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인’, 지구에 내려오다
최 인 자 교 수 님
(신라대학교 국어교육과)
내가 ‘글밭 나래 우주인’들을 만난 것은 작년 가을이다. 평소 현장을 연구하고 싶었던 나의 갈증을 마침 이주형 선생님이 풀어주신 셈이었다. 원래의 계획은 내가 궁금한 내용을 설문지로 돌려 학생들이 답을 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느끼고 있는 책 읽기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설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느끼는 즐거움은 매우 다양할 수 있고, 또 외부인인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점도 많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원래의 계획을 전면 수정하였다. 그리고 이 ‘우주인들’을 관찰하기로 마음먹고 그 영광(?)을 얻었다.
이들은 매주일 한 번씩 특별실에서 모여 토론하였다. 4층 교실 맨 끝 방. 어두컴컴한, 사람 기운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황량한 교실. 그러나 이들은 무엇이 좋은지 왁자지껄 책을 펼치고 이러저런 이야기를 시작해 나갔다. 내가 가장 놀란 사실은, 여러 친구와 선생님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생활과 생각을 스스럼없이 말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요즘 학생들은 자기표현의 말들을 아주 잘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학교 교실을 찾아가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주인’들은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삶과 생각을 편안하면서도 정돈하여 말했다.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였다. 이는 참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사실, 우리나라 학교 현실에서 ‘함께 읽기’의 모습은 매우 찾아보기 힘들다. 나 자신도 ‘책벌레’라고 할 만큼 책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대부분, 혼자만의 방에서 은밀하게 읽는다. 내가 혼자 열고 내가 혼자 만드는 상상의 나래는 어쩌면 나무 그늘 같은 휴식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읽은 책을 함께 나누고, 함께 이야기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세계의 열림이라고 할 만한 특별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 우주인들은 독서를 문화의 하나로 즐기고 있는 듯이 보였다. 요즘 학생들에게 독서는 노동이고, 학습이고, 약속이다. 그것은 만만치가 않고 힘들다. 우주인들의 속사정을 내가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이들에게 독서는 친구와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매체였고, 또 생활에 자신감을 불어 넣을 수 있는 활력으로 보였다. 획일적인 학교 수업에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그 이야기를 들어 주는 친구가 있고, 또 선생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경험이 되지 않나 싶다. 사실, 책은 생활 속에서 어떤 삶과 함께 하는 것이다. 책을 통해 어떤 사람과 깊은 만남을 가지기도 하고 또 책을 통해 자신이 변화하는 느낌을 얻기도 한다. 독서 경영이니 독서 클럽이니 하는 말들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우주인들의 책 읽기는 다소 프로젝트형이다. 그들은 책을 넘어서 세계를 읽고, 자신을 읽고, 또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었다. 나는 논문 속에서 ‘아카데미형 클럽’이는 말로 이런 모습을 표현하였다. ‘아카데미’란 말이 다소 무거울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또 답을 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하고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이들의 모습을 담기에 결코 부적절하지 않다고 평하고 싶다. 학문의 출발은 자신의 질문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늦가을, 오랜만에 고등학교 교정을 밟으면서 한 개인의 힘이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를 생각했다. 작은 파문은 더 큰 파문을, 그리고 더 큰 소용돌이를 몰고 오면서 호수 전체의 물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요즘 불고 있는 논술 광풍은 독서가 원래 삶으로부터 나와 삶으로 돌아간다는 본질만큼은 잊고 있는 듯하다. 스스로의 느낌이 생략된 책 읽기가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다시 새봄이 오고 있다. 작년 한 해를 거쳐 다져진 싹들이 새 봄엔 큰 나무를 키워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