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 열리는 것이어서 느긋하게 다녀왔습니다. 이틀에 걸쳐 열리는 발표회고 오늘이 첫날이었습니다.
....물론 흥행을 위해서 동원된 것이긴 했습니다만....
듣다보니 꽤 흥미로운 영역이더군요. 그래서 나중엔 발표논문집(5000원)을 하나 사볼까 하는 충동까지 일었습니다만, 역시나 자금사정이...-_-
아무튼 수업이 있었던지라 첫번째 발표인 조선족문학을 다룬 오상순교수의 '이중정체성의 갈등과 문학적 형상화 - 조선문학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들어갔습니다.... 간도문학, 조선족문학 전반에 자리잡은 망향과 향수, 그로 인한 유동의식의 꾸준한 유지, 그리고 영 불황상태인 조선족 문학의 현실 정도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 발표인 가와무라 미나토교수의 '재일한국인문학의 현재와 미래'서부터 본격적으로 들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크게 엄청난 내용은 없는 재일한국인문학의 개괄이었던 발표였습니다. 이렇게 세계 여기저기에 퍼진 한국문학과 그 연구자들을 불러다 학술대회를 연 것은 학회 자체적으로도 처음이었던 듯, 주로 개괄적인 측면에서 발표가 이뤄지리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김석범의 [화산도]와 같은 작품이 보여줬던 재일한국문학의 묵직한 면모에 대한 소개에서, 가와무라교수는 일련의 제주항쟁사건을 다룬 문학들을 4.3문학이라고 칭하더군요. 4.3문학이라고 불리우는 한 흐름이 존재할 정도로 제주항쟁의 역사적 중요성이 재일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신기하게만 느껴졌던 것은 역시 우리나라에선 거의 만져지질 않았기 때문이겠죠. 또한 일본으로 건너간 많은 한국인들이 제주도민으로 당시의 탄압을 피해서 건너갔다는 역사적 사실도 그 문제의 사건에 대한 재일한국인문학의 근원적 모티브의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근간의 재일한국인문학의 엔터테인먼트적 성과들도 언급이 됐습니다. [GO]나 [피와 뼈] 같은 작품군은 조청련에 의해 문학을 하나의 정치적 도구로 여기던 기존 풍조에 반발하여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리고 재일한국인이라는 마이너리티가 되려 청춘의 저항정신의 상징으로 쓰이게 되고 그의 영화화와 같은 다매체 전이가 원작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았다는 사실이 제시됐고, 이후 재일한국인문학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까지는 안 나왔고. 그냥 제가 생각하기에 가네시로 가즈키는 자기복제는 슬슬 그만 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미리와 현월에 대한 간단한 언급도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대중문학이 아닌 순문학쪽의 기수로서 현재 재일한국인문학의 선두에 서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죠. 가와무라교수는 유미리의 소설은 한국인이라는 민족에 대한 성찰이라기보다는 민족주의라는 하나의 정서에 대한 회의가 더 돋보인다고 지적하더군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그에의 순응보다는 의문이 더 중시되고 주변부에의 머무름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거죠. 사실 유미리의 소설은 재일한국인'만'의 것이라기 보다는 현대 일본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들을 건드리고 있고 사실 그 부분에서 자신의 장기가 더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현월의 경우는 재일한국인사회를 소재로 삼되, 그 재일한국인사회를 일종의 문학적 가상공간으로 본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즉슨, 그의 소설 속에 드러나는 한국인사회의 종합적 양상이란 것이 흡사 문학적 양식을 갖추고 그 드라마를 드러내기 위한 의도된 장치, 인공적인 장치처럼 보여진다는 거죠.
발표의 말미에선 역도산과 같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숨기려 했던 재일한국인들과 그중에서 특히 다치하라 마사아키(한국명 김윤구)의 케이스를 강조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그 자신은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그것도 일본중세라는, 가장 일본적일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극도로 순수한 일본의 미에의 성취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와무라교수는 이것을 역시나 컴플렉스적 영역, 생활사적 생존의 영역에서 비추더군요.
세번째 발표인 '제국을 향한 모델 마이너리티의 자기 고백 -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특징'은 러시아에서의 강제이주라는 사건에 대한 고려인문학의 근원적인 특성들을 중심으로 발표가 전개됐습니다. 강진구교수가 파악한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은 본능에의 천착과 존재증명에 대한 갈망이 엿보이고, 그것이 홍범도와 같은 노동영웅의 문학화로 드러난다고 지적하더군요. 특히 그러한 양상을 일종의 정치적 유아성을 파악했는데 그것은 러시아사회 내에서 한인들이 가져야 했던 열악한 지위가 만들어낸 욕구의 발현이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또한 저 강제이주의 혹독한 기억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가 페레스트로이카가 주창된 80년대 중반 이후에서야 부정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당대의 소비에트 사회에서 고려인문학의 친 소비에트적 경향의 자발성을 지적하더군요. 이것은 뒤의 토론자인 김현택교수가 반론으로 지적했던 부분이기도 한데, 김현택교수에 따르면 우선 소비에트사회에서의 고려인은 소위 민족자긍심의 여부가 무척 희박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고려인문학을 모델마이너리티로 규정할 수 있는지를 되물었습니다. 이어서 강진구교수가 당대의 고려인이 고려인이라는 민족적 자각을 바탕으로 소비에트사회에 충성스러웠던 소수자로서 선전문학에 가까운-예를 들면 강제이주가 없었으면 고려인들은 다 굶어죽었다던지 하는 내용의-문학들을 만들어냈다고 본 반면에 김현택교수는 그것이 순전히 연방의 강압적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고 반박하더군요. 이 부분은 두 분이 서로 반대되는 이야기로 시간도 짧긴 짧았지만 각자가 가진 자료와 정보에 의해 쉽게 타협할 것 같진 않은 부분이었습니다.



그외의 러시아문학에서 고려인문학이라기 보다는 러시아어로 쓰여지는 보편적인 러시아문학 자체에의 승화 차원에서 아나똘리김과 율리김의 성과가 소개됐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91~92년을 기점으로 한국말로 쓰여지는 고려인 한국문학은 소실됐다고 본다는 내용으로 발표의 마지막을 맺었습니다.



마지막 네번째 발표인 '재미 한인작가들의 자아 찾기 - 욕망과 좌절의 끊임없는 반복'은 강용흘의 [초당], 김난영의 [토담], 이창래의 [네이티브 스피커]를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1930년대 재미문학의 대표격인 [초당]에선 그 모든 좌절에도 불구하고 귀향하지 않는 주인공과 60년대에 발표된 [토담]에서의 어떻게든 귀향을 꿈꾸는 주인공의 대비를 통해 한국인 미국 이민사의 특징이 자연스럽게 소개됐습니다. 조규익교수에 따르면 하와이의 사탕수수 노동자로 이민을 갔던 최초의 이민자들은 그곳으로 가서 돈을 좀 벌어선 다시 고국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말하자면 잠깐 일하기 위해 나가는 단계로서의 이민의 정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에 비해 계몽주의적 지식인들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자신을 더 발전시킬 계기로서의 이민, 따라서 망향에의 슬픔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 온전한 도전 자체로서의 이민의 경향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것은 토론자였던 김신정교수에 의해 재기된 부분이기도 한데, 전반적인 디아스포라문학이 강제적인 이민에 의한 고통과 귀향에의 열망으로 가득한 반면, 재미한국문학이라는 디아스포라문학은 시대와 계층에 따라서도 확연하게 달리 구분되어져야 한다는 거죠. 여기서 경계인과 주변인의 차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이어서 과연 재미한국인문학을 굳이 한국문학에 위치시켜야 하는가의 문제가 이어졌는데 김신정교수는 재미한국인문학을 온전히 미국문학으로 봐야한다는 의견이었고 조규익교수는 그것이 한국인의 정서를 담고 그 차이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문학으로 융통성 있게 흡수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견해였습니다.
이렇게 4개의 발표를 끝으로 첫날 학술대회는 끝이 났고 사람들은 솥뚜껑식당으로 고기를 구우러 평화롭게 이동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론 커피와 빅파이와 마가렛뜨와 빈츠가 무한정으로 제공되어 행복했습니다만, 학교생활 7년여만에, 세워진지는 뭐 몇 년 안됐지만 암튼 처음 가 본 지하에 위치한 문예홀 강당은 봄 한복판에 겨울을 불러온 것 같더군요-_- 심하게 추웠습니다.....
내일은 2일차 발표날입니다만, 아마도 그 시간에 전 피로에 지쳐서 자빠져 자고 있겠죠...-_- 앞서도 밝혔듯 주로 개괄적인 양상을 띈 발표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로선 상당히 낯선 영역일 수밖에 없었던지라 상당히 소득이 많았습니다. 즐겁게, 영비천을 꼴딱꼴딱 마셔가며.... 다시 일터로-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