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서 올라오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월드컵경기장의 거대한 위용을 감상할 수 있었다. 마치 한강다리의 철제를 뜯어서 조립해낸 듯한 그 장엄함에 나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씨팔! 감기약으로 뽕을 조제해내다니 우리나라도 드디어 선진국 대열에 낀 건가!"
가는 길에 난지도 하늘공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나 그곳 또한 처음 보는 장소였기에 호기심에 위로 올라가봤다. 그런데 한 백미터쯤 올라가고 있는데 앞에서 공익근무요원이 시간 다 됐다고 확성기로 친절하게 사람들을 협박하고 있었다. 난지도 하늘공원은 저녁 7시면 출입이 통제된다는 소중한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나처럼 우둔하고 정보화사회에도 뒤쳐진 탓에 불운하게 언덕길을 올라오느라 땀띠활성화를 치루고 있던 사람들과 함께 다시금 디제이페스티벌로 가는 도로옆 샛길로 들어서야 했다.
멀찍이서 베이스음이 쿵쿵거리며 울려오고 있었는데 가는 길이 존나게 멀었다. 다리는 아프고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자꾸 이나영이 걱정되서 지하철 타는 시간에 읽으려고 가져갔던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여기서 얘기되는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단언은 내 입장에선 꽤 새삼스러운 것이다. 문학이 망했다는 자조가 플라톤의 요즘 세대 젊은이 한탄론 만큼이나 고전적인 반복을 거듭해왔다는 것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고진의 '태도' 자체가 그런 것이다.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는 근대문학 이후 예를 들어 포스트모던 문학이 있다는 말도 아니고, 또 문학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말도 아닙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문학이 근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았고, 그 때문에 특별한 중요성, 특별한 가치가 있었지만, 그런 것이 이젠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소리 높여 말하고 다닐 사항은 아닙니다. 단적인 사실입니다. 문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이젠 적습니다. 때문에 굳이 내가 말하고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문학이 매우 커다란 의미를 가졌던 시대가 예전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다닐 필요가 있습니다. -P43~44
문학이 완전히 박살났으며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말이 아닌 한에야 이 '적당한' 결론은 뭔가 새로운 것도 아니며 오히려 당연한 것에 가깝다. 사람에 따라선 이 말에 대해 새삼스럽다고 말할 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1980년에 태어난 내가 가지는 이런 당연함에 대해서 낯설게 생각되는 이는 세대차나 환경차에 대해서 숙고해봐도 좋다(고진이 이 책에서 그랬듯 말이다). 나로선 이 문제에 대해서 국내 언론과 문학계가 보여줬던 호들갑이 더 신기한데 그 문제에 대해선 번역자인 조영일씨의 해제가 훌륭한 이해 역할을 해주고 있다. 사실 그 해제가 워낙 잘 쓰여서 이 책에 대한 별다른 리뷰가 불필요할 정도다. 조영일씨는 해제에서 여기서 보여지는 고진의 문제제기가 '태도'의 문제와 연계된다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고진은 사유의 시간적 역행을 치루고 있다. 실존주의, 마르크스에서 칸트로 이어지는 이러한 역행 속에서 그가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낙천주의자로서의 면모다. 그는 단카이세대 이후의 저출산으로 만들어진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책 곳곳에서 고백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왕 이렇게 된 거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난 비관주의자 만큼이나 낙천주의자 또한 좋아한다. 그 두 부류는 종이 한 장으로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훌륭한 가독성과 그런 가독성에도 불구하고 쉬이 넘길 수 없이 상당한 양의 지식이 바탕이 된 풍부한 사유 또한 무척 즐거운 것이었다. 해석학이 동양적 지혜의 결과인 '역지사지'라는 단순한 한마디로 결정지어질 수 있는 정치적 태도의 확립에만이 아닌 그 사유의 과정에서의 파생되는 사고의 광역화에도 가치를 두고 있음을 기억해보자면(그런 점에서 리쾨르가 보여준 해석학이라는 틀 자체의 전환은 실로 훌륭한 것이었다) 고진의 이 다소 고루한 선언이 담긴 책은 단순히 그렇다고 넘겨버릴 수만은 없는 풍성함을 보여준다.
대강 이 책에 대한 생각을 맺을 즈음에 막 그 장소에 도착해서 왠 일본 힙합밴드가 공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간은 비보이파크라 해서 힙합공연의 난장이었는고로 공연의 정석대로 뒤로 가면서 유명한 친구들(티비앤와이-가리온-다이나믹듀오 등등)의 노선이 짱짱하게 이어졌는데 내 기억에 남는 건 그 유명한 친구들보다는 아직 이름을 알아보지 못한 일본밴드와 우리나라 언더힙합퍼들이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라이브들이 워낙 훌륭해서, 역시 힙합을 해야 여자를 꼬실 수 있겠다는 확신을 내리게 됐다. 나도 내일부턴 루쥬어쉞 달달달 외워서 나이 30에 힙합퍼가 되서 젊은 아가씨들을 꼬셔내고야 말겠습니다, 라고 다짐하던 중에 다듀 신곡 부르고 비보이파크가 끝났다.
오는 동안 걸어오는 길이 무척 고통스러웠던데다 몬도그로소 디제잉 그지 같다는 얘기도 듣고 배도 고프고 예쁜 아가씨들은 많았으나 나랑 연은 없을 터이니 그냥 밤새는 건 포기하고 집에 돌아갈까 하는 생각과 그래도 간만에 아저씨 몸 푸는 데 왔는데 건전지향으로 땀 좀 흘리고 축축해진 빤쓰를 세탁기에 돌리는 기쁨도 맛봐야지 하는 생각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데, 다음 공연을 준비하면서 무대에서 나오는 음악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였다. 그 음악만 나오면 환장을 하는 나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렸다.
오, 주여, 무대 위에선 고쓰로리 코스플레이어들이 피아노 음악에 맞춰서 코스프레쑈를 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아프리카를 켰다. 에이 이거 와이브로라더니 음질이 왜 이 지랄이야. 기술의 발달이 행복을 100% 보장하진 않는다는 작은 진실이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몽구스랑 하우스룰즈, 닥터 모테 좋았음. 프라나는 헤드윅 엽기버전 같은 무대였는데 뒤에서 흐느적거리던 춤꾼 아저씨의 출중한 퍼포먼스가 더 기억에 남고 클라우드는 전자피로감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좀 아니었다. 정작 몬도 그로소 때 [워킹맨] 읽다가 자빠져 자버리고 말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