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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드레서 민지
정은희 지음 / 상출판사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렸을 적 나는 항상 긴 머리를 고수했다. 아침마다 혼자 머리를 땄고 예쁘게 핀이나 머리끈을 매는 걸 좋아했다. 예쁜 머리핀이다 고무줄이 보이면 돈을 모아서 사곤 했는데 상자 하나 가득이었다. 나는 자신뿐만 아니라 동네 아이들을 불러 놓고 머리를 만져주는 것도 좋아했는데 그럴때마다 엄마는 "나중에 미용사해도 되겠네" 하시며 칭찬을 해주셨다. 그렇게 긴 머리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귀 밑 3센티미터' 보다 길면 잘라버린다는 교련 선생님의 엄포에 잘려 버리고 말았다. 잘라 버리고 나니 나름대로 시원하던지 그때부터는 한 달에 한번 누가 시키지도 않아도 미용실에 가서 커트를 했던 것 같다.
<헤어드레서 민지>를 보면 어려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만한 이야기이다. 나도 어려서 엄마 몰래 화장을 해본 적이 있고, 엄마 구두도 신어보고, 엄마의 홈드레스도 입어보았으니 말이다. 엄마가 미용실에 간 시각 민지는 헤어드레서가 되어 개에게 온갖 염색(색칠)도 하고, 머리도 말아보고 하는 장면들이 너무 재미나게 그려져 있다. 미용실에서 돌아온 엄마는 난장판이 된 집안 모습에 깜짝 놀라지만 민지의 움츠린 마음을 헤아리고 야단 대신 " 우리 민지 헤어드레서해도 되겠네"라고 말씀하신다. 엄마의 이런 모습에 아이는 더 창의적이 되고, 행복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모방 본능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겐 추억까지 일깨워 주는 책이다.
우리 아이는 요즘 화가가 되었다. 스케치북 뿐만 아니라 벽, 책상, 의자, 하다못해 문까지 보이는 곳 모든 곳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처음에 칭찬을 해주었더니 아이는 신이나서 여기저기 그리고 다니는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깜짝 놀래서 아이에게 스케치북에만 그리라고 했는데 오히려 엄마가 금지한 것에 대한 욕망이 더 커진 듯 아이는 내 표정을 살피며 크레용을 숨기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더욱 더 많이 몰래 그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순간 포기가 되고 아이에게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었다. 창의적인 아이가 되길 바라면서도 사실은 엄마의 틀 안에서, 어른의 시각에서 허용 가능한 울타리를 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