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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4월에 미국에서 영어로 강연하고 그해 7월에 취리히에서 독일어로 강연하고, 이듬해 독일에서 «우리의 경험으로 비추어 본 니체 철학»(Nietzsches Philosophie im Lichte unserer Erfahrung, Suhrkamp 1948)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토마스 만의 짧은 니체 에세이가 «쇼펜하우어·니체·프로이트»(원당희 역, 세창미디어 2009)의 일부 내용으로 실려 번역되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1889년 니체의 정신적 붕괴를 상기하며 “아, 여기 한 고귀한 정신적 인간이 파괴되었도다!” 하는 오필리아의 비탄의 소리를 입히는 토마스 만의 안목에 사뭇 기대가 되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스럽다.


토마스의 만의 니체 에세이. 니체 철학을 심미주의의 과장으로 보고 있다.

“나는 니체가 파시즘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파시즘이 니체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122) 그는 니체 철학에 대한 파시즘적 해석에 대하여 분명한 반대를 표명하지만(당시에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니체 오독에서 벗어난 뛰어난 안목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으나), 근본적으로 니체 철학을 독일 낭만주의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토마스 만이 니체를 이해하는 주요 반경은 니체의 초기작들인 «비극의 탄생»이나 «반시대적 고찰»에서 펼친 사상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니체의 혈통과 뿌리를 같이하는 낭만주의 시인 노발리스”(120)라는 확언도 거기에서 비롯한다. 심지어는 “노발리스가 미적 위대성의 이상, 최고도의 야만성, 동물적 정신이라고 칭한 것, 바로 그것이 니체가 내세우는 초인”(121)이라고 보고 있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

바그너와 니체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작가이니만큼 니체 이해가 매우 남다를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탁월한 내용이 없는 단순한 이해 수준으로 평가하고 싶다. 하긴 하이데거나 들뢰즈 같은 천재적인 해석자들에 의하여 니체가 재발견되기 전까지 누군들 토마스 만 수준의 이해력을 넘어설 수 있었겠는가마는,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적어도 그는 20세기 최고의 독일작가로 손꼽히지 않던가? 작가라면 철학자들의 이론적 형해화에서 탈피하여 예민한 감각으로 남다르게 포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토마스 만은 적어도 니체에 관해서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작가마저도 철학적·이론적 선이해로 오염되는 것이 독일적 근성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토마스 만의 소설을 읽으려고 몇번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만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사실 이 니체 에세이조차도 잘 안 읽힌다.)


물론 유미주의와 야만성의 근친성이라는가, 심미적 태도와 도덕적 태도의 대립, 악의 낭만화 등등을 거론하며 니체 철학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토마스 만의 입장은 그의 개인사를 빼놓고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그가 파시즘의 위험을 몸소 경험한 작가가 아니었다면 그토록 휴머니즘을 옹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토마스 만 만큼이나 도덕주의 내지 윤리적 이상을 높게 평가하는 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세계 제2차 대전을 겪으면서 망명생활을 했던 작가나 예술가들이 “좀더 온화한 사상”, 휴머니즘, 도덕주의, 윤리적 이상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니체는 평생 동안 이른바 ‘이론적 인간’을 몹시도 저주했다. 그러나 그 자신이야말로 이 이론적 인간의 찬양자이자 순수문화에 뿌리박고 있는 인간 유형이다. 그의 사유는 절대적 천재성에 근거하여 지극히 비실용적이고, 교육적 책임감이라고는 전혀 없으며, 근본적으로 비정치성을 띠고 있다.(133)

위의 인용문에 토마스 만의 니체 이해 수준이 잘 드러나 있다. 니체의 사유가 비실용적이고 무책임하다는 평가는 그의 개인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비정치성을 띠고 있다는 평가는 파시즘적 해석에 대한 반대를 의미한다. 그리고 니체는 이론적 인간을 저주했으나 그 자신이야말로 이론적 인간의 찬양자라는 평가에서 토마스 만의 니체 이해가 의외로 초보적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이것은 토마스 만이 이론적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파시즘과 같은 어마어마한 사태를 겪은 이들은 낭만주의에 대한 공포, 이론적 인간에 대한 변호가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적인 경로가 아닐까? “우리의 경험으로 비추어 본 니체 철학”은 곧 “토마스 만의 경험으로 비추어 본 니체 철학”이기도 하다.

토마스 만은 니체 철학을 심미주의의 과장으로 보았으나, 니체 철학은 낭만주의도 아니며 심미주의도 아니다. 그러나 토마스 만은 그의 경험상 낭만주의·심미주의·야생성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고, 이론적 인간·도덕주의·계몽주의를 통해 위안을 얻었던 것같다. 이것이, 다름아닌 그의 삶이, 니체 철학을 이해하는 시선을 방해했을 것이다. 토마스 만은 “그는[니체는] 자신의 고독을 심미적 태도로 과장했다”(134)고 평가했으나, 이를 그대로 뒤집으면, 토마스 만은 자신의 두려움을 이론적 태도로 과장했다. 그러나 니체는 자신의 고독을 과장하지 않았으며, 토마스 만도 자신의 두려움을 과장하지 않았다. 그의 고독과 그의 두려움이 바로 그들 각자의 생을 전체적으로 규정했으므로. 따라서 정직한 작가나 철학자들이 내놓은 작품과 사상은 자기 생을 지키기 위한 방어책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니체의 말대로, 심지어는 취향조차도 자기 방어의 본능이다. 그러므로 누굴 함부로 비난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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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가 새끼를 안고 푸른 산봉우리 뒤로 돌아가니/ 새가 꽃을 물고 와 푸른 바위 앞에 떨어뜨리네(猿抱子歸青嶂後。鳥銜華落碧巖前).” — <벽암록>이라는 서명의 유래가 되는 이 문장에서 보듯, 선어록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독자에게도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내가 불교를 전혀 모르던 시절에 불교서적으로 맨 처음 손에 잡은 것이 <벽암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 권의 번역서를 모두 읽은 것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는 없으되 그때까지 접한 부류의 책들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벽암록>을 두고 “의미를 이해한다”는 말 자체가 얼마나 빈곤한 정신으로부터 비롯한 말인가를 아는 정도의 수준은 되고 보니, <벽암록>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비추는 거울 앞에 서는 기분이 든다. 내 안의 티끌 하나 먼지 하나 놓치지 않고 낱낱이 비추는 거울.

선가에서 “종문의 제일서”로 꼽는 어록인 만큼, <벽암록>은 독자들의 접근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눈 푸른 선지식들이 자르는가 하면 봉합하고 거스르는가 하면 따르고 주는가 하면 빼앗기를 자유자재로 하면서 독자들의 뭇 생각과 감각을 종횡무진 베어버리는 까닭에, 이성적인 접근으로든 감성적인 접근으로든 단 한 걸음도 따라갈 수 없다. 접근하려고 하면 번뜩이는 칼날에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고 만다. 일반적인 사고와 감수성이 죄다 끊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고와 감수성이 끊어진 세계이기 때문에, 그 세계에 등장하는 대나무, 종소리, 칼, 꽃, 떡, 원숭이, 새, 눈송이, 부처, 거울, 산, 강, 우물, 철벽, 바위, 채찍, 그림자, 모기, 번개, 똥막대기, 나비, 소, 방망이, 차, 풀, 잣나무 등등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새롭고 경이롭다. 이렇듯 독자의 사고와 감수성을 일신하기 때문에, “뼈를 바꾸어놓는 신령한 처방”이 있기 때문에, 그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고금을 아울러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단 한 페이지도 이해할 수 없는 이 <벽암록>이 또한 매우 복잡한 형성사를 갖고 있는 사정을 알고 나면, <벽암록> 읽기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멈출 수는 없는 법. <벽암록>을 원문으로 읽기 위한 준비작업을 정리해 본다.
 

먼저, <벽암록>의 구성을 간략하게 살펴두어야 한다. <벽암록>은 내용으로 볼 때 크게 수시, 본칙, 송으로 나뉘며, 본칙과 송에는 각각 착어와 평창이 따라붙는다. 그러니까, “수시”, “본칙과 본칙에 대한 착어·평창”, “송과 송에 대한 착어·평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서 본칙과 송은 설두의 작품이며, 수시와 착어와 평창은 모두 원오의 작품이다. 구성은 조금 복잡한 편이지만, 형성사를 살펴보면 구성이 좀더 명료하게 파악된다.

원오가 <설두송고백칙>을 제창한 내용이 바로 <벽암록>이라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해, <설두송고백칙>은 설두가 <조당집>·<전등록> 등 옛 어록에서 공안 백칙을 가려뽑고 각 칙마다 송을 부친 것이다. 그러니까 <설두송고백칙>은 옛 공안 백칙(“古百則”)과 송(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오는 그 백칙(본칙)과 송에 각각 착어와 평창을 부친 것이다. 그리고 수시는 머리말 격으로 각 칙의 앞에 온다. 이 모든 구성물을 합해놓은 것이 바로 <벽암록>이다:


<벽암록>의 구성도. <설두송고백칙>은 설두가 <조당집>·<전등록> 등의 옛 어록에서 공안 백칙을 뽑고 거기에 송을 부친 것이다. 원오는 <설두송고백칙>의 백칙과 송을 제창하였는 바, 그 내용이 바로 백칙(본칙)에 대한 착어와 평창, 그리고 송에 대한 착어와 평창이 된다. 이를 제자들이 기록하였다. 수시는 원오의 글로 각 칙의 머리말에 해당한다.


위 그림에서 알 수 있듯, <벽암록>의 내용을 형성사에 따라 구분하면 “본칙(고백칙)”, “송”, “수시·착어·평창”으로 나눌 수 있으며, 편집 순서에 따라 구분하면 “수시”, “본칙과 착어·평창”, “송과 착어·평창”으로 나눌 수 있다. 각 구성물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수시, 본칙, 송의 기본내용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으며, 착어는 원오의 촌철살인의 반어와 역설이 주 내용을 이루고, 평창은 고사의 배경이나 인물 소개, 간략한 설명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벽암록>의 맨 앞에 실려 있는 보조의 서는 바로 이러한 형성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지극한 성인의 명맥, 역대 조사들의 대기, 뼈를 바꾸어놓는 신령한 처방, 정신을 기르는 오묘한 술법이여! 저 설두선사께서 종지와 격식을 뛰어넘는 뚜렷한 안목을 갖추시어 바른 법령을 이끌어내면서도 모습을 겉으로 드러내시지 않으시며, 부처를 단련하고 조사를 담금질하는 집게와 망치를 손에 들고 선승이 자기 초월에 필요한 요점을 말해주셨다. 은산 철벽이니 뉘라서 감히 이를 뚫을 수 있으리요. 몸뚱이가 쇠로 된 소를 무는 모기와 같아 입질을 할 수 없다. 대종장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깊고 미묘한 이치를 어떻게 다 할 수 있겠는가?

이에 불과 원오 스님께서 벽암에 계실 때 수행하는 이들이 잘 몰라 이 미혹을 깨우쳐주실 것을 청하니, 노장께서 이를 어여삐 여기셔서 자비를 베풀어 저 깊은 밑바닥을 파헤쳐주시고 깊은 이치를 드러내어 명백하게 딱 가르쳐주셨으니, 이것이 어찌 알음알이를 가지고 한 것이겠는가? 백 칙의 공안을 첫머리부터 하나로 꿰어 수많은 조사스님네들을 차례차례 모두 점검했다.

— <벽암록 上>(장경각 1993) 13면

이와 같은 형성과정 때문에 <벽암록>은 <조당집>·<전등록> 등의 옛 어록에서부터 설두의 송, 원오의 글, 원오의 강설에 이르기까지 여러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문체나 형식이 매우 다채로운데다 일반 독자는커녕 학자들조차 파악하기 힘든 선지(禪旨)까지 숨어 있으니, 독해와 번역이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당송대의 구어 내지 속어가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어 그것들에 정통하지 않으면 오독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벽암록>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선지식의 안목과 학자의 실력과 시인의 감수성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그렇다면 어떤 순서로 <벽암록> 읽기를 시작해야 할까? 가장 먼저 집어들어야 할 것은 역시 선림고경총서의 <벽암록>(장경각 1993)일 것이다. 상중하 세 권 분량이지만, 각 권 뒤에 원문을 영인하여 실어놓았으므로, 분량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역서는 우리나라 번역서 중에서 최초로 수시, 본칙과 착어·평창, 송과 착어·평창을 모두 완역했다. 이 역서의 역자 이름이 별도로 표기되어 있지 않아 누구의 번역물인가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관련 글들을 참고해 보면, 어떤 과정을 거쳐 번역되었는지 유추해 볼 수는 있다.

30대 중반부터 경전을 번역한 송 교수는 <전심법요>, <백장록>, <동산양개 화상 어록> 등 23권의 선어록을 번역했다. 선림고경총서 가운데 3분의 2를 번역한 셈이다. 특히 그가 국내 처음으로 번역한 <벽암록>(장경각)은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을 모시고 일일이 자문을 구해가며 번역한 역저이다.

— 현대불교신문 2004년 기사, <송찬우 교수, 첫 벽암록 강의 10년간 진행> 중에서

위의 기사에 따르면, 1993년 장경각에서 펴낸 <벽암록>은 송찬우가 성철스님의 자문을 받아가며 번역한 저작이다. 그러나 신규탁의 글을 보면, 사정은 사뭇 다르다.

그러니까 1990년 여름이었다. 백련선서간행회로부터 <벽암록>을 윤문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컴퓨터에 입력을 해서 내부 교정도 마치고 프린터로 뽑은 원고라기에 쉽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막상 원문을 대조하며 하나하나 살펴보니 만만치 않았다. 결국은 이 초고를 전면 개정하여 새로 컴퓨터 입력을 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이 과정에서 나의 커닝은 시작되었다. 알다시피 <벽암록>은 당나라 선승들의 이야기를 100개로 추려서 만든 공안집의 하나이다. 그 이야기에는 등장하는 인물도 많고 뒤에 얽힌 사연도 많다. 게다가 당나라 때의 구어, 속어 등이 수없이 나온다. 덤으로 판본도 십여 종이 넘고, 그에 따른 글자의 출입과 차이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번역이란 결과적으로 가능한 여러 해석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는 번역자의 의도가 들어간다. 이런 류의 책을 번역하는 데 본문만 가지고는 도저히 온전한 번역을 할 수 없다. 자연 다른 책을 참고해야 한다. 좋은 말로 하니 참고이지 역자 주를 달아서 참고한 내용을 밝히지 못했으니 결국은 슬쩍 본 것이다. 말하자면 커닝을 한 셈이다.

어느 부분을 어떻게 커닝했는지는 번역자 마음껏 자세하게 <벽암록>에 주석을 달아도 좋다는 출판사가 나오면 그 기회에 고백할 계획이다.

— 신규탁, <선사들이 가려는 세상>(장경각 1998) 249-250면

송찬우와 신규탁 모두 백련선서간행회에 깊이 관여된 이들인 만큼 위의 기록들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를 종합해서 유추하자면, 송찬우의 번역초안, 백련선서간행회 검토, 신규탁의 윤문·수정을 거쳐 간행된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송찬우 교수의 선어록 강의에 공개된 <벽암록> 강의 및 번역물을 살펴보면, 장경각에서 간행된 <벽암록>의 문장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웹 사이트에 공개되는 것이어서 한껏 자유롭게 번역한 결과물일 수도 있지만, 송찬우의 다른 번역서들이 대개 그렇듯, 의미가 통하도록 의역하는 경향이 강한 그의 평소 특성을 감안하면, 원문에 충실한 장경각판 <벽암록>은 신규탁의 손을 거쳐 대폭적으로 수정된 결과물로 짐작된다.

신규탁은 이리야 요시타카를 위시한 일본학자들의 당송대 속어에 대한 최근 연구 결과물들을 섭렵한 학자인 만큼 <벽암록>의 속어 내지 구어에 대하여 기초적인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임은 당연하다. 또한 그는 훈고학적 고증이라는 엄밀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학자인 만큼, <벽암록>의 공안 백칙과 관련이 있는 <조당집>, <송고승전>, <전등록>, <오등회원> 및 <선학대사전> 등의 선어록 공구서들을 참고했다고 한다. 그러한 고증을 거쳐 장경각판 <벽암록> 최종원고가 나온 것이지만, 신규탁은 선림고경총서의 편집방침상 참고한 출처를 주석을 통해 밝히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석지현은 이 번역서를 두고 “글자 번역에 치중했다. 그래서 뜻이 잘 통하지 않는 부분이 종종 있다”고 평했지만, 나는 뜻이 잘 통하지 않더라도 글자 번역에 충실한 번역이 훌륭하다고 본다. <벽암록> 같은 저작을 “뜻이 잘 통하도록” 번역하는 것 자체가 과연 옳은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장경각판 <벽암록>은 일체의 해설이나 주석이 없으며, 오직 짤막한 해제와 번역문, 그리고 원문(영인)만을 싣고 있다. 


장경각판의 <벽암록> 외에 가장 입수하기 쉬운 번역서는 안동림이 역주한 한 권짜리 <벽암록>(현암사 초판 1978, 개정판 1999)이다. 이 책이 현재 시중에서 가장 잘 팔리고 있는 번역서인 듯하다. 그러나 번역문 갈피갈피에 역자가 삽입한 내용들이 워낙 선지와는 거리가 멀어 오히려 독자의 독해를 사사건건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유감스럽다. 그 때문에 그의 주석이 제법 알찬데도 전폭적인 신뢰를 하지 못하게 된다. 개정판의 일러두기를 보면, 장경각판의 <벽암록>(1993)과 이리야 요시타카의 <벽암록>(1997) 일역본 등을 참고했음을 밝히고 있다. 완역은 아니며, 착어와 평창이 빠져 있다.





최근에 나온 역작으로는 석지현 역주의 <벽암록>(민족사 2007)을 들 수 있다. 언론에서는 최초의 <벽암록> 완역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최초의 우리말 완역은 장경각판 <벽암록>이다. 석지현의 <벽암록>은 8년 여에 걸친 노작의 결과물로 모두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권에서 제4권까지는 <벽암록>의 번역이며, 제5권은 <벽암록 속어 낱말 사전>이다. 특히 제1권에는 <벽암록>을 종합적으로 안내하는 해설이 실려 있어 <벽암록>의 형성사 및 판본, 그리고 기존의 연구성과와 번역물들에 대한 평가 등을 접할 수 있다. <벽암록>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려는 이들은 이 해설을 일독할 만하다.

석지현의 <벽암록>은 원문, 번역문, 해설 순으로 짜여져 있다. 그러니까 <벽암록>의 구성물인 수시, 본칙과 착어·평창, 송과 착어·평창에 대하여 각각 순서대로 원문, 번역문, 해설이 실려 있다. 이 번역서의 가장 큰 특징은 각 구절에 대한 역자의 방대한 해설과 간략한 이본대조, 그리고 별권으로 독립된 <벽암록 속어 낱말 사전>에 있다. 이본대조 내용은 매우 소략하여 교감장치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는 모자르다고 할 수 있으며, 역자의 해설은 각 구절에 대한 훈고학적 주석이 아니라 역자의 안목으로 감평한 내용이다. 그 내용에 대한 호오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므로 나는 그것에 대하여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석지현의 번역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는 역시 속어사전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는 일본학자들의 연구 성과인 <禪語辭典>(1991), <禪學大辭典>(1985), <諸錄俗語解>(1999) 등을 기본사전류로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이리야 요시타카(入矢義高)의 <벽암록>(이와나미 서점 1997)과 스에키 후미히코(末木文美士)의 <벽암록>(이와나미 서점 2003)을 벽암록 속어 해설의 결정판으로 소개하고 있는 만큼 이 두 번역본도 함께 참고하여 사전을 정리했을 것이다. 석지현의 속어사전은 각 칙별로 속어를 배열하였으며, 뒤에 찾아보기를 두어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벽암록>을 원문으로 읽으려는 이들은 필히 이 사전을 거쳐야 할 듯하다.


 

 


그밖에 언급할 만한 번역으로는 정성본이 역해한 <벽암록>(한국선문화연구소 2006)을 들 수 있다. 이 번역서는 백칙 공안의 출처와 등장인물들의 전기자료를 일일이 제시하고 있어 훈고학적 고증을 거쳐가며 <벽암록>을 읽으려는 이들에게는 매우 유익하다. 그리고 중요한 선어의 형성과정을 언급하고 있다. 원오의 수시·착어·평창은 번역하지 않았으며, 설두의 본칙·송만 번역했다. 각 구절에 대한 해설을 싣고 있다. 설두의 송고를 중심으로 한 벽암록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벽암록>의 구어와 관련하여 부수적으로 읽어둘 만 책은 신규탁이 번역한 이리야 요시타카의 <禪과 문학>(장경각 1993)이다. 이 책의 일부 내용으로 선어록의 수사에 대한 짤막한 잡감들이 실려 있다. 저자는 선어록의 수사가 일반적인 한문과는 다른 이질적이고 파격적이고 이상한 수사라는 착각을 불식시키고 생생한 언어, 일상적인 언어라는 점을 주지시킨다. 다만 구어에 익숙하지 않은 학자들이 문어의 어법으로 번역하는 경우 터무니없는 착오가 발생한다는 점을 여러 사례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신규탁의 글들이 이리야 요시타카에게 많은 부분 빚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인용한 바 있는 신규탁의 <선사들이 가려는 세상>(장경각 1998)도 일독할 만한데, 저자가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엮어놓은 것이다. 그중에서 월간 <해인>에 실었던 “제3부 선어록 읽는 묘미”가 주요한 선어록들에 대한 소개 및 번역상의 문제점들을 언급한 것으로 선어록에 입문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또 하나, 별도의 글로 소개한 바 있는 아키즈키 료민(秋月龍珉)의 <무문관으로 배우는 선어록 읽는 방법>(운주사, 1996)도 선어록의 문법적 이해에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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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관련 책을 읽은 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칸트를 필두로 한 독일관념론은 라이프니츠-볼프 체계에서 정립된 철학용어를 바탕으로 성립되었다고 알고 있다. 이런 철학사의 흐름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으나, 일본이 근대화되던 시기에 독일관념론의 용어들을 번역하면서 한자로 조어한 용어들이 현재 우리나라 언어로 고스란히 계승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라이프니츠-볼프 체계의 철학용어는 결코 무시할 게 못된다.

우리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서양철학사 관련 책들을 읽기 시작할 때 독일관념론 철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도 다름아닌 그 번역용어들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한 생각이 아닐 것이다. 가령, “관념”, “객관”, “인식”, “본질”, “오성”, “이성”, “지성”, “현상”, “경험”, “감각”, “감관”, “의미”, “근거”, “인과” 등등의 낱말들은 길게 역사를 추적하면, 일본 번역어를 거슬러올라가 독일관념론, 라이프니츠-볼프 체계의 철학용어에 다다르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그 용어들을 입에 올릴 때 우리의 개념은 라이프니츠-볼프 체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며, 우리의 개념은 그 체계와 분리된 의미를 띠기 어렵다. 다름아닌 일본 번역어가 독일관념론에서 정의된 개념에 맞게 번역된 용어들이기 때문이다.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이 칸트라는 저수지로 흘러든 뒤 이후의 철학사를 향해 흘렀다는 칸트주의자들의 평가는 과장된 면이 있겠으나, 적어도 그 용어들의 흐름을 고려해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닐 성싶다. 그만큼 우리는 그 용어들을 독일관념론에서 정의된 개념의 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개념틀은 엄밀히 말해 한 시대의 정신에 불과한 것이다. 하이데거가 그 용어들의 역사성을 밝혀내면서 개념틀을 뿌리채 흔든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라이프니츠-볼프 이래의 개념체계, 즉 몇 세기에 걸쳐 서양철학사를 주조했던 개념체계를 해체하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가 현대독일어 문법에 허용되지 않는 희한한 독일어를 남발하는 것은 독일철학 용어로 편입된 언어들을 옛 시대의 의미로 복원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그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으니까.
 

에크하르트는 라이프니츠-볼프보다 약 400년 앞선 세대에 속한다. 따라서 그의 논고에는 “인식”, “이성”, “오성”, “본질”, “현상”, “근거” 등의 독일어가 등장하지만, 라이프니츠-볼프 체계의 개념틀 내지 독일관념론의 개념틀로 이해해서는 안되는 까닭도 바로 이러한 철학사적 흐름 때문이다. 바꿔 말해, 에크하르트의 글에 등장하는 “인식”, “이성”, “오성”, “본질”, “현상”, “근거” 등의 낱말들은 강단철학에서 협소한 개념체계로 굳어지기 이전의 의미를 갖고 있다. 거기에다 그의 중세고지독일어(Mittelhochdeutsch)는 현대독일어의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언어에 접근할 때 매우 조심스럽게 전후좌우를 살피면서 다가가야 할 것이다.

가령, “ein lebende wesende istige vernünftigkeit”(이부현은 “살아 있고 본질적이고 존재하는 이성”으로 옮겼다)에서 “wesend istig”(본질적이고 존재하는)라는 낱말들은 현대독일어에서 이미 사어가 된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어형으로부터 “Wesen”(본질)이라는 명사의 동사가 있었으며, “Sein”(존재)이라는 명사 내지 동사의 형용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이것을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가? “본질하다”로? 아니다, 그것은 우리말의 어법상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본질”이라는 번역어가 라이프니츠-볼프 체계의 협소한 개념에만 적합할 뿐, 그 이전의 언어세계에는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하이데거는 이런 경우 현대독일어에 남아 있는 “abwesend”(결석하다), “anwesend”(참석하다)라는 분사형을 함께 거론하며 “Wesen”이 원래 동사임을 주지시킨다. 그리고 “본질” 대신에 “임재하다”, “임하다”, “출석하다” 등의 의미로 개념을 복원시킨다. 이렇듯 언어들이 본래의 의미로 회귀하게 되면, 독일관념론같은 개념체계는 언제라도 허물어질 수 있는 사상누각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그 체계는 한갓 협소한 시대정신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에크하르트의 언어는 독일어의 본래 의미와 함께 움직인다. 따라서 에크하르트의 글을 읽을 때 가장 유념해야 할 것은 라이프니츠-볼프 체계 이래 형성된 개념틀을 깡그리 잊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말은 곧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철학적 개념들을 거의 모두 잊고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따라서 본래적인 이해로 보면 신은 유일무이하다는 것은 명백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지성이거나 인식이므로, 그러니까 다른 어떤 존재도 섞이지 않은 순수 인식이므로, 그 유일무이한 신이 자신의 인식을 통하여 사물들을 존재 속으로 호출하기 때문이다, 다름아니라 신 안에서만 존재는 인식이므로. . .

신께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한 것은, 신의 온 존재는 인식 자체이므로 신은 순수 지성이라는 점이다.

Es ergibt sich also offentlich, daß Gott im eigentlichen Verstande einzig ist. Und da er Intellekt oder Erkennen ist, und zwar reines Erkennen ohne Beimischung irgendeines andern Seins, so ruft dieser einzige Gott durch sein Erkennen die Dinge ins Sein, eben weil in ihm allein das Sein Erkennen ist . . . Er wollte und lehren, daß Gott reiner Intellkt sei, dessen ganzes Sein das Erkennen selbst ist.

— Josef Quint, Deutsche Predigten und Traktate, 7. Auflage, 24면

위 인용문에서 “신은 지성”, “신은 인식”, “신은 순수 인식”, “신의 존재는 인식 자체”, “신은 순수 지성” 등의 표현을 현대적인 개념틀로 파악한다면 십중팔구 그르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번역은 이렇게밖에 하지 못할 것이고, 필연적으로 중층적 몰이해의 위험에 노출된다. 그러나 그 중층적인 몰이해를 걷어낼 수 있는 역량의 독자들을 위해서, 물론 그런 독자들은 소수이겠지만, 그래도 각 용어들에 대하여 엄밀히 번역해야 한다. 가령 우리말의 자연스런 가독성을 위해 “Intellekt”, “Vernunft” 등을 일괄적으로 “이성”으로 번역한다거나, “Vernunft”의 번역어로 “지성”이나 “이성”을 번갈아 채택한다거나 하지는 말아야 한다. (실제로 이부현의 번역은 이런 착오를 범하고 있다. 이것이 의도적인 것인지 착오인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그의 일관되지 못한 번역어 채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 문제는 나중에 이부현의 번역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서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 개념들, 즉 “순수 인식”, “인식 자체”, “순수 지성” 등의 개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역사적으로 그 개념들의 변천사를 면밀히 검토한다하여 그 의미가 포착될 리는 만무하고, 우선은 자신이 그 개념들에 대하여 품고 있는 의미를 모두 털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개념들은 에크하르트의 직접 경험을 시사하는 암시의 언어일 뿐, 사상 체계를 확립하거나 분석하는 치밀한 논리의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문제는 역시 경험이다. 성실한 책읽기와 분석을 요구하는 언어가 있는 반면, 고도의 직접 경험을 요구하는 언어도 있다. 에크하르트의 언어는 바로 후자의 언어이다. 남녀의 감정놀음인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직접 경험을 요구하는 판에, 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사태를 가리키는 언어를 그런 경험이 전혀 없이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노릇이다.

신비가는 그 어떤 사상가보다도 언어를 그 극한까지 밀어붙혀 사용한다. 그는 당대의 언어는 물론 당대의 사상적 체계조차도 자신의 경험 뒤에 따라오는 하나의 그림자, 하나의 가벼운 도구로 사용한다. 언어의 의미가 고정되지 않고 역사적으로 흔들린다는 의미에서 그 언어는 극한에 이른다. 바로 이 의미에서, 니체는 “사람들은 이미지가 무엇이고 비유가 무엇인지 더 이상 개념을 얻지 못하리라”고 단언한다.

이미지나 비유가 어느 사상체계나 어느 감각세계 내에서 그 구조에 맞게 피어나는 꽃이라면, 신비가의 경험에서는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사용하는 모든 수법들, 모든 표현들, 모든 사상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구조 자체가 이미지요 비유가 된다. 니체 식으로 말하자면, 그것들은 “영원의 철학”의 언어가 아니라 (그런 형이상학적 언어를 추종하는) 철학자들의 심리를 폭로하는 실마리, 즉 일종의 비유나 이미지 같은 것, 심리학적 언어가 된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빌어 말하자면, 현실은 (혹은 현실이라고 믿는 그 무엇은, 혹은 철학자들이 몸담은 사상체계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또 다른 그림자인 것이다. 그리하여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이미지와 실제, 비유와 사실 간의 복합적 관계가 혁신되거나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신비가의 언어라는 언어는 모두 이미지나 비유나 상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가면에 가깝다. 문학작품을 읽을 때는 이미지나 심리의 연상을 따라가면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지만(그것은 그림자 놀이이므로), 사상서들을 읽을 때는 추론이나 논변, 논리를 따라가면 그 귀결에 도달할 수 있지만(그것 역시 그림자 놀이이므로), 신비주의 문헌을 그런 식으로 독해하면 필연적으로 그림자에 속아넘어가 좌초하게 될 것이다(그것은 그림자 놀이가 아니라 그림자 바로 그것일 뿐이므로).

가면은 가면 뒤에 얼굴이 있다는 것만 알릴 뿐, 얼굴을 묘파하지 않는다. 가면과 얼굴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있다. 에크하르트는 말한다:

이 강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기에 신경을 쓰지 말라. 이 진리와 같아지지 않는 한, 이 강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은폐되지 않은 진리, 즉 신의 마음으로부터 직접 도래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 설교 32

그의 강론, 그의 언어는 그림자와 그림자가 긴밀히 연계되는 그림자 놀이가 아니다. 그의 언어는 찰나찰나 흔들리는 그림자, 찰나찰나 명멸하는 그림자, 순수한 그림자다. 진리를 가장 덜 은폐하는 것은 바로 그 순수한 그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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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는 1912년 4월 머리를 기르고 속복을 입은 채로 북방의 고원에서 입적한다. 일년 뒤 이 소식이 수덕사의 제자들에게 알려지고 혜월과 만공은 곧장 그곳으로 달려가 난덕산에서 다비에 붙였다. 그때가 1913년 7월이었다. 이후 만공은 경허의 행적을 따라 각처에 흩어져 있던 경허의 유고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1935년에 수집한 유고를 만해 한용운에게 넘기며 혹 글자의 누락이나 그릇된 점을 고쳐 교열하여 주기를 부탁한다. 그러나 문도가 좀더 완벽을 기하기 위해 경허 만년의 원고까지 포함하기로 하여 인쇄를 미루다가, 1942년 봄에 갑산, 강계 및 만주 등지에까지 가서 유고를 수집한 뒤 1942년 여름에 간행하였다. 각 선원은 5원, 각 개인은 50전 이상씩 연조금을 모아 인쇄한 것이다. 이것이 1942년 중앙선원 판본 «경허집鏡虛集»으로 당시 비매품으로 배포되었다.



1942년 비매품으로 간행된 중앙선원 판본 «경허집» 표지와 이 판본에 수록된 경허선사초상

«경허집»의 표제는 남전한규가 제자하였으며, 속표지를 뒤이어 <열반송>, <경허선사초상>, <경허선사필적>이 실려 있다. 그리고 한용운의 <서序>와 <약보> 및 <목록>, 본문 순으로 이어진다. <목록>은 목차를 뜻한다. <목록>을 살펴보면 옛 글의 체제를 따라 법어, 서문, 기문記文, 서간, 행장, 영찬, 시詩, 가歌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歌의 일부만 한글일 뿐 나머지는 모두 한문으로 쓰였으며, 서문부터 시작하여 한적본의 면수로 60면, 즉 오늘날의 면수로 120면에 이른다. 이 «경허집»은 1970년에 «경허당법어록»(대동불교연구원 1970)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영인본이 간행된 바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허집»은 번역되지 않았다.

«경허집»이 처음 번역된 것은 1981년이다. 수덕사 문중의 원담스님은 «경허집»을 단순히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증보하기 위하여 1970년대 중반부터 다시 경허의 행적을 따라 각처를 답사하여 법어 및 <금강산유산가>를 비롯한 선시 40여 수를 새로 발굴하였다. 그리하여 한암스님이 찬술한 행장과 경허의 만행 일화 38편까지 덧붙혀 1981년에 «경허법어鏡虛法語»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그러니까 이 책은 «경허집»의 증보국역판인 것이다. «경허법어»에는 경허의 친필 유묵이 여러 점 수록되어 있어 아쉬운 대로 경허의 글씨를 살필 수 있어 좋다. 그리고 번역본이긴 하지만 원문(한문)을 함께 수록하고 있으며, “법문의 심장부인 <오도가>, <심우가>, <심우송>으로부터 수록”(46면)하고 일화, 행적, 연보를 마지막 부분에 배치하였다. 그러나 법어, 서문, 기문, 서간, 행장, 영찬, 송頌, 가歌의 기본체제는 옛 판을 그대로 따랐다. 인물연구소에서 1981년에 간행된 이 증보번역판은 747면에 이르며 당시 2만 원이라는 거금의 가격에 판매되었다.
 

그러므로 «경허법어»는 연구자들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이 보기에 너무 방대하고 난해한 점이 있었다. 그러던 차 금번 홍법원에서 일반 대중이 누구나 경허큰스님의 법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간추려 «경허대선사 법어·진흙소의 울음»을 간행”(10면)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현재에도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진흙소의 울음»(홍법원 1990)이다. 이 번역본은 «경허법어»의 번역문을 좀더 현대적으로 고쳐 다듬은 것으로서 <경허선사의 일화>, <경허선사의 법어>, <경허선사의 선시>라는 세 체제로 배열하고 법어의 제목을 임의로 달았으며, 법어 일부와 선시 수백 수 중에서 아흔 수 가까이를 수록하지 않았다. 이전의 경허집은 법어나 법문을 앞부분에 수록했던 반면에 «진흙소의 울음»은 경허의 일화를 오히려 앞부분에 배치했으니, 일반 독자들이 경허를 좀더 쉽게 접근하도록 의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법어의 한문은 수록하지 않았으며 선시의 한문만 함께 수록하였으나 면수는 422면에 이른다.



왼쪽으로부터 원담 번역의 «경허법어»(인물연구소 1981)와 «진흙소의 울음»(홍법원 1990), 그리고 석명정 번역의 «경허집»(극락선원 1991)

경허집의 역사는 «진흙소의 울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석명정이 번역한 «경허집»(운주사 1990년, 374면)과 «경허집»(극락선원 1991년, 429면)이 있는데 이 두 번역이 동일한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아마도 동일한 역자에 의한 것이니만큼 번역 내용은 다르지 않겠지만, 1990년판이 면수가 적은 것으로 미루어 간추린 번역으로 짐작된다. 반면에 석명정의 1991년판 «경허집»은 원담스님의 1981년판 «경허법어»와는 배열 및 제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원문 내용은 동일하다.

이상의 판본비교에서 우리는 중앙선원 판본 «경허집»과 이의 증보국역판인 «경허법어»가 경허어록 원문 연구의 기준이 되는 판본이며, 석명정의 1991년판 «경허집»은 번역본으로서만 의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진흙소의 울음»은 일반 독자들을 위한 보급판일 뿐 학술적인 가치는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독자들이 구입할 수 있는 경허어록은 몇 가지 종류가 있을까? 모두 다섯 종류이지만, 그중 두 권은 절판되었다.

  1. 진성원담 역, «진흙소의 울음»(홍법원 1990년, 422면)
  2. 석명정 역, «경허집»(운주사 1990년, 374면) 절판
  3. 석명정 역, «경허의 무심»(고요아침 2002년, 182면) 절판
  4. 석명정 역, «마음꽃»(고요아침 2002년, 228면)
  5. 석성우 역, «나를 쳐라»(노마드북스 2005년, 223면)

원담의 «진흙소의 울음»은 앞서 말했다시피 «경허법어»의 번역문을 고쳐 다듬고 간추려 수록한 것이며, 석명정의 «경허의 무심»과 «마음꽃»은 같은 역자의 1990/91년판 «경허집»에서 추린 것으로 앞의 책은 법문을, 뒤의 책은 선시 80여 수를 뽑아 수록하였다. 특히 «마음꽃»은 사진을 곁들여 시화집처럼 꾸며서 간행한 것이며, 역자의 감상평도 들어 있다. 석성우 번역의 «나를 쳐라»는 역자의 감상평만 없을 뿐 «마음꽃»의 형식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러니까 경허어록의 진수를 맛보려면 «경허집»(1942)이나 «경허법어»(원담 1981), «경허집»(석명정 1991)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진흙소의 울음»(원담 1990), «경허집»(석명정 1990) 정도의 내용은 되어야 한다. 이들에 비하면 «마음꽃»이나 «경허의 무심», «나를 쳐라»는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저 얇은 분량의 예쁜 시집 한 권을 읽는 기분이 들 뿐, 경허의 진면목을 엿보기에는 모자란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인터넷 서점에서 “경허”를 검색해 보면, «마음꽃»이나 «나를 쳐라»가 윗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진흙소의 울음»은 거의 팔리지 않은 채 어디 한데에 쳐박혀 있는 인상이 든다. «진흙소의 울음»에 대한 책소개 내용이 전무할 뿐 아니라 역자의 이름마저 표기되어 있지 않아, 과연 이 책이 무슨 책인지 알기도 어려운 것이다.

 

경허어록이 1942년 중앙선원 판본의 «경허집»으로 처음 세상에 드러난 이후 최근의 «나를 쳐라»로 마무리된 결말은 자못 씁쓸하다. 물론 이것이 끝은 아니겠으나 현 시대의 정신적 주소를 알려주는 듯하여 괴이한 기분마저 든다. 불교서적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이나 대중적인 편집본이 출간되는 것이야 푸념할 바 아니겠으나, 적어도 «마음꽃»이나 «나를 쳐라»보다는 «진흙소의 울음»이나 «경허집»이 좀더 환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하지는 않을까?

사방을 돌아보아도 사람이 없어 의발을 누구에게 전하랴, 의발을 누구에게 전하랴. 사방을 돌아보아도 사람은 없어, 봄 산에 꽃 활짝 피고 새가 노래하며, 가을 밤에 달이 밝고 바람은 맑기만 하다. 정녕 이러한 때에 무생無生의 일곡가一曲歌를 얼마나 불렀던가?

일곡가를 아는 사람 없음이여, 때가 말세더냐. 나의 운명이던가. 또한 어찌하랴.

산빛은 문수의 눈이요, 물 소리는 관음의 귀로다. “이랴 쯔쯧!” 소 부르고 말 부름이 곧 보현이요, 장張서방 이李첨지가 본래 비로자나로다.

불조佛祖가 禪과 敎를 설한 것이 특별한 게 무엇이었던가. 분별만 냄이로다. 석인石人이 피리 불고, 목마木馬가 졸고 있음이여. 범부들이 자기 성품을 알지 못하고, 말하기를 “성인의 경계지 나의 분수가 아니다.”라 한다. 가련하구나!

[...중략...]

슬프다. 어이하리! 대저 의발을 누구에게 전하리? 사방을 돌아보아도 사람이 없구나. 사방을 돌아보아도 사람이 없으니, 의발을 누구에게 전하리.

송頌하기를

홀연히 사람에게서 고삐 뚫을 구멍 없다는 말 듣고,
몰록 깨닫고 보니 삼천 대천 세계가 이 내 집일레.
六월 연암산 아랫길에
들 사람 일이 없어 태평가太平歌를 부르네.

하였다.

이상은 <오도가悟道歌>(1981년 원담 역)의 시작과 끝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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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실스 마리아에서의 경험 이후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이해받기 힘든 존재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으면서도 부단히 자신을 세상에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후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의 글 형식이 계속 바뀐 것도, 1886년에 저작들을 재간행하면서 서문들을 추가한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될 만하다. 그중에서도 «이 사람을 보라»는 그런 노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심오한 정신은 가면이 필요하다”(KSA 5, 57)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사람을 보라»는, 니체에 대하여 가장 많은 것을 말해 주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니체라는 사람(homo)을 보라(ecce)고 가리키는 지시어에 불과하다. 한 마디로, «이 사람을 보라»는 “나에 대하여 약간의 빛과 충격을 퍼트리려는 시도”이다.(KSB 8, 471)

니체를 비추는 “약간의 빛”, «이 사람을 보라»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인용문들로 점철되어 있다. 거의 모든 장마다 빠짐없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문장들이 등장한다. 그만큼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글이 아니다. 마침내 <나는 왜 이렇게 훌륭한 책들을 쓰는가>에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직접 말한다. “나는 이제 차라투스트라의 역사를 이야기하겠다”로 시작되는 이 장은 마치 난만하게 피어나던 오케스트라가 무너지고 주제선율만 외로이 흐르기 시작하는 인상을 준다. 니체가 진정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대목으로 꼽을 만하다.

이 대목, 즉 “이 사람을 보라 > 나는 왜 이렇게 훌륭한 책들을 쓰는가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정독하는 김에 기존 번역본들을 검토해 보았다. 국내에서 니체가 어느 정도나 이해되고 있는가, 아니 어느 정도나 오해되고 있는가를 아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국내번역본은 다음과 같으며, 이들을 검토 대상으로 삼았다.

  1. 곽복록 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976, 20072, 동서문화사)
  2. 김태현 역, «도덕의 계보/ 이 사람을 보라»(1982, 청하)
  3. 백승영 역, «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안티크리스트·이 사람을 보라 . . .»(2002, 책세상)

곽복록 역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단일 제목과는 달리 «비극의 탄생», «아침놀», «도덕의 계보», «이 사람을 보라»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책으로, 1976년에 처음 출간되었다가 최근 2007년에 새로 출간되었다.
 

먼저, 1절에서 문제시 할 수 있는 번역 대목을 살펴보자. 니체는 1절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의 시작과 마무리를 이야기한다. 이는 차라투스트라의 역사의 출발점인 1881년 8월 실스 마리아에서의 경험을 전후한 시기를 의미한다. 그중에서 차라투스트라의 전제 조건이 되는 “듣는 법에서의 재생”과 관련한 경험 대목:

sicherlich war eine Wiedergeburt in der Kunst zu hören, eine Vorausbedingung dazu. In einem kleinen Gebirgsbade unweit Vicenza, Recoaro, wo ich den Frühling des Jahrs 1881 verbrachte, entdeckte ich, zusammen mit meinem maëstro und Freunde Peter Gast, einem gleichfalls “Wiedergebornen“, daß der Phönix Musik mit leichterem und leuchtenderem Gefieder, als er je gezeigt, an uns vorüberflog.(1절)

확실히 듣는 법에서 재생이 있었다. 이것이 예비조건이었다. 비첸차에서 멀지 않은 어느 조그만 산중 온천 레코아로에서, 내가 1881년 봄을 지냈던 곳에서, 나의 벗, 음악가 페터 가스트, 나와 마찬가지로 “재생한 자”와 함께, 나는 음악이라는 불사조가 이제까지 보여준 것보다 더욱 가볍고 더욱 빛나는 깃털로 우리 곁을 스쳐 비상하는 것을 발견했다.

곽복록 확실히 듣는 기술의 부활이 그 전제조건이었던 것이다. 베네치아에서 멀지 않은 레코아로라는 조그만 산간 온천장에서 (…) 여기서 나는 내 음악 교사이며 친구인, 나처럼 ‘다시 태어난 자‘인 페터 가스트와 함께

김태현 확실히 듣는 예술이 나에게 다시 태어났다는 것은 이 사상에 대한 전제조건이었다. 베네치아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레코아르라는 작은 산 온천에서 (…) 거기서 나는 나의 음악가이며 친구인 페터 가스트와 함께–이 사람도 또한 “<다시 태어난> 사람이었는데–

백승영 확실히 예술 안에서의 부활을 들을 수 있었고, 그 부활에 대한 전제 조건이었다 (…) 베네치아에서 멀지 않은 레코아로라는 작은 산간 온천에서 나는 내 스승이자 벗이며 그 역시 ‘다시 태어난 자‘인 페터 가스트와 함께

위 인용문은 실스 마리아의 경험이 있기 두 달 전에 음악적 취향에서 급격한 변화가 있었던 것을 서술하는 대목이다. 그리 어렵지 않은 대목인데 불가사의하게도 모두 이상하게 번역했다. 먼저, “eine Wiedergeburt in der Kunst zu hören”은 “듣는 법에서의 재생”, 또는 “듣는 기술에서 다시 태어남” 정도로 번역해야 하는데, 백승영은 문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예술 안에서의 부활을 들을 수 있었고, 그 부활에 대한 전제 조건이었다”로 오역하는 동시에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실수를 했다. 또한 “Wiedergeburt”는 “재생, 거듭남”의 의미로서 “부활”(Auferstehung)과는 명백히 다른 낱말이다. 이들 낱말이 모두 루터번역성서에서 중요한 의미로 쓰이는 것을 알고 있다면, “Wiedergeburt”는 “재생, 다시 태어남, 거듭남”으로 옮겨야 한다. 특별히 뒷 문장에서 “Wiedergeborner”(재생한 자, 다시 태어난 자)와 호응을 이루고 있는만큼 같은 낱말로 번역해야 하는데도, “부활/다시 태어남”(곽복록, 백승영)으로 다르게 옮긴 것은 의아하다. 그리고 “maëstro”는 그냥 “음악가”로 옮기면 되는데 “음악 교사”(곽복록), “스승”(백승영)으로 옮긴 것도 눈을 의심케 한다. 페터 가스트는 니체의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데도 그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Vicenza”는 “비첸차”인데 한결같이 “베네치아”로 옮긴 것은 또 무엇인지.
 

실스 마리아에서의 경험 직후 «즐거운 학문»을 출간하고 이후 곧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를 내놓았던 만큼, «즐거운 학문»은 차라투스트라가 등장하고 있음을 알리는 “백 가지 조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즐거운 학문» 제4부 마지막 절인 342절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서설의 시작이 될 대목을 먼저 싣고 있으며, 바로 그 전절인 341절은 그 유명한 “최대의 무게”라는 제목으로 영원회귀 사상을 알리고 있다. 그러니까 «즐거운 학문» 제4부 342절이 곧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설 시작 대목이기에 니체는 “그것은 차라투스트라의 시작마저 내놓고 있다”고 했으며, 바로 그 앞절은 “차라투스트라의 근본사상”을 내놓고 있다고 했다.

In die Zwischenzeit gehört die “gaya scienza”, die hundert Anzeichen der Nähe von etwas Unvergleichlichem hat; zuletzt giebt sie den Anfang des Zarathustra selbst noch, sie giebt im vorletzten Stück des vierten Buchs den Grundgedanken des Zarathustra.(1절)

“즐거운 학문”은 그 중간기에 속하거니와 그것은 무엇에도 비할 바 없는 그 뭔가가 접근하는 백 가지 조짐이다; 급기야 그것은 차라투스트라의 시작마저 내놓고 있으며, 제4부 마지막 바로 전 절에서는 차라투스트라의 근본사상을 내놓고 있다.

곽복록 결국 그것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첫머리를 그대로 싣고 있고 제4권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부분에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근본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김태현 결국 그것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두 부분을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이 책 제4권 2절에서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근본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백승영 결국 «즐거운 학문»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두 자체이고, 그 4부의 끝에서 두 번째 장에서는 차라투스트라의 근본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텍스트의 형성사를 면밀히 검토했다면, “결국 «즐거운 학문»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두 자체”(백승영)라는 번역을 할 수 없다. 백승영 번역본이 그나마 나은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면밀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부주의가 드러나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은 매우 실망이다. 또 하나 언급해야 할 것은, 니체가 원문에서 별도의 괄호나 기호 없이 “차라투스트라”로 지칭하고 있을 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지칭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이것이 책과 인물을 동시적으로 가리키고 있어 자못 풍요로운 의미를 띤다. 번역할 때에도 그 의도를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2절에서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를 이해하기 위한 생리학적 전제로 “위대한 건강”을 꼽고 있으며, 이에 관한 상세한 안내문으로 «즐거운 학문» 제5부 382절을 그대로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전집번역이라면 두 번역자의 번역내용을 비교해 볼 수 있는 흥미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의외로 책세상 번역본은 백승영 역의 «이 사람을 보라»와 안성찬·홍사현 역의 «즐거운 학문» 번역문이 동일하다. 나중에 간행된 안성찬·홍사현 역이 백승영 역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물론 오역도 그대로 따랐다.

für den das Höchste, woran das Volk billigerweise sein Werthmaß hat, bereits so viel wie Gefahr, Verfall, Erniedrigung oder, mindestens, wie Erholung, Blindheit, zeitweiliges Selbstvergessen bedeuten würde; das Ideal eines menschlich-übermenschlichen Wohlseins und Wohlwollens, welches oft genug unmenschlich erscheinen wird, zum Beispiel, wenn es sich neben den ganzen bisherigen Erdenernst, neben alle bisherige Feierlichkeit in Gebärde, Wort, Klang, Blick, Moral und Aufgabe wie deren leibhafteste unfreiwillige Parodie hinstellt - und mit dem, trotzalledem, vielleicht der große Ernst erst anhebt, das eigentliche Fragezeichen erst gesetzt wird, das Schicksal der Seele sich wendet, der Zeiger rückt, die Tragödie beginnt . . .

그 정신에 비하자면, 군중이 당연하게도 그들 자신의 가치척도로 삼고 있는 최고의 것이 숫제 위험, 타락, 비천함 따위를 뜻하기 마련이며, 그게 아니라면 고작 회복, 맹목, 일시적인 자기망각 따위를 뜻하기 마련이다; 인간적인-초인적인 복된 존재와 복된 의욕의 이상은 빈번하게 진정 비인간적으로 비칠 때가 있는 바, 예컨대 그것이 ‘몸짓·말·소리·시선·도덕·과제’를 빌어서,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가장 생생하고도 비자의적인 패러디’를 빌어서 기존 지상의 진지함 전체와 함께 나란히 제시될 때, 기존의 온갖 엄숙한 것들과 함께 나란히 제시될 때 그렇다 —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위대한 진지함이 처음으로 부각되고 본연의 물음표가 처음으로 제기되리니, 영혼의 운명이 회전하고, 시계바늘이 움직이고, 비극이 시작된다 . . .

곽복록 당연히 가치 척도로서 갖고 있는 최고의 것이 이러한 이상의 정신은 민중에게는 위험, 타락, 굴욕 같은 것 아니면, 최소한 휴양이나 맹목성, 일시적인 자기망각 같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예컨대 이제까지 지상에서 진지하던 몸짓, 말, 음향, 시선, 도덕 과업을 이루기 위한 온갖 의식 옆에 이상이 그것들과 가장 닮은 풍자시처럼 놓인다면, 그 인간적이면서도 초인간적 안녕과 호의를 지님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진지함으로 시작되고 본연의 의문 기호가 찍힐 것이다. 그러면 영혼의 운명이 방향을 바꾸고 시계 바늘이 움직이며, 그곳으로부터 비극이 시작될 것이다.

김태현 이러한 이상에게 있어서는 사람들이 그들의 가치기준으로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최고의 것이란 단순히 위험, 쇠퇴, 저하, 기껏해야 휴양, 맹목, 일시적인 자기망각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때로는 비인간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예를 들면 이러한 이상이 지상의 모든 진지함, 몸짓, 말, 소리, 눈, 도덕, 사명에 있어서의 모든 장엄함과 대면케 되면 인간적 초인간적인 행복과 선의라는 이상 그 이상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들에 대한 구체화된 조롱 시가 되는–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마 이 이상으로써 위대한 진지함이 진정으로 시작되리라. 영혼의 운명은 바뀌고, 바늘은 앞으로 움직여 비극은 시작되리라.

백승영 이 이상에 대해서는 대중들이 자기들의 가치 기준으로 당연시하고 있는 최고의 것은 위험이나 쇠퇴나 저하를 의미하게 되거나, 그것이 아니라도 기껏해야 휴양이나 맹목이나 일시적인 자기 망각을 의미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적-초인간적인 행복과 선의라는 이상이지만, 종종 비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의 지상의 진지함 곁에서, 몸짓이나 말이나 소리나 시선이나 도덕이나 과제에 있어서의 온갖 장엄함의 곁에서, 그 이상이 특별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에 대한 패러디로 구현되어 제시되는 경우에서 그렇다–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과 더불어 위대한 진지함이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진정한 의문부호가 비로소 찍힐 것이다. 영혼의 운명이 바뀌고,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비극이 시작될 것이다…

난해한 대목이다. 위 인용문의 앞 문장에서는 “이제까지 ‘성스럽다’, ‘선하다’, ‘불가침이다’, ‘신성하다’고 칭한 모든 것과 더불어 유희하는 정신의 이상”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 정신 혹은 그 정신의 이상에 비하자면 사람들이 최고의 것으로 받들고 있는 것들(가령 ‘선’이니 ‘신성’이니 하는 것들)은 ‘위험’, ‘타락’, ‘비천’에 불과하며 잘 봐줘도 사람들이 생을 견디기 위해 필요한 ‘회복’, ‘맹목’, ‘자기망각’을 뜻하기 마련이라는 것이 니체의 강조점이다. 그런데 그 정신의 이상이라는 것이 제시될 때에는 기존의 언어, 예술, 입장, 도덕, 과제 등을 빌어서 (혹은 그것들의 패러디를 빌어서) 제시될 수밖에 없는 바, 필연적으로 인간적이면서도 초인적인 양면을 띠게 되며, 더 나아가 비인간적인 것으로 비치게 된다. 가령, 니체가 애용하는 말인 ‘악’, ‘악의’ 등이 그렇다. 이것은 도덕의 용어를 빌어서 제시되는 것이자, 기존의 엄숙함을 대표하는 최고가치인 ‘선’, ‘신성’과 함께 나란히 제시되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언어를 빌어서 제시된다는 점에서 인간적이며, 그러면서도 기존 언어의 의미와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초인적이며, 그리하여 기존 지상의 가치들을 파괴하면서 제시된다는 점에서 비인간적이다. 요컨대, ‘악’이 ‘신성함’과 더불어 유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위대한 건강”이라고 부르는 바 차라투스트라를 이해하기 위한 생리학적 전제인 것이다.

이 구절에서 곽복록과 김태현의 번역은 별도로 언급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매우 안 좋다. 백승영의 번역이 그나마 나은 편이긴 한데, 헤매기는 마찬가지이다. 가령, 첫 문장의 우리말 표현이 매우 어색하거니와 “이 이상에 대해서는”이 아니라 “이 정신에 대해서는”으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몸짓이나 말이나 소리나 시선이나 도덕이나 과제에 있어서의 온갖 장엄함의 곁에서, 그 이상이 특별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에 대한 패러디로 구현되어 제시되는 경우”라는 번역문 역시 원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몽롱한 문장이다. “가장 생생한 (패러디)”를 누락한 것도 의외다.
 

위와 같은 니체의 심오한 문장처럼 철학적 논증을 거쳐 의미를 확정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문장을 잘못 번역해도 (심지어는 정반대의 의미로 번역해도) 이를 지적하는 것이 결코 용이하지 않다. 그나마 구문을 잘못 파악하여 결정적으로 오역이 발생했다면 이를 지적하는 일은 수월한 편인데, 이런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대개는 문장의 의미나 낱말의 뉘앙스를 면밀히 파악하지 못해 오역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3절의 경우에도 그렇다.

Es scheint wirklich, um an ein Wort Zarathustra’s zu erinnern, als ob die Dinge selber herankämen und sich zum Gleichnisse anböten (- “hier kommen alle Dinge liebkosend zu deiner Rede und schmeicheln dir: denn sie wollen auf deinem Rücken reiten. Auf jedem Gleichnis reitest du hier zu jeder Wahrheit. Hier springen dir alles Seins Worte und Wort-Schreine auf; alles Sein will hier Wort werden, alles Werden will von dir reden lernen -”).

실제로,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회상하건대, 사물들이 스스로 다가와 비유가 되어주기라도 한 듯하다 (— “여기에서 모든 사물들이 쓰다듬으며 너의 설법을 향해 다가오고 너에게 살랑댄다: 그것들은 너의 등에 올라타고 싶은 것이다. 너는 여기에서 저마다의 진리를 위하여 저마다의 비유에 올라탄다. 여기에서 너를 위하여 모든 존재의 말이 문득 열리고 말의 상자가 문득 열린다; 모든 존재는 여기에서 말이 되고자 한다, 모든 생성은 너로부터 설하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

곽복록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떠올려 보면 거기에선 마치 사물들이 다가와서 자기를 비유적으로 제공해 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사물은 애무하면서 그대의 역설에 다가와서 아첨한다. 그것은 그대의 등을 타고 가려하기 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모든 비유를 타고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여기서는 모든 존재의 말과 말의 상자가 튕겨 열린다. 모든 존재가 말이 되려 한다. 모든 생성이 그대에게서 말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김태현 실제로 짜라투스트라가 말한 것을 보면 암시를 얻을 수 있는데 모든 사물은 스스로 접근해 와서 스스로 비유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모든 것은 너의 말이 있는 곳에 달래는 듯이 다가와 아첨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의 등에 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너는 비유를 타고 어떠한 진리에도 도달할 수 있다. 여기서 모든 존재는 말이 되기를 원한다. 모든 생성은 너에게서 말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한다.)

백승영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기억해보자면 어떤 것이 제 스스로 다가오고 스스로 비유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보인다(–”여기서는 모든 것이 어리광을 부리며 네가 하는 말로 다가와 네게 아첨하리라: 모든 것이 네 등에 업혀 달리려 하기 때문이다. 너는 여기에서 온갖 비유의 등에 올라타고 진리를 향해 달린다. 여기서 모든 존재의 말과 말의 상자가 너를 향해 활짝 열린다; 모든 존재는 여기서 말이 되고자 하며, 모든 생성은 네게서 말하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3절에서 니체는 실스 마리아에서의 결정적인 경험을 두고 “영감”의 사례로 소개한다. 심심미묘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역자들은 표현 하나하나에 예민해야 한다. 가령, 운명을 뒤바꾼 결정적인 경험의 순간에 사물들이 니체에게 다가온 장면을 두고, 모든 사물들이 아첨한다느니 어리광을 부린다느니 표현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 역자들이 니체의 경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그저 독한사전만 보고 하나같이 “아첨하다”로 옮겼나본데, 안타까운 일이다. 동일한 견지에서, “Auf jedem Gleichnis reitest du hier zu jeder Wahrheit”의 “jede-” 역시 정확하게 “저마다의 비유/저마다의 진리” 내지 “각각의 비유/각각의 진리”로 번역해 주어야 마땅하다. “저마다의 진리를 위하여 저마다의 비유에 올라탄다”는 문장은 “진리를 위하여 비유를 탄다”나 “진리를 위하여 온갖 비유를 탄다”는 문장과는 의미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정적인 차이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번역하지 않는가?
 

다음 4절은 소위 ‘팩트’의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4절에는 니체가 독일식 지명으로 표기한 “Nizza”와 “Eza”가 등장한다. 이곳들은 현재 프랑스 영토의 “니스”와 “에즈”이다. 그런데, 번역자들이 “니스”는 제대로 표기하고선 “에즈”를 “에쯔아”나 “에차”로 잘못 표기한 것은 그들의 불성실에 대한 증거이다. 이러한 불성실은 2절의 “ein Göttlich-Abseitiger alten Stils”(옛 풍습처럼 신성하게 제정신을 벗어난 자)를 “옛 방식으로 신이 들려 괴상한 자”(백승영)으로 옮긴 데에서도 확인된다. 이 개념이 적어도 플라톤의 이온이나 파이드로스에서 유래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면 “괴상한 자”라고 옮길 수 없다. 그러니 “옛날 방식으로 신이 들린 자”(곽복록), “구식으로 신들린 자”(김태현)로 옮기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할 수 있다.

니체의 문체적 특징 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반복되는 동사의 빈번한 생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략은 일반적인 독일어에서는 허용되기 힘들 정도이지만, 니체가 그렇게 한 것은 우선은 문장의 리듬 때문일 것이며, 특히 생략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생략하는 희랍어·라틴어의 구문에서 영향을 입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로마시인들로부터 문체를 배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Ein Andres ist die schauerliche Stille, die man um sich hört. Die Einsamkeit hat sieben Häute; es geht Nichts mehr hindurch. Man kommt zu Menschen, man begrüsst Freunde: neue Öde, kein Blick grüsst mehr.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제 주위에서 듣는 으스스한 정적이다. 그 고독은 일곱 겹의 피부를 가지고 있다. 그 어떤 것도 그것을 뚫고 지나가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벗들에게 인사하지만, 새로운 적막이 인사할 뿐, 더 이상 그 어떤 시선도 인사하지 않는다.

곽복록 사람들에게로 다가가고 친구들에게 인사를 해도 말이다. 새로운 적막이 감돌고 더 이상 인사하는 눈초리라곤 없다.

김태현 사람들, 친한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본다. 그러나 더 많은 고립감이 있을 뿐, 어느 누구도 따뜻한 눈으로 반겨주지 않는다.

백승영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친구들에게 인사하지만: 새로운 황무지는 어떤 인사의 눈길도 더 이상 보내지 않는다.

밑줄 그은 문장은 “neue Öde grüsst, kein Blick grüsst mehr” 내지 “kein Blick grüsst mehr, sondern nur neue Öde [grüsst]“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니체는 생략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생략하여 “neue Öde, kein Blick grüsst mehr”로 썼다. 그런데 이러한 니체의 문체에 익숙하지 못한 역자들은 잘못 옮기고 말았다. 다만 곽복록은 “새로운 적막이 감돌고 더 이상 인사하는 눈초리라곤 없다”고 의역하여 체면치레를 하고 있다. 그동안 니체 번역서들을 살펴본 결과, 역자들이 니체의 생략구문을 놓쳐서 의미를 잘못 파악하여 저지른 오역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니체 오역의 사례 중에서 가장 위험한 사례는 다름아닌 정반대로 번역한 경우이다. 설마 그런 경우가 있으랴 의문을 품을 만하지만, 이제까지 내가 확인한 바로는 그런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면 5절의 마지막 구절이 그렇다:

Ich wage noch anzudeuten, daß man schlechter verdaut, ungern sich bewegt, den Frostgefühlen, auch dem Mißtrauen allzu offen steht, - dem Mißtrauen, das in vielen Fällen bloß ein ätiologischer Fehlgriff ist. In einem solchen Zustande empfand ich einmal die Nähe einer Kuhheerde, durch Wiederkehr milderer, menschenfreundlicherer Gedanken, noch bevor ich sie sah: das hat Wärme in sich …

내가 과감하게 암시까지 해주겠거니와, [그런]사람들은 소화력이 좋지 않으며, 움직이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한기寒氣와 불신에 대하여 너무나 활짝 열려 있다, — 불신은, 대개 병인病因을 잘못 짚어 [질병이라고] 진단한 것일 뿐이다. 그런 상태에서 나는 암소떼의 접근을 감지한 바 있다, 암소떼를 채 보기도 전에, 좀더 온화하고 좀더 인간에게 친밀한 사상들이 회귀하는 것을 단서로 하여: 그것은 온기를 품고 있느니 . . .

곽복록 그런 사람은 소화를 잘 못 시키고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고 한기나 불신감에 내맡겨져 있다고 나는 감히 암시한다—대개 단지 병원학적인 실책에 불과한 불신감에 말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어느 땐가 더 온화하고 더 어진 생각을 다시 하게 되면서, 나는 소떼가 가까이 있음을 느꼈다. 그것을 보기도 전에 말이다. 온화하고 어진 생각 자체는 온기를 지니고 있다.

김태현 그여기서 감히 부언해 둘 것은 그렇게 되면 우리의 소화능력은 감퇴하고 게으르게 되고 한기에 너무 민감하게 되고 불신감에 걸리고 만다. 그 불신감이란 대개 단순한 병원학적인 착오에 불과한 것이지만 내가 그러한 상태에 있었을 때 더욱 온화하고 더욱 인자한 사상이 나에게 다시 떠올랐고 그때 나는 한 우리의 소떼가 나에게 접근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아직 그것을 보지 못했지만 <그것들은> 온기를 지니고 있었다.

백승영 그런 사람들은 소화도 잘 못 시키고, 움직이기를 싫어하며, 얼어붙어버리고 지나치게 불신감에 개방되어 있다고 나는 감히 암시한다—여러 경우에서 단지 병인학적 착오에 불과한 불신감에. 그런 상태에서 어느 땐가 더 온화하고 더 인간 친화적인 사유가 내게 돌아오면서 나는 소떼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그것을 미처 보기도 전에: 그것은 온기를 지니고 있었다……

니체는 제5절에서 불멸의 성과를 이룬 자가 치를 수밖에 없는 값비싼 댓가/보상을 세 가지로 언급하고 있다. 그 중 마지막 세번째가 위에 인용한 대목으로, 창조력을 모두 소비하고 나면 모든 방어력이 소진되면서 사소한 상처에도 민감한 피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소화력도 좋지 않고 움직이기를 힘들어한다. 그리고 “한기와 불신”에 대하여 무방비로 열려 있게 된다. 즉 그들은 한기와 불신 자체가 된다. “불신”은 대개의 경우에 병인을 잘못 짚어 질병이라고 진단한 것에 불과할 뿐이요, 불멸을 이룬 이들에게는 존재 자체가 불신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사랑”이니 “행복”이니 하는 (한기와는 정반대인) 온화한 사상들이 접근하는 조짐만 보여도 금방 간파할 수 있다. 그래서 니체는, “그런 상태에서 나는 암소떼의 접근을 감지한 바 있다, 암소떼를 채 보기도 전에, 좀더 온화하고 좀더 인간에게 친밀한 사상들이 회귀하는 것을 단서로 하여 . . .”라고 말한다.

이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설 제3절을 함께 음미할 필요가 있다:

보라! 나는 너희에게 최후의 인간을 선보이겠노라.

“사랑이 무엇이냐? 창조가 무엇이냐? 그리움이 무엇이냐? 별이 무엇이냐?” — 이렇게, 최후의 인간은 묻고는 눈꺼풀을 떤다.

그후 대지는 왜소해졌으며, 만물을 왜소하게 만드는 최후의 인간은 대지 위를 날뛰고 있다. 그의 생식은 잎벌레처럼 근절될 수 없다; 최후의 인간이 가장 장수한다.

“우리는 행복을 창안했다”라고 —, 최후의 인간들은 말하고는 눈꺼풀을 떤다.

그들은 살기에 혹독했던 지역을 떠났다: 사람들은 온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과 마찰한다: 온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병듦과 불신을, 그들은 죄악으로 여긴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걸어온다. 아직도 돌부리나 인간에게 채여 비틀거리는 멍청이.

다름아닌 “사랑”, “행복”, “온기”는 최후의 인간의 언어이다. 최후의 인간은 “병”과 “불신”을 죄악으로까지 여긴다. 그렇게 그는 “좀더 온화한 사상들”과 “좀더 인간에게 친밀한 사상들”을 설파한다. 그가 “창조”라는 말을 꺼내면 그 “창조”라는 말도 온화한 사상이 되어 타락하게 된다. 이 최후의 인간과 그를 따르는 인간들을 두고 차라투스트라는 통탄한다: “목자는 없고 한 떼의 무리만 있음이여! 저마다 동일한 것을 원하고, 저마다 동일하다.”

이제 우리는 앞선 인용문에서 “암소떼”가 무엇이며 “온기”가 무엇을 뜻하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느 땐가 더 온화하고 더 어진 생각을 다시 하게 되면서”(곽복록), “더욱 온화하고 더욱 인자한 사상이 나에게 다시 떠올랐고”(김태현), “어느 땐가 더 온화하고 더 인간 친화적인 사유가 내게 돌아오면서”(백승영) 등의 번역이 니체의 의도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가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정반대로 번역했다! 무엇이 차라투스트라이고 무엇이 최후의 인간인지를 분간하지 못하게 만드는 위험한 번역!

바로 이런 대목이 니체 독해의 어려움이며, 바로 이런 대목이 국내 니체 번역의 한계인 것이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나는 다른 니체 텍스트에서도 이와 동일한 사례를 빈번하게 마주쳤다. 그리고 이런 대목은 어느 한 번역본만 오역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번역본이 동일하게 오역한다는 사실이 무척 뼈아프다.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니체 번역이 나오기까지는 아직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외에 사소한 오역들도 언급하자면 끝이 없겠으므로 이만 줄이고 종합적인 판단을 해 보자면, «이 사람을 보라»의 번역본들을 일부분 비교하면서 검토해본 결과, 김태현 역본은 과연 동일한 텍스트를 토대로 번역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오역이 비일비재하여 이 번역본으로 읽고서 과연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를 읽었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곽복록 역본은 아마도 일역본도 함께 참고했는지 어휘가 풍부하며 가장 매끄럽게 읽히지만 대책없는 오역을 한 경우가 많다.

이들에 비하자면 백승영 역본이 오역이 그나마 덜한 편이긴 한데 문체나 어휘의 유려함에서는 곽복록 역본에 미치지 못한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백승영은 니체전집을 일곱 번이나 읽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의 번역본을 검토해 보건대 그 말은 과장이 아니겠나 한다. (하긴 백 번을 읽는다한들 니체가 이해될 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면밀한 독해는 하지 못한 것같다. 내 판단으로는, 그의 번역은 일곱 번의 독해에 값하는 번역이 아니며, 시간에 쫓겨 서둘러 번역한 인상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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