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다 레이지를 아는가. 야구+게이+열혈+풍수라는 소재가 뒤엉킨 하이브리드 만화 [아가페이즈]와 원나잇스탠드 시대의 로맨스 드라마 [엔지]로 내 대갈통 속을 두번 직직 그어줬던 작가. 시대착오적이라면 시대착오적이랄 수 있는 존 레넌의 열혈팬인 이 작가가 또하나의 물건을 내놓았다.

전작들처럼 장르 조합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는 [제브라맨]은 가면라이더와 같은 특촬물에 연쇄살인, 그리고 풍속극적인 소재들이 뒤엉켜있다. 5년도 안 남은 아주 근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이시가와 신이치는 42살의 초등학교 교사로 하루하루 지지부진하게 살아간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붕괴 직전인 그를 버티게 해주고 있는 것은 센스 한 번 죽여주는 제브라맨이라는 고리짝적 특촬물. 골방에 틀어박혀 세월네월 보내는 그의 이야기와 대치되게 그가 사는 동네에선 연일 연쇄적인 살인들이 벌어지고 있고.... 자신이 훌륭하게 도망다니고 있다고 착각하던 신이치는 마침내 잔인한 현실과 조우하게 된다. 그것도 그가 자신의 환상 속에 절어있는 순간에.

[제트맨]의 방법론이 비극적인 히어로물을 보다 극화시킨 결과라고 한다면 [제브라맨]의 방법론은 히어로물의 해체다. 마치 [이그젝션]이 거대로봇물에 대한 냉정한 분석의 결과물이었던 것처럼, 작가의 포커스는 히어로가 아니라 히어로가 될 수밖에 없는 인물과 그 주변에 맞춰진다. 여기서 등장하는 제브라맨이라는 히어로도 꽤 깨는데, 일반적인 히어로들처럼 특수능력이나 그 비스무리한 게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육체만으로 덤벼서 맞고 터지고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히어로라는 것. 과연 이게 의미하는 것이 뭘까.

현실은 끊임없이 사람을 구속한다. 그 안에서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꿈을 잃고 점점 하나의 부품이 되버린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나는 현실과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웅얼거리면서 자기최면을 건다. 하지만 그것이 뭔가 잘못된 거란 걸, 사람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어느 때든 간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간에. 그래서 사람들은 타협점을 찾는다. 이 만화의 주인공인 신이치가 제브라맨의 세계에서 사는 것처럼, 어떤 이는 여자를, 어떤 이는 게임을, 어떤 이는 일을.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제자리에 정체되는 것으로 현실과의 타협을 이뤄내는 것들이니까, 결국 사람들은 제자리 걸음.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그러니까 이 만화에서 제브라맨이란 환상 속에 들어간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가혹한 현실과 마주치게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다. 하지만 존나게 두들겨맞고 아파하면서도 결국은 흑백을 가려내는 제브라맨이 된다는 것은 행동에의 의지가 가지는 중요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바꾸려해봤자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중얼대고 있는 것보단 나은 선택. 이것은 또한 야마다 레이지의 만화 전반을 꿰뚫는 키워드기도 하다.

[가면라이더]의 크리에이터 자신마저도 회의하게 만든 특촬물이라는 장르가 이후 일본사회의 젊은이들에게 미쳤던 영향력에 대한 시선을 보다 애정어린 위치에서 보여주면서 현재-미래에 걸치는 일본사회에 대한 분명한 비판을 가하는 이 작품이 어떻게 나아갈진 좀 더 주목해봐야겠지만 볼만한 물건이 하나 나왔다는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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