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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평점 :
이 책은 작가의 처녀작이다. 정신병원 또는 군대를 탈출했을지도 모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관념적인 소설이다. 한 인간의 관념의 속을 들려다 보면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사물에 대한 세심한 전·후·좌·우 입체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작가는 사물에 대한 정상적인 조화보다는 조금 이탈된 생각으로 사물의 경계를 넘나든다.
일정한 장소나 사물들을 평범하게 스케치하고 책상에 앉아서 기억나는 사물들을 지루할 정도로 상상하며 열거하는 모습은 소설가의 모습이다. 작가와 우리가 다른 점은 우리는 그 지루함과 사색의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한 반면 작가는 여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물리적 여정과 영적인 여정이 뒤섞여 있다.
주인공의 이름에서 두 가지를 연상할 수 있다. 하나는 성경에서 나오는 ‘아담’을 생각나게 하며, 또 하나는 그리스신화의 ‘아폴로’를 연상하게 한다. 이 소설은 광기의 인물 ‘아담 폴로’의 대단치 않은 외부적 사건과 끊임없이 요동치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내면을 탐구하고 있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도 주인공에 대한 정보는 확실치 않다.
‘카뮈’의 실존주의 소설인 ‘이방인’을 생각나게 하는 이 책의 후반부는 ‘르 클레지오’의 서술 기법인 ‘펜-카메라’ 소설의 기법 중에 하나로 일상적인 대상들을 확대하거나 축소하여 사건이나 사물을 해체시키는 서술 기법 방식에 의해 전개된다. 어떤 경우는 전지적이었다가 어떤 경우는 1인칭적인 내면을 담고 있어서 그 경계가 혼란스러울 정도이다.
소설을 기존의 방식대로 읽다보면 난감한 경우가 생긴다. 서술자나 주인공 자체가 어떤 행위적인 목적을 추구하기 보다는 본능적으로 보여지지 않는 실체를 찾기 때문이다. ‘아담’은 언어가 함의하고 있는 다양한 의미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인물이다.
‘아담 폴로’는 산언덕에 버려진 집에서 죽은 사람처럼 살아간다. 해변에 갈 때에도 사람을 피해 외진 곳을 찾아다닌다. 어쩌다 한번 시내에 간다 하더라도 개를 뒤쫓아서, 혹은 생필품을 사러 갈 때가 전부인 것도 사람들과의 만남, 문명을 피하기 위함이다. 그게 만나는 사람이라곤 오직 ‘미셸’뿐이며 그녀와의 관계도 의심스럽기만 하다. 성폭행이 과연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녀는 왜 아담을 만나는 것인지, 나중에 왜 그녀는 그를 고소하는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전혀 없다.
탈영을 했는지 혹은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는지 알 수 없는 ‘아담 폴로‘가 어느 날 예언자와도 같이 사람들에게 쏟아 붓는 말들의 광기를 느낄 수 있다. 그가 가족을 떠나 은둔하며 살고, 정신병원에 끌려가고 실어증에 빠지는 과정에서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파괴된다. 그리고 다른 세계의 시작을 알린다. 08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