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 읽은 좋은 책 <도둑들의 도시>와 <차일드 44>. <도둑들의 도시> 데이비드 베니오프라는 작가는 난생 처음 접하는데, 영화화되었다는 <25시>란 영화는 보지 못했고, 그가 시나리오 작업을 한 영화도 본 지가 오래되었거나, 볼 예정인 작품들 뿐이다. 그렇게 기대감을 갖지 않고 우연히 읽기 시작한 책이라 그런지, 의외로 좋았다..^^ 오랫만에 읽는 전쟁 소설-물론 전쟁의 과정을 담은 온전한 전쟁 소설이라고 보긴 어렵지만-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전쟁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평범한 행동 하나가 생사를 결정짓고, 그래서 항상 죽을 각오를 해야하는 그런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토록 아프고도 기쁜지 잊고 있었다.
<차일드 44>는 장르를 달리 하지만,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좋을 책- 스탈린 치하의 '완벽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목표 아래, 범죄가 없는 깨끗하고 살기 좋은 나라에 살고 있다고 믿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범죄 그 자체보다 더 깊게, 와닿았다. 책 분량이 결코 만만치 않으나 버릴 곳이 한 군데도 없다(사실, 라이사를 노리는 음흉한 의사이야기는 없어도 되겠더라만'')고 생각될 만큼 흡입력도 좋은 작품이었다.
결국, 아주 유명한 전쟁 소설 <캐치22>를 덜컥 구입- 아직 읽지 않아 좀 부끄러우려나? 그 외에도 스탈린이나 레닌 치하의 소련이 무척 궁금해졌다는.
나는 확실히, 단편 보다는 장편이 좋다. 그것은 나라는 사람이, 문체의 힘이라거나 문장이 주는 아름다움에 무감각하고 대신 서사가 가진 힘에 쉽게 감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로 만난 조이스 캐롤 오츠의 <멀베이니 가족>은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굉장한(?) 책이지만, 그 이야기가 너무 길어서 오히려 힘들었다. 글쎄, 모든 일이 벌어졌을 때부터 균열과 몰락과 또다른 화합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 화합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지나치게 고통스럽고 몰락의 과정이 반복적이어서 읽는 내가 지쳐버렸다는 데 있다. 이미 멀베이니 가족의 아픔에 휘둘리느라 진이 빠져버린 나는 그들이 보여주는 화합에도 별다른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조이스 캐롤 오츠의 단편이 문득, 읽고 싶어졌다.
<6인의 용의자>는 작가의 전작 <Q&A>를 정말, 감탄하면서 읽었기 때문에 기대를 상당히 많이 한 작품이다. 뭐, 이제는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워낙 유명해졌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드물 것이라 생각되지만, 어쨌든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과 재미가 아직도 기억나는 작품^^.. 그에 비해 <6인의 용의자>는 왠지 조금은 심심하달까. 이야기가 얽히고 설켜서 하나의 결론으로 치닫는 구성은 꽤 흥미롭지만, 제목 그대로 6인의 용의자를 각각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집중력은 떨어지는 편이다. 결국은 읽는 내내 그래서 어찌된 일이냔 말이다!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작 결말 부분에서는 뭔가 말끔히 해소된 기분보다, 작가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겨우 놓여난 기분이 들었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는 <오만과 편견>의 자칭 애독자로서, 아류작!이라는 고정관념 하에 보지 않으려 했으나;;; 읽고 나서는 전혀 후회없었던 작품이다. 만약 읽지 않았다면 후회했겠지. <오만과 편견>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욕 먹지 않을 정도로, 원작의 캐릭터나 플롯을 잘 살렸다. 읽는 내내 키득거렸고, 원작의 재미를 떠올렸으며,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인물들이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덕분에 이 작가가 집필하고 있다는 뱀파이어 헌터인 링컨의 이야기도 엄청 기대! ㅋ
한 때, 누구나 그랬겠지만 에쿠니 가오리에게 열광했던 적이 있다. 난 항상 바나나보다는 가오리였는데, <반짝반짝 빛나는>과 <낙하하는 저녁>에서 완전히 반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 그냥 딱 거기까지였다. 혹시나 하며 읽어보는 작품들은 그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 <좌안>도 마찬가지. 그냥, 늙어가고 있는 나 자신이 슬펐을 뿐이다.
<우안>, 큐의 이야기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츠지 히토나리 미안. 이제 좀 현실적인 이야기 좀 읽고 싶다.
<13번째 인격>은 단지, 기시 유스케의 작품이라 읽었고 그냥 읽은 것으로 만족한다. 난 원래 다중인격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사건 진행이나 결말 역시 예측하기 쉬운 쪽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기시 유스케의 데뷔작이니, 풋풋한 그의 필력을 확인하기에는 좋은 작품이다. 이와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것이 미미여사의 <크로스파이어>인데, 다중인격은 아니지만 초능력을 가진 여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의 작품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13번째 인격>의 여자주인공은 타인의 마음 속 목소리를 듣고, <크로스파이어>의 여주인공은 불을 지르는 염화능력을 지녔다는 것 정도의 차이랄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미미여사인 줄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몰입되지 않는 주인공이라니ㅠ 철저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실천하는 준코가 나중에는 자신을 합리화하는데.. 진짜 보기 싫더라. 미미여사님, 그냥 <누군가>시리즈(오래되어서 이름도 잊어버린;;스기무란가?)나 얼른 써 주세요!
<파일로밴스의 정의>로 처음 접한 반 다인. 글쎄, 내가 보기에 이 탐정은 내 취향은 아닌 듯. 소설가 김연수의 추천사가 더 좋았을 정도다. 넋을 놓고 읽었는지 나중에는 글의 서술자로 등장하는 '나'가 도대체 누구야!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는데, 솔직히 사건 전개에 있어서는 유령과 같은 존재라는. 전집이 나오면 또 살 지는 의문이다. <녹색은 위험>은 고전적인 매력이 있었지만, 놀랄 정도는 아닌 듯.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은 마음이 좀 아팠다.
<나폴레옹광>은 내가 어디서 읽은 듯한 작품이 꽤 많아서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 작품이다. 특히 '뻔뻔한 방문객' 편은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내용을 모조리 떠올렸는데, 도대체 어디서 알게 된건지는 알 수가 없어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시소게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써내려가서 굉장히 섬뜩한 느낌을 주는 단편들이 빼곡히 실려있다.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는 결혼과 육아와 여자의 삶에 대한 허무함을 가득 느끼게 하는 작품. 결혼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는. 흐흣.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는 생각보다는 별로. 이야기를 살짝 언급하고 재미있어지려는 데 끝나버린 느낌이랄까? <정신의 탐험가들>과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순서가 맞는지 모르겠네,, 저주받은 기억력ㅠ)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