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동북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받았던 교지에 실려있던 만화에는 한 남자가 푸줏간에서나 쓰일법한 칼을 들고 뛰어다니는 장면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말하자면 자신을 쫓고 있었던 셈이었는데 그것이 나아가서는 입시와 미래라는 강박관념에 대한 알레고리였던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작품은 나에게 아마추어리즘의 한 상징으로 남아있다. 거친 펜선과 자유분방한 연출, 자아분열이라는 청춘의 고전적인 소재의 차용이라는 점이 나에게 있어 그런 인상을 남긴 모양이었다.
고등학교에서의 3년은 심심하고 나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나는 스크린 영어반이라는, 제목만 들어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서클에 별 생각없이, 일단 서클활동은 해야했던데다 무려 세개씩이나 있었던 펜글씨부보다는 재밌을 것 같아서 가입하여 엄청나게 탁월한 음향시설과 칙칙하고 냉기가 도는 지하 교실 정중앙에 초라하게 비치된 18인치 텔레비전의 부조화가 돋보이던 공간에서 매주마다 영화를 봤으면.... 좋았겠지만 1년동안 매주마다 그 지하실로 내려갔는데도 불구하고 기억나는 건 트위스터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축제란 게 다가오니 그래도 서클이랍시고 축제 준비를 하기로 했는데, 그 컨셉이 웃기게도 금연에 대한 캠페인이었다. 막상 당일날이 되자 검은 천으로 가려져 어두침침한 교실 한가운데에선 SBS에 직접 가서 비디오 테이프를 사왔던 '그것이 알고 싶다 : 흡연의 폐해' 대신 서태지와 아이들의 릴레이 비디오 퍼레이드가 펼쳐졌지만. 서태지와 아이들과 금연 캠페인이 무슨 관련인지 논리적으론 설명하기 힘들었지만 그렇게 해야 여자애들이 많이 꼬인다는 것만큼은 본능적으로 모두들 알고 있었다. 서클 회원의 반수 정도가 담배를 피고 있었던 걸 감안하자면 썩 설득력은 없었지만 모든 아이들은 자신의 맡은 바 여자아이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게끔 열과 성을 다 해서 흡연의 해로움을 설파했다. 그리고 고백하건데, 난 축제가 뭐하는 건지도 몰랐고 서클 활동이란 것의 필요성과 유희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순정만화를 잘 안 봐서 몰랐던 듯 싶다.
3년 동안 있었던 사건 중 가장 큰 사건은 빨간마후라 사건이었고 그 사건은 감탄보다는 욕망으로 먼저 다가왔다. 어느 날엔가는 아직 뜨기 전이었던 실업반 선배 이기찬을 운동장에서 볼 수 있었다. 그는 몸집이 작았고 까만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능이 닥쳐오면서 나는 그제껏 시간을 보내왔던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시간까지 쪼개가며 만화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뭐, 그렇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