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을 옮기기 위해 바위 밑에 둥그런 통나무를 놓고 바위를 밀었던 것은 레일을 발명하게 된 최초의 인간의 발상인가 싶다. 말과 소가 수레를 끌고 다니던 시대를 넘어 땅바닥에 두 개의 레일을 깔고 그 위를 달리게 했다.

 

  <철도의 세계사>(다시봄) 은 19세기 100년 혁신의 주혁으로 철도를 꼽는다. 굶어죽는 사람이 줄고 도시는 확장되었다. 전국을 연결하여 국가통합에도 기여했다. 철도의 우열에 따라 전쟁의 승패도 걸렸다. 그야말로 철도는 정치, 경제, 시회, 문화 등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철도의 직접적인 효과인 이동시간 단축이 가져온 변화와 비교할때, 자동차와 비행기가 20세기에 한 일은 개선에 불과하다. 저자는 '레일 위를 달린다' 는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일으킨 거대한 연쇄반응의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가 혁신이 지닌 위력을 실감나게 한다.

 

  변화가 시작된 곳을 1830년 영국 리버플과 맨체스터 사이에 개통된 철도를 꼽는다. 증기관차의 아버지 스티븐스다. 그는 평균 시속 22km, 최고 시속 48km 라는, 당시로는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증기관차를 선보이며 말과 기관차 사이에서 망설이던 철도회사 임원들을 사로 잡았다. 어쩌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속도에 대한 개념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최초였나 싶다.

 

  그로부터 단 10년만에 증기기관차가 유럽 전역에 퍼졌고,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무려 100만km에 이르는 철도가 세계에 깔렸다. 식품이 대량으로 운송되어 굶어 죽는 사람 수가 획기적으로 줄었다. 장거리 출퇴근이 가능, 근교농업이 성했다. 싱싱한 해물이 도심으로 배송되었다. 대중교통의 수요가 급증했으며. 많은 나라에서 수도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철도는 국가를 통합하는데 기여했다. 특히 39개 지방국가로 쪼개져 있던 독일은 철도경영자협회가 각지역 관세를 통일하는 경제 통합에 기여함으로서 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기차는 전쟁의 승패도 갈랐다.

 

  그러나 철도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있었다. 프랑스 문인 공쿠르는 '너무 심하게 흔들려 생각에 집중 할 수 없다' 는 불평했고, 영국에는 시속 48km를 넘으면 사람이 숨 쉴 수 없다'는 괴담이 유포됐다. 철도는 운하 소유주, 교량 건설자, 증기산, 역마차 등 온갖 기득권과 맞서며 성장했다. 호주에서는 증기기관이나 말이 아닌 죄수가 열차를 끌었고 1855년 개통된 파나마 철도는 1.6km 당 120명이라는 전무후무한 산재 사망기록했다. 번영을 구가하던 철도는 2차대전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환골탈하여 고속철이라는 시장을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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