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코드
브루스 커밍스 지음, 남성욱 옮김 / 따뜻한손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은 이른바 8월 위기설을 불러오고 있다. 6자회담이라는 틀이 회복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이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넘길 경우 북한과 미국은 전쟁직전 단계로 간다는 것이다. 이미 북한은 이 문제의 안보리 회부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큰소리친 바가 있다. 한반도에 사는 백성의 한사람으로서 우리는 말못할 두려움과 혼란을 느낀다. 우리가 전쟁이라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이곳이 우리의 삶의 터전인 까닭이다.

 커밍스 교수는 이 책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2004년에 미국에서 간행된 책이지만, 이 속에서 다루고 있는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긴급토론용으로 쓸모가 있겠다. 책 전체는 6장으로 짜여있다. 김일성의 만주게릴라 투쟁, 한국전쟁과 미국의 북한 공습, 김정일이라는 포스트모던한 독재자, 북한핵문제의 역사적 기원과 쟁점들, 북한의 사회발전과 인민들의 생활, 김일성 사후 북한이 가고 있는 길이 각장의 소재들이다. 커밍스는 과연 한국문제에 대한 세계적인 석학답게 넓고 깊은 안목으로 이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북한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시각을 기본적으로 견지하고 있는 점이 우리에게 신뢰를 주고 있다. 물론 냉전적 반공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불만일 수 있겠다. 그러나 북한과 과 공산주의에 대한 선입견과 미국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냉철하게 관찰한다면 커밍스의 진단에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문제는 미국을 선, 북한을 악이라고 보는 우리의 극단적 이원론이다.

 코폴라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미군의 공격용 헬기가 바그너 음악을 배경으로 밀림에 네이팜탄을 퍼붇는 장면일 것이다. 순식간에 숲이 불바다로 변하는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 와중에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달리는 베트남 인민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 네이팜탄은 베트남이 아니라 북한에 더 많이 퍼부어진 폭탄이란다. 미군의 공습으로 80% 이상의 파괴된 북한의 도시들에 대한 커밍스의 이야기는 또다른 충격이다. 우리는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한쪽눈만 뜨고 보도록 강요당해왔다. 커밍스에 따르면, 북한이 그토록 꽉 짜인 병영국가로 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들에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폭격의 기억과 전후에 끝없이 이어진 미국의 핵공격 위협이 북한을 하나의 거대한 병영이며 개미굴 같은 것으로 만든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책임론을 강하게 거론하는 셈이다.

 북-미 관계의 해답은 이미 1994년에 나왔다는 것이 커밍스의 진단이다. '94년의 기본합의서가 미국과 북한의 새로운 관계를 위한 유익하고 건전한 토대'라는 것이 커밍스의 견해다. 클린턴이 핵과 미사일을 북-미 관계 정상화와 맞바꾸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그 시도를 물거품으로 만든 것이 공화당과 부시대통령이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핵 위기설은 이미 10년 전의 필름을 '빨리 되감기'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 커밍스의 진단이다. 북한 외교팀이 현안에 대한 놀라운 집중력으로 사태를 이끌어가고 있는 반면에 미국은 혼란스런 대응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물론 그  혼란의 이면에 미국이 북한체제를 무너뜨리려하고 하는 야심이 자리잡고 있고, 그것은 한반도 전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위험하기도 하다.

 커밍스는 5장 <사람사는 세상>에서 그가 직접 본 북한사회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80년대초부터 북한을 방문했던 그가 보기에 북한은 주택과 의료, 교육이 균등하게 보장된 안정된 사회였다. 70년대 후반에 남한에 추월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경제는 남한을 늘 능가해왔다는 것이 커밍스의 지적이다. 이런 관찰을 토대로 해서 보면, 우리는 60-70년대 내내 남한이 보인 북한체제에 대한 두려움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커밍스는 냉정한 관찰자다. 그는 현실의 양면을 그대로 이야기한다. 지극한 폐쇄사회인 북한이 가진 결점들을 지적하면서도 그것이 이루어낸 성취와 가능성을 인정하기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북한문제에 관해서 균형잡힌 시각에 목말라왔다. 커밍스의 책은 그 목마름을 달래준다.

 여담하나. 아내는 내가 보는 책이 <다빈치 코드>인 줄 알았단다. 책표지가 붉은 것도, 제목의 위치까지 비슷하다는 것이다. 글쎄, 나는 <다빈치 코드>를 못 보아서 모르겠다. 이것은 번역본에 대한 불만이다. 번역제목이 원작 제목-North Korea: Another country-에 비해서 책내용을 나타내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표지의 붉은 색과 김정일 부자 사진도 마음에 안 든다. 아무래도 남한 사람들은 김부자의 사진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거든. 책표지가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부분들에서 커밍스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책의 판매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이 기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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