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의 파스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보통날의 파스타 - 이탈리아에서 훔쳐 온 진짜 파스타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요리를 하는 사람의 에세이란 책 소개글을 보았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예전에 읽었던 빌 버포드의 <앗 뜨거워 Heat>을 떠올렸다. 세계적인(?), 혹은 훌륭한 요리사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Heat>은 읽는 내내 풍부한 감성과 묘사로 나를 즐겁게 했었다. 현재 셰프로 일하고 있다는 지은이의 프로필로 <보통날의 파스타>(왠지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라.. 표지색도 비슷하고 말이다. 차별화가 덜 된 듯;;) 역시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그러나 이 책은, 내가 원하던 그런 류의 책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 요리사가 되었는지, 요리를 배워가는 과정이 얼마나 힘겹고도 즐거웠는지,와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다만 음식에 대한 선호도 같은, 간단한 '취향'이 언급될 뿐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타인의 일면을 볼 수 있다는 즐거움에 에세이를 읽곤 하는데, <보통날의 파스타>에서는 그러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해 몹시 아쉬웠다. 이 책은 에세이라기 보다는, 일반인인 우리가 알지 못하는 '파스타'의 세계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요리 분야의 교양서(?)이다. 더 쉽게 말하면 "파스타에 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부제를 붙이면 딱 어울릴 책인 것이다.  

 예전에 이탈리아 요리 전문점에 가서 파스타를 먹자는 지인의 말에, 난 스파게티를 먹겠다고 말해서 모두가 민망해한 기억이 있다. 오로지 비국수류만 파스타라고 생각하고 국수류는 무조건 스파게티라고 생각했던 내 무지함에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취향의 문제를 떠나서, <보통날의 파스타>는 나에게 몹시 반가운 책이 아니었나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책 속의 파스타 세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수많은 파스타의 이름과 레시피와 맛이 존재했던 것이다. 한국 사람인, 그리고 요리사도 아닌 내가 그 많은 파스타를 언제 경험해 보겠냐마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더 유용한 책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적재적소에 배치된 사진(시인인 최갑수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시인의 시는 한 편도 접해보지 못했다)이 글과 조화를 이뤄 맛깔나는 책을 만들어냈다.  

 요리와 관련된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고 요리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글쓴이가 종종 언급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성격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고, 노부부가 운영하는 허름한 나만의 '타볼라 칼다'도 내 손으로 찾아보고 싶었다. 그들의 이른 아침과 따뜻한 점심, 그리고 늦은 저녁까지 함께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보통날의 파스타>의 책장을 다 넘기고 나서 다음으로 읽을 책은 이탈리아 여행에 관련된 책일 듯 하다.  

덧) 이것은 요리를 싫어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인데, 요리와 관련된 에세이를 읽는 사람은 요리사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 유명한 셰프가 자신의 레시피를 공개한들, 숙련되지 못한 일반인이 얼마나 그 맛을 재현해 낼 수 있을까. 에세이의 성격과 요리책의 성격을 구분하지 못한 편집처럼 느껴진다. 물론, 완성된 요리 사진과 함께 실려있는 레시피를 보고도 해먹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한탄일 수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죽지 마라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인간극장에 출연한 그들의 이야기, 인간극장과 다른 점을 보여줬어야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Quil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최양일 감독의 영화 <퀼>. 감독의 전작을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영화가 아닐까. 낭자한 피도, 눈살을 찌푸리는 폭력도, 가슴 절절한 인생도 등장하지 않는, 최양일 감독의 착한 영화가 바로 <퀼>이다. 설마 '정말' 동물이 등장해서, 동물의 이야기로 끝나는 영화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그 설마가 바로 정답이다. 이제껏 내가 알고 있었던 '최양일'스러운 면모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순하고 귀여운 강아지의 이름이 퀼,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조용하고 나른한 분위기의 목소리를 가진 내레이션이 퀼이 출생부터 맹인 안내견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을 안내하는데, 어찌나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고 화면이 사실적인지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했다. 순수혈통을 가진 개가 아니었던 탓에 안내견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던 퀼은, 주인의 간곡한 요청에 주의를 끄는 사람에게 바로 달려가지 않는 테스트를 통과한다. 여러 마리의 강아지 중에 선택된 단 한 마리의 강아지가 된 퀼은, 안내견으로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지는 못하지만 옆구리에 점이 있는 특별함으로 사랑받는 개이다. 그런 퀼이 만난 인생의 파트너는 와타나베 미츠루라는 고집불통의 맹인아저씨. 아들과 딸,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미츠루 아저씨는 퀼을 파트너보다는 '개'로 취급하면서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지만, 곧 함께 해나가는 기쁨을 알게 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객관적인 묘사라는 점에 있다. 이제껏 봤던 동물 영화는 항상 '감동'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였다. 동물은 주인을 위해 헌신하다 못해 목숨을 바치기도 하고, 주인은 항상 자신을 위하는 동물을 위해 눈물을 흘린다. 관객은 그런 영화를 보고 자신의 애완동물을 생각하며 감정이입을 하고, 역시 눈물을 흘린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공식적인 영화'를 상당히 많이 보아왔고, 동물이 주인공인 영화는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다. <퀼>을 선택한 것도 일단은 최양일 감독의 영화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사실은 울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 울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양일 감독의 <퀼>은 감정의 과잉이 없다. 눈물이 흐를 정도로 헌신적인 모습도, 눈물이 흐를 정도로 안내견을 사랑하는 주인의 모습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일을 담담하게 하는 퀼과 그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미츠루 아저씨, 게다가 퀼을 마땅찮게 생각하는 아저씨의 아내와 아들이 등장할 뿐이다. 물론, 그들이 친해지는 과정이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역시 담담하게 표현되어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 눈물이 이미 말라버린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영화 감상평에도, 영화잡지의 추천사에도, 눈물이 흐를 각오를 하고 티슈를 준비해서 영화를 보라고 하지 않았는가. 강아지의 귀여운 모습에 감탄하고, 동물과 함께 하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에 흐뭇해하긴 했지만, 이러려고 본 것이 아닌데.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라, 이제까지와는 다른 동물 영화라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눈물이 흐르지 않는 영화라니 왠지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2010년 1월 1주 !

 요즘, 극장가는 <아바타>의 기세가 무섭다. 대부분의 스크린을 <아바타>가 장악하고 있고, 그 뒤를 이은 영화들 역시 <전우치>나 <셜록홈즈>, <나인>, <더 로드>와 같은 대작(제작비를 꽤 많이 들였거나 인지도가 상당히 높은 배우를 기용한 경우, 광고를 많이 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단지 이러한 시기에 개봉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작은 영화들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  

 

'강아지 퀼을 둘러싼 모두의 사랑'을 경험하는 즐거움  

 최양일 감독의 특이한 영화, <퀼>. 옆구리에 반점이 있는 강아지 퀼이 자라서 맹인 안내견이 되기까지, 첫 훈련부터 첫 파트너를 만나 훌륭한 역할을 해내기까지의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진 영화 <퀼>이다. 겨울에 보면 더욱 훈훈하고 감동적일 영화이고, 영화의 대부분을 이끌어가는 강아지 퀼은 귀엽고 친근한 생김새와 성실한 연기로 탄성을 자아낸다. 퀼을 훈련시키는 조련사나 젖을 뗄 때까지 키워낸 사람들, 안내견이 되어 만난 맹인 아저씨와 그의 가족이 보여주는 '퀼'에 대한 사랑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퀼, 그리고 퀼을 매개로 소통하는 사람들 역시 보기 좋다. 때리고 부수고 날아다니는 즐거움은 없지만, 사랑으로 화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은 분명히 있다.  

  

'상처를 감싸안는 자매의 사랑'에 안도하는 즐거움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피를 나눈 자매 사이에도 마찬가지. 하물며 15년 동안 만나지 않은 자매 사이라면 더욱 그렇다. 언니 줄리엣이 감옥에 들어간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언니를 만난 적이 없는 동생 레아는 줄리엣이 감옥에서 출소하는 날, 언니를 데리러간다. 그 때부터 두 사람 사이의 15년이란 간극을 좁히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다. 닫힌 마음을 열고, 쌓인 오해를 풀기 위한 노력은 점점 성과를 보이는 것 같다. 줄리엣을 경원시하던 레아의 남편이나, 레아의 동료 역시 줄리엣을 향한 시선이 달라졌다.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과정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비밀이 밝혀졌을 때, 서로 안아주고 같이 울어주는 자매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고난을 극복하고 마침내 피어나는 사랑!과 같은 거창한 문구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사랑이 있는 영화다.  

 

'어긋난 이야기를 끼워맞추는' 해석의 즐거움 

 찰리 카우프먼의 이름은 익숙하다.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로 '이런 세계가 다 있다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더니, <이터널 션샤인>으로 감동(?)의 세계로 이끈 각본가다. 지나치게 주관적인 느낌의 나열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찰리 카우프먼은 헐리우드에서 인정받는 각본가다. 그가 이번에 감독까지 겸한 작품이 바로 <시네도키, 뉴욕>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사는 연극연출가 케이든(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은 교외에서 지역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화가인 아내 아델(캐서린 키너)은 자신의 경력을 쌓고자 어린 딸 올리브를 데리고 그를 떠나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거대한 연극무대를 올릴 일생의 기회가 찾아오지만 연극 속의 삶과 케이든의 실제 삶의 경계가 뒤엉킨다. 이때부터 관객은 뒤엉킨 연극과 실제(영화)를 구분해서 이야기를 끼워맞추기 위한 해석에 도전하게 된다. 선과 악이 명확하거나, 보기에 쉬운 영화는 아니지만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 이야기를 해석하는 즐거움은 있는 영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 I’ve Loved You So Long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란 영화의 제목만으로, 나는 절절하고 애닯은 사랑이야기가 이 영화의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보는 듯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창백한 얼굴이 가득 담긴 포스터와 제목이 마음에 와 닿아서 선택한 영화였다.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굉장히 도도해 보이는 이미지 때문에 내게는 그다지 친근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배우였지만, 이번 영화의 포스터에서는 왠지 인생의 고난을 한껏 짊어지고 있는 '보통의' 여자처럼 보여서 괜히 마음이 갔다.  

 영화가 시작되고, 영화가 진행되고, 영화가 끝나면서 나는 솔직히 어리둥절했다.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영화가 눈앞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남자를 일생동안 사랑해 온 여자의 이야기도, 한 여자를 평생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혼자 앉아 연거푸 담배를 피우는 줄리엣(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상당히 인상적인 플롯으로 진행된다. 자신의 6살 난 아들을 죽인 혐의로 15년을 감옥에서 복역한 줄리엣과, 15년만에 언니를 만나는 동생 레아(엘자 질버스테인,이라고 쓰고 있긴 하지만, 프랑스 영화에 낯선 나로서는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외에는 익숙한 배우가 단 한 명도 없다)가 시간 차이를 극복하고 진정한 자매로 거듭나는 이야기가 하나. 그리고 레아의 남편 뤽, 그들이 입양한 두 딸, 뇌손상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뤽의 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난 줄리엣을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가 또 하나. 줄리엣이 감옥이라는 공간을 나와 '세상'에서 살아가고 소통하는 이야기가 또 다른 하나.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도대체 줄리엣이 사랑한 <당신>은 누구지?'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15년 동안 감옥에 있던 줄리엣에게 사랑하는 남자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아들을 죽였으니 남편과는 이미 멀어졌고, 부모님은 줄리엣을 없는 딸로 여기며 면회 한 번 오지 않았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동생 역시, 그런 부모님 아래서 '언니는 없는 존재'라는 세뇌를 당하며 자랐기 때문인지, 면회를 가지 않았다. 감옥을 나와서 만나는 남자들이라고는 보호관찰관이나 레아의 동료 정도인데, 그들과의 관계도 진도가 나아가지 않고 미지근하다. 그러니 줄리엣이 사랑할 만한 사람의 윤곽은 전혀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 편의 미스터리로 읽히는 흥미진진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미스터리는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줄리엣이 꽉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그렇게 두근두근할 수가 없었다. 시를 읽어주겠다는 조카에게 버럭 화를 내던(나중에는 왜 화를 냈는지 이해하게 되었지만) 줄리엣이, 조카에게 책을 읽어주고 피아노를 가르쳐주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다. 레아와 줄리엣이 같이 피아노를 연주할 때에는, 그들 뒤에서 춤을 추던 딸아이처럼 나도 하늘하늘 춤을 추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 영화는, 여성의 인생을 담은 영화이고 가족의 사랑을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미스터리는 조금은 늦게 밝혀져서 왠지 날 맥빠지게 한 느낌도 들지만, 미스터리가 밝혀지기 전까지의 이 영화도, 미스터리가 밝혀지고 난 이후의 이 영화도, 좋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0-01-0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지 못하는 영화였는데 포스터의 느낌도 그렇고 제목까지 마음에 쏙 들어요. 게다가 그린네님의 리뷰를 읽고 나니 반드시 봐야 할 영화가 되버리네요. 혹시라도 잊을지 몰라 언제라도 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이 리뷰를 별찜해 두었어요.

그린네 2010-01-11 01:26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영화, 의외의 발견이었어요^^ 포스터, 상당히 괜찮죠? 왠지, 다락방님도 이 영화 좋아하실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