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평전 - 권위와 신화의 옷을 벗은 인간 공자를 찾아서
안핑 친 지음, 김기협 옮김, 이광호 감수 / 돌베개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정치활동의 고비에 이르렀을 때 공자는 갑자기 관직에서 물러나 여행길에 올랐다. 기원전 497년의 일이다. 54세의 공자는 조국 노나라에서 법무를 담당하는 대사구자리에 있었다. 대사구 자리는 그리 높은 자리는 아니었다. 바로 윗사람은 재상이었다.


 노나라 임금은 정공이었고, 재상은 계환자였다. 공자는 계환자 가문의 창고 담당과 가축관리인으로서 시작했다. 지방관인 중도재와 토목 담당인 사공을 거쳐 대사구의 자리에 이른 것이다. 


 중국사의 이단계에서는 봉급을 받는 관직도 꽤 만들어져 있었지만, 중요한 자리는 세습 녹봉을 가진 귀족층의 차지였다. 공자는 귀족의 자격을 겨우 걸친 신분으로, 특권층의 범주에 들 만한 출신은 못되었다.


 공자의 조상들은 송나라에서 대신 여럿을 배출한 명문가였다. 그러나 기원전 7세기 중엽에 큰 정치적 타격을 입은 후로 행세하지 못햇다. 그래서 집안 몇 사람이 노나라로 옮겨 왔는데 그 중 증조부가 있었다. 공자가 태어날 무렵에는 집안 전체가 노나라가 백성이 되었다. 몰락한 양반이 되어 평민을 겨우 면한 사 계층에 속했다.

 

 사마천의 시대에 중국이 오랜 끝에 통일되어 있었고 공자의 가르침이 새 질서의 수호자와 관리자들에게 메우 쓸모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마천은 개성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유교식 관점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같은 시대의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공자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뒤져 자기가 바라는 바를 공자 전기에 적었던 것이다. '15.6.27.


 2,50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공자의 사상에 배울 점이 있는 게 분명하다. 동아시아 사유의 한 축인 '유학'을 연 위대한 스승, 공자(기원전 551~479)는 성이 공이고 이름이 구이며 자가 중니다. 17세기 이후 '공 선생님'이란 뜻의 '공부자'란 호칭이 서양에 알려져 'Confucius'라 적히게 되었다. 맹자의 고향인 노나라 추성은 공자의 곡부에서 남쪽으로 20km밖에 안되는 곳이다.

 

 공자는 굳건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전해진 역사, 시, 예법, 음악 등 모든 지식을 알뜰하게 갈고 닦아,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서 본질적이고 항구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이해함으로써 '큰 허물 없이' 살고자 애쓴 사람이었다.

 

 20세기 중엽까지 중국은 공자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정치.사회제도, 자아와 인간관계에 대한 인식, 문화와 역사의 구조 등 중국의 모든 현상이 공자의 생각으로부터 자라나온 것처럼 보였다. 저자는 공자에 대한 판단 기준을 '논어'에 둔다.

 

 공자는 인간답게 사는 길은 오직 문명의 원칙과 질서를 지키는 길뿐으로 질서는 사람들의 외적인 법이 아닌 마음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으로 '예'를 강조했다. 공자는 스스로 반성하고 올바름을 향해 실천하는 내적인 힘을 믿었다. 이 내적인 힘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인'이다. 공자는 타인에 대한 사랑을 사회 운영이나 국가 정치의 핵심적인 가치로 생각했다. 마음에서 비롯된 올바른 원칙과 준칙에 따라 행동하는 도덕적인 힘이 사회를 안정시킨다고 믿었다. 공자가 생각하는 문명을 이끄는 진정한 힘은 '도덕성'이다. 

 

 정치적 안정은 공자가 평생 매달리는 문제였다. 공자는 '어떻게 해야 정치를 잘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하는가?'를 물었다. 즉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만이 정치를 할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신분이 아닌  도덕적 능력이 위정자의 자격이라 믿었다. 

 

 공자나 공자를 대표하는 '유학'을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사상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공자의 문제라기보다는 공자의 권위를 정치에 이용하려 한 사람들의 문제였다. 공자는 '개인을 발견한 철학자'이다. 봉건적인 고대 중국에서 현대적 의미인 '개인'을 발견했으나 현대에서 말하는 '법적, 경제적으로 자율적인 주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공자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밝히고 닦아야 할 '내면'이 있음을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밝힌, 최초의 철학자이다. 개인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운 철학자로 이 능동적이며 자율적인 도덕적 주체를 '군자'라고 일컬었다. 공자는 자기반성 능력을 갖추고 타인과의 공존을 도모하는 '진정한 개인'을 주체 세력으로 한 '군자'의 출현을 바랬다. 12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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