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암아이별학교 수업에 참가한 초등학생들이 김지현(가운데) 교장으로부터 천체망원경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현암아이별학교 제공
현암아이별학교 김지현 교장

김지현(37)씨는 별을 좋아한다. 강원도 동해의 고향마을에서 바라보던 밤하늘의 별을 지금도 기억한다. 고교 때 천체망원경으로 띠가 있는 토성을 관측했을 때의 전율은 아직도 몸이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는 자라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저 별들을 늘 가까이서 지켜보며 살겠노라 마음 먹었다.

김씨는 지금 어린 시절의 다짐처럼 산다. 김씨는 현암아이별학교 교장이다. 그는 3개월 단위로 열리는 별학교를 통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상상력을 키워준다. 별학교는 서울 한복판에 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현암사 사옥에 있다. 이곳에는 매주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초등학생들이 그를 따라 별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10일은 날이 흐려 수업이 취소됐다. 대신 김 교장의 ‘특강’을 들을 수 있었다. 강의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모은 영상자료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와 안드로메다 등 아름다운 모양의 성운과 페가수스 자리, 물고기 자리, 큰곰 자리 등 별자리들, 그리고 화성, 목성, 토성 등 태양계 행성의 모습을 담은 3차원 영상물은 환상적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모자란다. 빅뱅에서 지구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영상물은 어떤 판타지 영화보다 놀라운 광경을 연출한다. 이날은 못했지만 다른 날 같으면 교실 수업이 끝나고 수강생들이 현암사 옥상으로 올라가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하는 시간을 가진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세상에서 가장 넓고 오래되고 아름다운 미술관입니다. 돈도 필요없어요. 고개만 들면 드넓디 넓은 우주를 자신의 가슴 안에 담아낼 수가 있습니다. 공부와 컴퓨터에 매몰되어 혼자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는 기회지요.”

2001년 7월 문을 연 현암아이별학교는 지금까지 3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공개관측행사에 참여한 사람까지 합하면 그의 안내로 별세계를 찾은 이들은 5천 명이 넘는다. 그들 모두 밤이면 가끔씩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들만의 우주여행을 하리라.

별학교 교장으로, 2003년 한국과학문화재단의 과학기술홍보대사로 선정되어 각급 학교에 강의도 다니는 별 전문가지만 그의 전공은 물리학이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도 그는 고교 때의 꿈을 잊지 않고 별 관측 동아리인 천문반에 들어갔고 1990년 전국대학생아마추어천문회 회장을 지낼 정도로 열심히 별 헤는 밤을 보냈다.

대학 졸업 뒤 안성천문대에서 일하던 그는 98년 <밤하늘로 가는 길>이란 책을 내면서 현암사와 인연을 맺게 된다. 천문회 활동 때 알게 된 김동훈씨와 함께 엮은 이 책은 별관측을 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안내서다. 그가 처음 망원경을 갖게 됐을 때 어떻게 별을 보는지 몰라서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으로 별을 보고자하는 이들을 위해 만들었다. 그 뒤에도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풀코스 우주여행> <별대장과 함께 떠나는 우주탐험시리즈 별자리> 등 별과 관련된 4권의 책을 더 냈다.


그 인연이 별학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김씨는 2000년 현암사에서 사옥을 개보수한다는 말을 듣고 천체망원경을 만들어 기증하기로 마음먹었다. 대학 동아리 후배들까지 동원해 반사경을 깎고 황동으로 뼈대를 만드는 데 1년이 걸렸다. 그가 천체망원경을 기증하자 자연스럽게 별학교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다. 현암아이별학교는 그렇게 개교했다.

별학교는 12월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매주 목요일 저녁 8시에는 ‘별자리탐험’(참가비 1만5천원)이, 수요일 7시30분부터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우주과학강연’(참가비 2만원)이 참가자를 기다리고 있다. 모두 하루짜리 프로그램이다.

김씨는 별학교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누구나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자리를 소개했다. “저녁에 해진 뒤 7시쯤 서쪽 하늘을 보세요. 제일 밝은 별이 금성입니다. 그로부터 2시간쯤 뒤인 9시께 이번에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세요. 아주 밝고 불그스레한 별이 나타납니다. 화성이지요.”(02)313-2729.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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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우리 학생들 음악 재능은 뛰어나다”
정상영 기자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행복하고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함께 연주를 해보았는데 역시 한국 학생들의 재능이 대단히 뛰어나다는 것을 느꼈어요.”

한국의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52·서울시향 예술고문)씨가 올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11일 오전 서울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에서 예원학교 전교생 900명을 위해 마스터클래스를 가졌다.

“내가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을 공부한 지 40년이 되었어요. 그런데 밖에서 연습하는 것을 들어보니까 대단하던데 한번 해볼까요?. 지휘자는 소리를 안내죠? 템포를 결정하고 템포에 대한 사인을 줄 뿐이죠. 자 한번 해봅시다. 하나, 둘, 셋. 빰빰빰빠…”

정명훈씨는 이날 예원학교 전교생 90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60명의 남녀학생으로 이뤄진 예원학교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베토벤의 <교향곡 5번> 1악장을 연주했다.

그는 지휘하기 전 학생들이 너무 긴장하자 “지휘봉을 안 가져왔어요. 여러 도시를 다니며 연주를 하다 보니 오케스트라에서 지휘봉을 관리해서”라고 농담을 던져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연주 도중 학생들이 계속 긴장해서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내지 못하자 여러 차례 지휘를 멈추고 “아니 왜 그리 긴장하나. 이 교향곡은 힘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사자같은 소리를 내라고!”하며 격려했다.

“나도 지휘하기 전에는 수줍은 사람이에요. 그러나 음악가는 음악을 하는 동안에는 수줍어하면 안돼요. 한국 사람의 성격에 대해 설명할 때 ‘빨리’라는 말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음악에서는 위험해요. 빨라지면서 약해지기 때문에 빨라지려고 할 때는 힘을 찾아야 해요.” 그는 학생들에게 “경험이 없어서 힘든 줄 알지만 사랑과 힘을 담아서 노력해야 한다”고 다독거렸다.

2001년부터 정명훈씨가 특별예술고문으로 있는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지난 1일 상하이를 시작으로 아시아 순회공연에 나서 7일 부산, 9일 제주, 11일 과천에 이어 12일 저녁 7시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과 13일 저녁 7시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연주회를 연다. (02)518-7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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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동안 122권의 책을 지은 사람,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는 구절을 일반화한 사람, 무크·월간 <인물과 사상>을 33권 펴낸 사람, <한국 현대사 산책>을 15권 펴낸 사람, ‘1인 저널리즘’과 ‘실명 비판’이란 말을 유행시킨 사람, 철학자 김용옥씨의 ‘통나무’ 출판사처럼 ‘인물과사상사’라는 전용 출판사를 가진 사람, ‘김영삼’ ‘김대중’ ‘전라도’ ‘조선일보’ ‘서울대’ ‘이문열’ ‘김용옥’ ‘노무현’ ‘이건희’ 등 강자이거나 칼날 같은 이슈들과 정면 대결해온 사람, ‘죽이기’ ‘살리기’란 말을 책 제목으로 여섯 번 사용한 사람, 그리고 지지리도 상복이 없던 사람.

짐작하겠지만, 그의 이름은 강준만이다. 그 사람이 제4회 송건호 언론상을 받게 됐다.

송건호 언론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정경희, 위원 이해동 김태진 방정배 이명순 변동현 김영석)는 23일 제4회 수상자로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를 선정했다. 심사위원회는 강 교수가 “1997년 <인물과 사상>을 창간해 ‘언론비평’의 새로운 장을 열며 무소불위의 언론을 견제했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부당한 차별’과 ‘성역과 금기’에 도전하며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희망했다”며 “혼자 힘으로 시작한 작은 움직임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이 됐고, 실명비판의 문화 속에서 생산적인 논쟁과 토론이 성숙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으며, 지식인의 양심과 책무를 일깨웠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겸손, 겸손, 겸손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요?”라는 물음으로 수상 소감의 운을 뗐다. 숨가쁘게 ‘성역과 금기’에 도전해왔던 이제까지의 태도와 다르게 강 교수는 ‘겸손’의 코드로 세상을 꿰려 하고 있었다. 전주시 전북대 사회과학대학 211호 연구실에서 만난 강 교수는 “의례적 겸손, 처세술로서의 겸손이 아닌 뼛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본질로서의 겸손을 송건호 선생에게서 배웠다”며, 이것이 처음에 고사하려던 이 상을 받기로 마음을 고쳐먹은 이유라고 밝혔다. 동시에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 맹렬한 자기성찰을 촉구했다.

왜 ‘겸손’인가? 강 교수가 지천명에 이르렀기 때문인가?(강 교수는 양력 1956년 1월생이다) “사람들은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일을 할 때는 좋은 뜻과 열망이 앞선 나머지 겸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은 자신의 ‘인정 욕구’나 ‘도덕적 우월감’을 자제하는 겸손을 보여야 자신의 소신을 실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텍스트보다 컨텍스트(맥락)에 주목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이다.”

강 교수의 태도는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유럽식 세계관에서 벗어나 “덕이 너를 아름답게 하리라”라고 말하는 유가적 가치를 두둔하는 듯했다. 심지어 강 교수는 최근 <한국일보>에 “‘싸가지’가 ‘메시지’다”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이 역시 소통하기 위해서는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요지를 담고 있다.

강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겸손’의 코드에서 실패하고 있다”며 노 정부에 대한 애증을 숨기지 않았다. “왜 수구 기득권 세력이 미친 듯 악을 쓰는가? 나는 한 이유가 노 대통령이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그들을 내려다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지사지해보면 안다. 노 대통령이 개혁에 성공하려면 자신보다 일을 앞세워야 할 것이고, 빛을 내기보다 욕을 먹어야 할 것이다.”

최근 강 교수의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지식인 참여’와 관련해 조기숙 대통령 비서실 홍보수석과의 한바탕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논쟁은 조 수석이 전주를 찾아와 산행 토론을 하며 마무리됐지만, 그의 비판은 그를 잠재적 ‘우군’으로 여겨온 집권 세력에게는 매우 곤혼스런 일이었음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강 교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지난 1~2년 동안엔 자의가 아닌 상황에 의해 퇴출당했다. 그가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문제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란다. “민주당의 문제는 지지했던 사람들이 성찰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뛰쳐나오면서 사람들은 그럴 기회를 잃었으며, 동시에 면책받았다. 그런 열린우리당이 예전의 민주당과 얼마나 다른가? 열린우리당은 정치에 대한 혐오와 염증을 이용해 위선을 저질렀다. 민주당처럼 열린우리당도 대통령의 당일 뿐이다.”

한편으로 그의 이런 일련의 활동에 대해 최근 비평가 김규항씨는 애정이 듬뿍 담긴 비판을 보내기도 했다. 김씨는 “강 교수가 보수 정당들을 출연자로 하는 기만적인 쇼의 정치에서 삶의 정치로 돌아오길 기대한다”며 “비정규직, 빈곤의 확대, 공공영역의 사유화, 제국주의 침략 전쟁 동조 등 끝없이 나열되는 이 참혹들에 대해 행동해달라”고 주문했다.

언론권력을 줄기차게 비판해온 언론학자로서 또 ‘안티조선’을 이끌었던 언론운동가로서 그가 보는 한국 언론계의 과제는 무엇일까? 그는 “근본 문제는 조·중·동이 아니라, 한국 역사에서 구축돼온 강고한 정치·경제 분리주의”라고 짚었다. “한국 독자들은 투표장에서 김대중·노무현을 찍으면서 집에서 조·중·동을 보고 부동산·주식 투자, 과외교육에 몰두한다. 이것은 이른바 민주·개혁 인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민들의 경제적 보수성을 바꿔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는 <한겨레>나 <오마이뉴스>와 같은 개혁 언론이나 개혁·진보 세력들이 스스로 ‘경제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중동이 제시하는 한국 사회의 경제적 미래를 대체할 비전과 방향을 진보 세력이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문·사회과학도들이 경제 문제에 무지한 상태로 경제를 부정부패의 온상, 악의 근원으로만 바라보는 한 이런 한국 사회의 이율배반은 계속될 것이라고 비관했다. 이를테면 그는 <한겨레>가 저항자로서의 생각을 버리고 주도자로서 책임감있게 현실에 임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제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의 말은 처음의 ‘겸손’을 상기시켰다. “나는 책을 쓸 것이다. 과거처럼 깊이 개입하지는 않고 일반적인 차원에서 해법을 구하겠다.”

다음은 지난 18일 전북 전주 전북대 사회과학대학 강준만 교수의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 전문이다.

-4회 송건호 언론상 수상 소감은?

=고민이 됐다.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받나? 송건호 선생을 생각해보고 받기로 했다. 사실 나는 사람을 존경하는 이유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 사람들이 리영희 선생을 존경하는 이유는 엄혹했던 시절에 의식을 죽비(책)로 각성시킨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내 이유는 리 선생이 자신에게 대단히 정직하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권 붕괴 때 스스로 나서서 이를 인정했다. 꼭 안 해도 되는데, 굳이 인정했다. 최근 <대화>에서 임헌영 선생과 민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민중이 무오류 아니다”라고 말해 가벼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단선적이지 않다. 나도 그렇다.

송건호 선생을 생각해보니 지금 필요한 시대정신이 겸손 아닌가. 노무현 정부가 이제까지 해온 식으로 했으면서도 태도가 조금 달랐으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오만한 느낌을 준다. 도덕적 우월감 갖고 내려다 보면 상대는 견디기 힘들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 악을 쓰고 미친 듯 날뛰는데, 역지사지 해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게 겸손 아닌가 정말로 겸손하면 자기보다 일을 내세운다. 성사시키기 위해 빛을 안 내고 욕을 먹는다. 인정욕구 앞서면 안 된다. 삶 주변에서도 겸손이 중요하다. 상식적인 처세술이 아니라, 진짜 겸손은 다수가 잘 되기 위해 나를 낮추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을 보여준 분이 송건호 선생이다. 송 선생의 가장 큰 특성이었다. 물론 내 아전인수다. 겸손에 대해 문제의식 느꼈는데, 그것을 보여준 분이니까. 당시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면이지만, 지금 송 선생의 그 메시지를 전하는 데 애를 쓰라는 뜻으로 봤다.

-수상 소감에서 “겸손, 겸손, 겸손”에 대해 강조했는데?

=참 중요하다. 김대중 정부 이후에는 민주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겪으면서 문제가 드러났다. 예전처럼 갈 수 없다. 스스로 성찰이 없어서 자신을 분석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아들 문제는 김영삼 때 있었는데, 김대중 때도 일어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또 무엇을 배웠나? 자기들은 다르다는 이야기만 한다. 내가 보기엔 같은 점이 더 많다. 수구에 대한 안티로의 역할만 하고 있다. 그것만 갖고는 안 된다. 무엇에 대한 반대·극복만 있고, 자신에 대한 생각이 없고 겸손하지 않다. 청운의 뜻을 품었으면 낮은 자세로 할 수 있다. 그런데 상대를 윽박지르고 면박 준다. 이해찬 총리만 해도 충정 이해하지만, 고압적이다. 도덕적 우월감·자신감이 전반적으로 과잉이다.

노무현 정권의 이념 대결은 다른 문제까지 덮는다. 다르게 접근했다면 달랐다. 노무현은 자신을 한편으로 과대 평가하고 현실적으로 과소 평가한다.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치 해야 한다. 경제 문제도 보수 신문 비판에 앞장 서고 집중한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과 다르다. 위로가 필요한데, 낙관론을 펼치거나 수구세력과의 싸움으로 국민과의 커뮤니케이션 안 한다. 또 도덕적 우월감을 가졌으면서 스스로의 현실 역량을 과소 평가한다. 약자·소수자의 정신세계다. 정권 잡아서 국정 운영하면서 약자라고 하는가? 약자 멘털리티로 가다 보니 맞짱드는 상대만 생각하고 국민은 없다.

지식인이나 민주화 운동가, 시민운동가의 입지와 국정 책임자로서의 그것은 다르다. 지식인은 그럴 수 있지만, 국정 운영자는 달라야 한다. 소통 스타일이 중요하다. 소통 문제를 멀리 거리 두면 역사의 업보가 된다. 물론 80년대의 경험이 있고, 투쟁 정서가 있어서 하루 아침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겪어야 할 과정이라면 조금 단축할 수는 없느냐는 것이다.

-최근 <한국일보> 칼럼에서 ‘싸가지’에 대해 말했는데, 이것도 ‘겸손’ 코드와 일맥상통하나?

=사회도 전반적으로 그렇다. 인터넷 보니 사람들이 튀어야 한다고 하면서 독설로 가는데, 뜻은 좋지만 일상적인 대인관계에서 말을 그런식으로 하면 선의 안 산다. 개인으로 그럴 수 있지만, 정·관·재계 인사까지 그러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소통에 뜻이 없는 것이다. 적대화하고 그쪽을 약올리고 분노하게 함으로써 내쪽 지지자 카타르시스 주는 것이다. 정치가 엔터테인먼트라서 그렇다면 말 할 것 없다. 글나 소통의 뜻이 있다면 그럴 수 없다.

-사람들은 강 교수가 민주당 분당에 반대하고 열린우리당 비판하는 것을 보고 민주당에 연민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다.

=나는 그 일로 퇴출됐다.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 분당 때부터 상황에 의해 그렇게 됐다. 어쨌든 나는 틀렸다. 열린우리당 체제를 국민 다수가 인정했으니까. 나는 예전에 민주화 원한 사람들과 함게 갔는데, 이제는 소수파가 된 것 같다.

나는 민주당 분당이 호남인들이 스스로 성찰할 기회를 박탈했다고 본다. 그들의 정치적 선택에 대해 각성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전북만 해도 유권자의 10%가 열린우리당 당원이다. 열린우리당이 생기면서 모두 면책받았다.

정당은 뭔가? 민주노동당 안에도 이견이 많다. 그렇다고 다 따로 가야 하나? 민노당 안에 문제가 있다고 개혁 세력이 당을 나가서 또 당을 만든다? 그것은 문제 아닌가? 민주당에 대해 연민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주체세력의 문제 푸는 방식에 문제 제기한 것이다. 시대의 업보다.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염증과 혐오, 저주를 이용해 열린우리당이 나왔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은 예전의 민주당과 얼마나 다른가? 그 당이 100년 갈까? 열린 우리당이 노 정권 말기에 가서 또 분당하면 문제 아닌가? 열린우리당이 혁명할 것처럼 한 것은 정말 위선이고 기회주의다. 열린당이 뜻대로 잘 나가면 내 판단의 과오지만, 그렇지 않고 같은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맞은 것이다. 그것은 김대중의 당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당일 뿐이다.

-최근 비평가 김규항씨가 한 글에서 강 교수에게 “보수 정당의 기만적인 쇼에 참여하지 말고 삶의 정치로 돌아오라”는 애정어린 글을 썼다. 보수 정치가 아니라 삶의 정치,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빈곤, 조·중·동 문제, 이라크 파병 등 각론을 다룰 생각 없나?

=한국같은 ‘소용돌이 사회’ 안에서는 정치 세력이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김규항씨의 주장 이해하지만, 나는 어렵다. 정치 분야에 의해 소용돌이가 일어나 막 빨아들이는데, 이 문제를 그냥 두나? 경중을 봤을 때 정권이 잘 못가는데, 구경만 해야 하나? 물론 더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노무현의 해체 전략에 동의 안 하면서 비판하고 싶지 않다. 이야기해서 될 것 같지 않고, 그는 마이웨이로 가고 있다. 이제는 일반론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또 내 자신이 여러 분야 관심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원래가 커뮤니케이션 전공이고, 소통이 주요 관심사다. 관심사를 제거하고 일할 수 있나.

-언론학자로서도 훌륭하지만, 사회과학자, 정치평론가, 행동가로서도 폭넓게 활동했는데, 스스로를 언론인으로 생각하나?

=언론인까지야. 대중적 글쓰기하는 언론학자지. 나를 언론인라고 하면 과찬이고, 전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물론 언론인 역할 하면 좋겠지.

-안티조선의 주요 활동가였는데 최근 언론상황에 대해서는 별로 발언하지 않는 것 같다. 최근 한 글에서 조중동의 문제에 대해서는 성실함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는데

=조중동에 대한 생각은 같은데, 싸운 뒤에 이유를 생각해봤다. 내 생각은 국민이 호응을 안했는데, 그것은 강고한 ‘정치·경제 분리주의’ 때문이다. 유권자로서는 민주세력 찍지만, 신문은 안 바꾼다는 것이다. 어떤 민주 인사가 공직 들어서면 재산 공개했는데, 왜 돈이 그렇게 많은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한다는 것을 감안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또 주류 영합주의가 강하다. 내 삶의 경쟁력에 대한 판단이 정치적 선택과 다르다. 주류 매체고 영향력 있다는 그 판단이 크다. 이것이 가장 세고 주류라는 것이 한국인 특유의 경쟁력주의를 부추긴다. 기러기 아빠가 일반 국민뿐 아니라, 개혁·진보 인사에서도 있다. 진정성 갖고 운동해도 신문 안 바꿨다.

이제 경제를 치고 들어가야 한다. 이재현씨가 어느 글에서 “진보적 진영에서 문화운동하고 그러면서 경제를 중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정확한 말이다. 경제는 감시 대상일 뿐이고 스스로 ‘경제 플레이어’라고 생각지 않는다. <한겨레>같은 언론도 재벌들로부터 독립해 신문사를 꾸려가고 독립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 치중한다. 한국 경제를 더 높은 어디로 가져가야 하는지 총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일탈·비리만 다루지 주도적 플레이 안 한다. 그러면 영원히 조중동에게 깨진다. 엉거주춤하지 말고 분명히 해야 한다. 다수 국민이 어리석은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보수적이다.

-최근의 신문법이 시행됐고,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신문발전위원회, 신문유통원이 활동에 들어갔다. 이런 기구들이 신문시장 정상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여러 가지로 불만족스럽지만, 기대가 있다. 이런 기구들로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에는 의문이 있다. 왜냐면 한국 독자들이 가진 묘한 체질이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광신도 노무현 광신도가 <조선일보>를 본다. 그런데 한국적 상황에서 합리주의다. 왜? 노가 개혁한다고 나서도 주변 핵심 인사들의 재산 규모가 역대 정권 비해 적지 않았다. 경제적인 문제는 보수고 진보고 다르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다. 사람들은 경제가 중심이고 가외로 개혁을 이야기한다.

진보적 입장의 정통 좌파들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해 신자유주의라고 싸잡아 비판한다. 한편으로 노 정부 요직 인사들도 자기 재산 다 챙기고, 국민들은 신문에서 아이들 논술과외 서비스도 받아야 하고, 부동산·증권 투자 정보도 얻어야 하고, 각종 광고도 봐야 한다. 그런 신문이 유리하다. 경제는 이렇게 간다. 앞서 안티조선 운동 하면서 모멸을 가하는 공격도 해봤다. 소용없었다. 북·서유럽 복지 국가 모델? 나 죽을 때까지 안 된다고 본다. 자원 없고 수출로 사는 나라를 어떻게 북유럽 나라들에 비할 것인가?

우리 나라 사람 경제적 보수성을 낮은 곳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택시 타보면 운전기사들이 결코 무식하지 않다. 물론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지혜를 갖고 있다. 장하준 교수 글에 대해 여러 말 많지만, 그 정도 글을 갖고 이야기해야 한다. <한겨레>가 장하준 정도의 시각을 받아들인 것만 해도 대단하다. 세상을 아는 체하는 인문·사회학도들이 경제를 모른다. 경제에 대해 뭘 알아야 국민들 마음 속으로 치고 들어갈 수 있다.

-<한겨레>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아직 창간 정신을 잊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 초심을 갖고 있는 게 문제다. 창간 당시는 기적이고 감동이었다. 독재정권에게 대항했던 이들이 자체 매체 가진 감격이었다. 지금은 민주적인 정권이 둘이나 나왔는데, <한겨레>가 비판을 넘어서서 의제를 스스로 만들고 끌어가지 못하고 있다. 과거 저항세력이 가졌던 견제·감시·비판 수준이다. 반면 조중동은 의제 설정을 멋대로 하지만 한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하고 독자들은 익숙해 있다.

국가보안법 처리 문제 때 경호권 발동 문제가 핵심이었다고 본다. 유시민 의원·리영희 선생도 경호권 발동 반대했고, 열린당 그것을 망설였다. 당시 <한겨레>는 때묻히지 않으려고 원론 수준으로만 얘기했는데, 너무 무책임한 것이다. <한겨레>가 경호권 발동에 대해서도 더 구체적으로 된다, 안 된다는 이야기 마당을 펼쳤어야 했다. 경호권 발동 안 된다는 리영희 선생 얘기도 싣고, 또 예외적으로 경호권 발동해서 보안법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다뤘어야 한다. 기사로 다룰 수 있고, 나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야 고민하는 사람들이 그 문제를 정리할 수 있었다. 유시민 의원은 다 끝나고 국회 사망선고하면 뭐하나? 한겨레가 썼으면 여야가 심각히 고려했을 것이다. <한겨레>는 고급지로서 어젠다에 대한 영향력이 있다. 전술·방식의 차이는 얼마든지 다룰 수 있다.

국가보안법 말고 다른 것에도 적극성이 없다. 진보세력의 문제점 안 다룬다. 조중동 따라서만 조금 다룬다. 그러다 보니 어젠다를 다 넘겨준다. 정권 주류가 비주류적으로 일관하듯 <한겨레>도 그런다. 나는 그걸 아웃사이더 체질이라고 본다. 아웃사이더는 고귀하다. 권력·부에 욕심 없고, 옳은 소리하고 저항하고 감시·견제한다. 그러나 인사이더는 집단을 어디론가 끌고가면서 궂은일, 더러운일 하는 것이다. 아웃사이더는 욕할 것 많지만, 인사이더는 어렵고 욕먹을 일이 많다.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 인사이더는 책임져야 한다. 아웃사이더는 휘말리지 않고 옳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한다. 메이저로서 아웃사이더 하면 좋겠지만, 조중동 70%가 인사이더 하는데, 마이너만 아웃사이더 한다? 결단이 필요하다. 정파성을 강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 비판도 더 하고, 개혁진보세력을 더 세게 비판하고, 적극적으로 의제를 만들어 가야 한다. 기사 쓸때는 진보세력과의 유대도 끊어야 한다.

-최근 칼럼에서 신문산업이 지식산업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신문시장은 지금 조중동이 문제가 아니다. 조선·동아는 그래봐야 거대자본의 소유는 아니다. 그런데 앞으로 인터넷 언론 기업 성장하고 통신업체 중심으로 매체 융합 나타나면 엄청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를테면 한나라 집권하면 케이비에스2·엠비시 민영화 안 할 것 같나? 신문이 살아야 민주주의가 산다. 루퍼트 머독 식의 거대한 미디어그룹이 나오면 현재의 조중동보다 민주주의에 더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당파적이니 편파적이니 해도 신문이 살아남아야 한다. 살 방법은 지식인 전통을 살리는 것이다. 아직 기자에 대한 신화가 있다. 그것을 살려서 지식 산업쪽으로 힘을 펼쳐야 한다. 거대 기업들속에 편입되면 절대 안 된다. 비교 우위는 지식 산업인데, 신문업계 선두주자인 조중동은 정권 죽이기에 몰두하고 있으니 큰 일이다. 제 무덤을 파고 있다.

-엑스파일 사건으로 이건희·홍석현에 대한 수사가 진행중이다. 최근 책 <이건희 시대>에서 삼성의 문제에 대해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벼락공부하지 않으려면?

=한국 사회에 ‘홍수민주주의’가 있다. 지난 민주당 분당에 민주당의 책임만 있나? 삼성에 대해서도 그렇다. 문제가 있으면 평소에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평소에 잘못된 것을 잘 눈감아 주다가 건수 생기면 국민 모두 짱돌 하나씩 들고 나선다. 한꺼번에 쓸어버리고 처리하는 홍수식이 화끈한 맛은 있다. 그런데 홍수 났을 때 사람들이 신중하게 하겠나. 우격다짐식이다. 아무리 우리 체질이어도 이제 와서 삼성만 죽일 놈이라고 하지 말고 우리도 공부해야 한다. 평소에 대학 총장들도 삼성 포함한 재벌 돈을 끌어와야 한다. 재벌 은전 받는 것이다. 삼성의 문제를 평소에 이야기하면 문제가 덜 할 텐데, 이벤트성이 강하다. 한 번 걸리면 홍수 맛좀 봐야 한다는 쏠림이 강하다.

-이번 사건에서 보면 <중앙일보>는 또다른 삼성이자, 언론계의 실력자다.

=<중앙일보>가 조·동에 비해 개혁세력으로부터 덜 얻어맞는다. 유시민도 조·동은 독극물, <중앙>은 불량식품이라고 했던가? 남북문제에서 비교적 자본의 합리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조·동은 자본의 합리성도 없이 생래적 거부감으로 접근했다. 한국사회에서 민족문제 다루면서 자본의 위험이 가려졌는데, 사실은 운동권도 그렇지만 민족문제와 자본문제가 쌍벽이다. 중앙의 잘못이 제대로 부각이 안 되고 있다. 조·동이 중앙을 키운 셈이다. 아마 조동이 남북문제 시각 바꾸면 중앙 입지가 위축될 수 있겠다.

-인물과 사상의 중단과 인터넷 시대와 무슨 관계가 있나? 휴대전화도 쓰지 않는데?

=최근 <한겨레21>에 휴대전화 관련 글을 썼는데, 일종의 균형잡기 지적이었다. 휴대전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지 않다. 오히려 자본에 친화적이다. 새 기술에 대한 거부감은 자본주의를 보는 시각과 관련 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고 대중문화 자체를 좋아한다. 딴따라 끼도 있다. 영화도 엄청 좋아한다.

-전북 전주에 살고 전북대 교수를 하고 있다. 지방이라는 것은 언론사도 그렇고 한국 사회의 또다른 문제라고 했는데?

=내부 식민지이론을 믿는다. 여기는 식민지 체제인데, 열이 나지 않는가? 서울서 국회의원하는 지방의 엘리트 계층이 여기 사람인가? 여기를 대변하는가? 여기 사는가? 아이들이 여기 있나? 다만 여기 근거로 제 입신양명하는 것이다. 이 신문 제목 좀 봐라. 지역 언론이 정말 이러면 안 된다. (전북 지역의 신문 두 개를 보이며) “노대통령 전북홀대 심각” “전북 홀대론 확산 분노” 언론은 이런 보도 좀 하지 말고, 중앙정부는 지역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이 지역 엘리트들이 이런 문제 생각하나? 인구가 계속 줄어든다. 60년대 250만명이 넘었는데, 최근 190만명선이 무너졌다. 내가 처음에 전북대 와서 지역 문제 갖고 혈압 좀 올렸다. 그런데 나만 성격 이상한 놈으로 찍혔다. 가만 보니 이 곳 사람들에게는 체념의 지혜가 있었다. 괜한 소리 했다가는 “억울하면 출세해라” “서울 못 가서 배 아파서 그러냐” 그런다. 최근에 지역 신문 발전기금 나눠주는 것도 그렇다. 지방 언론사 사주가 토호라고 해서 매우 엄격한 기준 적용해 특정 지역 언론이 집중 지원받았다. 그런데 토호와 재벌이 다른가? 재벌은 선진적이라서 좋고, 토호는 비리 복마전이라서 나쁜가? 재벌처럼 토호도 장단점이 있다. 그런데 지역기업이 잘 되면 악질로 본다. 그 시각의 이중성을 지적하고 싶다.

좋은 지역 신문은 경제력에 달렸다. 어느 지역에는 <한겨레>만한 매출을 올리는 신문사가 있고, 대부분 다른 지역에는 그런 신문사가 없다. 기업의 건전성은 경제력에 달렸다. 이렇게 기준 만들다 보니 지원이 일부 지역에 몰렸다. 사람도 같다. 빈곤층을 볼 때 게으르고 못난 사람이라고 봐야 하나. 구조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양면을 봐야 한다. 지방을 썩어빠진 것으로만 보는데, 그렇지 않다. 이런 얘기하면 지방에 오래 있어 물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지방대 교수들도 지방언론사를 욕한다. 그리고 지방대에서 좋은 학생은 다 서울로 편입가고 교수도 서울로 떠난다. 지금은 무조건 서울에 있는 것이 경쟁력이다. 안면 몰수하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지역안배는 안 된다고 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지역 안배가 지역 균형발전 정책이다.

-지역을 살리기 위해 균형발전 정책, 행정도시, 기업도시, 공기업 이전 추진중이다.

=노 정부가 요만큼 지역 균형발전 하는 기미 보이더니 수도권을 풀었다. 지방에 공기업 이전 계획 발표하고 수도권에 공장 신·증설 허용한 것은 지방에 어음주고 수도권에 현찰준 꼴이다. 균형발전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하나?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지역 균형발전 정책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서울쪽은 금방 효과가 나타나는 신도시, 공장 신·증설 풀어줬다. 갑갑하다. 인구가 아무리 수도권에 몰려도 아직 지방이 다수다. 전북 국회의원들은 서울서 아이들 교육시키고 또 본국(?) 미국으로 유학 보낸다. 지방은 묘한 이중 식민지 구조가 돼 있다. 이런 이야기하면 그러면 당신 애는 공부 잘 해도 지방대 보내겠냐고 말한다.

-서울대 문제 책도 쓰고 해법 제시했는데, 잘 바뀌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은 국공립대 통합안을 제시했는데?

=국공립대 통합은 정말 좋은 안인데, 민주노동당 집권해야 된다. 손호철 교수가 민주노동당 쓴소리 강연 갔다가 이래서는 집권 못한다고 호통쳤다고 한다. 진보진영 쓴소리 경청 했는데, 손 교수가 2010년대에 집권 못한다고 그랬다. <한겨레 21>하고 서울대 문제 갖고 토론도 했는데, 서울대 개혁 얘기하는 사람도 학벌에 대한 의견이 달랐다. 나는 정운찬 총장처럼 서울대와 연·고대 비중 축소해서 가자는 것이다. 명문 일류대도 경쟁의 필요성이 있다. 주요 권력기관 출신대를 봤더니 3개 대학이 50%를 먹어버리는데, 이것은 안 된다. 적어도 수십개 대학이 경쟁할 수 있는 체제는 돼야 한다. 그래야 대학에서 공부한다. 대학들이 공부하는 데 드는 돈 아끼려고 고교등급제를 하는 것이다. 또 고교 등급제보다 대학 등급제가 더 큰 문제다. 기업에서 원초적 차별 가하니 명문대 아닌 대학생들 공부할 맛이 안 난다. 노 대통령이 그런 이야기 좀 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사법고시 식으로 경쟁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시 덕에 노 대통령도 나온 것 아닌가?

-강 교수가 펴낸 책을 검색해보니 122권이었다. 왜 이렇게 많이 쓰는가?

=내가 창피해서 언제부터인가 권수를 세지 않는다. 나는 책을 작품으로 생각 안한다. 주위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역작을 내라고 하는데, 나는 아니다. 나는 책 내는 쪽으로는 디지털화돼 있고,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예전에 책이 귀할 때는 밟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책을 함부로 본다. 메모도 함부로 하고, 소모되는 것으로 본다. 물론 철학과 같은 분야는 다르다. 이론 분야는 작품이 나온다. 그렇지만 우리 신방과 쪽에서 작품이 나오겠나? 흐름이 빨리빨리 지나간다. 한 책을 오래 쓰다 보면 이미 낡은 것이 돼버린다. 내게 책 내는 데 불성실하다는 비판도 있다. 물론 공을 들일 수 있지만, 이 정도면 된다는 생각이다.

내게 책 쓰는 것은 중독인 것 같고, 일종의 취미생활이다. 사명감 같은 게 없고, 누구는 내가 돈 때문에 많이 쓴다고 하지만, 오히려 거꾸로다. 자주 내는 것은 덜 팔려서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띄엄띄엄 내는 게 돈벌이로는 낫다. 나는 그냥 책 쓸 준비하고 책을 내는 게 취미다. 매우 재미있다. 요즘은 한국인의 특성을 범주화하는 책을 쓰고 있다. 이를테면 쏠림, 홍수민주주의, 소용돌이 현상, 빨리빨리. 냄비 근성 등 한국 상황을 보여주는 개념들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이 재미있다고 하는데, 내겐 책 쓰는 게 그 재미다.

-그렇게 쓸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따로 있나?

=무작위로 책을 보다가 재미있는 내용이 나오면 입력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한다. 또 신문 보다가 사례가 나오면 오려놓는다. 그런 것들을 각 주제별로 파일에 입력한다. 지금도 이미 쓸 책들이 정리돼 있다. 자료 입력을 미리미리 했기 때문이다. 보통 10~20권씩 진행한다. 주제별로 입력해놓은 것이 20권 정도 분량이 된다.

전주/글·사진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 (왼쪽) 반민족적 족벌언론에 사망을 선고하고 풀뿌리 민주언론을 통한 언론개혁을 염원하는 만장이 옥천 언론문화제 들머리를 수놓았다. (가운데) 옥천 언론문화제에서는 이 지역 출신인 〈한겨레〉 초대사장 청암 송건호 선생을 추모하는 사진전도 열렸다. 문화제 참가자들은 송건호 선생 생가를 방문하기도 했다. (오른쪽) 옥천 언론문화제에서 ‘조선일보’ 사망 상주들이 축하 노래를 하며 문상객을 맞고 있다.

‘송건호 언론상’심사위원회는 강준만님을 제4회 ‘송건호 언론상’수상자로 선정합니다.

강준만님은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서 70여권의 저서와 40여권의 편저와 공저를 펴내며 저술활동을 활발히 벌여 온 언론학자이며 끊임없이 우리 사회에 문제의식을 던져 온 비판적 지식인입니다.

그동안 강준만님은 <대중매체 이론과 사상>ㆍ<세계의 대중매체 1~3> <대중문화의 겉과 속 1~2> 등의 저서에서 매체와 문화를 꿰뚫어 보는 안목을 제공했고, <권력변환: 한국언론 117년사>ㆍ<한국현대사산책 1940년~1980년대> 등의 책을 통해 한국언론사와 현대사를 정리 기록하여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대중매체ㆍ대중문화ㆍ역사 등 다방면에 걸친 이러한 시도는 사회ㆍ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언론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소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결과 언론연구의 지평을 넓혔고 학문의 대중화에도 이바지했습니다.

강준만님은 1997년 <인물과 사상>을 창간하여 ‘언론비평’의 새로운 장을 열며 무소불위의 언론을 견제했고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부당한 차별’과 ‘성역과 금기’에 도전하며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희망했습니다. 혼자 힘으로 시작한 작은 움직임은 우리사회에 큰 울림이 되었고, 실명비판의 문화 속에서 생산적인 논쟁과 토론이 성숙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심사위원회는 성실한 저술 활동을 통하여 언론연구의 발전에 기여하고, 예리한 시각으로 현실의 문제를 제기하며, 지식인의 양심과 책무를 일깨운 강준만님의 활동이 고 송건호 선생께서 남기신 민주 민족 자유 비판이란 뜻에 맞다고 판단하여 이 상을 드리도록 결정합니다.

심사위원회는 이 상이 지난 수년간 찬성과 반대, 비판과 비난 속에서도 현실에대한 고민을 늦추지 않은 수상자에게 격려가 되리라 믿으며 동시에 강준만님의 앞길에 무거운 책임감을 더하는 계기이기를 희망합니다.

2005년 11월 7일
제4회 송건호언론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정경희 언론인
위원 이해동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위원 김태진 도서출판 다섯수레 대표
위원 방정배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위원 이명순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위원 변동현 17대 한국방송학회장
위원 김영석 32대 한국언론학회장

■ 강준만 교수 송건호 언론상 수상 소감문

겸손, 겸손, 겸손 이외에 무엇이 또 있을까요?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격려와 채찍질의 뜻으로 알고 상을 받겠습니다.” 늘 다른 분들 상 받는 구경을 하면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상을 받을 땐 그런 말을 의례적으로 하는 것이려니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이제서야 그 말뜻을 온전히 깨닫게 되었습니다만, ‘격려와 채찍질’의 뜻이라 하더라도 이 상은 제게 과분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앞섭니다.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상을 받지 못하는 저의 심정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송건호 선생님을 개인적으론 알지 못했습니다만, 그 분의 사회적 의미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한국현대사와 언론사 공부를 할 때엔 그 분은 통찰을 제시해준 역사학자로 나타나셨고, 언론이 사회적 공기로 거듭 나기를 열망했을 땐 온몸으로 그 길을 제시해준 언론인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지식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 앞에선 그 분은 범인으로선 너무도 따르기 어려운 길을 보여주셔서 많은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거나 좌절케 했을 것입니다.

청암언론문화재단의 발족 선언문 제목은 “송건호 바이러스에 감염되자”였습니다. 과연 어떤 ‘바이러스’를 말한 것이었을까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해석하는 ‘송건호 바이러스’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겸손, 겸손, 겸손입니다. 의례적인 겸손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처세술로서의 겸손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뼈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본질로서의 겸손입니다.

한길사의 김언호 대표님은 과거 송건호 선생님의 강연 활동을 회고하면서 “개인적으로는 20~30년 어린 후배들에게도 늘 형이라는 존칭을 쓸 정도로 깍듯하고 부드러운 분이 어떻게 저처럼 열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지” 놀라곤 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도 송건호 선생님을 몇 번 뵈었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송 선생님의 겸손에 놀랐습니다만, 전 그 땐 그 겸손의 가치와 무게를 잘 몰랐습니다. 그저 보기 드문 미덕을 갖고 계시는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그후 김대중정권이 들어섰고 노무현정권도 탄생했습니다. 이 두 정권의 핵심 세력은 모두 다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고생했던 분들입니다. 저는 두 정권이 잘 되길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실망스러운 일들이 벌어졌고, 저는 사회과학도의 자세로 그 원인이 무엇일까 내내 고민해 보았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겸손이었습니다. 두 정권 모두 겸손하지 못한 점이 있었습니다. 겸손은 정말 어려운 겁니다. 성경에 겸손을 역설한 구절이 32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겸손의 실천이 얼마나 어려우면 그랬을까요.

우리는 송건호 선생님이 온몸으로 ‘언행일치’를 실천하셨고, 주변의 그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옳게 사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가시밭길을 걸으셨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실했고 용감하셨습니다. 그 놀라운 역정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겸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역사도 ‘겸손 코드’로 보고자 합니다. 갈등과 분열로 점철된 해방정국의 역사도 당시 모든 이들이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후로도 그런 ‘겸손 부재’의 역사는 계속 반복되었고, 오늘의 상황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좋은 뜻과 열망이 앞선 나머지 겸손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일을 할 때엔 겸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조차 내부 성원들 사이에서 묵묵히 빛이 안나는 곳에 임하면서 ‘겸손 바이러스’로 결속을 다져주는 사람이 없다면 출발조차 기대하기 어렵지요. 송건호 선생님의 업적은 바로 그런 역할에도 있었던 게 아닐까요?

겸손은 사회과학적 개념은 아닙니다. 유능한 사회과학자일수록 그런 개념은 피하려고 하지요. 그러나 저는 서구 사회과학의 틀과 개념만으로 한국사회를 이해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들이 아무리 옳은 일을 한다 해도 자신의 ‘인정 욕구’나 ‘도덕적 우월감’을 자제하는 겸손을 보일 때에 비로소 자신의 소신을 실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건 서구 사회과학에선 찾기 어려운 답이지요.

저 개인적으로도 다른 사람의 비판에 대해 속이 상하거나 분노했을 때 그 이유를 잘 뜯어보면 그건 제가 겸손하지 못한 탓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남에 대한 비판을 권리로만 알고 남의 비판은 의무로 받아 들이지 않는 이중성이 문제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은 현미경으로 관찰하려 들면서 자신의 허물은 망원경으로도 보지 않으려는 독선과 오만이 문제였던 겁니다. 저는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가 송건호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인은 형평의식이 매우 강한 사람들입니다. 텍스트보다는 컨텍스트에 더 주목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아무리 옳은 주장을 펴더라도 그 주장을 펴는 사람의 자격과 행실을 따집니다. 텍스트에만 주목해달라는 주문은 무력합니다. 텍스트 생산자의 독선과 오만은 텍스트를 죽입니다. 겸손으로 무장할 때에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성실과 용기와 책임감도 같이 생겨납니다. 사회 진보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무기로 겸손, 겸손, 겸손 이외에 무엇이 또 있을까요?

저는 그게 바로 ‘송건호 바이러스’의 정체라고 믿습니다. 저는 ‘송건호 겸손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퍼지길 바랍니다. 앞으로 그 일을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의 표시로 감히 이 상을 받습니다만, 두려운 마음은 여전히 어쩌질 못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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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서 밥 먹다가 누리가 한 소리 한다.
엄마가 밥 먹다가 보리차물을 몇 잔 마시는 것을 보다가 하는 소리다.
"아빠. 엄마가 물 자꾸 먹어. 오줌 싸게."
"하하."

한 마디씩 하는 말이 촌철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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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 뜨자 마자 누리가 자고 있는 엄마를 두드리며 하는 말이다.
"엄마. 엄마아아. 뒤에 돌아바. 뒤에 돌아바."
"뭐 할라고 뒤에 돌아봐? 엄마 찌찌 먹을라고?"
말없이 고개만 끄덕끄덕한다.  자기 목소리로 긍정하긴 싫단 말이지. 그래도 상황을 부정하진 않는다. 정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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