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년 전의 이야기, 이제야 제대로 보다. 별로 변한 것 같진 않지만.

2. 새벽에 대구를 내려가기 위해 서울역에 갔었던 적이 있었다. 그 전날엔 노숙자 한명이 승천했는데 진압하는 쪽의 과실이라는 얘기가 있어서 공익요원들과 노숙자들이 그의 시신을 두고 한참 대치하고 서울역 곳곳에서 노숙자들의 도발들이 있던 사건이 있었다. 노숙자들 대표가 흉흉한 분위기로 텔레비전에서 인터뷰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화장실은 소주 냄새와 지린내로 가득했다. 소변기 밑에 노숙자들이 술에 취해 젖은 폐옷다발 마냥 한다발씩 서로 엉켜서 자고 있었다. 아직 봄이라 냉기가 남아있던 아침이었고 화장실은 제법 따뜻했기 때문이다. 내가 볼일을 보고 나오자 공익요원들이 그들을 두들기려고 들어가고 있었다. 대합실에선 의도적으로 텔레비전 화면 옆으로 배치된 의자(텔레비전을 보면서 잠까지 자게 해주는 쾌적한 환경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철도공사의 노력)에 앉아 졸고 있던 노숙자들과 공익요원의 실랑이가 가끔씩 거칠게 벌어지곤 했다.

3. 영화에서 폭주족들이 깽판치는 걸 보면서 [폭음열도]가 생각나버려서 웃을 수 있었다. 세상에, 정말 촌스럽군.

4. 무삭제본이라서 그런 건지 극중 '새'라는 여자아이의 오랄섹스씬이 무척 자세하고 노골적으로 묘사되서 흥미로웠다. 시작할 때 일본 자막이 한 번 떳던 걸 생각해보자면 내가 본 것은 일본수출용인지도 모르겠다.

5. 그에 반해 돌림빵 장면은, 이게 무슨 쌍팔년도 에로영화도 아니고 이불 가리기 스킬까지.... 새와 그들이 이렇게 표현적으로 차별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편집에서의 생존 가능성을 위한 차별이었을려나.

6. 핸드폰 시대의 일탈 소녀들은 선배들과 친구들과 어울리는 조직적 매춘의 세계로 들어가서 카트라이더를 하면서 조건만남 쪽지를 저장한다. 가끔씩 그녀들은 몰래 감춰진 디지털 카메라로 찍힌 자가 포르노영화들의 주인공들이 된 자신을 남자친구와 함께 뒤지던 당나귀에서 AVI파일로 확인하게 된다. 영화는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명제의 재확인. 

 

그러나 장선우의 진정한 '나쁜영화'는 역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다. [나쁜영화]가 그 노골적인 의미 유희의 꼼수로 미묘한 아이러니의 미덕(혹은 뻔뻔함)을 풀어냈다고 한다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영화적으론 소재들이 선천적으로 가지는 10대의 코드조차도 완벽하게 무시해버리는 놀라울 정도의 강압성과 뻔뻔함으로, 영화 외적으론 100억이라는 돈을 완전하게 깔아뭉개버림으로써 전무후무한 '나쁜영화'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 무모함이 [나쁜영화]가 래리 클락의 [키드]의 방법론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매트릭스]로 대표되는 헐리웃 블럭버스터의 방법론을 끌어온 독창성 없는 출발점에서 나온 장선우식 필터의 결과물이란 걸 감안하자면 한층 더 '나쁜영화'의 경지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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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레이지를 아는가. 야구+게이+열혈+풍수라는 소재가 뒤엉킨 하이브리드 만화 [아가페이즈]와 원나잇스탠드 시대의 로맨스 드라마 [엔지]로 내 대갈통 속을 두번 직직 그어줬던 작가. 시대착오적이라면 시대착오적이랄 수 있는 존 레넌의 열혈팬인 이 작가가 또하나의 물건을 내놓았다.

전작들처럼 장르 조합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는 [제브라맨]은 가면라이더와 같은 특촬물에 연쇄살인, 그리고 풍속극적인 소재들이 뒤엉켜있다. 5년도 안 남은 아주 근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이시가와 신이치는 42살의 초등학교 교사로 하루하루 지지부진하게 살아간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붕괴 직전인 그를 버티게 해주고 있는 것은 센스 한 번 죽여주는 제브라맨이라는 고리짝적 특촬물. 골방에 틀어박혀 세월네월 보내는 그의 이야기와 대치되게 그가 사는 동네에선 연일 연쇄적인 살인들이 벌어지고 있고.... 자신이 훌륭하게 도망다니고 있다고 착각하던 신이치는 마침내 잔인한 현실과 조우하게 된다. 그것도 그가 자신의 환상 속에 절어있는 순간에.

[제트맨]의 방법론이 비극적인 히어로물을 보다 극화시킨 결과라고 한다면 [제브라맨]의 방법론은 히어로물의 해체다. 마치 [이그젝션]이 거대로봇물에 대한 냉정한 분석의 결과물이었던 것처럼, 작가의 포커스는 히어로가 아니라 히어로가 될 수밖에 없는 인물과 그 주변에 맞춰진다. 여기서 등장하는 제브라맨이라는 히어로도 꽤 깨는데, 일반적인 히어로들처럼 특수능력이나 그 비스무리한 게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육체만으로 덤벼서 맞고 터지고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히어로라는 것. 과연 이게 의미하는 것이 뭘까.

현실은 끊임없이 사람을 구속한다. 그 안에서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꿈을 잃고 점점 하나의 부품이 되버린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나는 현실과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웅얼거리면서 자기최면을 건다. 하지만 그것이 뭔가 잘못된 거란 걸, 사람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어느 때든 간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간에. 그래서 사람들은 타협점을 찾는다. 이 만화의 주인공인 신이치가 제브라맨의 세계에서 사는 것처럼, 어떤 이는 여자를, 어떤 이는 게임을, 어떤 이는 일을.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제자리에 정체되는 것으로 현실과의 타협을 이뤄내는 것들이니까, 결국 사람들은 제자리 걸음.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그러니까 이 만화에서 제브라맨이란 환상 속에 들어간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가혹한 현실과 마주치게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다. 하지만 존나게 두들겨맞고 아파하면서도 결국은 흑백을 가려내는 제브라맨이 된다는 것은 행동에의 의지가 가지는 중요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바꾸려해봤자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중얼대고 있는 것보단 나은 선택. 이것은 또한 야마다 레이지의 만화 전반을 꿰뚫는 키워드기도 하다.

[가면라이더]의 크리에이터 자신마저도 회의하게 만든 특촬물이라는 장르가 이후 일본사회의 젊은이들에게 미쳤던 영향력에 대한 시선을 보다 애정어린 위치에서 보여주면서 현재-미래에 걸치는 일본사회에 대한 분명한 비판을 가하는 이 작품이 어떻게 나아갈진 좀 더 주목해봐야겠지만 볼만한 물건이 하나 나왔다는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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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usic.bugs.co.kr/Info/album.asp?cat=Base&menu=m&Album=21905

샤를리즈 테론.... 이 계속 떠오른다. 50년대 미국 멜로영화풍의 병적인 기운을 담은 포티쉐드 스타일 트립합의 흥미로운 확대재생산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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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네것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없게 읽었던 소설. 인간 퇴화의 과정에 대한 점층적 관찰기. 뒤의 해설지에서 보네것팬덤에서도 가장 크게 호불호가 나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거니와 난 당연히 안 좋아하는 쪽. 실상 이 소설을 기점으로 커트 보네것에게 이렇게 묻고 싶어졌다. '그래서 어쩌라고?'

커트 보네것 자신이 인정한 최고품인만큼, 아마 앞으로의 그의 소설에 대한 하나의 비평적 이정표로 남을 [제5도살장]은 어쩌면 40줄 들어서서 겨우 문단과 대중의 지지를 얻게된 보네것 자신의 소설형태가 비로소 완성을 맺은 순간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아마도 이후의 그의 작품세계의 원형.

1985년에 발표된 [갈라파고스]에서 매너리즘의 무책임함을 느껴야했던 나는 보네것 소설의 희망을 엉뚱하게도 1963년에 발표한 [고양이요람]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의 장기인 인류파멸극의 모범적이고 세련된 풍경을 보여주는 이 소설에서 그가 바라는 대안적 세계의 일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설 속 보코논교가 보여주는 가치가 없기 때문에 되려 가치있는 종교라는 역설이 전해주는 교훈은 어쩌면 그의 소설 전체가 보여주는 장엄하면서도 웃기는 허무주의의 세계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변론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여기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쾌적한 안락사를 부여받은 인물들을 통해서 인간이란 존재 자체보다는 인간'성'이 가질 수도 있을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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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5-06-23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라파고스 너무 박대하지 말라구요. 마지막이 좋잖아요.
물론, 나도 갈라파고스부터 시작했기때문에 보네것을 안 좋아할 뻔 했지만 말이에요.

hallonin 2005-06-24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성야서부터 시작해서 어떻든, 보네것을 안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흘...
 



http://music.bugs.co.kr/Info/album.asp?cat=Base&menu=m&Album=29012

숲에서, 꿈속에서, 그 모든 익숙하고 포근한 것들 가운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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