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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Review /『디아스포라 기행』, 서경식
-책을 읽고 이리도 마음이 불편했던 적이 있었던가,
 
 
  읽는 내내 불편했다. 주말 내 붙잡고 있던 책의 감상이 불편하다, 로 정리되는 지금 이 시점에 가슴이 왠지 저릿하다. 책을 읽으면서 아픔과 슬픔을 느낀 것도 아닌데 가슴이 저릿해지니 괜히 뜨끔하다. 그리고 책의 부제에 눈이 박혔다, ‘추방당한 자의 시선’ 이란다. 더 불편해졌다.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은 본래 “‘이산’離散을 뜻하는 그리스어”이자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서 거주하는 유대인과 유대공동체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유대인뿐 아니라 아르메니아인, 팔레스타인인 등 다양한 ‘이산의 백성’을 좀더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소문자 보통명사 diaspora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p13)

  서경식의 이 책은 분산되고 유배된 다양한 이산민족의 ‘예술’을 따라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것이다. 다양한 디아스포라들의 삶과 예술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긴 했지만 그들의 삶과 예술을 송두리째 묶어서 서경식이 미리 단정짓고 결론을 내린 부분은 좀 아쉬웠다. 그리고 부제에서 너무 직접적으로 그가 얘기하려는 것을 나타내려 한 것은 아쉬움을 넘어 불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서경식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면서라도 그의 삶이, 또는 많은 디아스포라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처절한 것인지를 확실하게 이야기하고자 마음먹은 듯 했다. 그래서 가슴이 저릿한 걸까.

  스무해가 넘도록 살아오면서 재일동포나 재미동포, 혹은 입양아 같은 코리안 디아스포라에게 내가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느꼈다. 그들의 인권이 얼마나 유린되는지 자아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에 시달리는지 같은 것들은 나와 상관없는 것들이라서 그랬다. 입양된 사람들이 몇 십년 만에 고국에 찾아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부모를 찾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휴일날 특집방송으로 자주 편성되곤 하는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보고서도 최진실이 눈물 콧물 흘리는 것만 기억난다. 솔직히 테레비서 해주는 영화는 집중하기 힘들지 않나? 게다가 나른한 오후에 방송된다면 더 그렇잖아.

  어쨌든 코리안 디아스포라 중에서 재일동포를 예로 들자면 이렇다. 그들의 국적은 대부분 한국이다. 북한 국적의 사람도 있다. 그리고 재일동포1세대 중에는 ‘조선’ 국적을 가진 사람도 있다. 분단되지 전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라 ‘조선’이라는 국적을 가지게 된 것이다. 후에 제대로 된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나 많은 사람들이 국적을 선택하지 않았다. 분단된 한반도는 그들에겐 더 이상 모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경식은 재일동포를 일컬어 ‘재일조선인’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들은 일본 내에서 일본인과 같은 의무를 다하지만 권리는 박탈되어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 모국어로 일본어를 사용하지만 모어와 국적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이들에게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느냐? 그건 또 아니다. 원래 대한민국은 나라 밖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 흠흠. 아니 그런데 왜, 왜 한국 국적을 유지하는 것일까?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들의 입장과 생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같은 민족인데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들인데 이해할 수 없는 것에 가슴이 저릿한 걸까.

  ‘추방당한 자의 시선’이라고 못박지 않고 이 기행을 서경식과 함께 시작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가 분석하고 느끼는 디아스포라들의 예술을 좀더 자유롭게 감상했다면 이렇게까지 불편한 마음이 꿈틀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이렇게 마음이 무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그런데 이렇게 무겁고 불편한 마음에 왠지 경건해진다. 그리고 모어, 모국, 모국어가 모두 일치하는 다수민족으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것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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