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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
앨리스 먼로 지음, 김명주 옮김 / 따뜻한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앨리스 먼로는 이 온타리오주에서 1931년 태어났다. 그는 지금까지 1편의 장편과 10권의 단편소설집, 1권의 직품선집을 출간했다. 그 가운데 '떠남'(runaway)이 가장 최근에 발표된 단편집인데, 이 작품 역시 길러상을 수상했다.
'떠남'은 서사, 배경, 인물 그 어느 것 하나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 느릿느릿한 단편이다. 사랑하지 않는 남편을 차마 떠날 수 없는,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결속, 젊고 소박한 칼라(주인공)에 대한 중년 여성 실비아(이웃집중년부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사랑, 마음 둘 곳 없는 칼라의 사랑 풀로라(마구간 염소), 그리고 상실, 상실을 견디는 고단한 인내, 이런 것들은 소설의 흐름을 앞으로 낚아채며 빠르게 진행하는 대신, 가라앉은 바람에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이웃집 여자의 도움을 받아 칼라가 속악하고 비정한 남편을 떠나기로 결정하는 페미니즘 소설처럼 느껴진다. 속박을 벗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틀이 명백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뜻밖에 주인공 칼라는 훌훌 털고 떠나던 도중 홀연히 마음을 바꾼다. 그리고 남편에게 돌아간다. 가슴에 박힌 가시를 안고 살아야 하는 일탈의 유혹 대신 가시에 익숙해지려는 칼라의 선택에 찡해진다.
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페미니즘 소설의 틀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게다가 결정의 동기도 상세히 설명되지 않는다. 또한 남편에게 돌아간 뒤로 행복해야 한다. 돌아간 칼라는 그러나 행복하지 않다. 행복하지 않는데 왜 돌아간 것일까? 행복하지 않으니 다시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떠나고 싶은 유혹을 참고 머문다. 딜레마란 단칼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까. 삶이란 가시를 안고 살아가듯,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삶은 계속된다.
이 소설의 절정은 잃었던 염소(플로라)가 돌연히 나타나는 장면인데, 초자연적인 두려움 앞에서 적대적 두 사람의 미움이 사라지고 인간으로서의 결속을 느끼는 시점에서 의미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삶을 살만하게 만드는 것은 삶의 터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결속인 까닭이다. '산다'는 말이 '사람 가운데 있다'는 말로 '함께 더불어 살아 간다'는 의미이다.
"앨리스 먼로는 상황만을 묘사할 뿐, 그 안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의 흐름은 의도적으로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그 흐름이 이해되지 않을 때는 당혹스럽다. 하지만 풍부한 흐름 가운데 단 하나의 지류라도 잡아낼 수 있다면 공감의 효과는 배로 늘어난다" 13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