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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징병제는 세대간의 착취다
연천 총기 난사사건 뒤로 모병제 논의가 불거지고 있다. 지난 5일엔 국회에서 ‘전투력 강화를 위한 병역제도 개선방안-모병제를 중심으로’ 토론회도 열렸다. 모병제를 지지할지 말지의 주된 논거는 이 토론회 제목에서 보듯 ‘전투력 강화’에 더해 국방비 등 병역제도를 둘러싼 사회적 비용의 효율적 집행이다. ‘돈을 더 쓰자’거나 ‘세금을 더 내자’는 말은 드물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나를 포함한 한국의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수탈하며 살고 있다. 그 수탈이 거의 강도 수준이다. 20대 초반 젊은이들을 월 3만3천~4만4천원씩 주고 2년 동안 군복무를 시킨다. 분단국가이고 전쟁 발발 위협이 높기 때문에 징병제를 실시한다고 해도, 돈은 줘야 할 것 아닌가? 옛날엔 못 살아서 그랬다 치자. 세계 선진국들이 모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지 10년이 넘었다. OECD 국가 중 드물게 복무기간 9개월의 징병제를 실시하는 독일은 입대 최하 연령인 만 22살 남자의 각종 수당을 뗀 최저 기본급(2004년 8월1일 기준)으로 월 1470유로(약 180만원)를 지급하고 있다. 여기에 부인이 있으면 월 100유로, 자식이 있으면 90유로의 수당이 추가된다.

대한민국 기성세대는 국가공동체를 유지·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비용(통상 세금으로 부담해야 할)을 20대 초반 젊은이들에게서 거의 공짜로 착취하면서 자기들은 웰빙을 노래하고 있다. 그 사이 젊은이들은 고민하고 고통받고 마침내 목숨까지 잃는다. 연천 총기 사건이 돈 문제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무관한 것도 아니다. 자기 노동의 대가를 사회가 인정해주지 않는데 그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그 또래 연령층이 일반 직장에서 버는 돈 만큼을 지급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병영 문화가 눈에 띄게 개선되지 않을까? 그럼 그 돈이 얼마냐고? 앞의 토론회 발제자인 이상목 국방대학교 교수가, 사병의 연령과 학력을 감안해 평균급여를 산출하고 여기에 전체 사병수, 특수 근무요원수를 따져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1년에 7조3천억원이다.

7조3천억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만 놀랄 액수도 아니다. 지난해 국민들이 낸 세금 총액(총세입) 152조원의 5%가 채 안된다. 지난해 조세부담률이 19.8%니까, 거칠게 계산하면 지금 납세자들이 매년 연봉의 1%를 세금으로 더 내면 이 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젊을 때 군에 갔다온 기성세대들은 억울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돈으로 얻을 걸 생각해보자. 지금 병력을 감축하지 않고서 그들에게 평균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말은 감군 없이 모병제로 유지할 수 있는 길의 80% 이상을 연다는 말이 된다. 모병제를 둘러싼 다른 논란들은 세부적인 장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부수적인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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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암자서 홀로 수행하는 고우 스님 서울강연


“버리지 않으면 참선도 기도도 쓸데없는 것”

과연 선(禪)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선적인 삶인가.

산승 고우 스님(69)이 이런 마음의 갈증을 풀어주려 서울에 단비를 몰고 왔다. 태백산 각화사 서암에서 홀로 사는 고우 스님이 7일 오후 6시 서울 조계사 극락전에서 ‘간화선, 수행의 길’에 대해 설법했다. 산중 전통 강원의 교육을 서울에서 하는 서울불교전문강당이 첫학기 강의를 마친 뒤 방학 특강으로 그를 초대했다. 승려들이 선의 교과서격인 <선요>나 <서장>에 대해 가장 강의를 듣고 싶어 하는 이가 고우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세속에 살면서 죄도 많고 업도 많다 하지만
꿈깨고 보면 죄도 업도 착각일 뿐
‘자신이 본래 부처’ 입니다

“내게 찾아오는 사람에게 난 참선하라, 수행하라 하지 않아요.”

권위나 ‘승려 상’을 찾아보기 어려운 그는 늘 이처럼 편안하게 말을 꺼낸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게 ‘중도 연기’(中道 緣起)입니다. 이 연기만 이해해도 삶이 달라지지요.”

그는 먼저 ‘연기’를 이해하도록 하는데 자상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금강경>, <반야심경>의 핵심이 중도연기, 즉 공(空)인데, 그는 집을 예로 들어 중도 연기를 설명한다.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것은 목재와 벽돌 등 건축자재 하나하나의 조합으로 구성된 것으로, 다 뜯어놓고 보면 여럿의 조합이지 집이란 독립된 실체가 없지요. 몸처럼 형상이 있는 것이나, 마음처럼 형상이 없는 것이나 어떤 것이든 이처럼 ‘연기’로 존재할 뿐 실체가 없지요.

“사람들은 ‘내가 없다’면 허망해서 어떻게 사느냐, 의욕도 없어지고 허무주의가 밀려들 것이 아니냐고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무아를 체득하면, ‘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사는 것보다 더 활발하고, 이해심 많고, 너그럽고, 긍정적으로 살게 됩니다. ‘나’를 넘어섰으니, 상대와 비교해 비참해 하거나 교만하지 않지요. 이런 비교심, 대립심, 갈등심 대신에 평화스런 마음과 지혜가 생겨나니, 부정도 긍정도 넘어서는 절대 긍정이 돼 ‘나날이 좋은 날’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나 국가도 ‘나’를 전제로 하면, 상대와 대립하며 힘으로 모든 것을 풀려고 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전가하지만, ‘나’와 ‘내 쪽’을 초월하면 서로 아픔을 보듬는 연민으로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욕심은 ‘나만을 위하는 이기심’에서 나오고, 이기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른끼리도 싸우기 마련”이라며 “그래서 도통한 선사는 어른의 어른이다”고 말했다.

고우 스님은 조계종에서도 총무원장은 물론 본사 주지들까지 선출하는 것에 대해 “이런 진리를 가는 불교 집안에서 선거를 하며, 이전투구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선거제도를 넘어설 것’을 주장했다. 그는 또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지방을 가르거나 색깔을 가르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어도 표를 주지 말라”고 강조했다.

고우 스님은 연기중도를 통해 일체를 공에서 보면, 일체를 평등하게 예수 부처님, 마호멧 부처님, 공자 부처님, 석가 부처님으로 대할 수 있다”며 종교의 틀도 부숴버렸다. 그는 “부처님은 외도들이 침을 뱉어도 성을 내지 않았다”며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싸우는 것은 불교가 아니다”고 못 박았다.

고우 스님은 참선에 있어서도 이처럼 실체가 없는 것에 집착을 떠난 마음을 철저히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평생 살아온 동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한 뭉텅이로 만들어 갖다 버린 뒤 좌복(좌선때 앉는 방석)에 앉아야 합니다. 그것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참선도 염불도 기도도 쓸 데 없는 것이지요.”

그는 또 고통 받는 중생들을 선의 경지로 깨워준다.

“많은 사람들이 세속에 살면서 죄도 많고, 업도 많다고 하소연하지만, 선에서 보면 죄나 업이 있다는 것도 착각일 뿐이지요. 꿈을 깨고 보면 ‘자신이 본래 부처’입니다.”

200여 대중들이 ‘나’에 대한 집착의 꿈에서 벗어나 부처로 깨어나는 동안 극락전 안팎에서 동시에 법비가 내렸다.

글·사진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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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 역사인물 다시 읽기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예전에 허준의 <동의보감>과 광해군이라는 코드를 연결시키기가 참 곤란했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선조나 인조가 아니라 광해군 시대에 나온 책이다. 왜 우리 민족이 자랑할 만한-팔만대장경이나 목민심서에 버금갈 만하다고 하는-명저가 광해군이라는 '폭군'의 시대에 나왔을까 하는 의문을 풀 수가 없었다. 광해군의 시대는 당연히 모든 것이 어렵고 피폐한 시대라야 마땅한 것인데, 왜 그랬을까? 소박한 의문이었다. 그만큼 내 머리 속에 광해군의 시대는 역사적 공백기, 공포정치의 시기로 비쳐졌다. 학교교육과 텔레비전 사극의 영향이리라. 대부분의 성인들은 연산군과 광해군을 폭군이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생각하고 있다. 요즘에 들어서 광해군에 대한 학계의 새로운 평가가 나오면서 인식의 전환이 있었지만, 아직도 대다수는 광해군을 폭군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한명기가 쓴 이 책은 광해군 이혼(李琿)에 대한 평전이다. 어린시절과 성장기, 영광과 시련, 몰락의 삶을 골고루 그려내고 있다. 광해군은 몰락한 임금이기에 祖나 宗같은 칭호를 얻지 못하고, 왕자 시기의 君칭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의 치세를 다룬 실록은 <광해군일기>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비운의 정치가 광해군은 1575년에 태어나서 1641년에 죽었다. 67년의 삶을 살았던 셈이다. 그가 태어난지 18년만에 임진왜란이 있었고, 죽기 5년전인 1636년에 병자호란이 있었다. 조선조 최대의 전란을 평생의 삶 속에 두루 겪어낸 셈이다. 한번은 주인으로, 한번은 구경꾼으로. 그는 임진란 당시에 왕세자로서 임시정부-이른바 분조(分朝)-를 이끌고 전쟁터를 누볐던 이력이 있었다.  그러나 병자호란 당시에 그는 폐위된 왕으로서 유배지에 있었다. 결국 그는 삶의 종장을 마지막 유배지인 제주에서 맞았다. 쓸쓸한 죽음이었다고 한다.

그가 유배지에서 읆었다는 시는 이러하다.

바람불어 빗발 날릴 제 성 앞을 지나니
장독 기운 백척 누각에 자욱하게 이는구나.
창해의 성난파도 저녁에 들이치고
푸른 산의 슬픈 빛은 가을 기운 띄고 있네
가고픈 마음에 봄 풀을 실컷 보았고
나그네 꿈은 제주에서 자주 깨었네
서울의 친지는 생사 소식조차 끊어지고
안개낀 강위의 외로운 배에 누웠네

쓸쓸한 시다. 그의 아들(왕세자)은 유배지에서 도망치다가 죽고, 며느리(세자빈)는 목을 매 죽는다. 부인도 일찍 죽는다. 말년에는 유배지의 여종조차 구박을 했다고 한다. 말년이 참으로 비참했다.

광해군은 그의 아비인 선조와 다음 임금인 인조를 비교해가면서 보아야 더 선명하게 보인다. 그의 내치와 외교노선은 선조와 인조의 그것과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임진왜란이라는 대전란을 겪으면서, 동시에 대제국 명의 몰락과 청의 등장을 지켜보던 격변기에 그가 구사한 자주적 외교노선은 오늘날에도 참고할 바가 많다. 결국 자주적 외교노선 때문에 그의 치세는 막을 내렸지만, 난세에 그가 취한 노선은 조선시대를 통틀어서 거의 유일한 자주노선이라는 점이 기억할 만하다.

어떤 이는 노무현을 광해군에 비기기도 한다. 미,중,일의 대립과 알력 속에서 우리 민족의 활로를 찾아가려는 점은 많이 닮았다. 그렇게 보면 대북파-정인홍 같은 의병장 출신의 청치가들이 주축이 된-는 오늘날의 민주화세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럴 수도 있겠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몸으로 싸운 이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말이다.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투쟁한 그 세력이 실패하지 않는 것이 꼭 필요하리라. 역사에서 배우라. 특히 전환기에서. 정도전, 광해군, 김옥균, 여운형. 그들을 실패하게 만든 외세와 보수파들의 힘과 정체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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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1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싶게 하는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
 
책 먹는 여우 - 좋은아이책 책 먹는 여우
프란치스카 비어만 지음, 김경연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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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여류작가가 쓴 동화다. 내용이 참 엉뚱하다. 주인공은 책을 참 좋아하는 여우인데, 사실은 책에 양념을 쳐서 먹어버리는 식서가(食書家)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소금, 후추를 조금  뿌린 다음 꿀꺽 먹어치운다. 지식도 얻고 허기도 채운단다. 책값을 대다 못해 집안의 가구는 모두 전당포에 저당잡혔다. 

어느날 여우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책이 엄청 많이 있음을 알게 된다. 더구난 그 곳은 책을 공짜로 빌려갈 수 있단다. 꽤 오랫동안 계속된 여우의 '도서관 나들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꼬리가 잡히게 된다. 여우는 책을 갉아 먹기도 하고, 빌려온 책을 한 권도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서에게 현장을 들킨 여우는 그 뒤 도서관에 출입금지를 당하게 된다.  

길거리에서 나누어주는 광고지, 생활정보신문을 먹으며 버티던 여우는 소화불량에 걸리고, 털은 윤기를 잃어간다. 결국 여우는 허기를 참다 못해 복면강도가 되어 '길모퉁이 서점'에서 책을 도적질한다. 24권이나 되는 두꺼운 책들을 훔친다. 경찰관은 여우를 체포해서 감옥에 가두는데, 그곳에는 물과 빵 밖에 없다. 여우의 벌은 '독서금지'다. 책을 읽지 못하여 지식에 목말라하던 여우는 어느날 기막힌 생각을 떠올린다. 교도관에게 빌린 종이와 연필로 글을 쓴다. 923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을 만든 것이다. 교도관 빛나리는 여우의 책의 최초의 독자가 된다. 교도관은 여우의 책을 보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이틀이나 일을 하러 가지 못한다. 다음날 나타난 교도관은 여우에게 그 책을 준다. 여우는 책을 맛있게 먹는다. 교도관은 여우에게 그 책을 출판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교도관은 출판사를 차려서 여우의 책을 출판한다.

 여우의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17개 나라말로 옮겨진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극장에 상영되기도 한다. 또한 여우는 문학적인 업적을 인정받아 감옥에서 석방된다. 여우는 대단한 부자가 되었다. 기자들은 여우의 이야기를 기사로 쓰고, 비평가들은 여우의 작품을 연구한다. 여우의 책 속에는 소금 한 봉지와 후추 한 봉지가 꼭 들어있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참 기발한 발상이다.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적절한 비유가 아닌가 싶다. 책벌레가 나중에 책을 만드어내는 나비가 되는 단계까지 가게 된 셈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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