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는 너무 안 꼴리게 쓴다고 퇴짜, 어디서는 너무 야하게 쓴다고 퇴짜. 문화상품권 받은 게 고마워서 일 좀 벌이려 했더니만 의욕 떨어지게 만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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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2-15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인이라뇨? 어디에 올리신 건데요? 궁금하네요.

hallonin 2006-02-15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ㅅ모 사이트라고, 좀 더 지켜보고 만약 놀이터가 될만 하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흘.
 

http://hkh336.egloos.com/

디시인사이드에서 활약하며 언어갤러리를 만들어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고람거사님의 블로그. 동아시아의 언어학과 역사학 전반에 대한 방대한 지식량을 보여주며 재미없는 포스팅만 골라서 올리고 있지만 언어학에 관심 있는 이라면 하나 같이 놓치기 힘든 정보들이다. 얼마 전에 구결학회와 국어사학회 공동 전국 학술대회에 참가하여 학부생으로선 최초로 발표하는 개가를 올림. 건담 시드와 김성모의 저명한 열혈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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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만화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작가의 판단은 정확한 것이었다. 최규석이 우리나라의 차세대 만화가 중 가장 기대되는 이라고 하는덴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습지생태보고서]는 몇몇 반짝이는 에피소드들과 탁월한 작화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심심하며 다소 뒤쳐지는 개그와 썩 와닿지 않는 살가움이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다. 디시인사이드에 연재되던 걸 계속 봐 온 나로선 이 작품집이 그의 아르바이트였기를 바랄 뿐이다.

[월희]의 어설픈 복제 버전.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균형감각을 보이고 있는 전개. 만족스럽진 못하다.

이 미국적 피해의식을 무기로 삼은 영화의 중반까지, 그 긴박함에 확실하게 빠져들어가 있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이후가 용두사미란 어떤 것인지를 너무 뻔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에 대해 예전에 내렸던 내 판단은 대폭 수정되어야 할 듯 싶다. 김지운 감독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에는 완전한 제우스적 관장이라기 보단 일종의 손놓기가 의도적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역이 있다. 그런 태도는 지금까지의 그의 영화들에서 언제나 최초의 컨셉의 무게감에 못 미치는 현저하게 빈약한 내용물로 영화를 채워져 있다는 인상을 주게 만들었다. 하지만 [달콤한 인생]은 그 불완전한 태도가 기대보다 영양가가 떨어지는 메인디쉬만이 아닌, 만족하고 즐길 수도 있는 미묘한 모호함을 동반하는 유희로서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달콤한 인생]은 기존의 느와르물에 대한 향수와 함께 공식화된 법칙에 대한 반작용이 그런 느슨한 손놓기와 어우러져서 만들어낸 독특한 화합물이며 영화가 스스로의 의지로 살아나려고 발버둥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인터렉티브적 감각의 묘한 생동감을 전달한다.

[페이트]를 기반으로 한 동인지를 만들고 싶다는 충동이 폭포처럼 쏟아지게 만든, 농촌기사 퍼시발의 이야기가 담긴 6권.

 

 

 

 

 

기본적으로 지성피부에 이것저것 트러블이 엉킨 면상 덕에 때마다 로션 선택을 고민하게 만든(그러나 결국은 귀찮아서 그냥 되는대로 구입하거나 안 쓰거나 했던) 나에게 있어선 놀랄만치로 훌륭한 효과를 보여준 물건. 수수한 향이라든지 빠른 흡수성이라든지. 하나 같이 맘에 들어서 이니스프리 포맨의 다른 시리즈도 구입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게 만들 정도였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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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6-02-14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마지막에 왜 웃긴걸까요.
(오랫만이에요.)

hallonin 2006-02-15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랑은 아니지만 인간 하나가 온갖 꼴을 다 보여줘서 그런 거 아닐까요?-_- 오랜만입니다. 흐.
 



이번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분에 올라와 있더군요.

손창섭의 단편집을 읽고 지독한 자괴감에 빠졌던 이래로 제가 읽어봤던 모든 소설들을 통틀어서 최고의 충격을 전해줬던, 그래서 리뷰를 쓸려고 벼르고 벼르고 있지만 결국 못 건드리고 있는 원작에 대해 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외감도 경외감이지만, 무엇보다도 그 방대한 분량을 어떻게 영화로 압축시켰을지....

 

 

 

전혀 기대가 안 갑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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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이스라엘인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찍고서, 내가 컷 사인을 내자, 한 팔레스타인 연기자가 들고 있던 소총을 던져버리고 바닥에 누워 있는 이스라엘 연기자에게 달려가 그의 팔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스라엘과 아랍 연기자 모두는 서로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솔직히 고백하자. 피가 피를 부르는 이 끝없는 복수의 순환에 대한 해답, 소위 옳은 정치적 선택이란 도대체 어떤 방법을 택하고 결론을 내려야 마땅한 것인지. 과연 이것이다, 라고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이가 있을 것인가. 수천년에 걸쳐 쌓아올려진 그들의 문제는 지엽적이고, 단순하며 이성이 아닌 감정 차원의 문제다. 그들이 행하고 있는 것은 함무라비 법전 시대의 율법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모양새다. 그렇기에, 적어도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 고도로 복잡한 정치적 수학공식은 필요하지가 않다. 죽이면, 죽인다의 무한반복. 어느 쪽이든 자신들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변호하고 옳다고 주장할 건덕지는 널려있다. 하지만 그 모든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남는 건 피와 살점들뿐이다. 이건 분명히 뭔가 잘못된 현실이다.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둔 픽션이란 것을 염두에 두자. 그것은 이 폭력적인 이야기가 스필버그가 가진 비극에 대한 비전을 보여줄 작정을 하고 만들어졌다는 의미가 된다. 영토에 대한 지리적 차원의 문제가 인간의 목숨과 복수의 끊임없는 반작용으로 옮겨가 구렁텅이가 되버린 현실처럼, [뮌헨]은 복수의 정치학에서 시작하여 그 안에서 부서져가는 인간 아브너의 모습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야누스 카민스키가 빚어낸 완벽에 가까운 영상은 황폐해져가는 아브너의 내면처럼 70년대풍 스릴러로 시작한 영화를 점점 기계적이고 무감각한 체험의 영역으로 만들어놓는다. 최대한 자제된 채 사용되는 존 윌리암스가 만들어낸 레퀘엠을 연상케 만드는 스코어는 가히 최고다. 그러나 이 거장들이 만든 정교한 세공품의 미적인 면을 탐하는 동안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스필버그의 '태도'다.


스필버그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주제들은 이미 그의 이전 영화들에서도 익숙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를 이상적 보수주의자의 최전선에 서게 만든 가족 이데올로기와 평화에 대한 보편적 호소와 같은 요소들은 이 영화에서도 빠지지 않으며 오히려 어떤 영화들에서보다 극대화된다. 그게 완전한 해답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던 감독은 그러나 최선의 선택으로 그 선택지들을 집어넣는다. 마치 마지막씬에서 아브너가 제안하는 '가족적' 저녁식사처럼.


이 영화에서 스필버그는 결론을 내리려고 노력한 게 아니다. 결론은 이미 나와 있었고, 과정이 도착했을 뿐이다. 이런 결론에 대해 스필버그에게 무책임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중동문제에 대해서 손을 놓고 있지 않은가? 가장 처음에 했던 질문처럼, 우리는 도대체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뮌헨]은 거친 문제제기이자 우리의 무력함을 역으로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현실 때문에, 모든 것이 정론으로 선택될 수 있는 현실 때문에, 그 모든 정치적 무력감 때문에 [뮌헨]은 역설적으로 스필버그가 애초에 가지고 있었던 그 짙은 이상적 이데올로기가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선명하고도 적절하게 빛나 보일 수밖에 없는 영화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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