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악의 뿌리
장수영 지음 / 북랩 / 2020년 2월
평점 :
천사 같은 청순한 외모의 '일매'라는 여성을 당분간 잊기 힘들 것 같다.
그만큼 그녀의 삶이 충격적이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녀와 함께 '불행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드는
잘생긴 심리상담사 '준걸'이 '일매'와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다음 장이 궁금해서 내려놓지 못하는 소설이면 좋겠다는 장수영 작가의 바람대로
한번 잡으니 잠시도 놓기 힘들 만큼 빠져들게 만들었다.
일매의 엄마는 쌍둥이를 낳으면서 딸인 '일매'를 먼저 나았다는 이유로
허약하기만 했던 둘째 아들 '이현'이 아플 때마다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당한다.
그리고 이후 두 명의 아들을 더 낳으면서 장녀로서의 희생을 강요하는 엄마로
자리 잡는다. 뭐든지 양보하고 헌신해야 하는 위치에 선 일매는 공부를 잘했지만
가고 싶은 대학교는커녕 돈 많은 집에 시집이나 가서 그 돈으로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신세에 처한다.
그리고 뛰어난 외모에 반한 병원장 아들의 달콤한 꼬임에 넘어간다.
말도 안 되게 뻔한 거짓말임에도 불구하고 일매는 한결같은 믿음으로
몸과 마음을 다 준다. ........그리고 배신의 아픔에서 만난 선배 준걸.
준걸의 아버지는 죽다 살아나면서 동자신을 받아 '무당'이 된다.
신통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가난하던 집안은 어느새 부자가 되었지만
'몸보시'라는 음흉한 수작을 모르는 척 넘어가야 했던 어머니의 가슴에
깊은 복수심과 상처를 남긴다. 준걸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느끼면서도
어머니의 철저한 비밀 유지로 자세히는 알지 못한 채 부유하게 자라난다.
.......그리고 어느 날 청순하고도 순수한 일매라는 후배에게 첫눈에 반하고 만다.
준걸과 일매의 일상이 교차되어 나오는 시점은 마치 관찰자처럼 담담하다.
어린 시절 자라온 환경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은 그들의 가치관과
이성에 대한 '환상'이 맞물리면서 행복한 듯 불행의 길로 향한다.
그와 그녀는 모두 서로를 사랑하고 완벽하게 충실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특히 일매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불가할 만큼
까도 까도 끝 없는 양파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와 마지막까지 진짜...ㄷㄷ;;
한결같은 순결한 모습으로 모든 것을 무던히 받아넘기는 그녀가 대를 이은
분노를 마주한 순간은 아들 '민준'이라는 존재를 통해서이다.
간절하고도 어렵게 얻은 아들이 건만 그녀는 용서할 수 없는 지난 세월의
서러운 날들을 결코 잊을 수도 버릴 수도 없다.
잘생긴 준걸에게 다가오는 여자들
연예인처럼 예쁜 일매에게 접근하는 남자들
악연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두 집안의 사정
*
거센 부산 사투리가 많이 등장하지만 전혀 어색함이 없다.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인생의 거친 일부분 같았다.
일매를 통해 반전에 반전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맛보고 나니
묵직한 무언가에 한방 맞은 듯한 먹먹함에 씁쓸했다.
이러한 여운은 마지막 작가의 말에 등장하는 작품 의도를 읽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ㅡ 진짜 의도는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만나보길 바란다.
저질스러운 표현과 위트에 의도적 포르노그래피가 아닌가 의심이
들겠지만 분명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받기를 저자의 입장에서
간절히 바랄 뿐이에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뭔가 씁쓸한 웃음이 뒤따르기를......
- 작가의 말 _290
가해지는 모든 폭력이 읽는 내내 괴로웠지만 빨려들어갔다.
열린 결말이지만 난해하지 않고 깔끔한 마무리라서 좋았다.
불편한 충격을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