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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 썸머 - (500) Days of Summ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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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있었다. 필연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있었다. 500일이 아니라, 1800일 넘게 만난 사람이 있었다. 사랑은 지속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착각. 사랑한다고, 도망가던 내게 끊임없이 이야기하던 사람의 입에서, 이제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때, 사랑은 끝났다.   

 혼자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혼자, 다시 잘 되기를 바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혼자, 그 사람이 나의 소울 메이트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혼자, 그 사람이 특별해서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은 세상에 그 사람밖에 없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

 1800일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안, 좋았던 적도 아팠던 적도 슬펐던 적도 기뻤던 적도 있었다. 혼자 하는 시간이 시작되니 아팠던 기억이나 슬펐던 기억은 슬그머니 사라진다. 함께 해서 행복했던 기억만이 조금씩 되살아난다. 그래서 혼자 하는 시간은 함께 했던 시간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진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머릿속에서는 둘만의 추억이 무한 반복 재생된다. 혼자 살아가는 시간은 의미없게 느껴지고, 과거에 파묻히고 싶어진다. 그게 안된다면 상상 속으로라도 도피하고 싶다.  

 그 시간의 기록이, 영화 <500일의 썸머>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보기에 괴로운 영화였다. 사랑이 끝난 뒤의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영화. 나는 그 사랑이 잘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래야 끝나버린 내 사랑에도 한 줄기 희망이 생길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마음이 변해버린 사랑에 희망이란 없다. 돌아오지 않는 사랑에 눈물 흘리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자.  

 정말, 사랑이 또 찾아 올까. 다른 사랑이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기억이 바래지는 그 만큼의 시간과 이 영화 <500일의 썸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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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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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화면이 흙빛이다. 사람도, 땅도, 하늘도, 나무도, 심지어 바다까지. 흙빛 화면 속에서 빛나고 있는 것은 '살아내겠다'는 의지를 가진 두 눈 뿐이다. 그 눈빛은 언제든 꺼질 준비를 하고 있는 듯 아슬아슬해서, 보는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원작을 읽지 않아서 영화를 원작에 비교할 수 없지만, 영화는 그 나름대로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충실한 재현이니, 주제의식을 깊이있게 담아내지는 못했느니 하는 말들도 원작의 품격을 모르는 내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비고 모텐슨의 연기는 훌륭했고, 아버지와 아들은 처절했으며, 암울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세상, 먹을 것이 없어 사람을 해쳐야 하는 날의 연속, 총을 손에서 놓고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고, 뺏지 않으면 빼앗기고 마는 세상. 이런 세상에 살게 된다면 어떨까. 남에게 능욕을 당하고 내 아이가 고통 속에서 죽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죽음을 택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선택을 한 사람이 있었다. 햇살이 내리쬐고 사랑이 가득한 밝은 세상에서 살아가던, 걱정없던 그 때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그랬다. 앞으로 다가올 두려움 가득한 세상이 서서히 펼쳐지고 있는데, 그 시절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랬다. 더이상 나아갈 힘도, 의지도 없어서 그냥 버려야만 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그랬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선택을 한 사람도 있었다. 지나간 날을 추억으로 그리워하지만, 나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한다는 의지로 두려움을 이기는 사람이 있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리라는 희망을 아들에게 심어주며, 추위와 배고픔과 두려움과 싸우는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었다. 세상에 가장 강한 것이 모성이라지만, 여기 그 보다 더한 부성을 지닌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런 아버지와 함께 모진 세상을 살아내는 아들은, 보이는 나쁜 것은 부정하고 보이지 않는 좋은 것을 믿고 찾으려는 아이다. 반드시 좋은 사람은 있다는 믿음이, 흙빛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그들의 생존전략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솔직히 의아했다. 그 어떤 즐거움도 없는 세상에서,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저렇게 살아내려고 애쓰는 건지.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서 살아갈 가치가 있는 건지.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해도, 더 나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보장도 없는 데 말이다. 바다 건너편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닌 삶인데도 그렇게 살아내려고 애쓰는 것이 의아했다. 살기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고, 살기 위해서 끝없이 걷는 그들은 이 편안한 삶 속에서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 더 나은 삶이란, 정말 상대적인 것인데도 항상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있는 마음이, 그냥 부끄럽다. 삶이란, 저렇게 무거운 것인데도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  

 덧붙이자면, 이 영화는 참,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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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uill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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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양일 감독의 영화 <퀼>. 감독의 전작을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영화가 아닐까. 낭자한 피도, 눈살을 찌푸리는 폭력도, 가슴 절절한 인생도 등장하지 않는, 최양일 감독의 착한 영화가 바로 <퀼>이다. 설마 '정말' 동물이 등장해서, 동물의 이야기로 끝나는 영화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그 설마가 바로 정답이다. 이제껏 내가 알고 있었던 '최양일'스러운 면모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순하고 귀여운 강아지의 이름이 퀼,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조용하고 나른한 분위기의 목소리를 가진 내레이션이 퀼이 출생부터 맹인 안내견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을 안내하는데, 어찌나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고 화면이 사실적인지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했다. 순수혈통을 가진 개가 아니었던 탓에 안내견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던 퀼은, 주인의 간곡한 요청에 주의를 끄는 사람에게 바로 달려가지 않는 테스트를 통과한다. 여러 마리의 강아지 중에 선택된 단 한 마리의 강아지가 된 퀼은, 안내견으로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지는 못하지만 옆구리에 점이 있는 특별함으로 사랑받는 개이다. 그런 퀼이 만난 인생의 파트너는 와타나베 미츠루라는 고집불통의 맹인아저씨. 아들과 딸,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미츠루 아저씨는 퀼을 파트너보다는 '개'로 취급하면서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지만, 곧 함께 해나가는 기쁨을 알게 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객관적인 묘사라는 점에 있다. 이제껏 봤던 동물 영화는 항상 '감동'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였다. 동물은 주인을 위해 헌신하다 못해 목숨을 바치기도 하고, 주인은 항상 자신을 위하는 동물을 위해 눈물을 흘린다. 관객은 그런 영화를 보고 자신의 애완동물을 생각하며 감정이입을 하고, 역시 눈물을 흘린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공식적인 영화'를 상당히 많이 보아왔고, 동물이 주인공인 영화는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다. <퀼>을 선택한 것도 일단은 최양일 감독의 영화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사실은 울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 울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양일 감독의 <퀼>은 감정의 과잉이 없다. 눈물이 흐를 정도로 헌신적인 모습도, 눈물이 흐를 정도로 안내견을 사랑하는 주인의 모습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일을 담담하게 하는 퀼과 그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미츠루 아저씨, 게다가 퀼을 마땅찮게 생각하는 아저씨의 아내와 아들이 등장할 뿐이다. 물론, 그들이 친해지는 과정이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역시 담담하게 표현되어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 눈물이 이미 말라버린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영화 감상평에도, 영화잡지의 추천사에도, 눈물이 흐를 각오를 하고 티슈를 준비해서 영화를 보라고 하지 않았는가. 강아지의 귀여운 모습에 감탄하고, 동물과 함께 하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에 흐뭇해하긴 했지만, 이러려고 본 것이 아닌데.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라, 이제까지와는 다른 동물 영화라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눈물이 흐르지 않는 영화라니 왠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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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 I’ve Loved You So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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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란 영화의 제목만으로, 나는 절절하고 애닯은 사랑이야기가 이 영화의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보는 듯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창백한 얼굴이 가득 담긴 포스터와 제목이 마음에 와 닿아서 선택한 영화였다.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굉장히 도도해 보이는 이미지 때문에 내게는 그다지 친근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배우였지만, 이번 영화의 포스터에서는 왠지 인생의 고난을 한껏 짊어지고 있는 '보통의' 여자처럼 보여서 괜히 마음이 갔다.  

 영화가 시작되고, 영화가 진행되고, 영화가 끝나면서 나는 솔직히 어리둥절했다.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영화가 눈앞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남자를 일생동안 사랑해 온 여자의 이야기도, 한 여자를 평생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혼자 앉아 연거푸 담배를 피우는 줄리엣(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상당히 인상적인 플롯으로 진행된다. 자신의 6살 난 아들을 죽인 혐의로 15년을 감옥에서 복역한 줄리엣과, 15년만에 언니를 만나는 동생 레아(엘자 질버스테인,이라고 쓰고 있긴 하지만, 프랑스 영화에 낯선 나로서는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외에는 익숙한 배우가 단 한 명도 없다)가 시간 차이를 극복하고 진정한 자매로 거듭나는 이야기가 하나. 그리고 레아의 남편 뤽, 그들이 입양한 두 딸, 뇌손상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뤽의 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난 줄리엣을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가 또 하나. 줄리엣이 감옥이라는 공간을 나와 '세상'에서 살아가고 소통하는 이야기가 또 다른 하나.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도대체 줄리엣이 사랑한 <당신>은 누구지?'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15년 동안 감옥에 있던 줄리엣에게 사랑하는 남자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아들을 죽였으니 남편과는 이미 멀어졌고, 부모님은 줄리엣을 없는 딸로 여기며 면회 한 번 오지 않았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동생 역시, 그런 부모님 아래서 '언니는 없는 존재'라는 세뇌를 당하며 자랐기 때문인지, 면회를 가지 않았다. 감옥을 나와서 만나는 남자들이라고는 보호관찰관이나 레아의 동료 정도인데, 그들과의 관계도 진도가 나아가지 않고 미지근하다. 그러니 줄리엣이 사랑할 만한 사람의 윤곽은 전혀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 편의 미스터리로 읽히는 흥미진진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미스터리는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줄리엣이 꽉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그렇게 두근두근할 수가 없었다. 시를 읽어주겠다는 조카에게 버럭 화를 내던(나중에는 왜 화를 냈는지 이해하게 되었지만) 줄리엣이, 조카에게 책을 읽어주고 피아노를 가르쳐주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다. 레아와 줄리엣이 같이 피아노를 연주할 때에는, 그들 뒤에서 춤을 추던 딸아이처럼 나도 하늘하늘 춤을 추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 영화는, 여성의 인생을 담은 영화이고 가족의 사랑을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미스터리는 조금은 늦게 밝혀져서 왠지 날 맥빠지게 한 느낌도 들지만, 미스터리가 밝혀지기 전까지의 이 영화도, 미스터리가 밝혀지고 난 이후의 이 영화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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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1-0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지 못하는 영화였는데 포스터의 느낌도 그렇고 제목까지 마음에 쏙 들어요. 게다가 그린네님의 리뷰를 읽고 나니 반드시 봐야 할 영화가 되버리네요. 혹시라도 잊을지 몰라 언제라도 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이 리뷰를 별찜해 두었어요.

그린네 2010-01-11 01:26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영화, 의외의 발견이었어요^^ 포스터, 상당히 괜찮죠? 왠지, 다락방님도 이 영화 좋아하실 것 같아요-
 
러브 매니지먼트 - Managemen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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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 매니지먼트>는 보는 사람의 염장을 지르는 영화다. 어울리지 않는 두 배우, 제니퍼 애니스톤과 스티브 잔의 조합을 보는 것이 가장 불편했다. 두 배우 모두의 팬이 아닌 나로서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라 생각하고 이 영화를 선택했는데(사실 <어글리 트루스>와 같은 재미를 느끼길 바랐다. 전형적인 플롯이지만 이야기를 알콩달콩 꾸려가는 연출력이나 배우들의 조합이 썩 괜찮았던 탓이다), <러브 매니지먼트>는 내 예상과는 상당히 달랐던 것이다. '스티브 잔'이라는 배우를 전작인 <퍼펙트 겟어웨이>에서 눈도장 찍었던 나에게, 그가 원래 코믹영화에서 활약하던 배우라고 해도, 이 영화의 순수청년 마이크의 캐릭터가 겹쳐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 것도 모릅니다'라는 순진한 얼굴을 하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띄고 있어도 언젠가는 본색을 드러낼 이중인격자같은 얼굴로만 보였다.  

 더구나 영화는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에피소드들의 무한 반복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샴페인이나 와인을 가져다준 답례로 엉덩이를 만져보게 해 주는 여자, 대륙의 반을 가로질러 '편도' 티켓을 들고 여자를 무작정 찾아가는 남자, 옛날 남자친구가 찾아왔다고 바로 따라가 동거를 시작하는 여자, 처음 본 남자를 자신의 가게에 숙식제공으로 취직시키는 것이나, 실연의 아픔을 불교에 귀의하는 것으로 달래는 것 등의 개연성 없는 에피소드들은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지 않았다(영화를 보면서 혹시 개봉하면서 삭제된 분량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이야기가 뚝뚝 끊기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큰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러브 매니지먼트>는 한 여자만을 죽어라 짝사랑하는 일편단심 민들레, 해바라기, 기타 등등의 순애보적인 상징으로 대체될 수 있는 남자의 사랑이야기이다. 첫눈에 반한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와인과 샴페인 등의 선물 공세를 펼치고, 더한 관계로 발전하게 되자(여자는 낯선 곳에 방문해서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 되고 싶은 의도였겠지만) 떠난 그녀를 찾기위해 무작정 떠나는 남자의 이야기말이다. 여자의 어떤 모습도 사랑해주고, 그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꾸는, 그녀와의 사랑이 곧 자신의 꿈인 그런 남자가 러닝타임 내도록 나온다. 요즘 세상에 저런 남자가 어디있나, 싶으면서 내 남자는 왜 저러지 못하나, 싶기도 하니, 싱글이든 커플이든 어쨌든 이 영화는 보는 사람의 염장을 지르는 영화다.  

 이 영화가 주는 한가지 즐거움이 있다면, 그것은 머리를 빡빡 민 우디 해럴슨을 보는 재미다. 한물간 펑크족으로 나오는 그는 개를 키우는 취미를 가진 데다, 비비탄을 총으로 쏘아대는 무식과격한 남자로, 그냥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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