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으로 본 한국역사
함석헌 지음 / 제일출판사 / 1989년 4월
평점 :
절판


고 함석헌 선생의 사관은 한 마디로 섭리 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섭리 사관은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해석하는 입장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는 섭리 사관이 시종일관 역사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고 정의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고난의 적극적인 의미를 동시에 전개하고 있다. 고난에 관한 생각을 들여다보면 로마서 5:3-4을 떠오르게 한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낳게 한다는 바울 사도의 믿음처럼 함석헌 선생도 같은 믿음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그리고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으로 이순신과 임경업을 꼽는다. 이 대목에서 그의 기독교라는 울타리를 훨씬 넓게 해석하고 바라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 국한된다. 역사가 하나님에 의해 진행되어 왔다고 이야기하지만, 사람을 움직이셔서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걸맞지 않게 누가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로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라는 얄팍한 신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러한 경향을 지닌다. 그러나 함석헌 선생은 분명하게 이순신과 임경업을 하나님이 보낸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땅에 보냄 받은 사람이라고 쓰고 있다. 그들이 외란으로 멸망당할 위기에 선 나라를 살리기 위해 보냄 받았다고 적고 있다. 함석헌 선생의 넓고 깊은 신앙, 섭리 사관의 특징적인 모습을 보는 듯 하다.

함석헌 선생은 이 책 내내 한국인의 단점에 대해 적고 있다. 우리 역사의 고질이 된 당쟁으로부터, 우리에게 진지함과 깊음이 없음을 설파하고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사상이 없다. 국민적 정신이 없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있었던 국민정신은 황국신민같은 일제가 심어준 것이거나-이 정신에 수많은 사람들이 변절하고 우리의 정신을 팔아먹었다- 또는 박정희의 개발 독재식 '잘 살아 보세'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을 이끌고 우리 민족을 하나로 엮어주는 참다운 국민 정신, 민중 정신이 없는 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비극이다. 함석헌 선생은 이렇게 참다운 씨 의 정신이 사라진 이유를 찾고 있다.

그는 이러한 정신의 부재야말로 그릇된 숙명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혹독한 고난 속에서 그저 운명에 맡겨 사는 삶, 역사로 전락해 버렸다고 적고 있다. 함석헌 선생은 머리말에서 자신은 기독교만이 유일한 참 종교가 아니라고 못박고 있다. 다만 그는 자신이 가진 종교에 따라 고백하며 이 책을 썼다고 술회한다. 우리 나라처럼 종교에 있어서도 고립적이며 당쟁적인 분위기에서, 특히 전투적이며, 자신의 신조만이 절대 유일하다고 믿는 풍토 속에서 무교회주의자인 함석헌 선생이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가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함석헌 선생이 아무리 많은 공헌을 했다 했도, 그가 기독교만이 참된 유일한 길이 아니며, 모든 종교는 따지고 들어가 보면 결국 하나라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유포했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이단시 취급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섭리 사관을 보면, 그를 이단시하는 어떤 사람보다도 깊고 넓은 믿음, 확고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적 풍토 속에서 함석헌 선생의 기독교에 대한 진술은 논란의 이유가 된다. 한국적 기독교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며, 탈정치화·탈사회화의 편향된 길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더욱 값진 의미를 지닌다. 함석헌 선생은 종교의 자리를 가장 높은 수준의 정신적 활동, 구체적 활동의 장으로 여기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모든 종교와 종파는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새로운 종교개혁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각각의 종교가 가는 사랑의 길 가운데 새로운 프로테스탄트가 등장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현재 기독교에 던지는 그의 일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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