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나의 책읽기 06 - 고전의 의미

어느 시대나 고전이란 존재한다. 그런데 고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오래도록 읽힌 책을 고전이라 해야할까? 아니면 아주 오래전에 쓰인 책을 고전이라 해야할까? 우리가 흔히 클래식이라 말하는 고전의 의미를 정의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고전이 오늘날에도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내 이야기 두 가지를 해보자.

어떤 이는 교양이란 것을 잘난 척하기에 적당한 것이라고 우스갯소리 삼아 말하기도 했는데, 난 이런 류의 글쓰기를 일종의 뻐기기라고 생각한다. 교양이나 고전을 잘난 척하기 위한 책 읽기로 단정해버리는 심리의 기저엔 자신의 열등감을 숨기기 위한 혹은 진지함에 대한 알러지 같은 것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책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장 자끄 루소의 "에밀"을 꼽는다. 그런데 그보다 더 충격적인 고백 한 가지를 하자면 내가 "에밀"을 처음 읽은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란 것이다. 어떤 이는 이 말에 경악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전혀 경악할 만한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읽은 "에밀"이 어린 소년에게 과연 얼마나 먹혀들었을 것이며, 얼마나 이해되었을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면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읽은 "에밀"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는가?

세상에 제 아무리 좋은 책이 널렸다 하더라도 그 책을 읽지 않는다면 그건 그저 인쇄된 종이에 불과하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도서관으로 대피한 청년들이 얼어죽지 않기 위해 벽난로 불쏘시개로 쓰는 것도 책이다. 그 도서관의 사서 역시 살아남기 위해 책을 불태운다. 이 때의 책이란 아무리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은 아니다. 하지만 사서는 한 권의 책만큼 자신의 품에 꼭 품은 채 내놓지 않는다. 쿠텐베르크가 인쇄한 고인쇄물인 "성서"였다. 이 책이 "성서"라 불태우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류의 문명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할지라도 세상에 인류의 흔적으로 남기고 싶은 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초등학교 4학년의 손에 잡힌 "에밀"을 나는 몇날 며칠에 걸쳐 다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그 책이 잘 이해되어서 읽은 것은 아니다. 다만, "에밀"의 첫 구절이 내 가슴에 찌르르 와 닿았던 탓에 그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나중에 가서 어떻게 결말을 맺을까? 그것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에밀의 의미심장한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조물주의 손을 떠날 때에는 모든 것이 선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넘어오면 모든 것이 악해진다."

어린 나이에 읽은 "에밀"을 과연 잘 이해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그후로도 틈틈이 "에밀"을 읽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어린 시절의 내가 "에밀"을 잘 이해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알지 못한다. 다만 "에밀"이란 책의 말미에 소개된 "장 자끄 루소"의 생애가 날 또다시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런 근대의 탁월한 교육철학책을 쓴 장 자끄 루소가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태어나는 족족 고아원으로 보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지 않은가. 책과 책의 저자가 위인전과 위인 만큼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된 계기였다.

나중에 대학에 간 어느날 우리를 가르치던 교수는 자신의 강의 시간에 강독한 소설 작품들 가운데 "앞으로 100년 뒤에도 여전히 읽히게 될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작품 하나를 선정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정리해서 리포트로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앞으로 100년 뒤에도 여전히 읽게 될 작품을 선정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선정하라니... 끔찍한 과제였다. 우리 근대문학의 역사를 이인직의 "혈의누"로 잡아도 2006년이 되어야 비로소 100년인데, 그로부터 100년 뒤에도 여전히 읽게 될 소설을 자신이 진행한 강의 시간에 강독한 10편 가량 되는 소설들 가운데 골라 보라니 끔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덕분에 나는 고전이란 무엇인지, 명작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고전이란 시간이란 숫돌에 연마하여도 그 빛이 사라지지 않고 더욱 빛나는 것들을 의미한다.

김명수 시인의 시 "하급반 교과서"에 등장하는 한 대목처럼 "아니다 아니다!"하고 읽으니 / "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도 하나도 흐트리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 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읽기여"를 하며, "참새 짹짹, 병아리 삐약삐약"을 외우듯 한국 최초의 개인 시집은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라고 외우지만 정작 "해파리의 노래"란 시집이 오늘날 고전이라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시집을 처음 손에 넣은 것이 불과 일주일 정도 전이란 사실을 구태여 상기해보지 않더라도 이 시집이 오늘날 김소월이나 윤동주가 누리는 것과 같은 영예를 누린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시집은 어떤 의미에선 고전이라기 보다는 문학연구자들에게 필요한 연구자료에 가깝다. 고전은 그와 같은 의미에서 단지 오래된 책이란 의미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고전이란 무엇인가? 어째서 "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이라는 거창하기 짝이 없는 제목이 붙게 만드는 것일까?  '고전(古典, classics)'과 함께 책을 의미하는 몇 가지 명칭들을 이야기해보자. 우선, 정전(正典(canon)이란 말이 있고, 실라버스(syllabus)가 있고 텍스트(text)란 말이 있다. 앞의 것일수록 범위가 좁아진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텍스트란 것이 말 그대로 '해석(규정)되기 이전의 원본'을 의미한다면, 실라버스는 이런 텍스트들 가운데 특별한 목적과 제도로서 선별된 텍스트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보다 쉽게 이해를 돕는다면 대학에서 어떤 강의 교재로 채택한 도서 목록이 있다면 그것은 그 강의의 실라버스라 할 수 있다. 정전(cannon)이라 하는 것은 갈대나 장대를 의미하는 고대 희랍어 kannon에서 유래된 말로 후에 '규칙' 혹은 '법'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말은 보다 발전하게 되어 다른 텍스트들보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어떤 텍스트들을 규정하는 말이 된다. 가령,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성서와 이를 해석한 신학 서적들이,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꾸란이, 우리와 같은 유교문화권에서는 "사서 오경" 과 같은 책들이 정전이 될 수 있다. 정전이란 한 문화권이 위대하다고 동의하고 있는 혹은 간주하고 있는 작품들의 총합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고전(classics)와 흡사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고전이란 말은 보다 확실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사용되는 말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정전이란 말은 보다 객관적인 용어로 쓰인다는 것이다.

만약 한 개인에게 내 인생의 의미있는 책 100권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 개인에게 있어서만큼은 확실히 정전이 될 수 있다. 그런 개개인이 100명이 모이고, 1,000명이 모이고, 다시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면서 서로의 정전이 겹치고 스며들면서 구성되는 것이 바로 그 사회의 정전이 되고, 세월과 함께 숙성되어 인정받는 것이 바로 고전이다. 그러나 어떤 고전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들로 손꼽히는 이들치고, 그 백성들에게 가혹한 희생을 강요하지 않은 왕이 없는 법처럼 종종 이집트의 피라밋처럼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곤 한다. 즉, 존경받아 마땅한 고전들은 종종 교양(敎養)이란 이름으로 - 그것이 culture이든, bildung이든 상관없이 -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인간도 그 시대와 괴리된 채 살아갈 수 없기에 우리는 교양이란 이름으로 그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교육받곤 한다. 교양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시대의 상식을 얼마나 잘 꿰차고 있는가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상식(common sense)이란 정상과 비정상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또다른 정전이기도 하다.

이 말은 상식이 바뀌면 고전이나 정전의 지위도 바뀔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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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칠단의 비밀 - 방정환의 탐정소설 사계절 아동문고 34
방정환 지음, 김병하 그림 / 사계절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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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이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더니 과연 헛말이 아니었다. 방정환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고무신에 오줌을 받아가면서 들었다는 일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 그말이 사실이겠구나 싶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을 때 느낀 감정과 비슷했다. 마치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들려주듯이 그렇게 조근조근하게 글을 쓴다.

이 책 속에는 <동생을 찾으러>와 <칠칠단의 비밀>이라는 두 개의 이야기가 함께 들어있다. 모두가 탐정소설이라는 갈래다. <동생을 찾으러>는 중편소설이고 1925년에 <<어린이>>에 발표가 되었다. <칠칠단의 비밀>은 장편이고, 1926년부터 27년까지 <<어린이>>에 연재되었다고 한다. 당대의 어린이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이 소설들을 읽고, 또 기다리고 했을지 짐작이 간다.

<동생을 찾으러>에서는 주인공인 창호가 납치된 여동생 순희를 중국인들의 손에서 구해내기까지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칠칠단의 비밀>에서는 일본인 곡마단에서 자란 상호가 여동생 순자를 중국까지 가서 되찾아 내고, 어린시절에 헤어진 아버지도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이 모험의 과정이 정말 쉴 틈 없이 긴박하게 진행이 된다. 손에 땀을 쥐고 책을 넘길만큼 긴장의 연속이다.

상호나 창호, 소년회원들, 조선인 어른들은 모두들 얼마나 씩씩하고 의리있는 사람으로 나오는지. 중국인들은 모두 음흉하고, 일본인 순사는 조선인의 불행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관료들로 나온다. 약간의 상투성도 느껴지고, 우연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마음에 거슬리는 곳이 많지만, 한편의 이야기로서 말의 솜씨는 현대의 여느 소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방정환이 33세에 죽었다는 것이 우리 민족의 불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가 뿌린 이야기의 씨앗, 어린이 사랑의 혼은 살아남아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양분이 되었으니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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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코드
브루스 커밍스 지음, 남성욱 옮김 / 따뜻한손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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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은 이른바 8월 위기설을 불러오고 있다. 6자회담이라는 틀이 회복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이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넘길 경우 북한과 미국은 전쟁직전 단계로 간다는 것이다. 이미 북한은 이 문제의 안보리 회부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큰소리친 바가 있다. 한반도에 사는 백성의 한사람으로서 우리는 말못할 두려움과 혼란을 느낀다. 우리가 전쟁이라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이곳이 우리의 삶의 터전인 까닭이다.

 커밍스 교수는 이 책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2004년에 미국에서 간행된 책이지만, 이 속에서 다루고 있는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긴급토론용으로 쓸모가 있겠다. 책 전체는 6장으로 짜여있다. 김일성의 만주게릴라 투쟁, 한국전쟁과 미국의 북한 공습, 김정일이라는 포스트모던한 독재자, 북한핵문제의 역사적 기원과 쟁점들, 북한의 사회발전과 인민들의 생활, 김일성 사후 북한이 가고 있는 길이 각장의 소재들이다. 커밍스는 과연 한국문제에 대한 세계적인 석학답게 넓고 깊은 안목으로 이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북한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시각을 기본적으로 견지하고 있는 점이 우리에게 신뢰를 주고 있다. 물론 냉전적 반공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불만일 수 있겠다. 그러나 북한과 과 공산주의에 대한 선입견과 미국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냉철하게 관찰한다면 커밍스의 진단에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문제는 미국을 선, 북한을 악이라고 보는 우리의 극단적 이원론이다.

 코폴라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미군의 공격용 헬기가 바그너 음악을 배경으로 밀림에 네이팜탄을 퍼붇는 장면일 것이다. 순식간에 숲이 불바다로 변하는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 와중에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달리는 베트남 인민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 네이팜탄은 베트남이 아니라 북한에 더 많이 퍼부어진 폭탄이란다. 미군의 공습으로 80% 이상의 파괴된 북한의 도시들에 대한 커밍스의 이야기는 또다른 충격이다. 우리는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한쪽눈만 뜨고 보도록 강요당해왔다. 커밍스에 따르면, 북한이 그토록 꽉 짜인 병영국가로 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들에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폭격의 기억과 전후에 끝없이 이어진 미국의 핵공격 위협이 북한을 하나의 거대한 병영이며 개미굴 같은 것으로 만든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책임론을 강하게 거론하는 셈이다.

 북-미 관계의 해답은 이미 1994년에 나왔다는 것이 커밍스의 진단이다. '94년의 기본합의서가 미국과 북한의 새로운 관계를 위한 유익하고 건전한 토대'라는 것이 커밍스의 견해다. 클린턴이 핵과 미사일을 북-미 관계 정상화와 맞바꾸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그 시도를 물거품으로 만든 것이 공화당과 부시대통령이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핵 위기설은 이미 10년 전의 필름을 '빨리 되감기'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 커밍스의 진단이다. 북한 외교팀이 현안에 대한 놀라운 집중력으로 사태를 이끌어가고 있는 반면에 미국은 혼란스런 대응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물론 그  혼란의 이면에 미국이 북한체제를 무너뜨리려하고 하는 야심이 자리잡고 있고, 그것은 한반도 전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위험하기도 하다.

 커밍스는 5장 <사람사는 세상>에서 그가 직접 본 북한사회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80년대초부터 북한을 방문했던 그가 보기에 북한은 주택과 의료, 교육이 균등하게 보장된 안정된 사회였다. 70년대 후반에 남한에 추월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경제는 남한을 늘 능가해왔다는 것이 커밍스의 지적이다. 이런 관찰을 토대로 해서 보면, 우리는 60-70년대 내내 남한이 보인 북한체제에 대한 두려움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커밍스는 냉정한 관찰자다. 그는 현실의 양면을 그대로 이야기한다. 지극한 폐쇄사회인 북한이 가진 결점들을 지적하면서도 그것이 이루어낸 성취와 가능성을 인정하기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북한문제에 관해서 균형잡힌 시각에 목말라왔다. 커밍스의 책은 그 목마름을 달래준다.

 여담하나. 아내는 내가 보는 책이 <다빈치 코드>인 줄 알았단다. 책표지가 붉은 것도, 제목의 위치까지 비슷하다는 것이다. 글쎄, 나는 <다빈치 코드>를 못 보아서 모르겠다. 이것은 번역본에 대한 불만이다. 번역제목이 원작 제목-North Korea: Another country-에 비해서 책내용을 나타내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표지의 붉은 색과 김정일 부자 사진도 마음에 안 든다. 아무래도 남한 사람들은 김부자의 사진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거든. 책표지가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부분들에서 커밍스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책의 판매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이 기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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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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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라는 극존칭과 개이름인 '시열이' 사이의 극단적인 대비가 송시열이라는 인물이 가진 위치, 명암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송시열이라는 창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조선후기의 역사라고 보면 되겠다. 여기에는 인조반정, 병자호란, 소현세자의 죽음, 효종의 북벌계획, 2차에 걸친 예송논쟁, 숙종시기의 잦은 정권교체-이른바 '환국'-와 상대당에 대한 부정과 살육의 역사가 들어있다. 조선후기 당쟁사의 대부분이 여기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송시열은 '노론'이라는 당대의 집권당을 이끌었던 이론가이자, 정치가로서 그 역사에 관여하고 있다.

결국 모든 비극의 씨앗은 서인들의 인조반정에 있었다. 명청교체기의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주체적으로 경영했던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은 '구데타'이면서 '역사의 퇴보'를 의미했다. 허울좋은 '재조지은'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얽매인 결과로 조선은 병자호란이라는 국가적인 재난을 당하게 된다. 씻을 수 없는 국가적인 모욕을 당하게 된다. 송시열이 활동한 시기동안 일어나는 국가적인 사건들-소현세자의 귀국과 죽음, 효종의 북벌론, 예송논쟁-도 결국에는 인조반정이라는 사건이 없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사건인 셈이다.

동아시아가 격변기였듯이, 조선의 국내사정도 격변기였다. 임진왜란은 국가지배층인 사대부의 권위를 땅에 떨어지게 만들었다. 대동법의 실시는 농업,상업의 발달을 촉진하고, 그 결과 사회적인 신분제는 더욱 동요하게된다. 여기에 지배세력인 사대부집단은 보수냐, 개혁이냐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송시열로 대표되는 노론은 지배체제의 재정비를 통해서 사회를 보수화, 일원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송시열은 '주자근본주의'의 깃발을 들고 그 방향을 선도했다. 이에 비해 김육, 윤휴, 윤증, 허목 같은 송시열의 경쟁자들은 다른 방식의 사회를 구성하려고 애썼다. 나는 송시열이 왜 이율곡이나 이퇴계가 아닌 '주자'에 그토록 집착했는지 의문아닌 의문이 들었다. 지은이의 말처럼, 주자는 송시열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죽기 전에 남긴 유언에도 "학문은 마땅히 주자를 주로 할 것이며"를 넣었을 정도로 송시열은 주자 마니아였다.

숙종의 왕권강화와 당쟁의 격화는 함께 간 측면이 있다. 남인과 노론이 몇 년 단위로 번갈아 집권하면서 상대방을 도륙하는 사이에 정치는 길을 잃게 되고, 도의는 땅에 떨어진다. 공작정치와 보복, 살육이 난무하게 된다. 물론 숙종은 그것을 이용해서 왕권을 강화한다. 왕권강화를 했다지만 그 실체가 무었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숙종 이후 경종, 영조시기에 더욱 격화된 당쟁응 상대당의 국왕은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조차 만들었다. 그 상황에서국왕이 설자리가 얼마나 좁았던가를 살핀다면 숙종이 한 일이 과연 잘한 일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영조의 탕평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학자들의 의논을 눈여겨볼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산림'이라는 집단이 흥미로웠다. 글만 하는 선비들이 나라를 경영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이른바 사대부 집단을 일본의 사무라이 집단과 비교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그들이 학문과 정치를 논할 수 있었던 것은 땅과 노비의 주인이라는 경제적, 사회적 배경 위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던가. 더구나 한문이라는 그 어려운 문자는 그들의 지적인 권위를 더욱 높였을 것이다. 과연 오늘날은 일하는 사람들 스스로 정치와 학문을 논하는 세계를 만들었는지 되새겨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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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일 오전 ‘몽양 여운형 선생 추모 사업회’가 마련한 ‘역사 탐방-몽양의 자취를 찾아서’에 참여한 시민들이 칼국수집으로 변한 서울 종로구 계동 몽양의 옛집 앞에서 강준식(맨 왼쪽 목도리 두른 이) 추모사업회 사무총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한겨레 2004.11.29>


여운형 선생 사후 첫 역사탐방



몽양 여운형(1886~1947)의 옛 비서 이기형(87)옹은 서울 종로구 계동 몽양의 옛집 앞에서 “66년 전(1938년)에 이곳에서 선생을 처음 만났다”고 회고했다. 이제 칼국수 가게(‘안동 손칼국수’)로 변한 초라한 건물 앞에서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옹은 “몽양 선생에게 몸을 의탁하러 이곳을 처음 찾은 게 바로 엇그제 같다”며 “그때는 세상 무서울 게 없는 21살의 젊음이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늙어 죽을 날을 기다린다”고 백발을 휘날리며 쓸쓸히 웃었다.

27일 오전 10시, ‘몽양 여운형 선생 추모 사업회’(mongyang.org)가 마련한 ‘역사 탐방-몽양의 자취를 찾아서’에 참여한 시민 50여명은 이옹이 내딛는 걸음 걸음을 숨을 죽인 채 뒤따르고 있었다. 몽양은 <조선중앙일보> 사장으로 취임한 1933년부터 서울 종로구 헤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당한 1947년 7월19일까지 이 건물에서 생활했다.



계동 옛집, 앞뒤 잘린채 식당으로
옛 비서 이기형씨 등 50여명 참여



강준식 추모 사업회 사무총장은 “이번 모임은 몽양 사후 57년만에 처음 이뤄지는 역사 탐방”이라며 “내년부터 3년 동안은 해외로 시각을 넓혀 중국 난징·상하이, 일본 도쿄, 만주와 이르쿠츠크 등을 다녀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국가보훈처는 몽양이 해방 이후 ‘근로인민당’ 당수로 활동하는 등 좌익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반세기 가까이 거부(<한겨레> 8월14일치 1면)해 왔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8월 “좌우 대립의 비극적 역사 때문에 독립운동사 한쪽은 일부러 묻힌 측면이 있다”고 의견을 밝히면서, 서훈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사업회가 꿈꿔온 여러 숙원 사업도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추모 사업회는 그동안 서울시 등에 계동 옛집을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몽양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지 않아 지원 근거가 없다”는 답변에 만족해야 했다. 그 와중에 방 4개를 가진 56평짜리 번듯한 한옥집은 앞뒤가 잘려나가 한옥도 양옥도 아닌 28평짜리 정체불명의 집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친일 부역행위가 잘 알려진 시인 서정주, 문인 이광수, 음악가 홍난파, <동아일보> 사주 김성수의 옛집 등을 사들여 기념관으로 꾸미거나, 문화재로 지정한 것과 비교하면 지나친 홀대가 아닐 수 없다. 몽양의 생가가 있던 경기도 양평군은 서훈이 이뤄지면 생가를 당장 복원하겠다고 추모 사업회 쪽과 약속한 상태다.

추모 사업회 쪽에서는 몽양의 동지였던 유정 조동호(1982~1954),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사법부장과 사료편찬위원을 지낸 김한(1887~1931) 등 다른 좌파 계열 독립운동가들도 내년에 서훈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 목표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어 서류 접수 조차 못하는 진보당 당수 죽산 조봉암(1898~1959)의 서훈이다.

조영건 ‘죽산 조봉암 명예회복 범민족 추진 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죽산의 서훈을 위해서는 먼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을 당한 부분에 대한 사면·복권이 필요하다”며 “몽양 서훈이 이뤄지면 죽산과 박정희의 쿠데타로 ‘사법 살인’을 당한 <민족일보> 조용수 등에 대한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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