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빨간 마후라] 사건은 당시의 비디오 복제 문화와 비디오의 기술적 운용에 대한 한 지표였다. 그것은 본격적으로 이슈화되는데 거의 반년 가까이가 걸렸다. 오양 비디오 사건은 국내 인터넷망 전파의 기폭제였다. 백양 비디오 사건은 이슈의 크기와 더불어 크래킹 기술력의 한계치를 시험한 사건이기도 했다. 당시 미국 성인사이트에 걸려있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주일 전에 만든 보안벽이 발정난 우리나라 크래커의 공격에 네시간만에 깨졌고 인터넷 공유정신에 의거한 무차별적인 사생활 파괴가 이뤄졌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먹이로 삼은 섹스 비디오의 이슈화는 각각 이슈메이킹을 담당하는 매체 문화의 어떤 한계치를 시험하는 현상들이었다.
그런데 근간 벌어진 놀이터 막장 사건은, 과거의 사건들에 비해 너무도 조용하게 다뤄지고 있다. 몇몇 언론의 주목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은 거의 묻히듯이 하면서 지나가는 중이다. 그저 조용하게, 그러나 막대한 양의 교환이 공유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졌을 뿐이다. 그것은 그저 다른 야동에 비해 조금 더 신선한 이슈 이상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이제 '그정도로는' 더이상 자극이 안된다.
근 10여년 동안에 일어난 이같은 변화는 감각에 대한 세상의 속도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지표다. 점점 이슈는 소수화, 파편화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감각해져가고 있다. 상상력의 견지는 줄어들고 코드화된 자극이 점점 고정화된다. 테라급 하드디스크도 성에 차지 않을 정도로, 각 개인이 가지게 되는 정보 보관함의 크기 또한 비대해지고 있다. 그 안엔 얻을 수 있는 기술적 수혜를 통한 자극의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리하여 속도라는 지표와 반응성만이 남아가는 세상. 비판이나 공론으로서의 이슈는 되지 않은 채 다른 수많은 야동들보단 약간 특이한 소비 대상으로 기능하는 어떤 개인적인 섹스비디오의 운명. 항상 합리적인 도덕론자들이 과거의 섹스비디오 사건에서 지적한 바는 영상을 찍는 쪽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대상을 유통시키는 이의 공범의식과 더불어 스무스하게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점점 성숙해져서(?) 섹스 촬영과 공공장소에서의 성행위라는 행위 당사자들이 가진 상대적 특이성을 자극적으로 문제 삼지 않는다. 김본좌에게 바쳐진 수많은 헌사에서 이미 예상됐던 바이지만(물론 그 헌사들은 프리미엄급 AV 동영상 보급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얽히고 섥힌 이야기들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졌다). 관음증은 자연스러운 생활이 됐다. 우리는 정말 과부하 상태가 되도록 '보고 보임을 당한다.'
그렇다면 미래의 자극이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과연 충격이란 어떤 식으로 대답이 돌아올 것인가. 이것은 모든 것이 프로그래밍된 세상에서의 욕망이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상상하는 것과 같다.
2. 오타쿠 서사의 축으로서의 에로게임은 동력을 잃었다. 사실상 오타쿠 서사는 전방위적으로 표류중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어디로인가. 보다 적극적이고 편의지향적인 소비대상인 패러디 동영상 문화로의 이입인가. UCC가 어떤 출구가 되리란 건 확실하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로선 동어반복에 가깝다. 그리고 그 시간의 길이에 반비례하여 에너지는 점점 고갈될 것이다.
3. 단단한 서사에의 욕구. 그 흐름은 이세계의 구축, 팩션물의 범람, 기술적 완성도의 고도화라는 지표로 드러나고 있다고 봐도 좋다. 그러나 그와 같은 흐름에 대한 만족스러울 정도의 반작용, 거대한 망치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기실 망치에 대한 열망도, 그 열망 자체로만 소비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