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더 힙합의 거성이자 저명한 중고음반점 사장님인 누쟈베스가 2003년에 발표한 첫 솔로 앨범인 [Metaphorical Music]은 재즈에 기반을 둔 그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앨범이다. 드래곤애쉬나 지브라 같은 메이저 힙합들과는 확실한 구분점을 보여주는 그의 음악은 일반적인 재즈랩들과는 달리 재즈 샘플링과 랩, 비트의 그 모든 부드럽고도 조화로운 흐름의 프러듀싱 속에서도 묘한 프리재즈적 불협화음의 색채를 가지며 그런 색조마저도 자신의 색깔 속으로 과감하게 편입해버리는 독특하고도 이질적인 시도를 통해 그만의 불온한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컨셉과 1화만 좋아서 심하게 안타까웠던 [사무라이 참프루]의 사운드트랙을 맡았었으며 2집은 2005년에 나온 [modal soul]. 그 전에 싱글로 나온 [Luv(sic)] 싱글앨범에 수록된 Luv(sic)의 클린버전은 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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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6-06-28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무라이 참프루는 생각 보다 재미 없어서 보다 말았어요. 1화라면 물가에서 생선 구워먹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그건가요?

저 긴 글이 단 네 문장. (새삼. ^^;;)

hallonin 2006-06-28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_- 맞나? 사실 1화도 물량전으로 밀어부친 작화를 빼면 영.... 암튼 컨셉 하난 좋았었는데 말이죠.
 

꽤 오래 전 얘기입니다만, 과학기술부에서 창작 문예 만화 부문에서 박지홍씨가 그린 [HOTEL]이 당선된 적이 있었습니다. 벌써 2004년으로, 이후 작품은 웹으로 퍼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명을 일으켰지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근간엔 쉬이 볼 수 없는 SF 장르라는 점에서, 그것을 현재의 문제의식과 결합시켜 매끈하게 빚어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죠.

박지홍 [HOTEL]

처음 봤을 때 그 출중한 스토리도 스토리 나름대로 인상 깊었지만, 그것보다 저에겐 그 그림체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이었다는 게 더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고단샤에서 발간되는 주간 모닝 2005년 5월, 25호에 이 작품이 실리면서 확실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 그림은 박무직씨 스타일이었던 거였죠. 박지홍씨가 박무직씨의 어시라는 것도 그즈음에 알게 됐습니다. 저 boichi라는 필명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박무직씨가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쓰는 필명입니다. 사실 모닝지는 우리나라 만화가와 알게 모르게 연이 있는 잡지로 예전에 오세호씨가 [수국아리랑]과 [낚시], 황미나씨가 [이씨네집 이야기]와 [윤희]를 발표하기도 했었죠.

 

이 시점에 와선 [HOTEL]이 박지홍씨의 것인지 박무직씨의 것인지는 확실치가 않고.... 사실 별 의미도 없는 일이라고 봅니다. 적어도 현재 그 컨버전과 관련한 트러블이 나오지 않는 이상 두 사람의 공동창작에 가까운 형태라고 보는 게 좋을 듯 하니까요.

 

아무튼 저 [HOTEL]이 모닝지에서 발표되면서 박무직씨가 얻은 수확이 꽤 괜찮은 모양입니다. 일단 인기투표에서 상당한 수위권이었고 그와 관련하여 모닝지에서 연재 제의가 들어왔다고 할 정도니까요. 사실 [HOTEL]은 그만한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작품이긴 했습니다.

 


박사님의 카리스마가 원판보다 대폭 상승.

 

boichi 홈페이지

홈페이지에 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미국진출도 생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음.... 점점 커져가는군요. 처음 그의 에로만화가 나왔을 때 우리나라 각 블로그에서 쏟아졌던 안 꼴린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뭐 사실 한국웹에서의 이바구들을 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암튼 꿋꿋하게,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에서 있었던 갖은 트러블을 상기하자면 의외로 잘 해나가는 듯한 인상입니다. 뭐 그자신도 에로만화 단행본 뒷편에 적어놓은 것처럼 자신의 상상과는 달랐던 일본에서의 현실을 깨닫고 성숙해진 건지도 모를 일이죠.

 



 

요게 지금 영킹 아워즈에서 연재중인 [선켄락]이란 만화입니다. 일본 남정네 하나가 한국 여자에게 반해서 한국까지 쫓아왔더니 그녀는 경찰.... 따라서 경찰이 되려고 했는데 엉뚱하게 조폭이 되버리면서 겪게되는 로맨스 및 액션.... 이라고 하는데....

웬지 스토리만 봐선 영 아니군요-_- 시간낭비만 하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 거부감 돋는 그림 스타일도 여전하군요.... 다만 여자 엉덩이와 근처의 주름은 꽤 맘에 듭니다. [디아블로 메타트론]의 성과인 건가.

 

아무튼지간에 종합적으로 볼 때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박무직씨의 '썰'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은 제대로 된 만화를 그려보라, 였는데 어쩌면 [HOTEL]이 그의 분기점이 될지도 모를 일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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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에서 팀버랜드가 프러듀서로서 가지고 있는 인지도와 힙합 뮤지션들이 보내는 신망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국내에선 썩 얘기가 안되는 건 신기하다고나 할까.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오리지날보다는 다른 가수들의 피춰링으로서 그를 더 많이 접할 수 있었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비트를 잡아내는데 있어서 귀신 같은 능력을 보여주는 그의 솜씨가 만들어낸 특유의 톡톡 두들기는 감각의 달콤함과 더불어 본능적인 거부감으로 인한 언더-마이너 힙합씬에서의 비판의 대상이 됐던 것도 이젠 옛날 이야기인 듯, 이제는 그에 대한 진한 비판은 보이지 않고 팀버랜드 자신은 저스틴 팀벌레이크에서부터 비요크에 이르는 뮤지션들과 함께 여전히 왕성하게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1998년에 발표된 이 앨범에서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챠트에서 날뛰었었던 4번 트랙 'here we come'이었는데, 앨범 전체가  확실히 지금 와서도 전혀 꿀리지 않는 감각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아니, 차라리 그때보다는 현재에 더 먹힐 법한 스타일을 들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팀버랜드라는 감각의 긴 유효기간을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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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포비아 및 남자 궁둥이에 관심 없는 사람은 클릭 자제

 

 

 

 

 

어익후야.... 댓글이 한글이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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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2006-06-28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저 사이트 주소 웃으면서 친구한테 보여줬더니 그 이후로 응답이 없네요 ㅜㅠ

hallonin 2006-06-2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머감각과 우정 사이에서 무척 고민하고 있는가 보군요 그 친구.
 
브이 포 벤데타 일반판 (2disc) - 일반 킵케이스
제임스 맥티그 감독, 나탈리 포트만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먼저 분명히 밝히자면, <브이 포 벤데타>는 뻔한 영화다. 실로 관객의 예상치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전개와 결말. 그런데다 거의 직설법에 가까운 화법은 이 영화가 <매트릭스> 같은 수수께끼 놀음-사실 텍스트로서의 철학자들, 사회학자들의 쓸만한 몇몇 논의들을 제외하고 <매트릭스>가 퍼즐식 철학 놀음으로 비춰져서 사람들로 하여금 소모적인 철학논쟁을 불러 일으킨 것은 <매트릭스>의 배경에 깔린 매니악한 자양분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처음 접한 이들이 저지른 대표적인 실수다-이 아니라 던지면 터져버리는 그 자체인 다이너마이트란 걸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브이 포 벤데타>는 그 외피의 확고한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고 익숙한 요소들에 대한 미묘하고 섬세한 조율과 재해석을 통해 흔한 히어로물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는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교조적이지 않다. 영화의 메시지성이 너무 강한 나머지 이 영화를 선동용 영화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완전히 오해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브이는 단순히 절대악과 싸우는 히어로가 아니라 원죄를 가진 하나의 흐름이자 운동movement 그 자체로 보여진다. 가이 폭스 가면으로 그런 자신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브이는 대중을 일으켜서 앞으로 돌진하여 걸리적거리는 것은 거침없이 박살내버리는 마초적-선동적 먼치킨 액션 히어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행하는 폭력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다시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영화 속에서 브이의 손에 죽어나가는 경찰들은 과연 무슨 죄가 있어서 죽는 걸까. 브이가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연쇄살인, 폭력과 막판의 군중들의 무혈 행진의 대비를 눈여겨보라. 브이가 지하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동안 똑같은 브이가 된 군중은 아무 폭력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을 일종의 씻김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브이는 지하로 내려가서 자신을 만든 악마들과 자폭을 행함으로서 과거시대와의 완전한 단절을 이뤄내기 때문이다. 저 <양들의 침묵>에서도 지적됐던 바, 빛으로 채워진 지상세계를 지탱해주는 것은 지하의 악마라는 진리가 여기서 하나의 페이소스로 작용한다.

 

영화의 절제된 키를 맡고 있는 또 하나의 축은 영화 속 상황을 바라보는 일종의 거울 밖 화자인 이비 해먼드의 역할이다. 그녀의 눈높이는 관객의 눈높이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와 관련된 논의들에서 이비의 감금고문에 대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고난을 겪어낸 이비는 물로서 일종의 세례-깨달을 얻어내는데 이것은 불에서 태어났던 브이와 명백하게 대비되는 씬이다. 아울러 이비에 대한 고문은 브이로 하여금 심각한 정체성 고민-자신의 탄생과 파시즘으로 가득한 사회의 유사성에 대해서-을 겪게 만든다. 그래서 후에 브이가 죽을 때 자긴 틀렸고 이비가 옳았노라며 말하는 것은 이 영화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가장 의미심장한 씬이라고도 할 수 있다(그러나 이 부분 역시 이비의 감금고문 시퀀스만큼이나 논자들에게 천대받은 씬이다). 그래서 그녀는 미치광이 같은 브이의 행동을 낯설어하고, 그에게 교화되긴 하지만 그의 곁에 머무르지 않는다. '괴물' 브이의 아름답고도 처절한 로맨스를 매혹적으로 보여줄 정도로 이 영화는 정신이 나가지 않았다. 되려 <십이야>와 <멕베스>를 읊고 줄리 런던을 듣는 브이의 낭만주의적 태도들과는 정반대로 영화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제임스 멕티그의 숫기 없는 건조한 연출과 시나리오의 냉정한 톤 유지가 맞물린 무척이나 담담하고 자비심 없는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그가 개인사적으로 행복할 겨를을 주지 않는 전개는 브이가 가진 고전적 딜레마, 분노와 구원받을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가차 없는 판단을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브이를 연기하고 있는 휴고 위빙의 연기는 정말 탁월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가면에 가리워진 인간의 정서를 억양과 몸짓을 통해 구현해내는 그의 능력은 한 인간인 동시에 하나의 준동이었던, 그래서 끝까지 가면을 벗지 않는 브이와 군중 속의 개인이자 교화-교감의 대상으로서의 이비 사이에 벌어지는 얕은 로맨스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 줄 정도다(덧붙이자면 브이라는 낭만주의적 캐릭터의 메타희곡적 특성을 구축해내는 데엔 그의 끝내주게 중후한 영국식 영어 발음 또한 한몫한다). 그에 반해 신인 감독 제임스 멕티그의 단조로운 연출은 워낙 많은 대사량이나 설명해야 할 내용들이 두시간 남짓한 상영시간 안에 들어가 있는지라 각본을 겨우겨우 따라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달리 말하자면 욕심을 내지 않은 것이지만 그 여유의 부족은 몇몇 씬에선 비주얼적 빈한함을 안겨주고 있다.

 

그리고 <매트릭스>의 자장은 워낙 컸던 것이라, 개봉 당시에 무리라는 게 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매트릭스>와 연계되는 홍보전략을 구사해야했던 홍보팀의 고초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홍보로 인해 잃은 것도 많은 것이 사실일 것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정치액션스릴러라고 할 수 있는 <브이 포 벤데타>는 이 시대에 이르러선 남용될대로 남용된 불릿타임에 절어버린 관객의 시각을 만족시킬 법한 액션은 딱 한 번밖에 안 나온다. 막판에 펼쳐지는 브이의 칼부림씬이 바로 그것인데, 내내 틀어막혀있던 긴장감을 한 번에 풀어주는 씬이기에 이미지적 임팩트는 상당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신인 감독 제임스 멕티그의 빈약한 연출력으로 구축된 영화의 답답함을 날려버리는 꼭지점 역할을 해주고 있다.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그리고 많은 이들이 지적한 것처럼 <브이 포 벤데타>가 보여주는 소재와 주제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정치적 향락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현학적 구원을 바란다면 132분을 엉뚱한 곳에 바치느니 차라리 역사 이래로 수만종이 쏟아져 나왔지만 결국 세상을 하나도 바꾸지 못한 정치학서적들이 깔린 서점에 가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극단적인 안티 히어로물이자 <몽테크리스토백작>을 변주하는 복수극으로서 <브이 포 벤데타>는 내밀하고 미묘한 감정의 꿈틀거림과 복수극이 만들어내는 기본적인 재미, 그리고 인간이 가진 순수한 영역의 열정을 자극하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의미의 재발견을 촉구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유치하다고만 몰아버릴 수는 없는 복잡미묘함을 담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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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2006-06-30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그토록 보고싶었지만 이젠 집에서 봐야하다뉘
그나마 홈시어터 없었으면 비디오방 갈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