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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모차르트 오페라 모음집(코지 판 투테, 피가로의 결혼, 돈 죠반니 & 마술피리 전곡)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Dietrich Fischer-Dieskau) 외 노래, 모차르트 / Documents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모차르트 음악을 본격적으로 좋아한 지 15년 가량 되었으니까, 나로서는 하필 가난한 학생 시절에 음반을 구입해야 했던 셈이다. 그 시절 수입의 지출비로는 음반 구입비가 단연 수위였고, 책값이 그 다음이었다. 책이야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도 있는데 음반은 애초에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오페라 음반 같은 경우는 가격이 비싸 오페라는 가장 더디게 접근한 장르이기도 했다.

모차르트 오페라를 녹음한 음반은 보통 시디 2~3장 짜리로 가격이 최소한 35,000원 가량 된다. 물론 마음에 드는 연주 해석이라면 그 가격이 결코 비싸게 여겨지지 않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해석인 경우에는 그 35,000원 짜리가 체감상 5,000원 짜리로 격하된다. 그때의 실망이란… 책처럼 미리 내용을 훑어볼 수도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저런 평을 취합하여 베팅 하는 기분으로 사는 것이 음반인 바, 음반을 플레이어에 올려놓는 순간은 참 걱정스러운 순간이기도 했다.

어느 음악가나 사정은 마찬가지이겠지만, 모차르트 음악에 관한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고 어느 한 음반에 대한 호오도 극명하게 갈리기도 한다. 이것은 예로부터 “취향은 논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서양인들의 명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자신의 호오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고, 나 또한 이런 경험이 비일비재하다. 단적인 예로 아르농쿠르의 교향곡 녹음을 처음 들었을 때 눈에 불을 켜고 반대를 표했으나(수년 간 그의 음반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지금은 대단한 관심을 갖고 듣고 있다. 그리고 과거 오륙년 전에 썼던 모차르트 관련 글들을 읽어보자니 여간 낭만적인 게 아니다.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쓰지 않을 텐데, 지금의 나는 그렇게 여성적인 감수성과는 거리가 먼데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어쩌랴, 그러 했던 자도 나이고 지금의 나도 나인 것을!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는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모차르트 해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모차르트의 오페라 음반을 추천하기 위한 것이다. Documents 라는 처음 보는 음반사가 발매한 음반이다. 이 음반사는 주로 저작인접권이 만료된 음반만을 대상으로 박스 세트로 만들어서 판매하는 듯하다.

즉, 모차르트 음악의 저작권은 이미 만료되었고 모차르트를 녹음한 음원의 저작인접권은 일반적인 경우 녹음 이후 50년이면 만료되므로, 현재 2007년을 기준으로 1956년 이전에 녹음된 모차르트 음악은 공유(Public Domain)가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음원은 누구든 아무런 제한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결국 이 음원을 물리적인 형태로 고정시켜(즉 음반으로 만들어) 판매해도 되고 무료로 웹상에 공개해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로서는 클래식 음반으로는 처음 접해 보는) Documents라는 음반사가 총대를 메고(아마도 기존 음반사들은 그들간의 상도의라든가 암묵적인 관할권이 있을텐데 그런 것을 무시하고) 저작인접권이 만료된 음반만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염가에 판매하기 시작한 듯하다.

가령, 이 글에서 소개하는 “모차르트 오페라 모음집” 음반만 해도 모차르트의 불후의 오페라들인 <여자는 다 그래(코시 판 투테)>, <피가로의 결혼>, <돈 지오반니>, <마술피리>를 시디 10장에 담아 2만 원의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여자는 다 그래>는 칼 뵘, <피가로의 결혼>은 에리히 클라이버, <돈 지오반니>는 요제프 크립스, <마술피리>는 페렌츠 프리초이(혹은 흔히 통용되는 바로는 페렌크 프리차이)가 각각 지휘한 음원인데, 알다시피 이 지휘자들은 모차르트 해석에 있어 다들 한 가닥 했던 양반들이다. 특히 에리히 클라이버의 <피가로의 결혼>은 거의 모든 모차르트 음악 애호가들이 예외없이 최고로 꼽고 있는 <피가로의 결혼>이기도 하다.
 

사실 인간들의 그 복잡 다양한 심성상 어느 한 음반에 대한 의견 일치를 본다는 것 자체가 어렵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알다시피 칼 뵘, 브루노 발터, 아르농쿠르 등이 일세를 풍미한 지휘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모차르트 음반에 대해서는 호오가 대단히 엇갈린다. 그런데도 에리히 클라이버의 <피가로의 결혼>에 대해서는 거의 의견 일치를 보고 있으니 가히 독보적인 녹음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그 음반 가격만 해도 3~4만 원에 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음반을 포함하여 무려 네 작품을 모두 합하여 단돈 2만 원에 판매한다고 하니 과거 학생 시절 이 음반들을 거금을 들여 구입했던 기억이 유독 쓰리게 느껴진다. 그러나 세월은 세월인 만큼, 모차르트는 모두의 모차르트인 만큼,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더구나 나는 칼 뵘의 <여자는 다 그래>는 ‘다행히도’ 소장하고 있지 않아 이 음반을 구입하는 것이 억울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칼 뵘의 그 긴장감이 싫어 그의 해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의 해석도 흥미롭다.)

<여자는 다 그래>, <피가로의 결혼>, <돈 지오반니>는 1955년 녹음이고 <마술피리>는 1954년 녹음이다. 모차르트 해석에 있어 어떤 견해를 가졌든 이 네 음반 중에서 적어도 하나나 둘은 마음에 드는 해석을 만날 것으로 기대해도 될 것이다. 거꾸로 말해, 적어도 하나나 둘은 마음에 들지 않는 해석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젊은날의 단선적인 사고에서 벗어난 나이라면 오히려 이런 다양한 해석들, 나의 견해와는 다른 해석들로 인하여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요제프 크립스가 지휘한 <돈 조반니>는 내가 꼽고 싶은 “이 한 장의 음반”이다.
 

이 “모차르트 오페라 모음집”의 약점은 음반내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각 오페라의 대사는커녕 기본적인 안내도 없다. 오직 있는 것은 음악을 듣는 데 필요한 최소 정보인 트랙정보와 지휘자·가수들의 이름 뿐이다. 헌데 내게는 이 점도 마음에 든다. 요즘 충실한 정보는 웹상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으므로.

이 음반의 구성과 해석자들의 구체적인 면모는 이렇다:

CD 1-2
Così fan tutte

Fiordiligi: Lisa della Casa (Sopran / soprano) - Dorabella: Christa Ludwig (Sopran / soprano) - Guglielmo: Erich Kunz (Bariton / baritone) - Ferrando: Anton Dermota (Tenor / tenor) - Despina: Emmy Loose (Sopran / soprano) - Don Alfonso: Paul Schoeffler (Bass-Bariton / bass-baritone) - Wiener Staatsopernchor - Wiener Philharmoniker - Karl Böhm, Dirigent / conductor – aufg. / recorded in: 1955

CD 3-5
Le nozze di Figaro - commedia per musica - in vier Akten / in Four Acts

Figaro: Cesare Siepi (Bariton / baritone) - Susanna: Hilde Gueden (Sopran / soprano) - Il Conte Almaviva: Alfred Poell (Bass-Bariton / bass-baritone) - La Contessa: Lisa della Casa (Sopran / soprano) - Cherubino: Suzanne Danco (Sopran / soprano) - Bartolo: Fernando Corena (Bass-Bariton / bass-baritone), Marcellina: Hilde Rössl-Majdan (Alt / contralto) - Basilio: Murray Dickie (Tenor / tenor) - Barbarina: Anny Felbermayer (Sopran / soprano) - Antonio: Harald Pröglhof (Bass / bass) - Don Curzio: Hugo Meyer-Welfing (Tenor / tenor) - Chor der Wiener Staatsoper - Wiener Philharmoniker - Erich Kleiber, Dirigent / conductor - aufg. / recorded in: 1955

CD 6-8
Don Giovanni - Il dissoluto punito ossa il Don Giovanni (Der bestrafte Wüstling oder Don Juan / The Reprobate Punished or Don Juan) KV 527

Don Giovanni: Cesare Siepi - Donna Anna: Suzanne Danco - Donna Elvira: Lisa della Casa - Leporello: Fernando Corena - Don Ottavio: Anton Dermota - Zerlina: Hilde Gueden - Masetto: Walter Berry - Il Commendatore: Kurt Böhme - Wiener Staatsopernchor - Wiener Philharmoniker - Josef Krips, Dirigent / conductor - aufg. / recorded in: 1955

CD 9-10
Die Zauberflöte - Eine deutsche Oper in 2 Akten

Königin der Nacht / Queen Of The Night: Rita Streich - Sarastro: Josef Greindl - Tamino: Ernst Haefliger - Pamina: Maria Stader - Papageno: Dietrich Fischer-Dieskau - Papagena: Lisa Otto - Monostatos: Martin Vantin/Wolfgang Spier – Sprecher / Speaker: Kim Borg - Erste Dame / First Lady-In-Waiting: Marianne Schech/Margot Leonard - Zweite Dame / Second Lady-In-Waiting: Liselotte Losch/Marion Degler - Dritte Dame / Third Lady-In-Waiting: Margarete Klose/Alice Decarli - Erster Geharnischter / First Man-In-Armour: Howard Vandenburg - Zweiter Geharnischter / Second Man-In-Armour: Kim Borg - Erster Priester / First Priest: Wilhelm Borchert - Zweiter Priester / Second Priest: Howard Vandenburg - Dritter Priester / Third Priest: Siegmar Schneider - Erster Knabe / First Youth: Margot Guilleaume - Zweiter Knabe / Second Youth: Maria Reith - Dritter Knabe / Third Youth: Diana Eustrati - RIAS-Kammerchor - Berliner Motettenchor - RIAS-Symphonie-Orchester Berlin - Ferenc Fricsay, Dirigent / conductor - aufg. / recorded in: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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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11-22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요즘 책을 살 때 도큐멘트시리즈 하나씩 넣고 있어요.그뤼미오-하스킬의 베토벤 소나타집을 지난번에 샀고 다음번에 이 음반을 구매하려고 넣어놓았지요.이 음원들중 클라이버판은 줄리니판과 함께 전통의 명연이지않습니까..개인적으로 오페라 최고미녀라고 생각하는 리자 델라 카사가 있어서 좋아요.^^

반조 2007-11-23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군요^^ 알라딘엔 음반이 별로 없기에 당연히 없을 줄 알고 다른 곳에서 구입했는데, 검색해 보니 알라딘에도 있더군요. 저도 드팀전님처럼 책을 살 때 하나씩 구입하려고 이 시리즈를 보관함에 담아 두었답니다. 음반구입 경험상 이거 금방 품절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긴 한데, 어쩐지 이 시리즈는 계속 수입될 것이라는 나름 확신이 있어 천천히 구입하려고 합니다. '최고미녀' 리자 델라 카사...

푸하 2007-11-24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품절이네요...리뷰 읽고 바로 살걸..ㅠㅠ

반조 2007-11-25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쉽게도 벌써 품절이군요. 클래식 음반은 대부분 수입음반이어서 매번 금세 품절되더군요. 아쉽지만 앞으로 몇 달은 기다리셔야 하겠는걸요.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 - 불행한 시대를 살다간 두 명필을 위한 변명
최준호 지음 / 한얼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내 고향의 천은사가 항상 맑고 청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가는비가 흩뿌릴 때 천은사 일주문을 자주 들었던가 보다. 그러나 어쩌면 일주문 편액 탓인지도 모른다. 대부분 사찰의 일주문 편액이 가람의 위세를 과시하듯 힘찬 필세의 글씨라면, 천은사 일주문 편액은 풀잎을 뒹구는 물방울처럼 작고 맑게 흐르는 필세의 글씨였다. 일주문 편액의 분위기가 곧 천은사 가람의 분위기를 대표한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듯하다. 원교 이광사의 ‘유수체(流水體)’라 하던가. 그런가 보다 했던 것이 불과 몇년 전인데, 작년부터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미술에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니요, 다년간 서화를 보아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우리나라 탁본첩이나 서첩을 빌려와 일견하면서 수많은 서예가들 중에서 마음에 들어오는 서예가들을 꼽아보았다. 김생, 탄연, 영업, …. 그들 모두가 명필 중의 명필로 꼽히는 분들이었다. 나는 서첩들을 보기 이전에 서예관련 글이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역시 예술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따로이 설명이 필요없고 곧바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인가? 능호관 이인상도 그렇게 만났다. 그에 관한 견문도 없었고 관련 글도 읽은 바 없었지만, 전시된 단 하나의 작품을 통해서 나는 단번에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만큼 나의 고미술 지식이 형편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내가 그들에 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작품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대단히 기쁘다. 내 감각에 대한 확신이 내가 소유한 지식보다 월등히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주류적인 유형에서 벗어난 국외자적 인물임을 자각하고 있다. 서양인문학에 심취하였다가 동양적 정신세계로 완전히 돌아서버린 인문학도. 정상적인 경로라면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 위하여 탄탄하고 끈질긴 준비를 해야 할 30대 중반에 돌연히 방향을 틀었던 것이고, 대학초년생처럼 동양의 정신세계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은 감히 품지도 못한다. 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린 지는 훨씬 오래이고. 다만 ‘나’라는 것이 지속적으로 뭔가를 배우며 변해가는 것을 귀하게 여길 뿐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유일하게 벗하고 싶고 기대고 싶은 분들은 옛 사람들이다. 옛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점점 가까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승과 선비들의 세계, 그리고 그들의 예술세계. 그들은 내가 예전부터 친숙하게 알고 있었던 분들이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쏟아지듯 발견되기 시작한 분들이다. 이것이 내게 중요하다. 그들에 대한 지식은 형편없으나, 그들의 글이나 예술을 보는 순간 간명직절하게 읽히고 보인다는 것.

<원교창암유묵>은 원교 이광사(1705~1777)의 서첩(소위 ‘구풍첩’)에 창암 이삼만(1770~1847)의 글씨가 더해진 것이다. 즉, 후대 사람이 서로 다른 두 서첩을 합한 것이 아니라 창암 선생이 원교 선생의 서첩에다 원교 선생을 흠모하면서 자신의 글을 덧댄 것이다. 이 유묵을 아산 조방원 선생이 40여년 간 소장하고 있다가 “완상과 농첩의 즐거움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바람에 따라 몇년 전에 100부 영인본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리고, 이 영인본의 수량 부족을 대신하기 위하여 최준호 선생이 <원교창암유묵>을 탈초하고 해제하여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한얼미디어, 2005)는 제목으로 단행본 책자를 출간하였다. 이 단행본 말미에는 <원교창암유묵>의 복사본이 실려 있어 나같은 학인 수준의 완상첩으로는 부족함이 없을 성싶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서첩의 탈초와 해제, 그리고 서첩복사본으로 주요부분이 구성되어 있다. 해제자가 워낙 조심스런 마음을 가진 분이어서 원교와 창암의 무게를 겨우 겨우 감당해 내는 태도를 취하면서 두 명필이 썼던 글을 또박또박 번역하고 출전을 밝히고 관련 해제를 덧붙혔다. 탈초(脫草), 즉 초서체를 정자체로 옮기는 작업만 해도 7개월 가량 소요되었다고 하니 글의 출전을 일일이 밝히고 그 출전에 관한 주석과 해석을 찾아내는 수고는 또 얼마나 컸을까. 필자의 해제는 과잉해석을 철저히 금하고 대부분 전고로 일관하고 있지만, 옛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흠모하는 이들로서는 이것이 불만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학인이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이다. 덕분에 원교의 «서결(書訣)»이나 창암의 «서결»이 해제의 자리를 빌어 갈피갈피 소개된다:

비록 자획은 마음가짐에 근원하고 담긴 품격은 식견과 도량에서 나온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모든 것에 통달하여 지혜가 밝고 정직하며 널리 배워 학문을 갖춘 선비라야 서도를 이야기할 수 있다. (20)

이것은 책에 소개된 원교서결의 한 대목이다. 원교서결은 내가 유일하게 의존하고 있는 예술론이기도 하다.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원교서결에서 내가 좋아하는 대목을 소개한다:

노자가 말하기를 “으뜸가는 선비는 도를 들음에 부지런히 실행하고, 중간치의 선비는 도를 들음에 반신반의하고, 아랫등급의 선비는 들음에 크게 비웃나니 아랫등급 선비가 크게 비웃지 않으면 도라고 하기에 부족하다”(도덕경 41장)라고 하였다. 서도는 비록 작은 도이기는 하나 그 지극한 측면을 말하면 또한 그러하다. 또 누가 아랫등급 선비의 마음을 사려고 하다가 도리어 으뜸가는 선비의 비웃음을 당하려 하겠는가? 한유가 말하기를 “글이 조금 부끄러우면 사람들이 조금 좋다고 하고, 크게 부끄러우면 매우 좋다고 한다”라고 하였고, 손과정이 말하기를 “매번 글씨를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그 가운데 내 마음에 드는 것에는 일찍이 눈길을 준 적이 없고, 혹 잘못이 있는 것은 도리어 감탄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것은 옛부터 줄곧 있어온 걱정거리이다.

— 김남형 역, «서예비평»(한국서예협회 2002) 223~224면

으뜸가는 작품이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는 것, 고결한 정신이 외면 당하는 것, “이러한 것은 옛부터 줄곧 있어온 걱정거리이다.” 그래서 대가들은 주위와 당대의 평가는 상관하지 않고, 백 년, 이백 년 뒤에 나타날 진정한 대가의 안목을 두려워했다. 먼 후대의 안목이 두려워 맑음과 고고함을 놓치지 않고 그 외로운 경지를 버텨낸 것이다. <원교창암유묵>은 그러한 경지에서 노닐었던 대가들의 서첩이다.


<원교창암유묵>의 구성을 보면, 원교의 글씨가 112자, 창암의 글씨가 발문을 포함하여 110자로서 각각 30면, 26면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서체가 각 글귀마다 달라 완상하는 재미가 더하거니와, 특히 글귀의 뜻을 음미하며 완상하노라면 가히 옛 사람들의 완상하는 맛을 알 듯도 하다.

“입으로 외우는 사람은 소털 같이 많으나 마음으로 통하는 사람은 기린뿔 같이 귀하다口諷牛毛 心麟通角”(19). <원교창암유묵>은 이 전서의 글씨와 함께 시작된다. 책에 실린 서첩복사본을 보면 붓의 속도, 필세, 먹의 농담, 결구의 흔적, 비백 처리 등등, 진품을 완상할 때 못지않게 세밀하게 완상할 수 있다. 얼핏 전서라면 강직하고 굳센 의기가 연상되지만 서첩을 완상하다보면 이처럼 맑고 한가로울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의연하다. 해제자는 이 글씨를 두고,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담겨 있다. 맑은 하늘에 구름 지나가듯이 천천히 지나간 붓자국의 필로가 역력하다”(21)고 평한다.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는 위와 같은 식으로 유묵의 각 글귀마다 번역하고 출전을 밝히고 해제하는 순으로 글들이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원교의 유묵에 관한 내용이요, 2부는 창암의 유묵에 관한 내용이다. 3부에서는 원교, 창암, 추사의 생애를 약술한 뒤, 그들 간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두 명필의 작품과 서결이 걸림없이 맑고 힘차게 흐르는 반면에 해제자의 풀이는 까끌까끌한 편이지만, 해제자의 노고와 마음자세만큼은 본받고 싶다.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는, 책 말미에 실어놓은 <원교창암유묵> 복사본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를 하고도 남는다. 연노란 한지의 질과 때묻은 흔적마저 자세히 보일 정도로 복사상태가 좋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마치 <원교창암유묵>처럼 완상한다. 완상할 때마다 언제나 맑은 기운이 내 몸을 감돈다.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높은 암벽이 노을을 다투고 외로운 봉우리로 해가 저무네森壁爭霞 孤峯限日”(31) 즐비한 암벽들이 으리으리한 삼림처럼 뻗어올라 노을을 다투지만, 그러나 붉은 해는 외로운 봉우리로 저문다. 예술가는 모름지기 외로운 봉우리가 되어야 한다.

외로운 봉우리에, 천하를 삼키고 떨어지는 붉은 해 있으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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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3-09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울리는 리뷰입니다.
책을 보관함으로 담습니다.

반조 2007-03-10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 님, 반갑습니다.

2007-03-28 0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조 2007-04-12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월28일에 방문해 주신 님, 격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이채훈 지음 / 호미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지난해 9월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 20여명이 비장한 표정으로 ‘인문학 위기’를 선언했다. “무차별 시장논리와 효율성에 대한 맹신으로 인문학의 존립근거가 위협받고 있다”고 선언한 것을 두고 우리는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교수의 위기”라는 촌평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이 선언은 학술진흥재단의 “기금”을 확보하기 위한 작품이라는 비판도 있다.

기실 “인문학의 위기”는 제도권 밖에서 인문학을 하는 이들에겐 실감이 되지 않는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다른 직업을 통하여 밥벌이를 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부류 중 한 사람이다. 그래서 인문학의 위기가 내게는 그토록 낯설고, 그 선언 자체가 반인문적으로 보인다. 인문학을 하는 선생들이 그토록 우중충한 표정을 띨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슬펐다. 좀더 맑을 수는 없을까? 좀더 고귀한 모습일 수는 없을까?

시대가 변하고 있다. 박사급 수준의 인문학도들이 제도권 밖으로 쏟아져나오고 있다. 각 개인의 살림을 살피자면 불행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현상은 오히려 한국사회를 윤택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때를 맞춰, 그간 제도와 권력의 길을 따라 소통되었던 것들이 웹이라는 마당을 통하여 자유롭게 소통되고 있다. 제도와 재야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고, 프로와 아마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전공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이채훈 피디의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출현했다. 방송국 피디가 음악가와 관련한 책을 냈다는 것을 두고 많은 이들이 그 수준을 의심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이 책이 얼마나 모차르트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글인가를 알게 된다면, 그 의구심을 가졌던 것에 대하여 부끄러워할 것이다. 더불어 이런 부류의 책은 음악가에게서도 나올 수 없고 음악학자에게서도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소위 ‘프로페셔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지에서 구한 음악 책을 보니 놀랍게도 빈 필하모닉의 가장 큰 특징은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나와 있었다. 세계 최고의 악단이’아마추어’ 같은 자세로 한다니 이상하게 들릴 법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돈을 벌기 위해서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추어와 같은 순수한 음악 사랑으로 연주한다는 뜻이었다. 페터 베히터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음악을 취미로 하시는군요.” 베히터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빈 필하모닉에 처음 가입한 40년 전부터 지금까지 저는 언제나 기꺼이 취미로 연주하고 있습니다.”(178)

취미? 아마추어? 아마추어는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댓가를 바라서도 아니요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오직 자신이 하고 싶기 때문에 한다. 사실 모든 예술은 그 마음이 바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출발점에 서면, 격식도 형식도 중요하지 않다. 오직 좋아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예술가가 아마추어의 그 마음을 잃으면 기계적인 연주가 되기 십상이며 예술의 본질을 잃고 격식에 갇히기 마련이다.

빈 필하모닉은 바로 그 마음을 항상 유지하려고 “마음에서 마음으로”라는 모토를 걸었던 것이고, 이채훈의 생각을 빌면, 그런 자세가 있었기에 국내에서 상암축구경기장에서 연주하는 파격을 선보였을 것이다. 모차르트 역시 듣길 원하는 자들이 있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아노 연주를 해 주었다. 현대 예술가의 관점에서 보자면 ‘파격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예술가의 자세가 아닐까?

이채훈은 아마추어리즘이라는 예술의 본질 안에서 유랑하고 있다. 그는 “음악을 이해한다는 것이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과 동의어”(91)라고 여기는 한 명의 예술가-애호가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오직 사랑 자체를 통해서만 다른 사람의 가슴에 불꽃을 일으킬 수 있다. 굳이 말하자면, 내가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것은 틀림없다. 다른 적절한 표현은 생각나지 않는다. (15)

모차르트의 음악을 ‘해설’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 관심사도 아니다. 음악을 이해한다는 것이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과 동의어라고 여기는 나는 그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함께 나누고, 전염시키고, 전염당하는 일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 나는 다만 음악을, 사랑을 나누려고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리고 나 또한 상대방의 음악 사랑을 나눠 갖고 싶은 것이다. (91)

이 기본자세가 이 책을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사랑하는 곡들을 이야기할 때(해설이 아니다!) 그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이 책에서 가장 환한 빛이 나는 곳도 바로 그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대목일 것이다.

[K.522] 3악장 ‘메뉴엣’의 트리오 부분. 음악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세상이 밝아졌고, 몸무게가 없는 순결한 영혼들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93)

서른 해 전, 중학교 일학년 때, 클라라 하스킬이 연주하는 이 곡[K.466]을 처음 듣고 삶의 검은 심연을 바라보고 있는 모차르트의 이미지에 섬뜩했다. 그 심연의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속삭임, 그리고 피아노와의 대화는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 환상은 2악장 정다운 라르게토의 중간부에서 또다시 피어올랐고, 3악장 변주곡에서는 마녀의 늪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의 나락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98)

[피아노] 협주곡 25번의 3악장은 한층 더 오페라를 닮았다. 단순한 첫 주제는 때로는 익살스런 얼굴로, 때로는 응큼한 표정으로 변형되어 나오고, 관현악과 대결하고, 도망가고, 약올리고, 쫓아가면서 한껏 즐겁게 논다. 관현악의 패시지 중에는 심지어 오페라의 레시타티보를 연상시키는 대목까지 나온다. 모차르트 오페라와 협주곡의 유사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은 바로 이 C장조 협주곡(K.503)이다. (145)

음악은 언어나 드라마에 비하자면 가장 짧은 분량으로 가장 커다란 드라마를 구축할 수 있다. 예컨대, 모차르트 교향곡 C장조를 전부 들으려면 20분 남짓이면 족하다. 그 짧은 시간에 거대한 세계가 세워졌다 사라진다. 음악만큼 그토록 짧은 시간에 그토록 커다란 세계를 희롱할 수 있는 예술은 없다. 음악과 절친한 이채훈은 그 템포가 몸에 배어 있는 듯, 글의 속도가 빠르다. 근래에 나는 이렇게 빠른 속도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는 많은 학자들마냥 두뇌와 내장이 꼬여 있지 않다. 음악적 느낌에 충실하고, 그 느낌의 변화무쌍함에 슥슥 반응한다.


그는 많는 데이타와 논리를 구축하여 모차르트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며 경험했던 섬광같은 느낌을 따라 번개처럼 움직이다. 그 날렵한 움직임을 위해서 데이타도 최소화하고 구질구질한 해설도 최소화한다. 오직 있는 것은 그 섬광 같은 느낌, 그리고 그 느낌에 움직임을 부여하고 형상을 입히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언어이다. 그래서 이채훈의 글을 읽노라면 때로 서늘한 한기를 느낀다. 모든 것들이 전광석화처럼 베어져 사라지고 오직 검의 움직임만 있는 듯한 느낌.

이러한 장점은, 반대로 말하자면, 정보와 해설의 빈약함을 낳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 모차르트에 관한 지식이나 새로운 사실을 얻으려면 이내 실망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채훈이 모차르트에 관한 정보력이나 공부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시사 다큐멘터리 피디답게 기본 ‘팩트’에 놀라울 정도로 충실하다. 그는 알고 있었으나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떤 면에서 아쉬운 점은, 모차르트 음악사랑으로부터 뭔가를 끌어올려 자신만의 해석을 확 펼치지 못한 점이다. 가령, 그가 오페라 ‘돈조반니’를 그토록 사랑한다면 그 사랑으로부터 뭔가를 추출하여 자신만의 해석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러지 못했고, 그 대목은 거의 키에르케고르의 인용문으로 대체되어 있다. 어쩌면 그는 ‘해석’이라는 것의 허구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키에르케고르의 글도 해석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음악적 느낌과도 같다. 저자는 음악적 느낌을 가장 중시하고 그저 그 느낌에 따라 글의 스텝을 밟기를 원했던 듯하다. 이 책이 약간 헐렁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이와같은 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사랑한다. 이 책은 갈피갈피마다 책읽기를 중단하고 언급 중인 모차르트 음악을 들어보라고 유혹한다. 사실 어떤 해석서도 이런 유혹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책은 지난해 모차르트 250주년을 맞아 엠비시에서 제작하여 방송한 “모차르트” 2부작 다큐멘터리 관련내용이 주를 이룬다. 첫 장 <모차르트를 찾아서>는 다큐멘터리 1부와 관련한 내용으로 모차르트의 생애를 따라 서사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내 생각으로는, 그 다큐멘터리 1부보다 이 글 한 편이 더 훌륭하다. 이 장을 읽고 나면 모차르트의 일생이 음악과 함께 무대 위에 홀연히 펼쳐졌다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차르트의 일생에 관한 오페라와도 같다. <모차르트에 관한 대화>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인터뷰했던 저명한 음악가들, 작가의 인터뷰 내용이다. 이채훈이 대담자이다. 저명한 음악가들의 대화를 읽어볼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엠마 커크비와의 대화 한 토막을 소개한다:

아베 베룸 코르푸스’를 들을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어요. 제가 노래 부를 때 말고 그냥 들을 때 말입니다. 저는 이 곡을 정말 좋아합니다. 심금을 울리는 음악입니다. 심장에 곧장 가서 박혀서 심장이 울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듭니다. 천상의 고통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 않은가요? 이 곡은 우리의 운명, 죽을 수밖에 없는 피조물의 숙명을 실감하게 합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게 되죠. 우리는 세상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알고 나누며 살지만, 그런 것을 음악을 통해서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차르트는 이 점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187)

나머지 대목들도 이런 이야기들의 연속이다. 이제, 언급된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 책을 들춰보아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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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空) - A Scent Of Korean Buddhist Temples 소리로 떠나는 그곳, 山寺
Various Artists 노래 / MFK(뮤직팩토리코리아)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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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생전에 출가한 이 몸, 돌계단의 발길도 무거운데", 정태춘의 <탁발승의 새벽노래> 가사이다. 이 가사에는 정태춘이 절집에서 생활하면서 자고 먹고 씻고 예불 드리고 소요했던 발걸음이 담겨져 있다. 절집에 유난히 많은 것이 돌계단이요, 돌계단을 딛고 오르는 때만큼 무수한 상념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시간도 드물다. 그런데 그 돌계단의 발길이 무겁다. 이 한 마디에는 말로 하기 힘든 그 무엇, 귀와 눈과 몸으로 부딪혔던 흔적이 어려 있다. 정태춘의 허투로 웅얼거리는 듯한 창법도 아마 그 흔적과 함께 피어났을 것이다. 그에게 그의 것을 선물했던 절집의 소리는 그러면, 과연 어떤 것일까.

절집의 생활은 새벽 3시 기상, 3시 반에 새벽예불, 아침공양, 운력, 소임, ... 이렇게 일과가 되풀이된다. 이 일과들은 경내 이쪽에서 저쪽까지 오고가는 발걸음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 발걸음마다 매듭을 짓고 푸는 것은 절집의 음악, 절집의 소리이다. 도량석, 명고타종, 예불문, 목탁소리, 죽비소리, 빗질소리, 찻물 따르는 소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 풀벌레 우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 나무잎이 흔들리는 소리, 비오는 소리,... 이 소리들은 수행자들의 발걸음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소리를 따라 일어나고 소리를 따라 절하고 소리를 따라 눕는 그네들의 감각은 누구보다 소리에 예민하게 노출되어 있다.

空, 이 음반은 이 한 글자 표제를 달았다. 절집 소리의 본질을 뚫어본 것일까. 절집 수행자들의 소리소리에는 근본적으로 진여의 자리에서 퍼져나오는 울림이 깃들어 있다. 그리하여, 제 몸에서 나오는 목소리조차 장악하거나 조율하는 것이 아니라 풀어서 허공으로 흩어버리는 수행자들의 예불소리. 목탁소리, 법고소리, 범종소리, 이 모든 것도 듣는 이들의 마음을 휘어잡지 않고 그저 그 마음들조차 풀어서 함께 허공으로 흩어버린다. 그리고 그 소리들에 맞추어 합장하고, 절하고, 무릎꿇고, 일어서고, 걷고, 공양하고, 빗질하고, 눕는다. 모두가 한낱 환(幻)이고 공(空)인 것을! 그러나 이 환과 이 공은 중생심에 사로잡혀 일생을 끌려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정확히 지칭하는 것일 뿐, 수행자들의 세계가 허하고 공한 것은 아니다. 수행자들은 중생심의 환과 공을 물안개처럼 흩으며, 맑은 청계가 되어 청량하게 흘러간다. 그들은 끊임없이 흩어지는 소리들 속에서 걷고 머물고 앉고 눕지 않던가!

그러나 수행자들의 그 소리가 천편일률일 수는 없다. 절집마다 대중스님들의 성향이 있어 혹은 절집 내력이 있어 그 흩어지는 소리들이 저마다 일가를 이루고 있다. 가령, 해인사 대중들의 명고타종과 예불은 사자가 벼랑을 타고 오르는 듯 기세가 충천하며, 송광사 대중들은 완만한 산세처럼 옹골차고 너그럽다. 운문사 비구니 스님들은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곱고 단아하고 야무지다. 이 음반은 이 세 절집의 종송, 명고타종, 예불을 녹음해 놓았다.

녹음된 세 절집의 예불소리에는 법당 밖에서 바람따라 흔들리는 풍경소리, 지저귀는 새 소리, 수조의 물 떨어지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녹음자가 절집 소리들을 훼손할 수 있는 인위적 노력을 일체 삼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당 밖 명고타종 후 이어지는 법당 안의 작은종 소리와 예불문 앞자락이 녹음되지 않았다. 명고타종 후 녹음장비를 들고 법당 앞으로 옮기기까지의 시간이 그대로 비어 있는 것이다. (녹음장비가 워낙 고가의 장비여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다.) 그래서 마치 예불자가 법당 밖에서 명고타종 소리를 끝까지 듣고나서 돌계단을 밟고 금당 안으로 들어서는 듯한 공간적 이동이 느껴진다. 명고타종 소리를 내처 듣고 오르는 돌계단의 발길은 가볍고 소리는 비어 있는데, 잠시 후 지심귀명례가 들려온다,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세 절집의 명고타종과 예불문 만으로도 충분히 음반의 값어치를 하고도 남는데, 또 한 장의 음반을 여분으로 제공하고 있다. 여러 절집들의 소리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호거산과 가야산의 계곡 물소리, 수덕사 풍경과 새벽 종소리, 삼경(三更)의 부엉이와 아침의 새 소리, 개심사 홍송 숲에 내리는 가랑비 소리, 무위사의 조그만 시냇물 소리, 일지암 찻물 따르는 소리 등등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이산혜연선사발원문, 반야심경, 천수경, 보례진언, 관세음보살 기도문 등도 함께 담았다. 음반 내지의 설명도 알차게 편집되어 있다.

진작부터 이런 명고타종과 예불문 녹음 시디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이상하게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한번은 해인사 예불 녹음 시디가 있길래 구입하였더니, 참으로 무정하게도, 예불소리에 무슨 백뮤직처럼 소위 '명상음악'을 깔아서 녹음한 것이었다. 대중의 취향을 맞추어서 그렇게 했다고 하는데, 글쎄, 그 대중이 참 어떤 것인지 두렵기만 하다. 모든 예술은 최상을 겨냥하지 않으면 반드시 삼류로 전락하게 되어 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최상을 겨냥해야 비로소 이류라도 될 수 있는 것이거늘, 어찌 최상의 것을 그 아래의 것에다 맞추려 하는 것인지 참 안타깝지만 했다.

그러나, 이 음반이 있어 이제는 행복하다.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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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기 / 가야금작품집 4집 춘설
황병기 연주 / 씨앤엘뮤직 (C&L)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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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반에 실린 음악들을 듣기까지 얼마나 먼 길을 돌아온 것일까. 나는 20년 가까이 서양음악의 애호가로서 지내왔으나, 황병기의 음악을 들으면서 비로소 그 20년이 이질적인 것들에 적응하려고 애쓴 세월임을 알았다. 물론 모차르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러나 그 모차르트조차도 내가 영원히 안길 수 있는, 혹은 내가 숨결처럼 들이쉴 수 있는 음악이 아님을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다.

내 생각을 구성하고 있는 정신적인 재료들이 수년 간 서서히 동양적인 것들로 채워지면서 내 감각들 역시 변하기 시작하였다. 첫 신호는 서양의 책들에 대한 기피였고, 다음으로는 동양의 고전과 미술에 대한 관심이었다. 종교적인 관심도 가톨릭에서 불교로 바뀌었다. 그래도 가장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음악적인 요소였다. 가장 나중까지 모차르트가 나를 놓아주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이 음반을 구입하기까지 내가 가진 국악 음반으로는 죽파의 가야금 산조밖에 없었다. 그것도 10여년 전에 구입하고 나서는 거의 들어본 기억이 없다. 느릿하고 권태롭고 무미하게만 느껴졌던 탓이다. 그러나 황병기의 곡과 연주들을 들어보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정신적인 상쾌를 느꼈고, 순식간에 국악에 빠져들었다. 이제 죽파의 가야금 산조를 들어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죽파의 연주를 두고 "권태로움을 아는 위대한 예인의 연주"라고 평했던 듯한데, 서양의 세계관에 머물면서 평하자면 확실히 그런 평이 옳게도 여겨질 수 있겠지만, 지금 내 귀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제 김현이 "권태로움"이라고 평한 그 부분을 나는 "잔잔함"이나 "졸박함"이라고 부르고 싶다. "추함의 미학"까지 내려간 서양미학의 세계에서 국악의 극적이지 못한 요소들은 확실히 권태로움으로 느껴질 수 있는가 보다. 내가 쌓은 세계, 혹은 내가 속한 세계가 달라지면 음악도 이렇게 달리 들릴 수 있는가!

«춘설»은 '나'라는 것이 이렇게 달라졌음을 분명하게 확인시켜준 음반이다. 이 음반을 들은 것을 기점으로 나는 거문고 밑도드리, 가야금 정악, 산조, 가곡, 판소리 등등을 듣게 되었다. 이제 국악을 듣기 시작한 초보인 셈인다. 그런데도 굳이 나서서 이 음반을 소개하는 까닭은, 서양음악이 조금씩 덜 들리기 시작하는 분들이 자신의 취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가늠자로 이 음반만한 것이 없겠다는 생각에서이다. «춘설»은 모두 황병기가 작곡한 곡들로 채워져 있으나 연주악기의 종류는 가야금, 대금, 거문고 등으로 상이하며, 음반 내지의 설명도 뛰어난 글들로 채워져 있어서 국악에 접근하고자 하는 분들이 제1감으로 택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가령 여음餘音에 대한 황병기의 생각은 한국 음악에 대한 그의 깊은 성찰 한 자락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소리 하나에 관심을 모으고, 여음이라는 자연적인 상황에 주목하는 것이, 여러 가지 줄튕김 행위에 의해 생겨나 조금씩 변화하는 음색, 그리고 현을 지긋이 눌러줌으로써 생기는 미분음적 뉘앙스와 잔잔한 농현을 느끼고 감상하는 태도와 어울린다. 한국의 음악미학에서 이것은 인간이 자연과 나란히 가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여음이 있는 줄튕김악기의 소리는, 있기는 있으되 한계를 아는 인간의 역할과 근본적이되 멈출 곳을 아는 자연의 역할 사이의 균형이라는 지고의 미적 이상을 충족해 준다.

 

- 황병기 글/ 김세중 번역, 음반내지 21면에서

 

가야금과 거문고의 연주기법은 하나의 음이 울리고 난 뒤의 사라지는 과정을 중시한다. 이러한 자세와 철학이 "여음"이라는 낱말을 낳았는데, 가령 가야금의 경우 오른손으로 소리를 튕기자마자 왼손으로 농현을 하여 그 사라지기 시작하는 소리를 흔들거나 꺾거나 높히거나 내린다. 서양음악의 경우에는 소리의 냄과 소리의 끊음이 중요하지 냄과 끊음 사이의 소리를 흔들거나 어루만져 미분음적인 상태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차이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황병기는 "서양철학은 합리적이다. 사고에서는 논리, 예술에서는 통제가 중시된다. 논리나 통제가 없으면 결과의 타당성이 의심받는 예는, 전위적 우연성 해프닝으로 만들어지는 소리를 음악으로 볼 수 있느냐 문제 삼는 일부 비평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연주자가 음의 지속과 세기를 장악하는 줄비빔악기는 서양의 음악예술 개념을 만족시키며 따라서 높이 평가받는다"(음반내지 21면)고 일갈한다.

그래서인지 국악에서 하나의 음이 나와서 사라지는 과정은 마치 한 소절의 음악, 혹은 한 프레이징의 음악처럼 느껴진다. 하나의 음 안에 이토록 풍부한 세계가 깃들 수 있으므로, 우리나라 음악은 굳이 서양음악처럼 규칙적이고 긴박한 박자로 기동성을 끌어올리거나 반복적 선율을 통해 뭔가를 구축하거나 화음이나 대위법으로 공간을 확장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것을 두고 황병기는, "양악에서는 음들이 일정한 규격의 벽돌처럼 취급되어 여러 음으로 구축물을 쌓아 올리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대하여, 국악에서는 음들이 각기 특이한 형태의 자연석처럼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석으로 정원을 꾸미는 식으로 음악을 만드는 것"(황병기,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 102면)이라고 말한다.

황병기는 서양음악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것들은 국악의 본질적인 요소와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박자와 장단, 기동성과 농현, 화음과 유니슨, 소리와 소리의 간격, 머릿소리와 여음 등등, 서양음악과 국악의 머나먼 거리를 정확하게 짚고 있다. 그리고 그 차이점들이 어떤 정신적인 내용으로부터 비롯되었는가를 깊이 성찰하고 있다. 이 성찰이 바로 그의 작곡에 고스란히 흘러들어가 있으며, 그래서 그의 곡들은 실험과 혁신이 가득하면서도 전통적이다. 쉽게 말해, 국악의 정신적인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혹은 우리나라의 정신성을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추구하는 가운데, 전통적인 음과 음의 관계, 연주기법 등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서양 현대음악의 출발점들에 대하여 나름대로 고심해본 음악애호가들은 황병기의 이런 성찰과 그 결과물이 놀랍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음반에 실린 곡들은 황병기가 작곡한 곡들 중에서 시기적으로 뒤의 것들이다. 작곡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국악에서 황병기의 작곡은 사실 작곡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더 나아간다. 정악적 요소와 민속악적 요소의 배합, 아방가르드로서의 작품, 고대세계의 상상적 복원, 산조적 작곡, 화음과 반음계의 도입, 판소리 요소의 도입 등등, 그의 곡들은 언제나 실험적이면서도 언제나 전통적이다. 실험성의 측면에서는 <미궁>을 앞설 만한 곡이 없겠으나, 전통적 음악이면서도 전통적 기법을 넘어선 강도는 음반 «춘설»에 실린 곡들이 다른 음반의 곡들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음반에 실린 곡들은 서양의 현대음악처럼 낯선 실험성의 음악이 아니라 지극히 전통적이다. 전통적이라면 뭔가 퀴퀴함을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그러나 황병기의 곡과 연주는 격조가 있고 단아하다. 이를 두고 조슬린 클락Jocelyn Clark은 “황병기와 같은 이들의 창의적인 노력을 통해 전통음악은 아픈 과거의 연상을 지워버린다”(음반내지 16면)고 평한다.

젊은 시절 정악과 민속악을 다 배워 아악과 속악의 경계를 넘나든 첫 연주자로서 황병기는 그의 글과 음악을 통하여, 전통음악이라면 흔히 연상되는 것들, “퀴퀴하고 졸박함, 망가진 산하, 촌티나는 해학, 전쟁의 상흔 따위 이미지”(조슬린 클락, 음반내지 6면)를 불식시켰다. 가령, 함동정월의 가야금 산조를 듣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아픔이 느껴지지만, 황병기의 곡과 연주는 그런 먹먹함이 아니라 그 먹먹함을 대신하는 쓸쓸함이나 적막함이 느껴진다. 그는 정악의 소박함, 덤덤함, 유장함 등을 알고 있으며, 동시에 민속악의 한恨, 아픔, 신명, 조촐함과 화려함 등을 알고 있다. 이 음반에 실린 곡들은 이러한 양편의 언어들을 대부분 동시적으로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 한과 아픔의 언어만큼은 그대로 취하지 않고 대신 적막함으로 변화시켜 취한 듯하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적막한 채로 머물 뿐 슬픔이나 아픔에 물들지 않으며, 느릿느릿하면서도 탄력이 넘치며, 덤덤히 흐르다가도 화려하게 달린다. 그의 음악을 듣노라면, 비유컨대, 옛날 웃방에 놓여 있었던 허름한 반닫이가 이제 격조 높은 미술품이 되어 전시장에 전시된 것을 보는 기분이 든다.

공자는 "시를 통하여 일어나고 예를 통하여 확립하고 음악을 통하여 완성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논어» 泰伯篇)고 말했다. 황병기는 공자의 이 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실천한 독보적인 현대인일 것이다. 황병기의 음악이 들리고 거문고 정악이 들리는 이즈음, 서양음악을 들을 때는 납득하기 어려웠던 공자의 이 말을 나는 비로소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듯하다. 망가졌던 이 산하에서 성어악成於樂의 소리가 울리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기만 하다. 이 성어악의 소리를 이 음반뿐 아니라 «침향무», «비단길» 등에서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복된가.

어느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건너가는 것은, 어느 한 작품이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황병기의 이 음반은 그 역할을 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나는 이 음반을 듣고서 내가 이미 국악의 세계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았다. 제 위치를 확인한 것이 계기가 되어 결국 거문고 정악과 산조, 가야금 정악과 산조, 가야금과 거문고 병창, 가곡, 판소리 등등을 이제 듣고 있다. 만약 거문고의 밑도드리가 근원적인 친밀함으로 다가온다면 이미 그 사람은 국악의 세계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사실 요즘 사람들이 가야금 산조를 듣고 국악으로 건너가는 계기가 마련되기는 쉽지 않을 성싶다. 가야금 산조를 들을 때 느껴지는 그 뭔가의 아픔 때문이다. 그 아픔과 슬픔을 알고 있되 거기에 물들거나 빠지지 않는 황병기의 곡과 연주는 그래서 권할 만하다. 그러면서도 황병기의 곡은, 황병기의 곡이 잘 들리는 분에게는, 이전에 잘 듣지 못했던 가야금 산조, 판소리 등의 민속악으로 건너가는 다리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동시에 정악으로 인도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것 역시 황병기의 음악이 지니고 있는 크나큰 매력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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