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담 빠담, 파리>를 리뷰해주세요.
빠담 빠담, 파리
양나연 지음 / 시아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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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차게 도전한 파리 가이드, 하지만 1년 남짓한 파리 생활로 파리를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긴 한다. 다만 단순히 놀러간 게 아니라, 앞서 이끄는 가이드 임무를 맡았으니 그냥 1년은 아니고, 농축한 1년임에는 틀림없지 싶다.  

그녀는 특기가 한국말을 주물락 주물락 반죽을 하고 요리조리 자르고 더해 승부를 거는 개그작가인데, 말도 안 통하는 파리에서 가이드가 뭔 뚱딴지인가 싶다. 더욱이 파리 루브르 박물관나 오르세 미술관에 슬랩스틱 코미디의 전설 찰리 채플린 마네킹이라도 하나 있지도 않은데 전직과 연관이 없어도 너무 동떨어진 그곳으로 떠나는 도전은, 하면 못 할 것도 없겠지만, 평범한 장삼이사들 하기에는 만만치 않을 게 확실하다.  

더욱이 고참 개그작가에서 파리 가이드로의 전환이 우연히 딱 한 번 찾아간 파리 휴가에서 기인을 했다니, 양나연의 배짱이랄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이 책은 “너 뭐하니? 너도 인생 질러봐!”라는 당부를 어필한다.

1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개그작가 생활을 하는 그녀를 두고, “뭐야? 고작 1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일에 적응을 해서 인정받는 가이드가 되었는데, 다시 그 길에서 과감하게 나오는 결단 역시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내키는 대로’ 떠나되 어느 자리에서건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살다 보니, 어느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고백은 미니홈피에서 읽을 만한 소소한 일상이지 싶지만 해피엔딩은 언제 알아도 참 즐거운 일이다.

이 책을 읽고선 그녀가 가이드로 일할 당시 홍삼 원액이라도 마신듯 힘을 얻었다는 가이드 평을 찾아보았다. 즐겁다, 재미있다는 칭찬은 다른 가이드도 마찬가지겠지만, 지루할 줄 알았던 박물관 관람이 ‘심하게 우끼시더’라는 평은 그녀만의 개그작가라는 독특한 이력에서 나왔을 터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학창 시절 내내 ’웃기는 반장‘이라는 딱지를 달고 살았다’는 책날개 소개로 보아 그녀의 천성 자체가 남을 즐겁게 하는 참으로 즐거운 사람이구나 싶다. 다시 말해 어렸을 적부터 만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재주를 타고난 그녀이고 보니 ‘인생 지르기’가 통하지 않을 수가 있나. 좀 엉뚱하지만 역시 사람은 능력 이전에 사람이 되는 게 먼저이구나 싶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앞으로 여행 작가의 꿈을 키우겠다는 그녀의 도전이 기대된다. 혹시 그녀가 길에서 만나는 사람이 내가 된다면 그 역시 즐거운 여행이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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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 바보의사>를 리뷰해주세요.
그 청년 바보의사
안수현 지음, 이기섭 엮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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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가난한 서울 변두리에서 크게 성장한 교회의 중심에는, 70년대 한국사회가 그랬듯이 카리스마 있는 목사가 있었다. 지금, 좋지 않은 일로 가끔 가십거리에 등장하는 그의 이름을 볼 때마다 자괴감이 들곤 한다. 사람을 보고 신앙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큰 낭패로 돌아올 수 있는지 절절하게 깨달았다.

“그 시절, 정말 아깝다.”

하지만 앞서 이끄는 누군가가 있지 않고 어떻게 믿음을 쌓아갈 수 있는가. 아예 삶 자체가 태어날 때부터 얽히고설킨 촘촘한 인드라망인 것을. <그 청년 바보의사> 故 안수현이 아직 세상에서 열심히 살고 있었을 때 만약 만났다면 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암병원에 입원이라도 했다면 한밤중에 찾아와 병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그를 볼 수 있었을까.

아무려나, 모르겠다. 내내 신앙인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일기 형식으로 남긴 책에서도 그를 만났다고 다 신앙인 되는 건 아니었듯 하니 그가 진짜 예수님이 아닌 이상 그의 진득한 노력이 다 결실을 맺지는 못했으니. 하지만 그를 만났다면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싶어 내 살아온 삶이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겠다.

의대를 다니는 내내, 인턴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공부하고 환자를 돌보는 내내, 집에 숨길 정도로 신앙생활에 충실했던 기록을 읽으면서 내 얼굴이 벌게지는 이유는 그가 의사여서도 기독교인이어서도 아니었다.

목사들의 간증을 보면 누구나 어려운 시절을 겪고, 열심히 살았다는 얘기쯤은 나온다. 하지만 곰곰이 들어보면 그런 기록은 결국 자신을 향한 기록인 게 얼마나 많은가. 자신이 성공하는 게 마치 하나님의 성공인양 자만에 빠진 그들의 설교는 정말이지 신물이 난다. 전도사도 아닌 안수현의 남긴 일지가 굳을 만치 굳은 내 맘을 녹인다면, 그 이유는 자신이 아니라 오로지 남을 향한 기록이기 때문이고, 그만큼 그가 세상 가장 낮은 자로 세상에 오신 그분의 삶을 따르려는 노력 때문이다.

적어도 <그 청년 바보의사>는 그의 내면의 신앙 기록이라기보다는 의사로, 친구로, 선배로, 후배로, 때론 길에서 처음 만나는 낯선 이로 남을 위해 기도하고, 선물을 하고, 위로를 하고, 보듬고, 안아주고, 도와준 기록이다. 연애를 줄이면 줄였던 그는 ‘독신의 은사’를 받은 게 아닐까 싶었다고 한다. 그의 기록은 아주 세세하다. 신앙 모임에 늦게까지 같이 한 후배들을 태우고 다니느라 ‘차를 구입한 지 39주 만에 25,000km를 돌파’했다는 식이다. 글 곳곳에서 재미가 톡톡하게 묻어난다. 사무적이지도 않고 자랑하려고 늘어놓은 치장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의 행적은 이스라엘을 내내 걷고 또 걸으며 사람들을 만났던 예수님의 궤적을 많이 닮았다. 의사로 환자를 돌보는 모습이 그러하거니와 예배당 안에서 두 손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늘 두 발로 부지런히 다니는 행적이 그러하다.

동료 의사들이 기억하길, 그는 의대 과정에서 낙제를 한 적도 있고, 성적도 뛰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00년, 의약분업으로 대부분의 의사들이 파업에 나섰을 때, 햇병아리 의사인 그는 병상을 지켰다. 엄격한 수직 사회인 의료계에서 별 신통치도 않는 인턴이 개인적인 신앙심을 내세워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다니,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 안수현 혼자 많은 병동을 책임지는 상황을 쌤통이라고 여겼을 테고, 다른 한편으로 그래도 그가 있어 다행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동료 중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지고의 가치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환자 곁에 함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료들이 그의 파업 불참을 당연하게 여겼으리라는 점, 한 가지는 확실한 듯하다. 종교를 달리할지언정 그의 손길이, 그의 기도가 환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안과 힘이 되었을지 머릿속에서 떠올려보면 내 가슴마저 뜨거워진다.

그 젊은 시절, 아깝다, 라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이제 그보다 더 많은 삶을 살았고, 앞으로 더 살아갈 나는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가. 안수현이 보여준 행적이 근저에는 신앙에 있을 것이나 신념을 향한 그의 자세는 지금 게으른 나를 두들겨 깨운다.

누구보다 이 책을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권위로 여기고 교회 안에서 틀어쥐고만 있는 목사를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이 읽어야 한다. 그리고 “의사는 병원의 제사장”이라는 전언이 하는 말의 참뜻을 알아듣는 의사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변에서 보면 예수님은 고사하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정말 했는지 의심스러운 의사들이 꽤 많다.

“(유다는) 요셉을 애굽에 팔아버렸던 형이지. 그는 며느리 다말에게서 아이까지 낳는 패륜을 저지르는 사람이야. 그의 인간성은 죄악덩어리지만 단지 예수님의 계보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점점 더 주님을 닮아가거든. 나도 그렇게 되길 바라.”

그의 미니홈피에는 그가 ‘부재의 사역’을 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온다. 그는 죽었으나 여전히 살아 있다. 살았으나 죽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이제 그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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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을 리뷰해주세요.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
윤준호 외 지음 / 지성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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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웨스트 환경기구의 수석 연구원 존 라이어가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에서 첫 번째로 소개하는 물건이 바로 자전거다. 요즘 연비를 올린 하이브리드 자가용이 족족 출시되고 있지만 두 발로 직립보행을 하는 대신 디스크, 관절질환, 치질이라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인간에게는 역시 두 발로 달리는 자전거가 제격이다. 

경제적이고 윤리적이며 환경친화적이며 몸 건강과 정신 건강에 두루두루 좋은 자전거 타기의 장점은 자전거 애호가 아홉 명의 소회를 담은 <자전거,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에서 두고두고 강조하는 부분이다.  

이들을 두고 대한민국 대표 자전거 애호가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아무려나 자전거에 푹 빠진 이들의 면면을 보면 밴드 멤버, 음악 평론가, 만화가, 라디오 디제이 등등 자동차의 속도만큼이나 자본주의의 정점을 향해 치달리는 한국 사회에서 나름의 독자적인 생존법을 구가하는 이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자전거 메신저(택배)인 지음 씨인데, 기호를 넘어 삶에서 우러나오는 자전거에 대한 그의 얘기는 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목표를 향해 고속도로의 일직선을 추구하는 자동차와는 달리, 가는 길 내내 시골길 마냥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자전거와 그들의 삶이 조화를 이룬 덕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누구라도 어린 시절부터 배우기 쉽고 간편한 자전거와 함께 한 추억이 있지 않은가.

운동과는 담을 두 겹으로 쌓고, 삼겹살을 자랑하던 내가 음식조절을 하지 않았음에도 한때나마 10Kg 감량을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 덕분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전거를 다시 끄집어내는 게 맞는데, 저자들처럼 마냥 즐거워할 수만도 없는 게 나름 사연이 있다. 우선, 이 자리를 빌어서 대략 5~6년 전 초봄, 충정로 파출소 앞에 세워두셨던 자전거 주인에게 심심한 사과를 보낸다.  

설마 파출소 앞에 두었는데, 하고 안심을 하셨겠지만 새벽 2시까지 원치 않는 술에 취한데다 지갑을 잃어버려서 집은커녕 사우나를 갈 수도 없는 상황에다 파출소의 환한 간판 덕에 자전거가 흐릿한 눈에도 단박에 들어왔다. 

아무려나 느닷없는 객인을 싣고도 얌전히 달려주는 자전거가 쓰린 속을 달래주었다. 슬슬 속력을 내봤다. 새벽 찬 기운이 술기운을 슬슬 몰아내주기도 했지만 오랜 만에 타본 자전거는, 어린 그 시절처럼 제법 흥미진진한 구석이 있었다. 

차마 차도로 나갈 엄두는 못 내고 인적이 드문 인도로 슬슬 달렸는데, 지하도 말고는 건널목을 좀처럼 찾기 힘든 세종로 4거리 앞에서 냅다 이순신 동상 앞으로 가로질러간 기억이 생생하다. 쉬다가 타다가를 반복하면서 장장 여섯 시간 걸려서 기어이 집에 도착했다. 바로 출근을 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난 냅다 퍼져서 오후 늦게까지 잠이 들고 말았다. 

아! 사과를 한다고 해놓고서는 절도 행각을 마치 추억 여행처럼 기술하고 말았다! 이왕 말나온 김에 좀 더 뻔뻔하게 들이대자면, 그때 자전거가 없었다면 아마 길바닥에서 노숙을 하다가 구완와사가 왔을지도 모르거니와, 까맣게 잊고 지냈던 자전거의 매력을 되찾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새벽녘에 잠자는 서울 한복판을 관통하는 기분과 온몸이 녹이 슨 듯 어마어마한 근육통에 시달렸던 한 주가 떠오른다. 

미술평론가 반이정의 ‘두바퀴의 수난사 : 빈곤한 자전거 도둑들의 도시’를 읽고는 내내 가시처럼 걸려 있던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이후 마당 한쪽에 있는 자전거를 볼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결국 이웃집 아이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그 이후로 사거나 받아서 자전거를 내내 타고 다녔는데, 인과응보인지 툭하면 도난당했다. 지하철 입구 거치대에 세워둔 수십 대의 자전거 중에서 내 자전거만 쏙 없어졌을 때에는 정말 누가 보고 있나 싶기도 했다. (그때 이후로 번호키 자물쇠는 사지 않는다.) 

딱 봐도 질긴 녀석으로 자물쇠를 구해 걸었더니 안장을 쏙 빼가는 일이 벌어졌다. 일부러 키에 맞춘다고 싯포스트(seatpost)를 늘이고 전립선 보호 안장으로 바꾼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벌어진 일이었다. 이후로 목(?) 없는 자전거는 창고에 처박힌 채로 나올 줄을 모른다. “타고 가다가 그냥 사고나….” 저주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다가 멈춘다. 

하! 누가 누구를 탓하랴! 그리하여 자전거 주인께 사과를 올린다. 자전거 저주를 제발 풀어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내 자전거를 가져간 이들이여! 부디 오래오래 아껴주길 바란다. 

주자가 <근사록>에서 말하길 ‘공자의 논어를 읽어서, 읽기 전과 읽은 후나 그 인간이 똑같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는 없다’라고 했던가, <자전거, 아홉가지 매력>을 읽고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면 구태여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니.

아무래도 이야기가 많이 빗나갔지 싶은데, 뭐 이런 게 또 자전거가 건 저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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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마음>을 리뷰해주세요.
느림보 마음 - 시인 문태준 첫 산문집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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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살이에 몸이 익숙해졌지 싶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더운 날씨 탓도 있을 게다. 조금만 허둥대도, 마음이 조급해도 쉬이 지쳐 떨어진다. 만사가 귀찮은 늘어진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두리번거리고 나서야 내 주위에는 뭐 하나 느린 게 없다는 걸 알아챘다. 

끓은 물만 부으면 되는 사발면이 박스 채 보이고, 몸집이 날렵한 노트북은 엉뚱하게 책 사에 깔려 있다. 무게가 가볍다고 해서 샀다가, 느린 처리 속도에 열불이 나서 대충 치워버린 애물단지다. 하지만 이도 어디에 있든지 쉬지 않고 빨리 빨리 뭔가를 하겠다고 부러 가벼운 걸 고른 것이다. 

폭염 속에서 옥수수대가 근엄한 장수처럼 굵어지고 있습니다. 폭염 속에서 풀들이 허공의 계단을 한 뼘씩 올라서고 있습니다. 나 스스로에게 의지해서 마음이 퇴전하지 아니하고, 어지러워지지 아니하고, 깨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여름 햇살이 우리에게 소원하는 삶의 내용입니다. 그것이 풍성한 가을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이 여름을 멋지게 지내는 최고의 피서법입니다.  <느림보 마음> ‘여름의 근면’(31쪽) 중에서 

나는 문태준 시인의 당부와는 정 반대로 여름을 나는 중이다. 그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더참을성이 없이 빠르고 간편한 편의점식 도시생활에 길이 들 때로 든 탓이다. 참을성이 없다보니 가을 결실을 준비하는 자연의 이치를 견디지 못하고 에어컨 바람을 쫓아 건물 안에 틀어박혀 산다. 덜컥 이렇게만 살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그나마 책에 재미를 붙이면서 달뜬 마음을 가라앉힌다지만 것도 한참 멀었다. 쉽게 쉽게 읽히지 않으면 금세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문태준 시인의 첫 산문집 <느림보 마음>은 빨리 읽을 수가 없었다. 짧은 글 한바닥 읽을 시간이 딱 사발면 한 끓일 정도면 족하지 싶었는데, 어림없다. 두어 페이지 남짓한 곳곳에 시인이 길러 올린 빛나는 문장이 눈길을 불러다가는 붙잡고 놓질 않는다. 

‘박무(엷은 안개)는 빗으로 공중을 한 번 빗겨주는 정도입니다.’, ‘나는 매병의 구멍에다 입김을 불어넣기도 했습니다. 한 줌의 안개 같은 소리가 매병 속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의 추위로 연못은 살얼음이 얼었습니다. 살짝 얼어서 천으로 얼굴을 가린 여인 같습니다.’ 누가 시인 아니랄까봐, 시어로 적당한 구절들이 눈에 들어와 박혀서 한참을 깜박거리면서 머물렀다. 

그렇대도 산문집에서 맑고 소박하게 풀어놓은 시인의 삶은 잔치국수처럼 평범하고 무난하다. 그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내와 아이들이 산다. 시골에는 명절 때 찾아뵙는  부모님이 계신다. 

시인이라고 왜 남들처럼 수상하게 돌아가는 세상 꼴에 타박하고 싶지 않고, 거들고 싶지 않겠냐만 그는 밖에서 온 것들의 나팔수로 떠들고 풀어버리지는 않는다. 다만 내면의 우물에 비치는 자신을 들여다본다. 깊은 우물물에 비치는 풍경은 눈이 익을 때까지 한참을 바라봐야 하지만, 한 번 보이면 거울처럼 좀처럼 흔들리는 법이 없다. 그 안에는 따뜻한 화로 같은 고향, 풀을 뜯는 소의 느긋한 담담함이 있다. 

‘사실 가장 감동적인 말씀은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말씀’으로 ‘순하고 무던한 말씀들 앞에서는 머리를 깊숙이 조아리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소박한 말씀은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는 당부, “집안은 모두 편안하지?”라는 안부 인사, ‘이제 오느냐?’처럼 ‘입안에 넣고 굴리면, 첫맛은 쓰고 나중에는 단맛이 입안에’ 도는 말들이라는 데, 내 입에서도 굴려보니 참말이다. 

나도 쓰지 않는 말은 아니지만 입치레로만 여기고 쉬이 흘러버리고 말아 쓴맛도 채 보기 전에 뱉어버렸구나 싶다. 느리게 산다는 것, 그것은 귀와 눈과 혀와 코로 이 우주를 만나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이 오래 내 안에 남길 바란다. 평범하다는 게 감당도 못할 욕망에 치어 신기루를 눈으로 쫓는 삶과는 좀 다른 것이라고, 꾸짖지 않고 좋은 말을 고르고 골라 머리를 쓰다듬듯이 조근조근 나누는 말에, 애초 다른 건 뭐든 반발부터 하고 나섰을 마음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말복이 지났다. 이 여름을 윙윙 기계 도는 찬바람 밑에서 코를 훌쩍일 게 아니라 왕성하게 몸피를 늘리는 나무 그늘이라도 찾아가 생명을 불어넣는 순하고 느릿느릿한 바람에 몸을 맡겨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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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가 팍팍하게 돌아가는 이 마당에, 쌍용 사태를 봐도 그렇지만 직장을 다닌다는 것,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안 좋은 속에 어거지라도 밥을 밀어넣고, 또 만원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밀어 넣는 것이, 문득 그래도 고마운 일이구나,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곧 이렇게 사는 게 사는 건 아닌데, 라는 자괴감도 들고야 마는데... 그래도 자가용을 끌고 다닐 처지가 못되는 대신 내 가방에는 늘 책이 들었다. 직장인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 자신 없지만 내 기준에서 꼽는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느림보 마음- 시인 문태준 첫 산문집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09년 7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09년 08월 14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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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마음은 빨리 읽을 수가 없다. 두어 페이지 남짓한 단락이 길어서가 아니다. 문태준 시인이 길러올린 문장 속에, 빛나는 단어 하나하나를 업수이 지나치지를, 차마 못했기 때문이다. 빠른 세상에서 꼭 필요한 내 마음의 저감장치.
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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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민에 직격을 날리는 제목을 달고 나온 <고민하는 힘>은
두껍지 않은 책 구절구절마다 강상중이 말하는 사유의 놀라움을 담았다.
결국 고민하지 않는 자가 직장에서건, 집에서건 실패하기 마련이다.
고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힘을 기를 것!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13,200원 → 11,880원(10%할인) / 마일리지 66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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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전언은 직장에서 잘릴 고민에 머리카락이 허옇게 변하는 요즘, 꽤 든든한 염색약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어차피 니들 잠재적인 백수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백수로 살 수 있는 재미있는 방법을 찾아라."라고 조언한다. 그녀가 꼽은 백수(?)의 왕은 바로 임꺽정 & 청석골 패밀리~.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6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09년 08월 14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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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이 만난 사람들 중에서 저자 김정운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사회구조적 환원주의 이전에 심리적 개인적 환원주의에 따라 살라는 그의 당부가 꽤 와닿는다. 그가 몰고 다닐 캠핑카에서 같이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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