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 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장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들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197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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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2024-12-2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갑게 건조된 겨울 나무가 동상처럼 늘어선 산기슭, 밭언저리에 내린 눈발위에 꿩들이 싸이나를 주워먹던 시절에 겨울해가 서쪽으로 진다. 깡마른 네 얼굴에 그의 시가 드리워 지는 오후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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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돈키호테님의 "[코멘트]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사를 마치고 나서도 한 책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그럴까 싶었다. 이 책에서 마지막 죽음을 연상케 하는 문구 때문이었다. "둘은 한적한 시골 정착했다. 시골에는 빈집이 있있다. 집단농장에서 일을 하거나 노는 땅을 일구는 일을 했다. 그것은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홀가분이었다"


 다른 기억이 되살아 났다. 영화 대부(III)에서의 장면과 흡사하기 때문이었다. 시골 저택의 넓은 마당에 한 노인이 나무의자에 앉아 자울자울 졸고 있었다. 노인의 주위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배회하고 있었다. 노인은 자울걸이다 푹 쓸어졌다. 강아지는 상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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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년12월3일의 비상계엄은 나에게는 두 번째다. 그때('80년5월17일) 나는 대학의 정문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정년 이후이다. 비상계엄은 삶의 공간과 시간을 두려움으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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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2024-12-20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을 다스리는 원칙은 <의로움>이다. 의로운 사람은 외로운 길을 걷게 된다. 그 외로움을 지나 많은 사람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을 때가 온다.˝

독립군이었던 홍범도 장군이나 12.12 군사반란을 막으려 했던 전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의 말년에 대한 연민을 갖게 한다.

봉오동 전투의 영웅으로 널리 알려진 항일 의병장 홍범도(1868~1943) 장군은 말년에 소련군 편입과 레닌의 예우, 강제 퇴역, 극장 야간 수위, 정미공장 근로자 등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다.

전두환의 군사반란을 기필코 막으려 했던 장태완 전 사령관의 말년 또한 그렇다. ˝3대가 풍지박산 나버린 집안 꼴이 누구 탓인가를 생각하니 울컥 차올랐다. 가족의 권유로 작은 용역회사 사장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러나 장 장군은 1993년 7월 19일 전두환 노태우 등 34명을 반란 및 내란죄 협의로 대검에 고소하여 신군부 세력을 끝내 용서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우울증으로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받친 그들의 말년은 한 인간으로서 파란만장한 생이었다. 항일독립전장에서 정미공장 노동자로까지/ 6.25 전장과 군사반란의 현장에서 용역회사로까지. 그들의 자괴감이 얼마나 컷을까 싶다.
 
 전출처 : 돈키호테님의 "쓰는/ 그리는 여성"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민음사)은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을 얘기한다. 그들을 자유롭게 했던 진리는 ˝글쓰기˝이었다. 우리는 자신을 자유롭게 한 진리를 발견했는가? 그 진리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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