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흐른다. 바람은 지나치게 쎄게 불고 있었다. 오랜만에 들이마시는 산의 공기는 찼다.

발끝에서 돌이 굴러다닌다. 지친 발걸음. 사람들의 발길로 익어버린 길임에도 이곳저곳 사람의 손에 닿지 않은 도토리가 돌과 함께 뒹굴거리며 바스라지고 있었다. 단풍은 아직 멀었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산길은 아직 살아있는 녹색과 햇빛, 물소리로 가득했다.

머리가 아팠다.

두통과는 썩 익숙치 않은 사이였지만. 누가 그런 것에 익숙할 수 있겠는가. 난 생각한다. 관음증. 관음증.

 

멈춰있다가 다시 걷기 시작하자 찬 공기가 폐를 찌르는 것 같았다. 침묵. 말은 오가지 않는다. 혹은 무의미한 말들만이 가치를 가진다. 끔찍하진 않다. 익숙해져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래 전에 했던 어떤 게임의 내용, 결국 주인공이 마지막에 아무도 살지 않는 세계에 단 하나 홀로 남아서 누가 들을지 안 들을지도 모르는 라디오 방송을 끝없이 전파하는 것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 이야기가 정말로 절절한 것은, 그가 천천히 계획을 세워서 하나씩하나씩 자신의 주변을 정리함으로써 결국은 스스로를 완전하게 고립시킨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도 듣지 않을 이야기를 끝없이 어딘가로 보낸다. 그는 홀로 외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아침을 맞이하고 빛속에서 떤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동한다. 그것이 그의 속죄였기 때문이었다.

 

긴 고속도로. 완전히 새까매진 도로밖 풍경과 속도로 인해 헝클어지는 빛들.

귀가 멍멍해지자 하품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나오는 것은 한숨이었다.

결국 난 또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기다린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점점 모르겠다란 말은 하지 않게 된다. 소모적이니까. 그 말조차 소모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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