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문한 월간 [판타스틱]이 도착했습니다. 아직 다는 안 읽어봤고 인터뷰와 기획기사를 좀 훑어봤습니다만, 괜찮다는 느낌입니다. 무엇보다도 같이 들어있던 티셔츠가 사이즈가 딱 맞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려진 디자인도 맘에 들고.



올해는 장르문학의 연대들이 메인스트림으로 치고 오르려고 작정한 것이 눈에 보입니다. 일단 작년에 나온 [파우스트]가 있고,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 라이트노블 팬덤의 보다 강성해진 구축이 있었으며 양판소 전문 출판사 파피루스에선 아예 대놓고 라이트노블이라 이름 붙인 공모전을 개시했습니다. 시드노블 공모전이라 칭한 이 공모전은 예선에만 올라와도 출판시켜준다니까 꼬꼬마 중고딩 및 머리 큰 니트와 프리터들까지도 동요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 그리고 조선일보에서는 1억원을 걸고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부수는' 뉴웨이브 문학상이라 이름 붙인 공모전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역시 [괴물]의 성공이 투자자들의 마음도 움직인 걸까요. 장르물이 대박을 칠 수 있다는 걸 가시적으로 보여준 실질적인 최초의 예였으니까요. 그 덕에 드디어 만화원작 대어중 하나인 [아일랜드]의 영화화도 본격적으로 진행이 시작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게 기술 문제 때문에 지금껏 끌어오다가 [괴물]로 확신이 섰다는군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장르물에 돈을 부어보겠다, 이런 거겠죠.
그러나 과연 이런 흐름이 어떤 분명한 결과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그 무언가 확실한 물건의 출현만이 뒷받침해줄 수 있는 거겠습니다. 영화판에서 [괴물]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문학판에서의 흐름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자면.
[파우스트]나 대원씨아이에서 나오는 카도카와 계열의 라이트노블들이 주로 일본 서브컬쳐의 영향를 받은 2차 소비자로서의 대상자들을 주소비원으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파피루스는 온라인게임 문화에 기반한 기존 양판소 소비층과 일본 서브컬쳐 수혜자들을 동시에 아우르는 소비층을, 그리고 [판타스틱]은 그들보다는 좀 더 고전적이고 전통 지향적인 SF-환상문학 소비층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파우스트]는 그 자체가 일본 잡지의 분점 개념인데다 소개되는 작품들의 방향성이 상당히 매니악하게(그러니까 오타쿠니 NHK니 노벨라이제이션이니 하는 말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층) 잡혀 있고 카도카와 계열의 라이트노블들은 전통적으로 애니->2차 판매고로서의 수익원으로 작용해왔습니다. 파피루스는 그 기반이 양판소에 있는 만큼 그쪽 소비자들을 유지함과 동시에 '한국라이트노블'이란 좀 색칠한 간판으로 새로운 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려 하고 있고. [판타스틱]은 포진한 작가진의 면면과 루이스 캐럴의 [실비와 브루노]를 연재하는 것에서부터 그 갈 길이 예상가능한 바입니다. 물론 유시진과 김태권, 권교정 등의 납득가능한 작가들이 그린 만화로 절충점을 마련하려는 명민함도 보이지만요.
이렇게 써놓고보니 양적으로 다발적인 라이트노블 진영과 [판타스틱]으로 대표되는 고전적인 SF-환상-호러-미스테리 문학 진영의 두 흐름이 보입니다. 물론 이 두 개가 근본적으로 구분된다고는 할 수 없겠고 후자의 영향력 안에서 전자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만 장르 자체의 근본적인 혁신이라기보다는 자기패러디적 지향 안에서 소비자 위주의 편이성과 조어로 태어났다고도 볼 수 있는 라이트노블이란 이름이 저렇게 퍽퍽 쓰이는 걸 보는 건 조금 씁쓸한 마음도 들기도 하는군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의 라이트노블이란 이름은 말그대로 '일본 서브컬쳐의 영향을 받은' '가벼운' 문학이란 의미에서 통용될 것이란 생각도 들게 합니다.
라이트노블 진영의 양적인 부흥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장르문학 연착륙에 당장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성 싶습니다. 일단 우리나라의 라이트노블 개념이 대개 일본 서브컬쳐의 2차 소비처로서 수용되고 있는데다 그 명칭 자체가 일반적으로까지 통용되기 위해선 꽤 지난한 나날과 몇 번의 괜찮은 폭발물이 필요할 것 같고 이 모든 요소들이 라이트노블의 수용자층을 기존 소비자의 대물림에서 머무르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는 [드래곤 라자]의 대성공 이후 점점 하향평준화의 길을 걸어온 국내 판타지소설들의 모델도 참고 가능하리라 봅니다. 물론 문학 자체가 소수계층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충성도 높은 팬들을 가지고 있다는 건 한 번 장기전으로 가볼만 하다는 가능성도 됩니다만. 다만 앞서 얘기한 '한국형판타지소설'들의 예처럼 그쪽 코드로만 고착되버리진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그런 점에서 수입개념인 라이트노블의 이슈화는 한계에 다다른 한국형판타지소설의 궁여지책일 수도 있으며 따라서 양날의 검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일련의 붐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은 반가운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한국문학의 상업적 위기감에서 힘을 얻고 있다는 점에선 왜 이제야 이래야 하는 건지, 늦은 감도 있지만 언제는 뭐 빨랐던 적이 있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