문이 나서 3학년에 올라갈 때 제발 그 선생님 반만 안 되기를 모든 학생이 빌었다.)

   다음날 아침 여러 가지로 생각이 복잡했다. 일단 새로 오시는 교감샘과 '사제'관계로 묶이는 게 싫었다. 우선 개인적으로는 공적인 조직 관계에 사적인 관계가 얽히는 것 자체를 아주 싫어하고, 교감이라는 직책상 교사와 갈등 요소가 많을 수 밖에 없으며, 내가 20년 전에 배웠다는 것만으로 아직도 나를 지금 자기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처럼 생각하는 어처구니 없는 경험도 있었기에, 씁쓸한 것이 사실이다. 뭐, 그래도 나름대로 경험이 있으니까 잘 정리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동시에 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직접 겪어볼 밖에. 첫날에 가서 먼저 인사를 드리고 사실대로 밝혀야겠다.

   그런데 이 사실이 내 머리 속에서는 엉뚱한 방향을 진화하여 며칠동안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교감선생님이 지금 오십대 초반이라고 하시니까 20년 전에는 삼십대 초반이셨을거다. 그러면 그 당시엔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왔으면 교직 경력이 별로 많지는 않았을 '초보 교사'였을텐데...그 선생님이 우리에게 남긴 게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봤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했을지도 모르지만(젊은 남자였으니까), 무지막지한 체벌과 긴장된 분위기의 수업 시간 때문에 항상 그 선생님 앞에서는 움츠러들었던 기억 밖에 없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젊은 교사라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해 볼만한 다양한 교육 활동, 새롭고도 신선한 발상으로 학생들에게 다가서는 마인드... 교육 경력이 짧은 교사들에게 기대하는 교직에 대한 열정과 함께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든다. 삼십대 초반은 이미 지났는데, 이제는 면피할 수 있는 초보교사 딱지도 다 떨어져 가는데, 삽십대 초반에 나를 만났던 아이들은 20년 후에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누구처럼 내가 무엇이 안 되어 있을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내 좋은 모습이 하나도 없을까봐 진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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