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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개의 사람꽃 - 임종진의 삶 사람 바라보기
임종진 지음 / 넥서스BOOKS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전에 글에서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고 나누는 대신 기계의 천리안에 의지해서 남들보다 더 예쁘고 멋지고 그럴싸한 순간을 담겠다는 욕심처럼 보여, 고가의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폼이 영 탐탁지 않게 보였다”라고 쓴 적이 있다.
나카노 교쿄는 <무서운 그림>에서 말하길,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 키클롭스가 외눈박이가 된 이유를 “눈으로 탐하는 데에 골몰한 나머지 양쪽 눈이 모이고 모여 … 미쳐버린 외눈”되었다고 풀이한다. 신화에 따르면 키클롭스는 원래 태어날 때부터 외눈박이지만 탐욕을 경계하라는 의미심장한 해석이다. 가끔 길을 가다가 망원렌즈를 얼굴에 바짝 붙이고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 볼 때마다 키클롭스가 떠오른다. 키클롭스가 제우스의 천둥과 포세이돈의 삼지창을 만들어준 뛰어난 대장장이라는 걸 상기해 보면 키클롭스와 카메라는 이래저래 인연이 깊지 않나 싶다.
점점 커지고 길어지는 망원렌즈를 두고 탐욕스런 관음증 운운했지만 키클롭스의 외모가 그의 전부가 아니듯이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고 해서 다 파파라치는 아닐 것이다.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 그 작은 나눔이 목숨을 살리는 생명줄이 되기도 한다.
월간 <말>지와 <한겨례 신문>의 사진기자였던 임종진의 사진 에세이집 <천만 개의 사람꽃>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전, 바그다드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사연이 실려 있다. 사진기를 든 그를 미국 정보요원으로 착각한 민병대에게 잡혀 꼼짝없이 처분만 기다리는 급박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연히 전에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서 선물했던 대원을 만나게 되고, 분위가가 반전되면서 다같이 “우리는 친구”가 된다.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의 인연’ -p.254)
다른 사진기들이 이라크의 심각한 전시 상황을 찍기 바쁜 그때 그가 한 오래된 성당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또 일하는 청소부 노인을 찍지 않았다면, 또 그 사진을 선물하지 않았다면 이 사진집은 영원히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청소부 노인은 전쟁이 벌어지면 자신이 청소를 하고 하는 이 낡은 성당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목이 메지 않았을까. 그리고 랍비도 아니고, 비록 청소나 하는 잡부지만 신앙인으로 며칠 후면 총을 들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답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전시를 앞둔 이라크를 찾아온 외국의 수많은 사진기자들의 냉정하고 날카로운 시선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것만 같아 곱게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 낯선 동양인 한 명이 관광객이 다 떠나고 없는 이때에 한가롭게 성당을 찾아와서 사진을 찍고 있다. 그리고 언제 찍었는지 자신에게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건넨다. 그 사진이 자신에게 생전의 마지막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짠하지만 총 대신 빗자루를 든 모습은 군인이 아닌 신앙인으로의 모습이라 아이들에게 물려줘도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해 주리라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다.
노인은 이 고마운 사진을 준 남자의 웃는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본다. 동양인의 생김새란 게 엇비슷해 보이지만 그래도 꼭 기억했다가 좀 있다 있을 예배 시간에 그의 평화를 빌어야겠다는…. 임종진의 사진기 안에 당시 여느 사진기자처럼 총을 든 민병대의 굳은 얼굴만 잔뜩 있었다면 어땠을까. 다시 말해 사람에게서 꽃을 보려는 사람꽃 애정이 없었다면….
사진집의 구성이 특이하다. 보통의 사진집이 나라별, 시기별로 구분하는 게 보통인데, 총 네 단락으로 나뉜 사람꽃은 상황과 장소가 뒤죽박죽이다. 한 장 건너로 미국의 스마트탄 오발로 4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라크 알 아마리야 방공호 폭발 현장에서 추모 연극 현장과 티베트 라싸 시각장애인학교의 개구쟁이 니마의 웃는 얼굴이 나온다. 역시 한 장 건너로 네팔 포카라 티베트 난민촌과 전라도 나주의 시골 마을이 등장한다. 국경, 상황, 장소 구분 따윈 의미가 없다는 투다. 듬성듬성 사람이 등장하지 않거나 흑백으로 찍은 사진도 보인다.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 성당의 엑소더스 이주센터 사진 밑에는 뜬금없이 연락처와 후원계좌가 등장한다. 생각해 보니 자유롭고자 국경을 넘나들며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는답시고, 정작 정리를 할 때는 르포니 풍경이니 인물이니 하는 기존의 잣대를 들이대는 게 웃기는 상황이지 싶다.
“(코시안이) 튀기니 혼혈아니 하는 거칠고 불평등한 호칭을 대체하기 위한다며 나온 용어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구분의 잣대로 규정하는 것 같아 혼자 헛헛하게 품어봅니다. 그저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똑같은 우리 아이들일 뿐인데.”
필리핀 어머니를 둔 수진, 민수, 선미 세 남매의 가을 운동회 풍경은 아직까지 아릿아릿 눈앞에 선하다. 뷰파인더를 볼 때 마음을 비울 것, 천만 개의 사람꽃을 보면서 배운 소중한 교훈이다.
<인상깊은 구절>
(네팔 카루샹 마을 중에서)
옷차림새도 다르고 카메리니 뭐니 이것저것 들고 있는 낯선 이방인에게 아이들은 자꾸 장난을 걸어왔습니다.
이놈들아, 내가 싫어할 줄 알고?
우와~ 하고 장난을 마주 겁니다.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난 얼굴인데 마치 이게 웬 떡이냐는 표정입니다.
녀석들의 얼굴에 넋이 나가 함께 웃다가 먼발치에 인민을 교육한다는 한자어가 떡하니 학교 담장을 수놓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웬지 어색해서 주인 잃은 티베트 땅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제야 문득, 아이들의 목에 둘러진 붉은 띠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원래가 자신들의 것이 아니었을진대,
그저 남의 나라 일이라 하기에 왠지 가슴이 허허롭기만 합니다. -p.214-
(함께 찾아가는 꿈 중에서)
고단한 이들과 숨소리를 나누는 것을 충만한 하루로 여기는 사람, 농담이든 진담이든 말 한마디 툭 건네고는 사람 좋은 너털웃음으로 갈무리를 하는 사람, 그리고 그와 더불어 웃음 짓는, 꿈을 찾아 이 땅에 온 사람들. 이들과 함께 당신의 웃음을 나누는 것은 어떠하실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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