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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 일반판 - 아웃케이스 없음
와이드미디어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매너리즘의 함정으로써, 상업논리와 싸구려 감상주의로 관객을 돌대가리로 만들어준다는 신파극 장르는 위대한 이성의 힘을 믿는 이들로 하여금 저주를 퍼붓게 만들었다. 도식화된 구조, 무력한 주인공, 항상 최악으로 향하게끔 되어있는 이야기. 신파극은 분명 세상의 진실을 담아내지만 비판자들에게선 인식적으론 편파적이고 정치적으론 위험하다는 그 자체로 도식화된 탄식을 자아내게 만들었던 것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그 다음 영역에 도착해 있는 영화다. 신파극을 조롱하는 오래된 비판들에 대한 이 뻔뻔스러운 영화의 반격은 간결하면서도 명민하다. 그것은 형식적인 견지에서 뮤지컬이란 장르를 차용했다는 것과 그 양식을 뮤직비디오의 박력으로 밀어부치는 방법론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들, 시각적 쾌감으로 충만한 씬들은 서사적으론 가장 처절하고 잔인한 순간들로 선택되어져 있다. 이야기의 비극적 카타르시스가 터져나올 때마다 마츠코의 환상을 살려내는 뮤직비디오적 감각은 온통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뽐낸다.
강력하게 제기될 정치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노골적으로 노리고 있는 최고의 순간은 마츠코의 지옥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의도는 동시에 그 지옥이야말로 마츠코의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었음을 설파한다. 그녀는 버림 받고 또 버림 받지만 끝없이 사랑한다. 그래서 무기력한 성적관념에 물든 대부분의 백수떨거지들의 표상인 마츠코의 조카, 완전히 상관없는 타인이었던 그가 그 무한에 가까운 마츠코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 드디어 영화는 신학적인 영역으로 들어선다. 완전한 타인이자 누구와도 관계 없는 외톨이로 알려졌던 마츠코, 종국엔 홀로 쓸쓸하게 내팽개쳐진 채 어이없게 죽어가야 했던 마츠코는 천국의 계단에 도달한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과연 나의 존재를 기억해줄 이가 몇이나 될까. 단순히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기는 한줌도 안되는 이들에 대한 질시가 아니다. 세상엔 정말 많은 수의 사람이 있고 대부분은 모른 채로 죽음을 맞이한다. 애써 의미를 찾아보자. 가족, 친구, 연인, 단골 가게 점원. 하지만 허무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숫자적인 만족의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독하게 고독하고 외로워진 순간, 누구도 자신에 대해 이해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매달리고 싶어지는 순간. 무엇이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의 절망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일, 어떤 이는 돈, 어떤 이는 섹스, 어떤 이는 꿈, 어떤 이는 종교에 매달린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그렇게 되어버리는 우리들의 이야기, 결국 홀로 죽어가야 하는 모두에 대한 화사하면서도 절절한 위로다. 51년이라는 세월, 전후 개발시대의 음지에서 흙탕물을 튀기며 살아간 마츠코와 그녀를 둘러싼 외로워하는 열외자들의 판단착오로 쓰여진 두시간. 마침내 그들은, 그리고 마츠코는 실패한 채로 굴러가는 것 같은 세상이지만 모두가 가치있다는 진부하기에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을 설득력 있게 달성하며 그 누구도 다다르지 못했던 길에 들어선다.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진짜 신파, 모든 무의미한(혹은 그렇게 믿고 있는) 삶들에 대한 숨막히는 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