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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 개벽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4년 4월
평점 :
조선 후기인 1860년 4월, 봉건사회의 사회경제적, 사상적 내부 모순이 서양의 종교와 무력에 의해 더욱 촉진될 즈음이었다. 위기 극복 능력을 상실한 유교와 불교에 반대하고 서학인 천주교에 대항하는 동학이 등장하였다.
철학자 김용옥이 쓴 <천명․개벽>은 임권택 감독의 1991년 영화 <개벽>의 원작으로 동학을 천명으로 알았던 사람들을 다룬 시나리오집이다. 전봉준과 최시형은 인내천의 새 세상을 같이 보았으나 가는 길이 달랐다. 전봉준이 반외세, 반봉건이라는 난국을, 동학을 매개 삼아 응축한 힘으로 타개해 나가고자 했다면 최시형은 종교적인 면을 강조하며 신원교조운동을 바탕으로 ‘멀리 뛰고자’ 했다.
최시형의 바람대로 인내천의 세상이 도래했다면 이후 일제와 6.25의 격정을 비켜갈 수 있었을까. 이제 와서 말할 수 있는 건, 전봉준과 최시형의 죽음 이후 기세를 소진한 동학은 그렇게 민중의 삶속에 단단히 뿌리내리지 못한 채로, ‘동학의 역사적 이해는 불행하게도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동학란”이라는 정치사적 사건의 틀’ 속에 갇혔다는 것이다.
미래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오는 것이며 ‘정보화시대’니 ‘제3의 물결’이니 하는 변화와 미래를 외부에서 찾는 의식은 식민지 의식의 전형이라는 신영복 교수의 지적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1세 교주 최수운의 죽음에 바라보며 “도술이 용하기 때문에 모가지가 안 떨어질 줄 알았다”던 백성들의 대화는 뜬소문에 홀릴 만큼 어수룩했다기보다는 믿을 수 없는 것, 믿지 못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극단의 믿음을 가져야만 견딜 수 있는 막장에 몰린 와중에 동학을 어둠을 깨면서 솟아오를 개벽으로, 정치적 사건으로 발화하길 바라면서 나온 순박함이다.
‘사물이 다 하늘님’이라는 순박한 믿음을 가지고 개벽(開闢)을 이끌어 내고자 한 해월 최시형의 방침은 개혁주의를 표방한 전봉준의 눈과 전봉준‘들’의 눈에 ‘민중의 현실을 외면한 관념의 사치주의자’로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허나 수없이 반복된 개혁의 바람이 이상주의적인 발상에서 멈추고 또 다른 억압의 형태로 변질될 때 ‘우리의 삶에 변화가 와야 되며, 우리의 생각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역설한 해월의 부르짖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봉준과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납접과 북접으로 갈려 대립된 상황에서, 동학의 와해를 가져올지 모를 기포(起包)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해월의 결단은 인간 평등과 회복을 중시한 동학사상이 품은 서글픈 운명의 결단이다. 그러나 교주로 모든 희생을 각오한 결단이야말로 동학이 말하는 천명(天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