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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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번도 人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다. 늘 國民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되었다. 여기에는 개인, 혹은 사람으로 취급되기보다는 국가의 신민으로 취급되어온 우리들의 역사가 투영되어 있다. 물론 '인민'이라는 말이 잘 안 쓰인 이유에는 북녘의 공산주의자들이 그 말을 즐겨쓴다는 탓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 터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지도이념이 '국가주의' 혹은 '우익 전체주의'였기 때문에 그러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이유가 아닐까.

우리는 제도교육을 받아온 수십년,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아온 수십년 동안 끊임없이 국가우선의 이데올로기에 세뇌되어왔다. 그 이데올로기에는 개인의 행복이라는 생각은 중요하게 간주되지 않았다. 국가가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국가를 위해서 봉사해야만 하는 체제를 쉴새없이 구축해온 것이 우리의 현대사가 아니었나. 지금도 국가우선의 체제라는 성격은 변함이 없다. 남북한 양쪽에 버티고 선 두개의 제도는 이제 '국가를 위한 국가'라는 이념을 기리는 기념물이자 화석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대통령을 가지게 된 남쪽은 체제의 성격이 조금씩 변해왔지만, 북쪽은 여전히 경직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이와같이 화석이 된 국가인 남북한의 국가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힘이 있다. 참으로 예리한 분석의 도구라고 할까? 글쓴이는 쉽고 재미있게, 때로는 통절하게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우리를 지적인 편력으로 이끈다. 대한민국의 진짜 실체를 드러내는 사건들, 이야깃거리들을 가지고 숨겨진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있다. 그것들은 분노 이전에 슬픔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우리 민족은 참 험한 길을 힘들게도 지나왔구나 하는 애잔함 같은 것 말이다. 이 책에 실린 26편의 이야기들 모두가 시사주간지인 <한겨레21>에 매주 실렸던 것이고, 그 주제 역시 연재 당시의 첨예한 사회적 쟁점들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장님코끼리 만지듯 하다가 우리는 어느새 코끼리라는 존재의 실체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전부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대한민국의 정체를 말할 때 이야기되는 것들 여섯 개가 있다. 유산된 민주주의 혁명, 공화제, 임시정부 계승론, 태극기 탄생의 배경, 단군과 단일민족 신화의 허상, 김두한의 행적들이 논의되고 있다. 2부에서는 친일파와 고문경찰, 군사독재, 6.25전후의 민간인 학살, 일제의 만주국이 대한민국에 남긴 유산들이 논의되고 있다. 3부에서는 보수주의, 좌우대립, 사회주의, 연좌제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4부에서는 미국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주로 다루어진다. 맥아더장군, 정전협정 문제, SOFA협정, 광화문 촛불시위들이 다루어진다. 5부에서는 병영국가 대한민국의 이면인 징병제, 병역기피의 사회사가 다루어진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규정하는 말로 적절한 것이 '이식근대화'와 '압축근대화'이다. 일본과 미국이라는 두 강대국의 문화와 경제건설 경험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 근대 자본주의 경제 건설이다. 또한 급속한 시간의 압축을 통해서 이룩한 도시화, 공업화는 대한민국사회를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회로 만들었다. 도시화 비율이 1960년 28%에서 1995년 78.5%로 진행된 것만 해도 유럽이 150~200년 걸려서 할 것을 30~40년 만에 해치운 놀라운 경험이다. 정작 우리는 그것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시인 김진경은 <30년에 300년을 산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신일 수 있을까>라고 되물었던 적이 있다. 이와 같은 급속한 자본주의적 근대화는 이른바 '산업혁명'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나 경제의 급속한 변화는 사회구성원의 급속한 계급변동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그것은 곧 정치지형의 새로운 변화를 추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같은 정치의 변화를 겪지 못했다. 이른바 '민주주의혁명'을 우리는 겪어내지 못했다. 그 대신 숱한 '항쟁'들을 겪었다. 4월항쟁(1960년), 5월항쟁(1980년), 6월항쟁(1987년). 이 항쟁들을 통해서나마 우리 역사는 한걸음씩 전진해왔다. 그러나 혁명적 변화를 겪지 못하다보니 낡은 세력들을 청산하지 못하고 아직도 그들을 우리사회의 돈과 권력을 쥐고 흔드는 세력으로 용인해주고 있다. 4.15총선을 지난 이제서야 우리역사는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길로 접어든 셈이다.

대한민국의 근저를 구축한 것은 두가지 세력이다. 친일파와 미국. 이 둘은 강력한 결합으로 한반도 남쪽에 강력한 친미반공기지를 건설했다. 여기에는 1945년 해방 이후의 격렬한 좌우대립, 1950-53년의 한국전쟁, 그리고 남한에서 좌파정치세력의 완전한 제거(한홍구 교수에 의하면 멸균실 수준의 반공),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100만명에 이르는), 강력한 군대에 근거한 병영국가의 건설, 극우반동적 정치세력의 활개들이 겹쳐진다. 용서할 수 없는 반민족세력이있던 친일파들이 친미우파적 정치세력으로 복권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1946년의 신탁통치논쟁이었다. 이 논쟁, 혹은 대립으로 인해서 친일세력들은 정치적 시민권을 회복했다. 여기에는 친일경찰과 만주국군대 출신들을 중용한 미국정의 행위도 한 몫을 했다. 이승만을 정점으로 하는 친미우파세력들은 여기서 더 내달려 남한단독정부수립이라는 도박을 내걸어 승리했다. 1948년에 남북 양쪽에 건설된 국가들은 공히 중간파들이 배제된 분열주의 정권들이었다. 1950년에 일어난 전쟁은 그 싹을 이미 1948년에 배태하고 있었던 셈이다. 내전인 동시에 체제간 이데올로기전쟁일 수 밖에 없었던 이 전쟁은 결과적으로 남북한의 인민들을 '후라이팬을 피하고 보니 불구덩이'라는 말이 들어맞을 만큼 일제시대보다 더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또한 전쟁 중에 벌어진 1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학살'은 인민을 정치의 주인이 아닌 정치의 노예, 혹은 정치의 도망자로 만들었다. 이후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된 정치가 복원된 것은 그 시기의 기억을 지니지 않은 3세대에게서 가능한 일이었다.

한홍구 교수의 대단한 입심은 그의 해박한 역시지식과 주체적인 역사해석 덕분에 더욱 힘이 커졌다. 요소요소를 건드리며 진실을 드러내는 그의 능력에 새삼 경탄한다.  살아있는 역사, 현재를 해석하는 피와 살이 되는 역사, 미래를 위해 버려야할 요소를 깨닫게 해주는 역사를 그는 보여주었다.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비판의 무기가 될 것이고, 과거를 미화하는데 몰두하는 이들에게는 자기 등을 내려치는 죽비같은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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