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지난 18일 전북 전주 전북대 사회과학대학 강준만 교수의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 전문이다.
-4회 송건호 언론상 수상 소감은?
=고민이 됐다.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받나? 송건호 선생을 생각해보고 받기로 했다. 사실 나는 사람을 존경하는 이유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 사람들이 리영희 선생을 존경하는 이유는 엄혹했던 시절에 의식을 죽비(책)로 각성시킨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내 이유는 리 선생이 자신에게 대단히 정직하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권 붕괴 때 스스로 나서서 이를 인정했다. 꼭 안 해도 되는데, 굳이 인정했다. 최근 <대화>에서 임헌영 선생과 민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민중이 무오류 아니다”라고 말해 가벼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단선적이지 않다. 나도 그렇다.
송건호 선생을 생각해보니 지금 필요한 시대정신이 겸손 아닌가. 노무현 정부가 이제까지 해온 식으로 했으면서도 태도가 조금 달랐으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오만한 느낌을 준다. 도덕적 우월감 갖고 내려다 보면 상대는 견디기 힘들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 악을 쓰고 미친 듯 날뛰는데, 역지사지 해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게 겸손 아닌가 정말로 겸손하면 자기보다 일을 내세운다. 성사시키기 위해 빛을 안 내고 욕을 먹는다. 인정욕구 앞서면 안 된다. 삶 주변에서도 겸손이 중요하다. 상식적인 처세술이 아니라, 진짜 겸손은 다수가 잘 되기 위해 나를 낮추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을 보여준 분이 송건호 선생이다. 송 선생의 가장 큰 특성이었다. 물론 내 아전인수다. 겸손에 대해 문제의식 느꼈는데, 그것을 보여준 분이니까. 당시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면이지만, 지금 송 선생의 그 메시지를 전하는 데 애를 쓰라는 뜻으로 봤다.
-수상 소감에서 “겸손, 겸손, 겸손”에 대해 강조했는데?
=참 중요하다. 김대중 정부 이후에는 민주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겪으면서 문제가 드러났다. 예전처럼 갈 수 없다. 스스로 성찰이 없어서 자신을 분석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아들 문제는 김영삼 때 있었는데, 김대중 때도 일어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또 무엇을 배웠나? 자기들은 다르다는 이야기만 한다. 내가 보기엔 같은 점이 더 많다. 수구에 대한 안티로의 역할만 하고 있다. 그것만 갖고는 안 된다. 무엇에 대한 반대·극복만 있고, 자신에 대한 생각이 없고 겸손하지 않다. 청운의 뜻을 품었으면 낮은 자세로 할 수 있다. 그런데 상대를 윽박지르고 면박 준다. 이해찬 총리만 해도 충정 이해하지만, 고압적이다. 도덕적 우월감·자신감이 전반적으로 과잉이다.
노무현 정권의 이념 대결은 다른 문제까지 덮는다. 다르게 접근했다면 달랐다. 노무현은 자신을 한편으로 과대 평가하고 현실적으로 과소 평가한다.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치 해야 한다. 경제 문제도 보수 신문 비판에 앞장 서고 집중한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과 다르다. 위로가 필요한데, 낙관론을 펼치거나 수구세력과의 싸움으로 국민과의 커뮤니케이션 안 한다. 또 도덕적 우월감을 가졌으면서 스스로의 현실 역량을 과소 평가한다. 약자·소수자의 정신세계다. 정권 잡아서 국정 운영하면서 약자라고 하는가? 약자 멘털리티로 가다 보니 맞짱드는 상대만 생각하고 국민은 없다.
지식인이나 민주화 운동가, 시민운동가의 입지와 국정 책임자로서의 그것은 다르다. 지식인은 그럴 수 있지만, 국정 운영자는 달라야 한다. 소통 스타일이 중요하다. 소통 문제를 멀리 거리 두면 역사의 업보가 된다. 물론 80년대의 경험이 있고, 투쟁 정서가 있어서 하루 아침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겪어야 할 과정이라면 조금 단축할 수는 없느냐는 것이다.
-최근 <한국일보> 칼럼에서 ‘싸가지’에 대해 말했는데, 이것도 ‘겸손’ 코드와 일맥상통하나?
=사회도 전반적으로 그렇다. 인터넷 보니 사람들이 튀어야 한다고 하면서 독설로 가는데, 뜻은 좋지만 일상적인 대인관계에서 말을 그런식으로 하면 선의 안 산다. 개인으로 그럴 수 있지만, 정·관·재계 인사까지 그러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소통에 뜻이 없는 것이다. 적대화하고 그쪽을 약올리고 분노하게 함으로써 내쪽 지지자 카타르시스 주는 것이다. 정치가 엔터테인먼트라서 그렇다면 말 할 것 없다. 글나 소통의 뜻이 있다면 그럴 수 없다.
-사람들은 강 교수가 민주당 분당에 반대하고 열린우리당 비판하는 것을 보고 민주당에 연민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다.
=나는 그 일로 퇴출됐다.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 분당 때부터 상황에 의해 그렇게 됐다. 어쨌든 나는 틀렸다. 열린우리당 체제를 국민 다수가 인정했으니까. 나는 예전에 민주화 원한 사람들과 함게 갔는데, 이제는 소수파가 된 것 같다.
나는 민주당 분당이 호남인들이 스스로 성찰할 기회를 박탈했다고 본다. 그들의 정치적 선택에 대해 각성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전북만 해도 유권자의 10%가 열린우리당 당원이다. 열린우리당이 생기면서 모두 면책받았다.
정당은 뭔가? 민주노동당 안에도 이견이 많다. 그렇다고 다 따로 가야 하나? 민노당 안에 문제가 있다고 개혁 세력이 당을 나가서 또 당을 만든다? 그것은 문제 아닌가? 민주당에 대해 연민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주체세력의 문제 푸는 방식에 문제 제기한 것이다. 시대의 업보다.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염증과 혐오, 저주를 이용해 열린우리당이 나왔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은 예전의 민주당과 얼마나 다른가? 그 당이 100년 갈까? 열린 우리당이 노 정권 말기에 가서 또 분당하면 문제 아닌가? 열린우리당이 혁명할 것처럼 한 것은 정말 위선이고 기회주의다. 열린당이 뜻대로 잘 나가면 내 판단의 과오지만, 그렇지 않고 같은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맞은 것이다. 그것은 김대중의 당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당일 뿐이다.
-최근 비평가 김규항씨가 한 글에서 강 교수에게 “보수 정당의 기만적인 쇼에 참여하지 말고 삶의 정치로 돌아오라”는 애정어린 글을 썼다. 보수 정치가 아니라 삶의 정치,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빈곤, 조·중·동 문제, 이라크 파병 등 각론을 다룰 생각 없나?
=한국같은 ‘소용돌이 사회’ 안에서는 정치 세력이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김규항씨의 주장 이해하지만, 나는 어렵다. 정치 분야에 의해 소용돌이가 일어나 막 빨아들이는데, 이 문제를 그냥 두나? 경중을 봤을 때 정권이 잘 못가는데, 구경만 해야 하나? 물론 더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노무현의 해체 전략에 동의 안 하면서 비판하고 싶지 않다. 이야기해서 될 것 같지 않고, 그는 마이웨이로 가고 있다. 이제는 일반론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또 내 자신이 여러 분야 관심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원래가 커뮤니케이션 전공이고, 소통이 주요 관심사다. 관심사를 제거하고 일할 수 있나.
-언론학자로서도 훌륭하지만, 사회과학자, 정치평론가, 행동가로서도 폭넓게 활동했는데, 스스로를 언론인으로 생각하나?
=언론인까지야. 대중적 글쓰기하는 언론학자지. 나를 언론인라고 하면 과찬이고, 전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물론 언론인 역할 하면 좋겠지.
-안티조선의 주요 활동가였는데 최근 언론상황에 대해서는 별로 발언하지 않는 것 같다. 최근 한 글에서 조중동의 문제에 대해서는 성실함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는데
=조중동에 대한 생각은 같은데, 싸운 뒤에 이유를 생각해봤다. 내 생각은 국민이 호응을 안했는데, 그것은 강고한 ‘정치·경제 분리주의’ 때문이다. 유권자로서는 민주세력 찍지만, 신문은 안 바꾼다는 것이다. 어떤 민주 인사가 공직 들어서면 재산 공개했는데, 왜 돈이 그렇게 많은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한다는 것을 감안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또 주류 영합주의가 강하다. 내 삶의 경쟁력에 대한 판단이 정치적 선택과 다르다. 주류 매체고 영향력 있다는 그 판단이 크다. 이것이 가장 세고 주류라는 것이 한국인 특유의 경쟁력주의를 부추긴다. 기러기 아빠가 일반 국민뿐 아니라, 개혁·진보 인사에서도 있다. 진정성 갖고 운동해도 신문 안 바꿨다.
이제 경제를 치고 들어가야 한다. 이재현씨가 어느 글에서 “진보적 진영에서 문화운동하고 그러면서 경제를 중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정확한 말이다. 경제는 감시 대상일 뿐이고 스스로 ‘경제 플레이어’라고 생각지 않는다. <한겨레>같은 언론도 재벌들로부터 독립해 신문사를 꾸려가고 독립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 치중한다. 한국 경제를 더 높은 어디로 가져가야 하는지 총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일탈·비리만 다루지 주도적 플레이 안 한다. 그러면 영원히 조중동에게 깨진다. 엉거주춤하지 말고 분명히 해야 한다. 다수 국민이 어리석은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보수적이다.
-최근의 신문법이 시행됐고,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신문발전위원회, 신문유통원이 활동에 들어갔다. 이런 기구들이 신문시장 정상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여러 가지로 불만족스럽지만, 기대가 있다. 이런 기구들로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에는 의문이 있다. 왜냐면 한국 독자들이 가진 묘한 체질이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광신도 노무현 광신도가 <조선일보>를 본다. 그런데 한국적 상황에서 합리주의다. 왜? 노가 개혁한다고 나서도 주변 핵심 인사들의 재산 규모가 역대 정권 비해 적지 않았다. 경제적인 문제는 보수고 진보고 다르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다. 사람들은 경제가 중심이고 가외로 개혁을 이야기한다.
진보적 입장의 정통 좌파들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해 신자유주의라고 싸잡아 비판한다. 한편으로 노 정부 요직 인사들도 자기 재산 다 챙기고, 국민들은 신문에서 아이들 논술과외 서비스도 받아야 하고, 부동산·증권 투자 정보도 얻어야 하고, 각종 광고도 봐야 한다. 그런 신문이 유리하다. 경제는 이렇게 간다. 앞서 안티조선 운동 하면서 모멸을 가하는 공격도 해봤다. 소용없었다. 북·서유럽 복지 국가 모델? 나 죽을 때까지 안 된다고 본다. 자원 없고 수출로 사는 나라를 어떻게 북유럽 나라들에 비할 것인가?
우리 나라 사람 경제적 보수성을 낮은 곳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택시 타보면 운전기사들이 결코 무식하지 않다. 물론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지혜를 갖고 있다. 장하준 교수 글에 대해 여러 말 많지만, 그 정도 글을 갖고 이야기해야 한다. <한겨레>가 장하준 정도의 시각을 받아들인 것만 해도 대단하다. 세상을 아는 체하는 인문·사회학도들이 경제를 모른다. 경제에 대해 뭘 알아야 국민들 마음 속으로 치고 들어갈 수 있다.
-<한겨레>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아직 창간 정신을 잊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 초심을 갖고 있는 게 문제다. 창간 당시는 기적이고 감동이었다. 독재정권에게 대항했던 이들이 자체 매체 가진 감격이었다. 지금은 민주적인 정권이 둘이나 나왔는데, <한겨레>가 비판을 넘어서서 의제를 스스로 만들고 끌어가지 못하고 있다. 과거 저항세력이 가졌던 견제·감시·비판 수준이다. 반면 조중동은 의제 설정을 멋대로 하지만 한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하고 독자들은 익숙해 있다.
국가보안법 처리 문제 때 경호권 발동 문제가 핵심이었다고 본다. 유시민 의원·리영희 선생도 경호권 발동 반대했고, 열린당 그것을 망설였다. 당시 <한겨레>는 때묻히지 않으려고 원론 수준으로만 얘기했는데, 너무 무책임한 것이다. <한겨레>가 경호권 발동에 대해서도 더 구체적으로 된다, 안 된다는 이야기 마당을 펼쳤어야 했다. 경호권 발동 안 된다는 리영희 선생 얘기도 싣고, 또 예외적으로 경호권 발동해서 보안법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다뤘어야 한다. 기사로 다룰 수 있고, 나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야 고민하는 사람들이 그 문제를 정리할 수 있었다. 유시민 의원은 다 끝나고 국회 사망선고하면 뭐하나? 한겨레가 썼으면 여야가 심각히 고려했을 것이다. <한겨레>는 고급지로서 어젠다에 대한 영향력이 있다. 전술·방식의 차이는 얼마든지 다룰 수 있다.
국가보안법 말고 다른 것에도 적극성이 없다. 진보세력의 문제점 안 다룬다. 조중동 따라서만 조금 다룬다. 그러다 보니 어젠다를 다 넘겨준다. 정권 주류가 비주류적으로 일관하듯 <한겨레>도 그런다. 나는 그걸 아웃사이더 체질이라고 본다. 아웃사이더는 고귀하다. 권력·부에 욕심 없고, 옳은 소리하고 저항하고 감시·견제한다. 그러나 인사이더는 집단을 어디론가 끌고가면서 궂은일, 더러운일 하는 것이다. 아웃사이더는 욕할 것 많지만, 인사이더는 어렵고 욕먹을 일이 많다.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 인사이더는 책임져야 한다. 아웃사이더는 휘말리지 않고 옳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한다. 메이저로서 아웃사이더 하면 좋겠지만, 조중동 70%가 인사이더 하는데, 마이너만 아웃사이더 한다? 결단이 필요하다. 정파성을 강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 비판도 더 하고, 개혁진보세력을 더 세게 비판하고, 적극적으로 의제를 만들어 가야 한다. 기사 쓸때는 진보세력과의 유대도 끊어야 한다.
-최근 칼럼에서 신문산업이 지식산업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신문시장은 지금 조중동이 문제가 아니다. 조선·동아는 그래봐야 거대자본의 소유는 아니다. 그런데 앞으로 인터넷 언론 기업 성장하고 통신업체 중심으로 매체 융합 나타나면 엄청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를테면 한나라 집권하면 케이비에스2·엠비시 민영화 안 할 것 같나? 신문이 살아야 민주주의가 산다. 루퍼트 머독 식의 거대한 미디어그룹이 나오면 현재의 조중동보다 민주주의에 더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당파적이니 편파적이니 해도 신문이 살아남아야 한다. 살 방법은 지식인 전통을 살리는 것이다. 아직 기자에 대한 신화가 있다. 그것을 살려서 지식 산업쪽으로 힘을 펼쳐야 한다. 거대 기업들속에 편입되면 절대 안 된다. 비교 우위는 지식 산업인데, 신문업계 선두주자인 조중동은 정권 죽이기에 몰두하고 있으니 큰 일이다. 제 무덤을 파고 있다.
-엑스파일 사건으로 이건희·홍석현에 대한 수사가 진행중이다. 최근 책 <이건희 시대>에서 삼성의 문제에 대해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벼락공부하지 않으려면?
=한국 사회에 ‘홍수민주주의’가 있다. 지난 민주당 분당에 민주당의 책임만 있나? 삼성에 대해서도 그렇다. 문제가 있으면 평소에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평소에 잘못된 것을 잘 눈감아 주다가 건수 생기면 국민 모두 짱돌 하나씩 들고 나선다. 한꺼번에 쓸어버리고 처리하는 홍수식이 화끈한 맛은 있다. 그런데 홍수 났을 때 사람들이 신중하게 하겠나. 우격다짐식이다. 아무리 우리 체질이어도 이제 와서 삼성만 죽일 놈이라고 하지 말고 우리도 공부해야 한다. 평소에 대학 총장들도 삼성 포함한 재벌 돈을 끌어와야 한다. 재벌 은전 받는 것이다. 삼성의 문제를 평소에 이야기하면 문제가 덜 할 텐데, 이벤트성이 강하다. 한 번 걸리면 홍수 맛좀 봐야 한다는 쏠림이 강하다.
-이번 사건에서 보면 <중앙일보>는 또다른 삼성이자, 언론계의 실력자다.
=<중앙일보>가 조·동에 비해 개혁세력으로부터 덜 얻어맞는다. 유시민도 조·동은 독극물, <중앙>은 불량식품이라고 했던가? 남북문제에서 비교적 자본의 합리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조·동은 자본의 합리성도 없이 생래적 거부감으로 접근했다. 한국사회에서 민족문제 다루면서 자본의 위험이 가려졌는데, 사실은 운동권도 그렇지만 민족문제와 자본문제가 쌍벽이다. 중앙의 잘못이 제대로 부각이 안 되고 있다. 조·동이 중앙을 키운 셈이다. 아마 조동이 남북문제 시각 바꾸면 중앙 입지가 위축될 수 있겠다.
-인물과 사상의 중단과 인터넷 시대와 무슨 관계가 있나? 휴대전화도 쓰지 않는데?
=최근 <한겨레21>에 휴대전화 관련 글을 썼는데, 일종의 균형잡기 지적이었다. 휴대전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지 않다. 오히려 자본에 친화적이다. 새 기술에 대한 거부감은 자본주의를 보는 시각과 관련 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고 대중문화 자체를 좋아한다. 딴따라 끼도 있다. 영화도 엄청 좋아한다.
-전북 전주에 살고 전북대 교수를 하고 있다. 지방이라는 것은 언론사도 그렇고 한국 사회의 또다른 문제라고 했는데?
=내부 식민지이론을 믿는다. 여기는 식민지 체제인데, 열이 나지 않는가? 서울서 국회의원하는 지방의 엘리트 계층이 여기 사람인가? 여기를 대변하는가? 여기 사는가? 아이들이 여기 있나? 다만 여기 근거로 제 입신양명하는 것이다. 이 신문 제목 좀 봐라. 지역 언론이 정말 이러면 안 된다. (전북 지역의 신문 두 개를 보이며) “노대통령 전북홀대 심각” “전북 홀대론 확산 분노” 언론은 이런 보도 좀 하지 말고, 중앙정부는 지역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이 지역 엘리트들이 이런 문제 생각하나? 인구가 계속 줄어든다. 60년대 250만명이 넘었는데, 최근 190만명선이 무너졌다. 내가 처음에 전북대 와서 지역 문제 갖고 혈압 좀 올렸다. 그런데 나만 성격 이상한 놈으로 찍혔다. 가만 보니 이 곳 사람들에게는 체념의 지혜가 있었다. 괜한 소리 했다가는 “억울하면 출세해라” “서울 못 가서 배 아파서 그러냐” 그런다. 최근에 지역 신문 발전기금 나눠주는 것도 그렇다. 지방 언론사 사주가 토호라고 해서 매우 엄격한 기준 적용해 특정 지역 언론이 집중 지원받았다. 그런데 토호와 재벌이 다른가? 재벌은 선진적이라서 좋고, 토호는 비리 복마전이라서 나쁜가? 재벌처럼 토호도 장단점이 있다. 그런데 지역기업이 잘 되면 악질로 본다. 그 시각의 이중성을 지적하고 싶다.
좋은 지역 신문은 경제력에 달렸다. 어느 지역에는 <한겨레>만한 매출을 올리는 신문사가 있고, 대부분 다른 지역에는 그런 신문사가 없다. 기업의 건전성은 경제력에 달렸다. 이렇게 기준 만들다 보니 지원이 일부 지역에 몰렸다. 사람도 같다. 빈곤층을 볼 때 게으르고 못난 사람이라고 봐야 하나. 구조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양면을 봐야 한다. 지방을 썩어빠진 것으로만 보는데, 그렇지 않다. 이런 얘기하면 지방에 오래 있어 물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지방대 교수들도 지방언론사를 욕한다. 그리고 지방대에서 좋은 학생은 다 서울로 편입가고 교수도 서울로 떠난다. 지금은 무조건 서울에 있는 것이 경쟁력이다. 안면 몰수하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지역안배는 안 된다고 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지역 안배가 지역 균형발전 정책이다.
-지역을 살리기 위해 균형발전 정책, 행정도시, 기업도시, 공기업 이전 추진중이다.
=노 정부가 요만큼 지역 균형발전 하는 기미 보이더니 수도권을 풀었다. 지방에 공기업 이전 계획 발표하고 수도권에 공장 신·증설 허용한 것은 지방에 어음주고 수도권에 현찰준 꼴이다. 균형발전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하나?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지역 균형발전 정책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서울쪽은 금방 효과가 나타나는 신도시, 공장 신·증설 풀어줬다. 갑갑하다. 인구가 아무리 수도권에 몰려도 아직 지방이 다수다. 전북 국회의원들은 서울서 아이들 교육시키고 또 본국(?) 미국으로 유학 보낸다. 지방은 묘한 이중 식민지 구조가 돼 있다. 이런 이야기하면 그러면 당신 애는 공부 잘 해도 지방대 보내겠냐고 말한다.
-서울대 문제 책도 쓰고 해법 제시했는데, 잘 바뀌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은 국공립대 통합안을 제시했는데?
=국공립대 통합은 정말 좋은 안인데, 민주노동당 집권해야 된다. 손호철 교수가 민주노동당 쓴소리 강연 갔다가 이래서는 집권 못한다고 호통쳤다고 한다. 진보진영 쓴소리 경청 했는데, 손 교수가 2010년대에 집권 못한다고 그랬다. <한겨레 21>하고 서울대 문제 갖고 토론도 했는데, 서울대 개혁 얘기하는 사람도 학벌에 대한 의견이 달랐다. 나는 정운찬 총장처럼 서울대와 연·고대 비중 축소해서 가자는 것이다. 명문 일류대도 경쟁의 필요성이 있다. 주요 권력기관 출신대를 봤더니 3개 대학이 50%를 먹어버리는데, 이것은 안 된다. 적어도 수십개 대학이 경쟁할 수 있는 체제는 돼야 한다. 그래야 대학에서 공부한다. 대학들이 공부하는 데 드는 돈 아끼려고 고교등급제를 하는 것이다. 또 고교 등급제보다 대학 등급제가 더 큰 문제다. 기업에서 원초적 차별 가하니 명문대 아닌 대학생들 공부할 맛이 안 난다. 노 대통령이 그런 이야기 좀 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사법고시 식으로 경쟁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시 덕에 노 대통령도 나온 것 아닌가?
-강 교수가 펴낸 책을 검색해보니 122권이었다. 왜 이렇게 많이 쓰는가?
=내가 창피해서 언제부터인가 권수를 세지 않는다. 나는 책을 작품으로 생각 안한다. 주위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역작을 내라고 하는데, 나는 아니다. 나는 책 내는 쪽으로는 디지털화돼 있고,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예전에 책이 귀할 때는 밟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책을 함부로 본다. 메모도 함부로 하고, 소모되는 것으로 본다. 물론 철학과 같은 분야는 다르다. 이론 분야는 작품이 나온다. 그렇지만 우리 신방과 쪽에서 작품이 나오겠나? 흐름이 빨리빨리 지나간다. 한 책을 오래 쓰다 보면 이미 낡은 것이 돼버린다. 내게 책 내는 데 불성실하다는 비판도 있다. 물론 공을 들일 수 있지만, 이 정도면 된다는 생각이다.
내게 책 쓰는 것은 중독인 것 같고, 일종의 취미생활이다. 사명감 같은 게 없고, 누구는 내가 돈 때문에 많이 쓴다고 하지만, 오히려 거꾸로다. 자주 내는 것은 덜 팔려서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띄엄띄엄 내는 게 돈벌이로는 낫다. 나는 그냥 책 쓸 준비하고 책을 내는 게 취미다. 매우 재미있다. 요즘은 한국인의 특성을 범주화하는 책을 쓰고 있다. 이를테면 쏠림, 홍수민주주의, 소용돌이 현상, 빨리빨리. 냄비 근성 등 한국 상황을 보여주는 개념들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이 재미있다고 하는데, 내겐 책 쓰는 게 그 재미다.
-그렇게 쓸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따로 있나?
=무작위로 책을 보다가 재미있는 내용이 나오면 입력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한다. 또 신문 보다가 사례가 나오면 오려놓는다. 그런 것들을 각 주제별로 파일에 입력한다. 지금도 이미 쓸 책들이 정리돼 있다. 자료 입력을 미리미리 했기 때문이다. 보통 10~20권씩 진행한다. 주제별로 입력해놓은 것이 20권 정도 분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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