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나이가 드니 여유가 없어져선지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무척이나 버겁게 느껴진다. 본격적인 글쓰기, 소설을 만들어낸다는 영역으로 가면 더 그렇다.

장난 삼아서라도, 혹은 수많은 위대한 투잡 작가들의 전례를 비춰봐서라도 글을 쓴다는 행위의 여유로움을 증명해보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내 버릇이었지만, 이제는 나 자신이 읽거나 느낀 걸 옮기는 행위부터가 어렵다, 혹은 그것에만 온전히 올인해야 한다는 강박이 들고 있으니, 이거 남의 말에 태클 걸며 충고할 계제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전업작가라는 직책은 단순히 폼새나 가오라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전념해야 마땅한 것으로 되어가고 있다. 정신 팔기엔 여력이 안된다. 투잡하면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위대하지도 않을테고 말이지.

한마디로 삶에 절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관계 유지 하느라 낭비되는 신경세포 하며 별 되도 않는 오해 풀어준답시고 스스로를 깊숙하게 수그려야 하는 것. 직장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다 그런 것이니 이미 오래 전에 자잘한 잡일들을 통해서 겪을 대로 겪어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건만 어째 나이가 드니 그 익숙함을 감당하기가 싫어지는 마음은 어떤 연유로 작동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싶었는데.... 문득 떠오른 결론이.

예전엔 그런 인간상들을 보면 꽤 흥미롭게도 여겼고 재밌게 관찰하는 기분으로 대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썩 그런 여유가 없다. 이젠 그 패턴들이 지겹다고나 할까. 재미가 없다. 반복되는 편향성에의 관조와 썩 유쾌하지 않은 의식의 배신 행위를 유지하는 일에는 적정 수위라는 것이 있다. 생활이 지긋지긋해지는 순간은 관대함과 관련된 뇌용량의 한계치에서부터 찾아오는 것이다. 이미 흥미가 사라진 시점에서 내 행동은 어떻게든 수용 부피를 늘리려 바닥을 캐려고 안간힘을 다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휴 씨발 확실히 그라비티 오브 러브를 존나게 느끼게 되네요. 이니그마마저도 사랑스럽네 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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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 끝내주는 인도풍 싸이키 포크송의 향연. 앨범 런닝 타임은 고작 30분이지만 천당맛 존나 제대로 보여줌. 이 존나 죽이는 노르웨이 유닛은 1970년에 필립스 레이블에서 나온 요 앨범만 달랑 하나 내놓고 사라져버렸는데, 엘피나 짝퉁으로만 떠돌다 1996년에 12페이지 부클릿 라이너노트 붙여서 새로 발매가 됐음(http://www.anthologyrecordings.com/release.asp?album=jrW2h2Ffg4S). 보컬과 기타에 니나 요한슨, 시타+기타+보컬 룬 웨일, 뱀부플룻+타블라+보컬을 맡은 사트냄 싱을 중심으로 오르간, 베이스, 드럼 주자가 하나씩 더 붙어서 이 존나 걸작을 만들어냈다. 딱히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건 아니고, 뒤의 세 사람은 이름을 쓸려고 해도 존나 노르웨이 발음을 모르겠으니 포기했음. 시타 갖고 노는 사람 한 명에다 아예 뱀부플룻과 타블라를 다루는 순혈의 인도인이 핵심멤버에 당당히 들어가 있는 걸 봐서도 알겠지만 전체적으로 존나 찐하게 인도의 향취가 어른거리고 있다. 하여간 존나 좋은, 존나 뿅 가는 앨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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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흐른다. 바람은 지나치게 쎄게 불고 있었다. 오랜만에 들이마시는 산의 공기는 찼다.

발끝에서 돌이 굴러다닌다. 지친 발걸음. 사람들의 발길로 익어버린 길임에도 이곳저곳 사람의 손에 닿지 않은 도토리가 돌과 함께 뒹굴거리며 바스라지고 있었다. 단풍은 아직 멀었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산길은 아직 살아있는 녹색과 햇빛, 물소리로 가득했다.

머리가 아팠다.

두통과는 썩 익숙치 않은 사이였지만. 누가 그런 것에 익숙할 수 있겠는가. 난 생각한다. 관음증. 관음증.

 

멈춰있다가 다시 걷기 시작하자 찬 공기가 폐를 찌르는 것 같았다. 침묵. 말은 오가지 않는다. 혹은 무의미한 말들만이 가치를 가진다. 끔찍하진 않다. 익숙해져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래 전에 했던 어떤 게임의 내용, 결국 주인공이 마지막에 아무도 살지 않는 세계에 단 하나 홀로 남아서 누가 들을지 안 들을지도 모르는 라디오 방송을 끝없이 전파하는 것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 이야기가 정말로 절절한 것은, 그가 천천히 계획을 세워서 하나씩하나씩 자신의 주변을 정리함으로써 결국은 스스로를 완전하게 고립시킨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도 듣지 않을 이야기를 끝없이 어딘가로 보낸다. 그는 홀로 외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아침을 맞이하고 빛속에서 떤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동한다. 그것이 그의 속죄였기 때문이었다.

 

긴 고속도로. 완전히 새까매진 도로밖 풍경과 속도로 인해 헝클어지는 빛들.

귀가 멍멍해지자 하품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나오는 것은 한숨이었다.

결국 난 또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기다린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점점 모르겠다란 말은 하지 않게 된다. 소모적이니까. 그 말조차 소모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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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 my teares fall from your springs,
Exilde for ever: Let me morne
Where nights black bird hir sad infamy sings,
There let me live forlorne.

 

Downe vaine lights shine you no more,
No nights are dark enough for those
That in dispaire their last fortunes deplore,
Light doth but shame disclose.

 

Never may my woes be relieved,
Since pittie is fled,
And teares, and sighes, and grones
My wearie days of all joyes have deprived.

 

From the highest spire of contentment,
My fortune is throwne,
And feare, and griefe, and paine
For my deserts, are my hopes since hope is gone.

 

Hark you shadowes that in darknesse dwell,
Learn to contemne light,
Happy that in hell
Feele not the worlds despite.

 

나의 눈물이여, 흘러라, 너의 샘으로부터 흘러내려라
영원한 유배, 한밤의 검은새가 자신의 수치스런 이름을 노래하는 곳에서
슬퍼하게 하라, 나를.
그곳에서 고독하게 살게 하라.

 

허망한 빛이여, 더 이상 비추지 말라
절망의 한 가운데서 자신의 마지막 불운을 슬퍼하는 이에겐
아무리 어두운 밤의 어둠도 충분치 않으니,
빛은 다만 부끄러움을 드러낼 뿐이라.

 

나의 슬픔은 결코 가시지 않으리니,
연민하는 자 모두 떠났으므로,
그리고 눈물이, 한숨이, 신음이 지친 나의 나날에서
그 모든 즐거움을 앗아가 버렸으므로.

 

더할 수 없이 높은 행복의 정상에서
나의 운은 내던져지고,
그리고 두려움이, 슬픔이, 고통이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응보일 뿐이니,
희망이 사라져버린 뒤로.

 

귀를 기울여라,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너 그림자
빛을 저주하는 법을 배우라,
지옥에 거주하는 자는 복되나니
그곳에선 세상의 멸시를 더 이상 느낄 수 없기에.

 

 

존 다울랜드의 생애에 대해선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태어난 곳도 런던이란 설과 더블린이란 설이 있으며 1626년에 런던에서 죽었다곤 하나 정확한 날짜나 사항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는 프랑스 주재 영국대사관 소속 음악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덴마크와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탁월한 류트 음악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그의 소망은 영국으로 돌아가 왕의 궁전에서 일하는 것이었으니, 그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은 1612년이었다. 죽기 14년 전이다.

다울랜드의 노래를 녹음한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최근에 나온, 스팅이 녹음한 앨범이지만 아무래도 클래식의 영역인 만큼 성악가들의 다울랜드 앨범이 꽤 된다. 그래서 스팅의 앨범이 나왔을 때, 어떤 평론가는 숙련되지 않은 스팅의 목소리가 다울랜드의 노래에 부족함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얘기도 했지만.... 그러나 다울랜드는 당대의 유행가를 만들던 이였다. 소수의 성악 엘리트가 아닌 대중의 입에서 오가고 바람을 따라 흘러다니며 즐겨 불려지던 노래였던 것이다. 그런 노래에 성악적인 테크닉을 요구하고 기준으로 삼는 것은 천박한 엘리티즘이 아닌가. 그리고 다울랜드의 노래를 부르는 스팅의 거칠고 쇠가 부스러지는 것 같은 목소리는 다울랜드 노래의 적적한 기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데 충분하다.

그의 노래들은 우울한 인상을 주로 띄는데 아마도 그것이 알라딘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54장의 앨범이 쏟아져 나오는, 바로크 이전의 고음악에 대한 관심에 있어서 어떤 명징한 흐름을 담보하게 만든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존 다울랜드의 떠돌이적 삶과 진한 우울에 대한 공감이 현대인을 자극한다는 스팅의 지적은 그래서 옳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다울랜드가 건강한 자기부정이 가능한 아이러니컬한 유머의 작가였다고도 파악하고 있다. 맞는 말일 가능성이 높다. 웃음과 눈물은 동전의 양면이니.

다울랜드의 대표곡이자 가장 유명한 flow my tears(Lachrymae)는 양식적으로 파반느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래서 이 우울한 노래에서 기이한 활기를 느낄 수 있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 마치 삶 속에 든 죽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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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걸려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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