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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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를 쓴 소설가 이재웅을 좋아한다. 그를 좋아한 계기가 좀 엉뚱한데, 우연히 인터넷 기사 검색에서 ‘소설가 이재웅 씨는 정수리 부분을 곤봉에 맞았다’는 기사를 보고난 뒤부터였다. 사건 시간은 2006년 5월 4일, 사건 장소는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 시위 현장, 가해자는 경찰이었다. 이전까지는 그가 누군지도 몰랐다.
이후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제 장편소설 1편이 고작인 신인 작가가 하필 장사밑천인 정수리를 맞았다고 하니 내 입에서 “어쩜 좋아”라는 한탄이 절로 나오더란 말이다. 비유를 하자면 막 개업한 노점을 둘러엎은 격이다. 정수리를 악에 받친 곤봉으로 맞았을 때, 날아간 작품이 얼마나 될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작품을 다시 읽어야 하겠느냔 말이다.
이후로 그는 단편 소설집을 한권 더 냈는데, 전작과 행보와 마찬가지로 우직하달 만큼 낮은 곳을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소설가 이재웅’을 검색(소설가를 연관 검색어로 붙이지 않으면 수많은 이재웅‘들’ 중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해서 용산참사 시위현장 등에 나타났다는 행보를 확인하곤 한다.
대부분 작가들이 그렇듯이 손과 발이 따로 놀 법도 한데, 그의 손과 발은 같이 움직인다. 동년배인 그의 손과 발이 같이 움직이는 한 나는 그의 소설이 시대를 읽는 눈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난쏘공>처럼 이후에도 시대를 읽는 눈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재웅(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Daum) 전 사장이 아닌 소설가)처럼 현장에 직접 뛰어드는 발빠름으로 작품과 현장을 조응하는 힘은 없으나, 공지영은 다음(Daum)에서 연재한 소설 <도가니>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 즉 동시대인들에게 한국의 권력 구조라는 안개 뒤에 감추어진 현실을 보라고 도발한다.
2005년 8월에야 실체가 드러난 광주인화학교 교장 등의 청각장애인 여학생 성폭력 사건은 공지영이 인식을 했을 당시에는 이미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이 가득 찬 이후였다.
소설가 이재웅의 정수리 구타 사건에서 언급한 2006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 시위의 이슈와 의미와 안타까움과 비참한 현실이 건설 확정 이후 흔적도 없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언론과 세인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듯이 이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작가가 우연히 본 기사 한 줄로 촉발한 <도가니>는 ‘사건 이후’인 2009년 연재를 시작하면서 실제 사건과 소설이 만나는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내 매회 원고지 10매씩을 써내면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사건 기사처럼 독자들에게 또 다른 현장감을 제시했다.
그렇게 소설에서도 등장하듯 성폭행 교장의 2심 집행유예 판결과 복직 등 솜방망이 처벌로 그 뿌리가 뽑히지 않는 지긋지긋한 권력 유착과 비리의 ‘현실’을 새롭게 상기시켰다. 그리고 광주인화학교를 비롯해 비슷한 사건 사고에 대한 경계와 고발의 촉수를 세우게 했다.
이 소설이 읽는 게 불편한 이유가 이 뿐만은 아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으로 알려진 가상의 무진시의 짙은 안개와 권력 관계의 동일화, 강인호가 등장과 성폭행 피해 아동 영수의 죽음의 교차, 선과 악의 선명한 대립, 등장인물의 치우친 감정, 강인호의 일관적 태도 미흡 등은 빠른 속독을 요구하는 인터넷 연재가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해야 할지, 전형성이고 상투적인 틀이 엿보인다.
그렇다면 마피아 카르텔처럼 하나로 묶인 복지시설, 교회, 병원, 법원, 경찰서, 검찰, 교육청 등 무진시의 권력이란 권력은 하나도 빠짐없이 개입한 소설 속 정황이 과연 있지도 않은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거짓 프로파간다인가.
그렇지 않다. 이 소설은 후일담 소설이 아니라 진행형인 사실을 써내려간 사실 기반의 르포이다. 더욱이 책이 출간한 2009년 6월 대한민국 사회의 축척도로 이 이상 소설을 찾기란 힘들지 않을까 싶다. 뿌연 안개 속에서 청각장애인의 가혹한 현실을 보지 못하는 무진시민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현실을 외면하는 바로 우리, 눈뜬장님들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작가는 연재 당시 초창기 압력을 받았으나 실시간 올라오는 독자들의 응원이 버팀목이 되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다. 다시 말해, 마치 인터넷 성지라고 불리는 ‘아고라(agora)’의 아고리언처럼 논객 역할을 공지영이 해낸 셈이다. 독자와의 새로운 만남의 장소 찾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화학작용을 불러일으킨 <도가니>는 한국의 독특한 인터넷 현실과 소설과의 새로운 시도와 방식의 긍정적 실마리를 찾은 첫 번째 소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