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자기 완결형 구조의 글....

자기 완결형 구조를 갖춘 글을 읽노라면....

자기완결형 구조의 글이란 자기 혼자 말하고, 자기 혼자 의문을 제기하고, 자기 혼자 답하고 노는 일종의 넋두리겠지요.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쓰는 일기란 형식의 글이 이런 류의 글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누군가 읽어주면 좋지만 구태여 누군가에게 보여줄 필요 없고,
꼭 누군가의 댓글, 반응을 요하지 않는 혼자놀기의 진수....
혼자 두는 바둑, 혼자 치는 고스톱일지도...

저는 중1때부터 일기를 썼어요.
혹시라도 그나마 그것이 머리 쓰는 운동이 될까 싶어서인지 ... 도 모르지만.
그것보다 더한 현실적인 동인은?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 일기를 잘 쓴 학생에게도 상을 주더군요. 저는 일기를 쓰지 않아서 그 상을 못 받앗지 뭡니까....
그런 경험이 있은 뒤부터 중1때부터 고3때까지는 꼬박꼬박 일기를 쓴 편입니다.
학생이란 건 매일매일이 특별한 이벤트여서 그런지 아니면 다람쥐처럼
쳇바퀴 돌리듯 글 쓰는 일이라 그런지 일기를 쓰면서 내내 내 주변의 일상이란 것이
이토록 지루할 수 있을까.

어째서 일기란 건 이렇게 지루하게 쓸 수밖에 없는 걸까 싶더군요.
아직 어렸기 때문에 일기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나도 모르게 거울처럼 자신과 대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체험하지 못했던 탓이죠.

그러던 어느날 벼락맞듯 주변의 소리들이 들려오던 날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영화식으로 표현하자면 늘 sound off 상태로 있던 주인공에게
어느날 갑자기 모든 음향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거죠.
그러고 보니 세상엔 참 많은 이야기들이 있더군요.

그럼에도 저는 늘 독백을 늘어놓고 있더군요.
참 많이 외롭더라구요.
아, 이렇게 많은 이야기, 많은 영혼들 속에 있는데....
나는 부유하는 유령처럼 둥둥 떠 있다고 해야 할까요.
밤늦게 심야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무수한 사연들처럼 들으면 듣는 족족 모두
곧장 휘발해버릴 사연인 거죠.
나의 이야기도, 타인의 이야기처럼... 그렇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자기완결형 구조를 갖춘 글에는...

참, 결론없이 꾸리꾸리한 글이죠? 흐흐.
그냥 누군가의 대책없는(그래서 자기완결형 구조의 글쓰기는 다른 말로 넋두리라고 하지요. 참 예쁜 말이지 않습니까? 넋두리라니...)글을 읽노라니 심야의 어둔 방 구석에서 FM라디오를 배경음악 삼아 일기를 쓰던 밤들이 떠올라서요. 검은 비닐로 포장된 제 일기장엔 그 무더운 여름날 밤 무어라 적었을까. 

한 여름밤의 꿈...
혹은 지치고 나른한 일상...
어느날 밤의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는 듣기에 참 꾸리꾸리하지요.
심란한 밤이었겠구나, 하는 이심전심의 마음이 들어서 괜스리 이런 글 한 번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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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타인에게 말 거는 서너가지 기술

타인에게 말 거는 서너가지 기술
 
가끔 누군가와 이야기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야단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다른 구체적인 누구보다도 제가 더 언어에 대하여 혹은 사물, 사람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다는 보장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통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대상을 발견할 때
저는 저도 모르게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령, 일전에 자기완결형 글쓰기 구조에 대하여 말한 적이 있는데, 구태여 타인의 대꾸를 필요로 하지 않음에도 그런 식의 글쓰기에는 본의아니게 참여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는 데 반해서(그 이유는 거기에 이미 어느 정도 밝혀두고는 있지만 - 좀더 설명을 하자면, 그건 저역시 그런 류의 글이 가지고 있는 자체의 무게에 해당하는 대꾸를 하면 되니까 라고 해야 할 겁니다. 무거우면 무거운 대로, 가벼우면 가벼운대로 본인이 스스로 결론을 짓고, 매듭을 쥐었다 풀었다 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건, 어찌되었든 그 나름대로는 성숙한 인격의 글쓰기일 테니까, 댓글을 달 때 혹여나 하는 의심 같은 것으로부터 자유롭거든요.) 저는 타인에게 말을 걸 때...

말을 거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서로에게 필요한 예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1.  말 들어줄 사람을 제대로 골라라!
-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은 들으마 마나한 상대에게 말을 걸어선 적절한 대응을 얻을 수 없다는 겁니다.  내가 존중할 수 없는 상대에게 일부러 속내를 드러낼 필요도 없으며, 들어낸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성의껏 대응해줄리 없지요.

2.  말을 꺼냈으면 최대한 정직하라!
- 일단 말을 꺼냈으면,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는 거죠. 에둘러서 괜히 이것저것으로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포장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즉, 내가 존중할 수 있는 상대라면 그가 보이는 반응은 중하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3.  상대의 반응이 무엇이든 소중히 여기라!
- 그렇게 나를 드러냈으면 상대의 반응이 어떤 것이든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정직하게 드러냈는데 상대방이 보이는 반응이 설령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것은 그 나름대로 중요한 반응이라고 생각해봐야 합니다. 가끔 자신이 원하는 반응이 아니라고 해서 매도해버리거나 덮어버리려고 하는 이들을 보는데, 그건 상대가 당신의 말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그에게 액면 그대로 전달 못하는 당신 자신의 문제이거나 상대의 반응을 떠보려는 혹은 아이처럼 인정받고 싶어하는 내가 어린 탓이죠.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타인에게 말 거는 기술에 대한 "일반론"입니다.
물론, 이와 반대로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기술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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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11월의 인사

11월입니다.
"올해도 두 달 남았군요. 열심히 삽시다." 란 인사를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는 달입니다. 살아온 대로 살아가자니 아쉬움이 많고, 갑자기 새롭게 살 수도 없는 그런 달이 11월 같습니다. 12월만 되더라도 어느 정도는 지난 1년을 포기할 수도, 자위할 수도 있는데 11월은 아직 남은 한 달이 있기에 각오를 새롭게 하기에는 너무 늦은 듯 보이고, 갑자기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자니 너무 늦은 감이 있어서 공연히 궁리만 많아지는 달 같습니다.

인간은 우화의 교훈처럼 살 수 없기에 대신 우화에 나오는 짐승들처럼 사는 모양입니다. 너구리처럼, 여우처럼, 곰처럼 살아가는 거겠죠. 항온동물인 우리들은 파충류들을 냉혈동물로, 냉혹한 사냥꾼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파충류는 먹이 사냥에 있어서도 그렇고, 생활이란 면에서도 인간을 비롯한 항온동물에 비해 적은 먹이로 살아갈 수 있고, 그렇기에 보다 적은 사냥을 합니다. 한 번 먹이를 먹은 뒤엔 뱃속에서 소화를 시키는 서너달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살아간다고 하더군요. 항온동물들은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반복해서 무언가를 먹어야 하고, 무언가를 먹기 위해 열심히 활동해야 하고, 열심히 활동하므로 또 에너지 소모가 많아서 다시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  생태계 차원에서 보자면 가장 에너지 소모가 극심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포유류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많은 식량을 안식처에 비축해두는 방식으로 납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처럼 말이죠. 종종 인간이 따뜻한 피를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일들은 단순히 보다 많은 먹이를 비축해두는 습성 이상의 잔인함으로 드러나곤 합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남성은 여성을, 비장애자는 장애자를, 내국인은 외국인을,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를... 삶의 겨울 동안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고 하기엔 때로 너무 극심하지요.

어떤 항온동물들은 겨울 동안 겨울잠을 잡니다. 저는 인간도 그렇게 서너달 겨울잠을 잔다면 어떨까? 상상해보곤 합니다. 겨울잠을 자는 짐승들이라고 잠만 자는 건 아니겠지만, 먹을 것이 풍성한 가을 동안 열심히 놀고 먹고 다가오는 긴긴 겨울밤의 깊은 잠에 대비해서 모두가 가을엔 축제를 벌이고, 그렇게 한숨 자고 나면 어느새 봄이 오고, 지난 한 해의 어려움, 괴로움을 모두 그 깊은 겨울잠을 통해 치유하고, 상처에 새살 돗듯 하면 좋겠습니다. 만약 인간이 겨울잠을 자는 어떤 동물들처럼 겨울 동안 깊은 잠을 잔다면, 1년 365일 가운데 3개월만이라도 그렇게 활동하지 않고, 남들을 괴롭히지 않고, 자연을 못살게 굴지 않을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조금 남다를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그리 할 수 없으니 지난 봄, 여름, 가으내 곪아버린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올해도 두 달 남았습니다. 겨울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들은 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것입니다. 겨울 동안 먹을 식량을 비축하기 위해 쉼없이 들판을 헤맬 필요는 없겠으나 대신 우리들은 난방을 해야하고, 한 해 마무리한 답시고 또 많은 돈을 지출하겠지요. 언젠가 석유가 없어지는 날이 오면 우리들은 그 긴 겨울밤을 어찌 살아갈까 하는 기우아닌 기우도 해봅니다만, 11월을 주변의 소외된 사람들까지 살피는 달로 만들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이 지나보낸 지난 10개월의 흔적들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죠.

남은 두 달을 알차고, 평화롭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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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나의 책읽기 - 01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를 처음 접하고 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천재는 많지만 꾸준한 인간은 드물기 때문이겠지요. "행복한 책읽기"는 김현의 유고집입니다. 아마 그가 살아있었다면, 이 책은 출판되지 않았을 테죠. 이 책은 '김현의 독서일기'라는 부제를 달아도 좋을 책이죠. 그때 제가 그의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요. 어째서 대단하다고 하는지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단하다는 건 변함없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책을 읽는 동안 난 뭘 했나 하는 부끄러움에서 오는 충격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렇듯 흘러가듯 글을 씀에도 대상의 핵심에 접속할 수 있는 그의 능력에 대한 감탄에서 오는 충격이었을 겁니다.

저는 10여년 전 대학에서 저보다 나이어린 동기들과 공부했습니다. 그때 저보다 나이가 서너살 어린 동기 중 하나가 제게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형 나이가 되면 분명 형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을 거라"고. "그래, 그렇겠지."라고 말하며 저는 웃었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뒤 저는 그 사실을 잊었는데 그는 그걸 잊지 않았더군요. 10여년이 흐른 어느날 우연히 그 녀석으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지금 나는 그 때의 형보다 훨씬 더 많이 나이를 먹었음에도 그때의 형보다도 책을 읽지 않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잘난 척이나 하기 위해 이런 글을 끄적이고 있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책을 읽는가? 누군가가 제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할 겁니다. "닥치는 대로 읽어라. 그러다보면 읽는 법이 생길 거다."라고요. 그렇게 답해주면 질문한 이는 마치 제가 대단한 비밀이라도 숨기고 있으면서도 말해주지 않는 양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곤 합니다. "닥치는 대로 읽어라. 그러다보면 읽는 법이 생길 거다."란 말의 핵심이 어디에 있을까요? "닥치는 대로" 혹은 "읽는 법" 아마 아는 분들이 다 아실 겁니다. 이 말의 핵심은 "읽다"에 있습니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보내기 위해 애써 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그 일이 얼마나 지루하고 힘든 일인지... 깨워놓고 돌아서면 또 드러누워 버리는 게 애들이지요. 하지만 일요일 아침 명작 만화라도 할라치면 누가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 TV 앞에 앉는 것이 또한 애들입니다.

좋아서 하는 일도 힘든 법이지요. 하지만 즐기면서 맘 편하게 하는 일은 그만큼 덜 힘듭니다. 책을 읽는 일도 그런 것 같습니다. 처음 제가 책의 맛을 알게 된 것은 나관중의 삼국지 때문이었습니다. 국민학교 4학년 무렵 처음 읽었던 삼국지에 빠져들게 된 것은 삼촌의 권유 때문이었는데, 그 무렵 삼촌은 삼국지를 3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세상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며 삼국지를 권했습니다. 그때문인지 몰라도 저는 어린 제 손으로는 들기도 어려운 삼국지를 벗삼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삼국지를 100여번 가량 읽은 것 같습니다. 재미로 읽다가 중독되어 버린 것이죠. 지금도 삼국지를 붙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시 읽게 됩니다. 아마도 그것이 삼국지의 매력이겠지요.

책은 무엇보다 재미로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책이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요. 가령, 롤스의 "정의론" 같은 책은 재미로만 읽기엔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제게 '정의론'이 다른 책들 가령,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들의 배배꼬인 문장을 읽는 것보다 고통스럽거나 재미없었던 책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거지요. 다시 앞의 이야기로 잠시 돌아가서 책을 읽는다. 그 행위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읽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잘 읽을 것인가의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아무 곳에서나 책을 읽고, 아무 곳에나 책을 두고, 특별한 자세 없이 읽습니다. 그렇게 읽어도 기억에 남느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실험을 햇다고 하더군요. 1500명의 학생들에게 30장 분량의 역사책을 읽게 하고, 20분이 지난 뒤에 읽은 책에 대해 요약해보라고 시켰더니 단지 15명의 학생들만이 기본적인 주제에 대해 이해하고 있더란 겁니다.

저는 책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또한 책을 기억하기 위해 읽지도 않습니다. 기억하려고 일부러 공을 들여 읽지도 않습니다. 다음은 책 읽기에 대한 몇 가지 오해에 대해 많은 독서가들이 지적한 공통의 내용입니다.

1) 책 속의 모든 단어를 읽어야 한다.
- 앞서 분명히 오해라고 말했음에도 벌써 까먹은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책 속에 수록된 모든 단어를 읽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책을 읽으며 밑줄 긋고 요약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압니다. 핵심이 무엇이고, 이것을 요약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 책도 역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문장은 다시 단락으로 구성됩니다. 단락이 모여 하나의 주제 아래 소단원이 되고, 그것들이 모여서 한 장을 이루고, 1부가 됩니다. 그것을 역순으로 풀이해보면 모든 문장, 모든 단어가 중요할리 없겠지요.

2) 한 번만 읽으면 충분하다.
- 저는 극장에서 본 영화는 반드시 집에서 다시 비디오로 봅니다. 인간이 사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50분이라고 합니다. 한 시간도 채 안 되죠, 영화의 평균 런닝 타임은 2시간 30분 가량합니다. 그런데 제 경우는 전자오락 할 때를 제외하고는 10분 이상 집중을 못합니다. 영화는 한 장면에 때로 책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에 저는 종종 영화를 보다고 남들은 다 봤다는 중요한 장면을 기억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한 번 본 영화를 두 번 볼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면 그건 당신이 시간 낭비를 했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두 번 볼 필요가 없는 책을 샀다면 반품하셔야 합니다. 몇 장 안 되는 동화책도 다시 읽으면 다시 새로운 장면이 등장하곤 합니다.

3) 건너뛰거나 너무 빨리 읽으면 이해력이 떨어진다.
- 계단을 걷다보면 때로 두 개씩 오를 때도 있습니다. 다리 길이만 충분하다면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법은 없지요. 마찬가지로 책을 읽다보면 중요한 대목과 그렇지 않은 대목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하다못해 100미터를 질주하는 단거리 선수들도 스타트 순간과 스퍼트 순간, 골인 지점에서 힘을 안배한다고 합니다. 책을 읽을 때도 힘의 안배는 필요한 법이죠.

4) 내가 책을 읽지 못하는 건 빨리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 종종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 꼭 그들의 탓은 아니지만 러시아인들의 악명 높은 이름 때문에 등장인물조차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종종 제 집사람과 영화를 볼 때 제가 짜증내 하는 부분 중 하나는 저도 처음보고, 자기도 처음보면서 왜 저래? 하고 물어보는 겁니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매우 친절하게 스토리 라인을 짜맞춰 가기 때문에 제가 답하고 있는 동안 혹은 물어보고 있는 동안 다음 대목에서 작중 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장면으로 충실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즉,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읽다보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다음 어느 순간엔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책은 종류에 따라 읽는 템포와 방법을 달리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가령, 김성동의 천자문을 읽는다고 했을 때 처음부터 꾸준하게 정독하는 방법도 맞을 것이고, 어느 특정 부분부터 읽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 없는 것과 마찬가지요. 하지만 죄와벌을 건너뛰고 읽을 수는 없습니다.

나머지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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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나의 책읽기 - 02

나의 책읽기 -02

자신에게 맞는 취향과 독서법을 찾아서...
 
"책 읽기"를 즐기라고 말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일삼아 해야 하는 학생 입장에서 보면 이 말은 참 잔인한 말입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즐겨가던 학교 앞 서점에서 저는 일삼아 매일같이 만화책을 읽었습니다. 서점 형과 매우 친했던 탓인데, 서점 주인과 친해지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일 겁니다. 일을 잘 도와주거나 아니면 책을 많이 사주면 되겠죠. 제 경우엔 책을 많이 사주기도 했지만, 일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얼굴을 알고, 찾아가면 차 한 잔 내주는 주인이 있는 단골서점에는 아무리 인터넷 서점이 주는 편의성이 있다 하더라도 바꿀 수 없는 미덕이 있겠지요. 동네 서점이 없어지는 건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 어찌되었든 그 서점 형에게 저는 종종 한 무더기씩의 책을 주문하곤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제가 주문하지 않았는데 누가 주문했는지 한 무더기의 책이 그것도 어, 우리 학교에서 누가 이런 책을 볼까 싶은 것들을 주문해두었더군요. 그 형에게 물어보니 제 같은 과 후배 중에 여자앤데, 너 만큼 책 보는 애가 새로 들어왔다는 거였어요. 그녀는 지금 꽤 잘 나가는 소설가가 되어 있더군요.

어디선가 그녀가 한 인터뷰를 보니 학교 다닐 때는 참 공부 못하는 학생이었다고 해요. 물론 대학에 들어오기 전 얘기죠. 그런데 대학에 들어와서 강의를 들어보니 자기가 참 잘 아는 얘기들, 좋아하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거였어요. 강아지도 제각각 품종에 따라 성질이 다르고, 흥미를 갖는 것이 다르듯 인간도 제각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있고, 그걸 마춤으로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재능이란 것도 드러나는 법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 후배가 훌륭한 작가로 계속 살아남아주길 바랍니다. 이렇듯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때 힘이 배가된다는 건 참 생활의 진리인 듯 싶습니다. 하지만 원치 않는 일도 해야 하는 게 인생이겠지요.

독서와 경험...

저도 공부를 잘 하지는 못했습니다. (뭐 중,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장학금 간신히 받는 정도였다고나 할까요? 흐흐) 게다가 고등학교 2학년 뒤부터는 학과 공부하고는 완전히 담을 쌓고 지냈습니다. 성적이 곤두박질 치는 것도 이해못할 일은 아니죠.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간 전국을 떠돌며 노가다판 막일꾼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제 인생에서 가장 불행하면서도 가장 빛났던 시간들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기분이란 ... 평생을 살면서 1년도 느끼기 어려운 것인데, 저는 그걸 무려 4년이나, 그것도 가장 예민한 시기에 그리 살았으니까요. 삼국지에서 유비는 나이 삼십을 넘기고 거의 사십이 다 되어서야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늘 이 사실을 한탄했지만, 작자 나관중은 그렇게 사회 경험을 쌓은 뒤에 읽는 책이란 아무 것도 모르고 읽는 책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기생충"에 관한 책을 썼다고 치자구요. 제 아무리 미문으로 각고의 노력 끝에 다듬었다 하더라도 마태우스님 같은 독자들에게 걸리면 여지없이 빈틈들이 노출될 겁니다. 우리가 책을 구입할 때 작가의 약력을 유심히 살피는 것도 그와 같은 이치겠지요. 어떤 독자도 자신이 말하는 것처럼 살지 못하면서 입만 살아서 주절거리는 독백을 읽고 싶어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이렇듯 책이란 작가와 독자 사이의 긴장 속에서 읽게 되는 겁니다.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지요. 남의 주머니에서 동전 한 닢 꺼내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아느냐고요. 책을 구입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는 세상의 무수히 많은 인간들과 생각들 속에 하나의 생각을 골라내 대화를 시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화 "파리 텍사스"에서 핍쇼룸에 여자들이 대기하고 있고, 남자가 그들 중 하나를 택일해서 대화를 시도하는 것과 행태적으로는 다르지 않을 겁니다.

나의 독서법 첫번째 - 개관하라!!!

아차, 이런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좀 샜습니다.
독서란 게 꾸준해야 한다는 얘기는 앞서 이미 했지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하고, 공부를 잘하는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음을 눈치챌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방법을 무턱대고 따라하는 건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모두의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일반적인 공부법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책을 읽는 것과 같은 방법인데요.
흔히 개괄적으로 살펴본다는 걸 한자로는 "개관"한다 말하고, 영어로는 서베이(Survey)라고 하지요. 저는 책을 구입하기 전에 몇 가지를 살펴봅니다. 우선 제가 원하는 책인가를 판단하는 방법인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가 나름의 노하우가 있을 듯 합니다. 저는 제목과 저자를 살피고, 출판사를 살핍니다. 그리고 외국 책이라면 역자도 살피게 되지요. 저는 번역작가란 말을 좋아하는데, 번역이 새로운 창조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가령, 김민기 선생은 독일의 뮤지컬을 국내로 들여와 "지하철1호선"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의 원작자가 와서 보고는 자기 작품보다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경탄하고 돌아갔다죠. 번역이란 것도 그렇습니다.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들을 영어로 번역하고, 심지어는 재창조할 만큼(여기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있지만) 피츠제랄드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어밖에 모르는 저같은 독자에게 번역되지 않은 책은 출판되지 않은 책과 마찬가지로 세상엔 없는 책이죠.

다시 돌아가서 말하자면 어떤 책을 읽든 개관해 보는 건 반드시 필요한 작업입니다.
저는 독서로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작가의 말 혹은 들어가기 전에 와 같은 프롤로그를 살핍니다. 아마 작자가 본문보다 더 공을 들이는 것이 이 부분일 겁니다. 대개의 프롤로그들은 책이 쓰여지기 전보다는 쓰여진 뒤에 쓰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렇기에 책 전체의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 쓴 프롤로그는 책의 구조와 의도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죠. 이걸 공부에 비유하자면 "예습"에 해당하겠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이 책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읽어야 되겠구나.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고 읽어야 되겠구나 하는 마음가짐을 저는 책의 서두에서 혹은 번역자가 쓴 옮긴이의 말에서 느낍니다. 프롤로그가 충실한 책은 최소한 절반 이상은 성공하기 마련이죠.

개관은 이것으로 족한가? 그건 아닙니다.
프롤로그를 읽는 것이 마음가짐과 예습에 관한 것이라면 이제부터는 책의 목차를 살펴야 합니다. 종종 알라딘에 나온 책들 가운데 목차가 없는 책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책은 구입 우선 순위에 올려놓지 않습니다. 나중에 서점에 나가서 다시 살펴본 뒤에 구입하거나 구입을 보류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굳이 히말라야를 가지 않더라도 처음 가는 도시를 방문하기 위해 우리는 지도를 살핍니다. 자동차마다 책으로 묶인 도로지도책 한 권씩 비치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가는 길인데, 지도 없이 던져지고 싶지는 않거든요. 목차가 충실하게 꾸며진 책일수록 편집자가 공을 많이 들인 책이고, 책의 전체 구조, 로드맵이 잘 짜여진 책이지요. 지도가 길을 알려주듯 목차는 책의 길을 알려주는 좋은 지도입니다. 좋은 지도를 갖춘 책은 그만큼 좋은 지적 여행을 보장하는 법이지요.

이것이 개관입니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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