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형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9
이기형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 전에 <프레시안>에 실리는 김지하의 회고록 '모로누운 돌부처'을 읽는 것은 그 당시 생활의 재미 중 하나였다. 거기에는 秘史라면 비사라고 할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70년대 민주화운동의 입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김지하이니까 그 운동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참 많이 나왔다. 특히 60-70년대의 박정희 반대 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그룹으로 나오는 것이 이른바 원주캠프이다. 원주의 장일순과 지학순주교를 중심으로 하여 옛날 여운형의 근로인민당 계열 운동가들과 카톨릭의 새로운 운동세력이 결합하여 민주화운동의 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소상히 소개되어 있다. 특히 김지하는 장일순이라는 사람을 정신적, 정치적 지도자로 여기고 있는 대목이 여러 번 나온다.

나는 두 개의 의문이 들었다. 과연 장일순이라는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었고, 여운형이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이었느냐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근로인민당과 여운형이 어떤 사람이냐는 의문이  먼저 나왔다. 과연 그들은 어떤 경향을 지닌 운동세력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노태우 정권 시기에 대학을 다닌 사람인지라 당시의 현대사연구경향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만주의 항일무장투쟁이나 해방 후의 정치사와 대중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그토록 큰 힘을 가진 세력이었던 좌파와 노동운동세력이 왜 저토록 철저히 소멸되었는가 하는 것이 참 의문이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이니 김남식의 <남로당연구> , 한길사의 <해방전후사의 인식>시리즈는 우리 세대들 모두에게 중요한 토론자료였다.  주위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김일성 아니면 박헌영 하는 식으로 경향을 대별하는 경우가 많았다. 참 쉽지 않은 답이었다. 그 즈음에 나온 것이 강준식의 <적과 동지>라는 일곱권짜리 정치소설이었다. 특이하게도 그 소설은 여운형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박헌영이 상당히 부정적인 정치지도자로 묘사되어 있었다.  <여운형 평전>을 읽고 나니 그 책 생각이 나서 한번 보려고 했더니 절판이었다. 여하튼 당시 우리에게 해방전후사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현미경 같은 것이었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현미경은 다 달랐다.  졸업할 무렵 동구권사회주의가 몰락하고, 92년 대선의 완전한 패배가 있었다.  썰물때의 갯벌 같은 광경들이 보였다. 그 때의 토론과 고민들은 오래 남았다. 과연 우리 민족이 그 불구덩이를 지나지 않고 평화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에 관심을 두다가 보니 몽양이라는 사람의 '좌우합작'이라는 방법과 정치적 처신등이 늘 머리 속에 화두처럼 남게되었다.   

몽양 여운형에 대하여는 대강은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는 모르고 있었다. 처음 몽양을 접한 것은 대학1학년 때 처음 본 정경모선생의 <찢겨진 산하>인가 하는 책이었다. 가상의 공간에서 김구, 여운형, 장준하 선생이 만나서 민족의 현실과 미래에 대하여 대담하는 책이었는데, 내용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죽은 자들의 대담이라는 형식과 당시로서는 생소한 사람들의 이야기인지라 기억 속에 남았다. 대중적으로도 김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여운형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여운형은 사실상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잊혀진 정치가인 셈이다. 이승만, 김구, 박헌영, 김일성 같은 사람은 잘 알지만 여운형은 잘 모르는 편이다. 박헌영이나 김일성 같은 사람은 우리 형편상 언급하기조차 어려운 편이다. 이승만은 명옥상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세운 동시에 기본부터 혼란의 도가니로 만든 사람이다보니 기억하기가 용이할 것이다.  김구는 임시정부 주석이있고,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 때문에 요즘 시대가 기억하도록 우리에게 추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몽양은 그 정치적인 무게가 이들에 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참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  나는 공개적으로 김구를 찬양하는 정치가는 많이 보았지만 몽양을 들먹이는 정치가는 보지 못했다. 자손들이 이북에서 고위직을 지내고 있기 때문이 그 이유일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몽양은 경기도 지방에서 태어났으면서 당파로 치자면 소론당파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문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편에 속하는 양반이었던 셈이다. 성년이 되기까지 몽양이 보인 행동들을 보면 본시 대범하고 진보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개화에 대한 신념을 가진 이후로 스스로 단발을 하고, 자기네 집의 종들을 해방시키는 과단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후 몽양의 사상적 궤적에는 기독교(당시에는 참으로 진보적이요, 민족적인 성격을 지닌 분파였다.)와 맑스주의가 포함된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사상에도 얽매이지 않는 현실주의자다운 면모가 있었다. 인간을 위한 사상이지 사상을 위한 인간이 아니라는 신념같은 것이 엿보인다. 몽먕을 굳이 사상적으로 분류하자면 중도좌파, 혹은 사회민주주의자 정도 되겠다. 국제적인 연대와 활동의 폭도 대단해서 직접 레닌과 대면한 우리나라의 운동가는 몽양이 몇 손가락에 드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중국혁명쪽에서는 손문과 모택동, 장개석을 직접 만나서 중국과 조선혁명의 긴밀한 연관을 강조하기도 했다.

8.15 해방 이후에 보건대 몽양만큼 당시의 국제정세를 잘 꿰뚫어보고 우리민족이 살아갈 길을 잘 인식한 지도자도 드물었다. 몽양은 미소냉전으로 인하여 우리 민족이 불행하게 될 가능성을 내다보고 남북의 좌우정치세력이 합심하여 국제정세를 주체적으로 이용해서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만드는데 불철주야 노력한 사람이었다. 이것은 좌우합작운동이라는 방식으로 드러났지만 결국 극우세력의 테러에 의해 희생된다. 몽양이라는 중도세력의 거두가 사라지자 좌우합작운동은 급속히 그 힘을 잃게 되고, 국제적으로도 미소는 한반도에서 냉전적인 대립을 노골화한다. 결국 한반도에 민주적인 임시정부를 수립하려고 계획했던 미소공동위원회는 결렬되고, 한반도문제는 유엔으로 이관된다. 1948년 남과 북에 각각 다른 분단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전쟁은 그 씨앗을 뿌리게 된다. 사실상 1948년부터 한반도는 내전상태로 돌입한다는 것이 현대사연구자들의 결론이다. 백범은 뒤늦게 그 위험을 깨닫고 남북협상에 나서지만 그 역시 친일반민족세력에 뿌리를 둔 극우세력에게 목숨을 잃고 만다. 돌이켜볼수록 통탄스러운 일이다. 이 겨레는 몽양, 백범 같은 민족지도자를 그 제단 위에 바친 댓가로 친일민족반역자들과 이승만 같은 독재자들의 배를 불리는 일만 했던 셈이다. 그 댓가로 우리 민족은 이 땅위에서 처참한 전쟁과 50년이 넘는 동안의 군사적 대립을 맛보아야 했으니 참 역사란 냉정한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몽양이라는 정치가의 현대적인 면모에 주목했다. 몽양이야말로 타고난 민주주의자였다. 이 시대에 몽양 같은 사람이 태어난다고 해도 전혀 옛날 인물 같은 느낌이 나지 않을 사람이 몽양이다. 그만킄 몽양은 당대를 뛰어넘는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사람이 멋있었으면 따르는 사람들이 몽양을 '사랑했다'는 비정치적인 용어까지 썼겠는가. '몽양은 영원한 청춘'이며 '싱싱하고''너무 착한'사람이었다는 표현도 쓴다. 몽양은 지나가듯 만난 사람에게도 참 좋고 든든한 인상을 남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민주노동당이라는 정치세력이 대중의 마음을 얻고 집권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몽양 같은 우리 정치사의 인물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상 민노당은 남조선노동당, 진보당, 근로인민당 같은 50년 전의 대중적 좌파정당들의 맥을 잇고 있는 셈이니 어떤 맥락을 이어야 미래에 성공하는 정당이 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쓴 이기형 선생은 몽양의 열렬한 추종자이면서 시인이다. 그렇다보니 좀 과장한 면이 없지는 않다. 이 책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사실을 왜곡하지는 않았다. 냉철한 면이 좀 부족할 뿐이다. 430쪽 가까우니 좀 두꺼운 책인데, 나는 참 잘 읽었다. 몽양에 대한 전기가 몇 개 없는 현실에서 우선 몽양을 아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몽양의 딸인 여연구가 쓴 <나의 아버지 몽양>도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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