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뒤의 일이다. 의식을 읽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수 없었던등, 해가 지면 달지고 달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길, 끝 적막하지 적막한 등짝이 낙엽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

  

   월요일 출근길에 라듸오에서 들은 시 한편에 나를 울컥했었다. 손택수 시인은 가까운 담양 출신으로 지금은 실천문학사 대표이다. 최근에 도서전을 다녀와서 출판사별 베스트세러 작품도 읽어 볼 생각이었다.

 

   가끔 돌아신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다. 내 큰아이가 전화를 받는 목소리는 아버지 생전의 목소리를 빼닮앗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는 나의 기억을 자극한다. 아버지는 나에게 '공부를 잘하라'는 말씀은 없으셨다.

 

   당신이 어렵게 생활하셨던 터라 '건강하라'는 말씀을 자주하셨다. 중학교 1학년 때에 갖고 싶었던 녹음기를 사주셨다. 군대를 전역 후(1984년) 16bit 데스크탑 컴퓨터를 갖게 된 것도 아버지의 배려때문이었다. 아버지 사랑은 내 인생의 주요 변곡점 마다 응답하여 주셨다.

 

   홀로 생활을 했던 나는 아버지와  엇갈여 다른 곳에서 안부를 묻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이라 만나자는 약속보다는 거기에 가면 있겠지 막연한 생각을 하곤했었다. 아버지는 나를 만나기 위해 상광하였고 나는 아버지 본가로 갔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내 방문앞에 과자와 빵을 두고 가셨다. 그냥 가시기에 서운하셨던 모양이다. 쪽지에 몇자 적어 놓고 가셔도 될법도 한데 아버지의 쪽지는 없었다. 두고간 그 빵과 과자를 먹으면서 목이 메인적이 한 두번 있었다. 묘한 생이별리라 어린 나에게 견디기 어려웠다.

 

   

 

    <조선의 아버지들>이 어떻게 자식들에게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는지를 가늠케 하는 책이다. 퇴계, 정양용, 이황, 이익, 김정희, 이순신 등 그들의 자식에게 어떤 엄함과 속사랑을 주었는지를 인물별로 전개된다. 물론 어머니의 사랑도 무궁무진 하지만 유교사회의 가부장적 대가족 사회에서 아버지가 나라와 집안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었는지를 가늠되는 책이다. 조선시대의 아버지다움이 무엇이었는가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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