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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조용히! - 풋내기 사서의 좌충우돌 도서관 일기
스콧 더글러스 지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미국 애너하임 공공 도서관 사서가 쓴 ‘좌충우돌 도서관 일기’의 서평을 쓰는 지금, 모니터 위에는 음식물 반입 금지, 유해사이트 접속 오락 시 퇴관 조치, 소음, 소란 주의, 그리고 마지막 줄에 기타 문의사항은 데스크에 문의하라는 주의사항이 행정9급 공무원 명의로 붙어 있다. 그렇다. 짐작하신대로 지금 여기는 우리 동네 도서관 디지털 정보실 17번 컴퓨터이다.
요즘 같이 찌는 여름이면 난 시간이 날 때마다 집을 박차고 나와 도서관을 찾는다. 뭐, 책을 읽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나처럼 1/3 정도는 다른 이유로 온 사람들이라고 짐작하지만- 모인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돌아가는 에어컨의 혜택을 보기 위해서이다. 더욱이 정보자료실에서 컴퓨터 한 대를 끼고 앉아 망중한을 즐길 수만 있다면 이런! 시간이 어떻게 후딱 지나가는지 모른다.
PC방처럼 담배를 피우지도 않고, 흥분해서 “지금 쏴! 쏴!”하고 소리치는 덩치가 산만한 10대도 없고, 으슥한 곳에 미라처럼 큉하게 박혀서 도박사이트인지 음란사이트인지를 들여다 보는 이른바 페인도 없다. 하여, 이곳은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들르는 제2의 아지트면서, 에어컨 바람에 모니터 위를 살랑살랑 지나갈 때마다 문득 “정부에 세금을 좀 더 많이 내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유일한 장소인 것이다.
그런데 <쉿, 조용히!>의 저자 스콧의 분류에 의하면, 나는 ‘공공컴퓨터로 종일 포르노를 보는 아저씨’와 ‘도서관에 가전제품을 가져와 충전하는 아줌마’ 사이의 어디쯤에 속한다! 이럴수가!
주위에서 한창 온라인 강의를 받을 때 -혼자 기사 검색을 하고 있거나 채팅을 하고 있으면-가끔 광고처럼 뜨는 여자 연예인의 화보를 어쩔 수 없이 클릭을 하면서 옆 자리 눈치를 보긴 한다-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주위를 떠돌며,-감시라기보다는 뭐랄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알게 모르게 눈치를 주는 사서와 아르바이트 학생과 자원활동가의 압박이 있는 건 모르지 않지만, 가끔 노트북을 들고 오면서 덩달아 휴대폰을 충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난 사서를 비롯한 안내대 안쪽에 자리를 잡은 부류에게 적어도 골치를 주는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이 아주 착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애너하임과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수도권의 어디쯤 별 볼일 없는 그저 그런 중소 도시가-저자는 애너하임이 바로 미국에서 그런 도시라고 소개한다- 사이에는 1만Km 정도 거리 차이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지만, 이 책을 늘 나를 싸늘하게 노려보는 도서관 사서가 읽는 순간, 위에서 내가 속한다고 생각한 분류에 내가 속하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사서에 대한 내 모든 편견을 모조리 깨부수는 시니컬하다 못해 봉사정신이 투철해야 할 것 같은 도서관 근무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저자를 비롯한 책에서 언급한 수많은 동료들이 겪는 시시콜콜한 얘기는 꽤나 유쾌하다. (미국에서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자체를 아주 지겹고, 단순하며, 할 일 없는 이들이나 한다는 편견을 심어주기에, 대충 맞는 말이라고 본다만, 딱 좋은 책이다.) 정말 도서관 배경의 코미디 시트콤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 도서관 관련 도서-예를 들어 멜빌 듀이의 십진분류법 등등-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죽 치고 사는 노숙자, 게임이나 음란 사이트에 빠진 10대, 갈 데 없는 노인네들의 성가신 간섭, 약간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까지, 골치 아픈 성가신 일은 최대한 남에게 떠밀고 해결하는 대신 한 발 뒤에서 “지루한 도서관에서 가장 신나는 사건”을 보기에 몰두하며, 늘 도서관 지침을 내세우는 불량 공무원의 대표 격처럼 자신과 주위 동료들을 묘사했지만 적어도 가식이나 허위는 1g도 넣지 않고 솔직히 까발리고 있어서 밉지 않은 악동 일기를 보는 듯하다.
그렇다고 스콧이 무능한 사서라라는 얘기는 아니다. 당연히 저자 자신이 쓴 글이니 그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만, 재치가 넘치는 글만큼이나 도서관과 동네 주민들에 대한 애정이 여름에 먹어도 질리지 않는 도서관 근처 분식집 찐빵 속 단팥처럼 가득 배어난다.
아무튼 바라옵기는 도서관 사서계의 ‘우디 알렌’이라고 불릴 만한 스콧의 유쾌하면서도 솔직한 도서관 일기를 적어도 나를 어느 정도 꿰고 있는 우리 동네 도서관 사서들만은 읽지 않았으면 한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