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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속의 외침 - 2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8월
평점 :
책읽기를 좋아하는 어머님이 어느날 <형제>를 읽으시면서 위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일본작가들과는 또다른 정서의 책이라면서 이 책은 소장해둘만한 책이라고 말씀하셨다. 집으로 돌아와 나도 위화에 관해 찾아보고 <인생>이란 작품을 시작으로 <형제>, <허삼관 매혈기>, <나는 이름이 없다>를 읽어나갔다. 차오엔쉬엔의 책을 참 좋아했고, 다이 호우잉의 작품을 찾아 읽었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붉은 바위>를 읽으면서 감동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일본작품들은 개인적인 것과 자극적인 느낌이 많은데 비해 중국의 작품들을 읽어보면 나와 이웃과 더불어 정책의 변화에 따라 일어난 사건들에 관해 좀 더 거시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작품을 읽어보면 그 민족의 정서를 알 수 있나 보다.
어쨌든 한 동안 나는 동화에 빠져 있어서 위화를 잊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팽팽하던 실이 툭 끊어지듯 책읽기에 대한 즐거움이 시들해버렸다. 그 이유는 내가 책보다 다른 일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다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었지만 감흥이 나질 않는다. 우연히 도서관 서가를 기웃거리다가 <가랑비 속의 외침>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위화의 인생에 대한 삼부작으로 일컬어지는 <가랑비 속의 외침>, <허삼관 매혈기>, <인생>의 순으로 읽었다면 순차적인 느낌이었을 텐데, 나는 거꾸로 읽은 셈이다. 그래선지 그 감동의 크기도 마찬가지의 양으로 다가왔다.
<가랑비 속의 외침>은 위화의 초기 작품이다. 이 책을 읽노라니 그 속에서 다음 책의 주인공들이 탄생을 예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쑤형제의 이야기는 <형제>의 송강과 이광두의 모태가 되었을 것도 같고, 이를 뽑은 삼촌도 형제에서 이를 뽑던 사람이 된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순차적으로 쓰여지지 않고 주인공 쑨광린의 기억에 따라 진행되었다. 하지만 4장까지 엮어진 글을 보면 구성에서 나름대로 묶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쑨광린의 유년 시절을 통해 바라본 세상과 가족사, 그리고 이웃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저 깊은 곳에 숨겨진 생생한 감정들이 드러나는데 보통 사람들은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드러내지 않은 것에 비해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입으로 내뱉음으로서 더 신랄한 느낌을 준다. 예를 들면 보통 부모님에겐 자식된 도리를 다 해야 하지만 쑨광차이는 자기의 아버지가 허리를 다친 이후 밥만 축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빨리 죽기를 소망한다. 그것을 숨기지 않고 여러가지 태도로 아버지를 괴롭힌다. 마침내 아버지가 스스로 죽음의 길을 떠나겠다며 기다리는 과정에서 쑨광차이는 매일 매일 죽는가 살피면서 아직도 죽지 않음에 짜증을 내기까지 한다. 마침내 아버지가 죽고 나자 기쁨과 그래도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을 드러낸다. 우리 인간은 이렇게 이기적이다. 하지만 보통은 감추고 산다. 하지만 위화의 작품속 주인공들은 그것을 까발려서 사실 너의 마음속에도 이런 추악한 모습이 있지 않는가 하며 묻는 것도 같다.
이 책은 탄생과 죽음, 버려진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 친구와 우정, 가족의 관계 등 인간의 삶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하루 중의 시간으로 따지자면 저녁놀이 지는 무렵의 모습을 닮아 있는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