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일상 토크쇼 <책 10문 10답>
1) 당신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을 알려 주세요.
= 기자였던 빌 버포드가 요리를 배우는 과정이 담긴 책. 당연히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잔뜩 등장합니다. 이탈리아 요리라고는 파스타나 스파게티 정도로만 알고있던 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어찌나 제대로된 이탈리아 요리를 먹어보고 싶던지요. 지금도 생각만 하면 무의식적인 반사작용으로 침이 고이는 듯 합니다. 언젠가 정말 최고의 요리사가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식사해 보고 싶어요. 흐흣.
2) 책 속에서 만난, 최고의 술친구가 되어줄 것 같은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 제가 가지는 술자리의 경향은 항상 좀 우울한 편이예요. 기쁜 날에는 술을 잘 안 마시게 되고, 답답한 날이나 우울한 날에는 꼭 술을 찾게 되더라구요. 그런 성향이다보니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보다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과 마시게 되구요. 책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주인공이 바로 <다크>의 미로예요. 인생 참, 험난하죠. 여성이지만 하드보일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던, 혹은 스스로 택했던, 미로예요. 마흔이 되면 삶을 접겠다던 미로. 그런 미로라면,, 말 없이도 술을 들이킬 수 있을 것 같고, 제가 겪는 힘듦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3) 읽는 동안 당신을 가장 울화통 터지게 했던 주인공은 누구인가요?
=울화통이라는 단어는 여러 모로 해석할 수 있겠죠? 일단은 <Q&A>라는 작품의 주인공, 람 모하마드 토마스. 주인공 자체보다는 삶이 너무 힘들고 엇갈리고 꼬여서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그런 면에서 인생이 왜이렇게 안 풀리는가, 퀴즈쇼에서 우승한 일생일대의 기회도 체포라는 형태로 잃어버리게 된 주인공의 삶이 안타까워서 울화통이 터졌답니다.
<연을 쫓는 아이>의 경우는 중반까지 역시,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맹목적인 충성심(?) 혹은 신뢰감을 보여주는 하산이 그러했고, 알 수 없는 질투와 나약함에 괴로워하는 아미르가 그러했지요. 하지만 정말 성격 자체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울화통 터지게 만들었던 주인공은 <흰 옷을 입은 여인>의 로라예요. 연약함, 천상 여자의 표본이라고 할까요? 자기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고, 끝까지 주위 사람들의 보호만 받다가 끝나버리는 전형적인 여성이죠.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더 강하다면, 언니 마리안을 조금만 닮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물론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면 이 소설은 개연성도 없어지고, 아예 사건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아무래도 보는 내내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더군요.
4) 표지를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표지는 책의 얼굴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표지/최악의 표지는 어떤 책이었는지 알려 주세요.
=최고의 표지로 꼽고 싶은 책은, 북스피어의 미야베 월드 제2막 시리즈예요-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라 읽으면서 옛스럽기도 하고 은근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분위기를 많이 느꼈는데, 읽지 않아도 표지를 통해서 이미 짐작하게 되더라구요. 아름답다고 표현할 만큼 좋은 표지라고 생각해요.
=최악의 표지는,, 제 개인적 성향이겠지만 <밀레니엄>이나 <살인예언자>나 <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과 같은 표지예요. 7,80년대의 책을 보고있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구매의사를 현저히 떨어뜨리고, 들고다니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 사람 사진이나 그림을 차용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5) 책에 등장하는 것들 중 가장 가지고 싶었던 물건은? (제 친구는 도라에몽이라더군요.)
=도라에몽과 비슷한 느낌인데, <테메레르>나 <퍼언연대기>시리즈를 읽으면서 등장하는 '용'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냥 단순한 애완동물의 수준을 넘어서 말하지 않아도 아는 감정을 공유하는 사이라는 거, 굉장히 멋있게 느껴졌거든요. 목숨이 아깝지 않을 사이라는 점에서도, 헌신적이라는 것에서도 부러웠구요. 왠지 굉장히 든든할 것 같아요.
6) 헌책방이나 도서관의 책에서 발견한, 전에 읽은 사람이 남긴 메모나 흔적 중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학교 도서관에서,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이란 시집을 빌렸는데, 같은 과 친구, 그것도 단짝 친구의 대출 영수증이 끼어 있어서 굉장히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나요. 저희 학교는 기계로 대출을 받으면 대출일자와 반납일자, 그리고 학번과 이름이 찍히는 영수증을 발급해 주거든요. 그 친구가 빌리고 난 다음 일년도 더 지난 후에 제가 빌렸는데 그 영수증이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아마도 그 사이 아무도 빌리지 않은 것 같아요, 대중적인 시인은 아니니까..^^ 정말 신기해서 핸드폰으로 찍어서 서로 우정의 증표처럼 한동안 나눠 가지고 있었어요^^
7) 좋아하는 책이 영화화되는 것은 기쁘면서도 섭섭할 때가 있습니다. 영화화하지 않고 나만의 세계로 남겨둘 수 있었으면 하는 책이 있나요?
=<새의 선물>은 출간된지 좀 된 작품이고, 꽤 유명세를 탄 작품이라 혹시 드라마는 단막극으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가 보지 않은 이상, 어쨌든 영상화는 안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책입니다. 소녀가 주인공이고, 이 소녀는 굉장히 냉소적인 캐릭터라 심리상태를 서술해주는 1인칭 시점이 아닌 이상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되구요, 이 캐릭터의 특징을 잘 살리지 못하면 7,80년대 풍경을 그린 그저그런 드라마나 영화가 될 뿐이라 생각해요.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는 열심히 하는 큰 감동에 눈물을 흘렸던 작품인데, 왠지 영상화가 되면 그냥 진부한 느낌의 영화가 될 것 같아요. 얼마전에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는 책을 각색한 드라마를 보았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와 똑같이 달리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서 관심을 가졌었죠. 원작도 읽은 터라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훨씬 못 미치더라구요. 스포츠를 소재로 해서 감동을 주려고 한 의도가 뻔히 보이는 성장 드라마란 느낌이었습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역시 그렇게 표현될 지도 모르니, 그냥 소설로만 간직하고 싶어요.
8) 10년이 지난 뒤 다시 보아도 반가운, 당신의 친구같은 책을 가르쳐 주세요.
=여러 권이 있지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책은 <빨간 머리 앤>입니다. 사춘기 시절의 감수성을 자극하던 여리지만 강하고 긍정적인 앤은 정말 제 친구같은 존재였어요- 괜히 닮고 싶어서, 앤과 다이애나의 우정 맹세를 친구와 나눴던 기억도 나네요. 서점에 가도 괜히 한 번 들춰보고 안녕,하고 인사하고픈 마음이랍니다. <빨간 머리 앤>외에도, 여리지만 강한 베스와 강해보이지만 여린 조가 좋았던,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작은 아씨들>도 참 좋아했었구요, 생애 처음으로 읽었던 러브 스토리인 <키다리 아저씨>도 두근두근하며 읽었던 기억이 나요.
어른이 되고 난 지금, 가장 친구같은 책은 사실, <오만과 편견>이예요. 엘리자베스의 당돌함과 화려하지 않지만 사랑스러운 말솜씨에 완전히 반해버렸던. 다아시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런 아름다운 책입니다.
9) 나는 이 캐릭터에게 인생을 배웠다! 인생의 스승으로 여기고 싶은 인물이 등장하는 책이 있었나요?
=황석영의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항상 고난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픈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예요. 바리데기나 심청이의 경우에도 완전한 창조적 인물은 아니지만, 현대적으로 재조명한 인물들이라 더 크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살아야지,가 아니라, 인생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진흙 속에서도 진주를 찾는 사람이 있고, 행복과 불행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세상은 의외로 공평하다는 것. 불행이 가면 행복이 오고, 행복이 지나치면 불행은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것. 그러니 주어진 삶에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바리데기와 심청일 통해 배웠습니다.
10) 여러 모로 고단한 현실을 벗어나 가서 살고픈, 혹은 별장을 짓고픈 당신의 낙원을 발견하신 적이 있나요?
=<백년의 고독>에 등장하는 마을이요! 낮이 계속되기도 하고, 비가 계속 내리기도 하고, 현대 문물이라는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뒤늦게 들어오긴 하지만요;;) 환상과도 같은 곳. 정말, 사회나 제도에 구속되지 않고 '자연인' 그냥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곳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