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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
셰리 터클 엮음, 정나리아.이은경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하버드, 코넬, MIT 등의 전 세계 석학 34인이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사물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정말 별것 아닌 것 같고 그다지 값비싼 것이 아닐지라도 그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그의 인생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참 개인적이고 특별한 물건들이 많았다.  그 물건들을 소개하자면 첼로, 자료보관소, 매듭, 별, 키보드, 불사조 슈퍼히어로, 폴라로이드 SX-70, 남은 사진들, 할머니의 밀대, 다락방의 그림, 여행가방, 발레 슈즈, 혈당측정기, 노란 우비, 수첩, 노트북, 우울증 치료제, 멜버른 열차, 1964 포드 팰콘, 신디사이저, 토끼인형 머레이, 월드북 백과사전, 실버 브로치, 라디오, 팔찌, 도끼, 딧 다 조우(타박상 치료제), 진공청소기, 중국 수석, 사과, 미라, 지오이드, 푸코의 진자, 점균.  이렇게 34가지다.  

  나는 내 인생에 있어 어떤 의미 있는 사물을 가지고 있을까?  뭐 결혼반지나 이런 것처럼 누구에게나 소중할 물건들 말고 내게만 특별하고 소중할 물건은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났다.  파란 사각 라디오다.  크기는 A4 정도 된 것 같다.  예전 그 라디오는 언니와 내가 잠들 때면 항상 켜두었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청취하거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가 하나 달려 있었는데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재생해놓고 잠들곤 했다.  어느 날인가 그 라디오는 간혹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도 했다.  친구들의 조그맣고 반짝이는 카세트 플레이어가 갖고 싶었고 엄마에게 새것을 사달라고 졸랐다.  엄마도 예전의 그 라디오가 많이 낡았다고 생각했는지 새것을 사주셨다.  새 라디오는 너무나 멋졌고 소리도 잘 나왔다.  그 날이었다.  우리의 그 둔하게 생긴 파란 라디오는 영영 소리를 내지 않았다.  언니와 나는 새 라디오가 생기자마자 전혀 소리를 내지 않게 된 그 파란 라디오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왠지 그 라디오는 우리에게 물건 이상인 것만 같았다.  오래 기르던 동물이라도 되는 듯 말이다.  새로운 존재에게 제자리를 내어주고 맥없이 스르륵 잠든 그 라디오.  그 때 나는 모든 물건이 그것을 소유한 주인과 보이지 않는 미묘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부터일까?  나는 작은 전자기기들에게 이름을 붙이게 된 것 같다.  mp3 플레이어나 카메라 등등에 각 각의 애칭을 지어주었다.

  나와 나의 파란 라디오의 이야기는 참 우습다.  이것은 오로지 나에게만 의미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책의 34인에게 소중한 물건 역시 그랬다.  그들 자신에게만 의미 있고 각별한 물건들이었다.  그런데 이 물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나도 진지했고 또 삶에서 그 물건들이 차지하는 자리는 너무나도 컸다.  또한 이 책은 참 철학적이기도 했다.  우리가 소유한 많은 물건들.  그 물건들을 통해 바라보는 삶의 가치와 의미들.  그리고 그들의 진지한 시각들.  별스럽지 않은 물건들에 애착을 갖는다는 것은 그것의 존재를 단조롭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말일게다.  소중한 첫사랑을 간직하며 살듯 각별하거나 의미 있는 물건이 있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닐까?  그만큼 개인적이고 따스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죽어 육신이 흙이 되는 그날, 나는 가급적 지구에 나의 흔적들을 많이 남기고 싶지 않다.  너무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존재하기에 의미가 있을 뿐인 물건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아닐까?  더 이상 보듬어 주고 사용해 줄 손길이 없는 물건들 역시 그들에게는 사망이다.  나를 잃은 물건들을 많이 남기고 싶지 않다.  또한 모두 지구나 우주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물건들이다.  고이고이 모셔두기만 하는 나의 물건들.  내 인형들을 볼 때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 않기를 원한다.  물론 이것이 내 머릿속 생각과는 달리 행동한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많은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 나에게 정말 특별하고 똑같이 나를 특별히 여길 물건 두어 개면 좋겠다.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은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물건들과 진실함을 나눌 수 있으려면 오히려 그 수는 적은 것이 좋지 않을까?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고 필요에 의해 내가 구입하거나 갖게 된 물건들.  그것들을 소유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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