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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거리
아사노 이니오 지음, 이정헌 옮김 / 애니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작품의 무대인 빛의 거리는 특별하게 소개되지 않는다. 또한 딱히 특징적인 면모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곳은 어느 곳에나 있을 법하게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전형적인 신도시, 대기업 자본과 거대 행정계획이 맞물려서 물질적인 모든 것들이 미래를 향해 진행되어가는 와중에 과거의 흔적들이 사라지는 그런 곳이다. 현대인에게 있어 거의 집단무의식적 친근함에 가까운 이같은 풍경이 담보하게 되는 것은 고독과 상실, 그리고 차가운 죽음의 이미지들.
[빛의 거리]는 그런 이미지들을 착실하게 쫓는다. 다수의 실패한 아버지들과 그 숫자만큼 망가진 아이들, 그리고 관조자로 이뤄진 이야기를 장식하는 인물군은 하나같이 빛의 거리에서 거기서 거기일 뿐인 자리를 멤돈다. 그들은 모두 삶에 대해 일찌감치 지치거나 혹은 갈 데까지 가서 지쳐버린 탓에 더없이 외로워하거나 지겨워한다. 그리고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 꿈틀거리는 폭력과 죽음 속에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빛의 거리]는 [고로시야 이치]가 아니다. 폭력의 쾌감을 노골적으로 쫓는 대신 은밀한 폭력의 세계를 서글프게 드러내는 이 이야기들의 배경이 되는 빛의 거리는 그 이야기의 어두움과는 반대로 내내 따스한 햇빛과 맑고 푸른 하늘을 보여준다. 오직 타스쿠만이 유일하게 빛의 거리 바깥으로 나가서 어둠과 차가운 비를 경험한다. 그리고 마치 주박에 걸린 것처럼 그들은 다시금 자신들이 살던 땅으로 돌아온다. 고통스럽고 지겨운 생활이 있는 곳으로.
그렇다면 왜 사는가? [빛의 거리]에서의 삶에 대한 대답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거기엔 아무런 의미도 이유도 없다. 오히려 그런 차원에서 고된 숙고를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붕괴의 시작이 된다. 원래부터 없던 의미를 수복하기 위해 가상의 유의미를 강제로 생성시키는 순간 종국, 즉 죽음이라는 '의미'는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된다. 생활-삶이라는 일련의 작용이 끝나고 있을 원점회귀의 결과가 가상의 의미에 의해 계속 결여되어 있을 무언가로의 복귀라면 그것은 스위치가 되어 소거행위로서의 완전한 파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존재하지도 않을 의미에 의해 종속될 시간에 무엇을 믿으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생각하라는 조언을 한다. 그것은 연인간의 사랑일 수도 있고 동지애일 수도 있으며 가족적인 애정일 수도 있다. 너무 긍정적이고 뻔하지 않냐고? 걱정할 것 없이, 그 모든 것은 흘러간다. 오래된 것이 지워지면 새로운 자리를 차지할 무언가가 나타난다. 그 연속성과 유지 자체가 삶인 것이다.
삶의 문제에 대한 아사노 이니오의 보다 훌륭한 대답은 우리나라엔 먼저 소개됐지만 연표로 보면 후속작인 [소라닌]에서 내려진다. [빛의 거리]가 간혹 소재의 무거움을 치뤄내기에는 다소 가벼이 여겨질 정도로 도식적이고 거친 전개를 보여주는 것은 그 성숙도와 진중함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