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과를 해야 하는 사람과 사과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 영화 <세 자매>에서 "목사님한테 말고 우리한테 사과하세요."라는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경청이라는 소설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쓰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세상과 스스로 단절되어 살고 있는 이유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작품이다.

방송 출연자였던 그녀는 방송대본을 의심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읽었던 인물이다. 방송의 파장으로 몇 달 후 배우가 죽음을 선택하면서 여론은 그녀를 향하면서 그녀가 잃은 것들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직장, 배우자, 단짝 친구, 명성까지도 모두 잃어버린 그녀의 사연이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통해서 전해진다.

부치지 못한 편지를 버리기 위해 밤에만 외출한 그녀가 우연히 발견한 고양이와의 인연이 그녀를 크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한 소녀와 한 여인, 고양이를 아끼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통해서 거듭나는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그동안 자신이 잃어버린 것만 생각했는데 얻은 것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되면서 지켜 낼 것이 무엇인지도 자각하면서 그녀가 거듭난 생의 전환점을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집중해서 듣는 경청의 참의미가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작품이다. 『파이브 센스』 책의 저자도 처음으로 오감에 집중하면서 경외감을 경험하였다고 전하였듯이 이 소설의 그녀도 경청하면서 그녀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그녀가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고 출발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경청의 힘이었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작품이다.

기다리면서 최선을 다해 듣는 것, 경청의 진정한 의미가 부각되면서 말과 언어에서 그녀가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경험하면서 깨닫게 되면서 그녀를 변화시킨 경청의 의미는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페기된 편지의 언어, 소송을 취하하는 이유와 소송이 전개되는 언어와 말의 의미마저도 일맥상통하게 된다. 상담 센터 대표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의 언어도 동일한 의미로 전달되면서 "고마움과 감동, 안도와 희열 같은 것들이 그녀의 어두운 내면을 잠시 환하게 만든다. "(255쪽) 는 것이 큰 의미로 자리 잡는다.

그녀는 어떤 말로, 어떤 언어로, 외부와 대적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행위를 통해 그녀가 배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시절을 지나왔을 뿐이다. 307쪽

그녀를 변화시킨 것들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교류, 투명하게 오가는 감정, 잠깐씩 솟구치는 웃음이라고 설명해 준다. 특별하지 않지만 그 무엇과 비교되지 않을 특별한 것들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밀어내고 뒤로 밀쳐버려야 하는 것들을 제일 앞에 두고 살아왔던 그녀의 지난날들이 얼마나 어두웠는지 충분히 감지하게 되면서 그녀가 깔끔하게 정리한 선택들과 치워버린 것들이 얼마나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도 발견하게 된다. 그녀가 지금 당장 출발하면서 지켜낼 것들이 무엇인지 그녀는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다. 일상의 소중함, 거짓 없는 투명한 감정적 교류, 즐거움을 주는 찰나의 웃음을 그녀는 이제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상의 교류, 투명하게 오가는 감정, 잠깐씩 솟구치는 웃음 134쪽

말과 언어가 완전하다고 믿었던 그녀는 이제는 침묵과 경청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다. 쏟아지는 소음, 분주한 도시생활보다는 템플스테이, 성지순례길을 걷는 이들이 긴 시간 침묵하면서 혼자 경험하고 깨닫는 것과도 다르지 않는 놀라운 경이로움일 것이라고 믿게 된다. 진짜 소중한 것을 깨달은 그녀를 응원하였던 소설이다.

아이를 괴롭히던 울분, 아이의 내면을 갉아먹던 외로움
- P274

전부를 건 싸움. 전부를 잃을 수 있는 싸움. 보잘것없는 자신을 지켜 내기 위한 전투
- P88

배우자. 태주. 늘 기억 속에서 길을 잃는다. 입구만 있고 출구는 없는 존재
- P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브 센스 - 소진된 일상에서 행복을 되찾는 마음 회복법
그레첸 루빈 지음, 김잔디 옮김 / 북플레저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협찬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선정된 도서이며, 책 『오리지널스』 애덤 그랜트 저자의 강력 추천도서라 머뭇거리지 않고 펼친 도서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다섯 감각을 온전히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게 하는 내용이다. 무심히 스쳐지나친 다섯 감각을 어는 날 세심하게 감각하고자 계획하게 된다.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진단 결과에 저자가 볼 수 있는 것들을 무심히 스치지 않기 시작한다.

현재, 지금, 이 순간 본다는 것 이외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다섯 감각에 눈을 뜨기 시작한 계획과 실험 기록이 담긴 책이다. 저자가 놓쳤던 다섯 감각이 얼마나 놀라운 파장을 일으켰는지도 들려준다. 지극히 사적인 계획과 실험이며 개인 성향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다섯 감각을 경험하도록 응원해 주는 지침서이기도 하다.

죽어 있었던 감각이 살아나면서 삶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는 놀라운 고백이 이어진다. 행복한 순간은 크고 웅장하고 거대한 것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다. 사소하고 일상적이고 무관심하였던 것을 경험하면서 놓쳤던 매일의 행복을 누구나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하는 보고서이다.

즐거움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하도록 자본주의는 자극한다. <편안함의 습격>책이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이유까지도 살펴보게 된다. "즐거움보다는 편안함을 선택했다." (14쪽) 생각으로만 가득하였던 오류적 경험을 다시 되돌아보면서 본다, 듣는다, 냄새를 맡는다. 만진다. 맛본다는 다섯 감각을 깨우는 경험을 통해 충만해지는 행복, 축복을 경험한 이야기들이 들려진다.

다섯 감각에 집중할수록 활력이 충만해지고 충만해진 삶을 고백하기 시작한다. 20분의 시간의 경험이 더없이 강열하였다는 것과 심오한 진실을 깨달을수록 행복과 감각의 연관성까지도 연구한 결과가 들려진다. 등산을 하고, 산책을 하고, 식사를 할 때도 단순히 행동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느끼고, 향기를 맡고,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면서 일상생활을 더 깊게 감각하면서 생활하면서 즐긴 신체적 활동이 운동이라는 범위를 넘어서 놀라운 만족감과 충만감, 행복감을 경험하였음을 떠올렸기에 저자가 경험한 것들에 충분히 공감한 내용으로 이어진다.

아무도 정말로 무언가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

_ 앤디 워홀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일이 왜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을까. 앤디 워홀의 명언이 시의적절한 질문이 되면서 시급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묵언 수행을 계획하고 경험한 저자의 짧은 날들의 경험도 책에서 언급되는데 사찰에서 경험하는 템플스테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경험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일상에서 놓친 다섯 감각을 인위적인 경험으로 깨달음을 경험한 이들이 반복적으로 그곳을 찾는 이유를 이 책에서도 발견한다.

분주하고 바쁜 것이 좋은 것만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고요하고 적막한 여행지의 시골에서 느끼는 충만감과 바람이 좋아서 멍 때리기 하면서 보낸 반나절이 관광지 여행보다도 더 오래 기억에 남았고 행복을 느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여행지가 주는 행복이 아니라 온전히 다섯 감각에 집중한 경험이 준 행복이었음을 알기에 이 책은 스트레스 관리, 경외감, 삶의 질까지 올려줄 내용들이 실천적인 가이드까지 전하는 책이다.

평범한 것에 주의를 주 기울이며 건강하게 즐길거리를 찾아낸다. <오감을 깨우는 실천 가이드> 287

경외감에는 깊은 만족이 뒤따른다... 경외감을 자주 경험하는 사람일수록 겸손하고 창의적이며 삶의 질이 높다고 느끼고 타인과 연결되려는 욕구가 강하며 심지어 면역 건강도 더 뛰어나다고 한다. 경외감은 불안과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276

산만한 디지털 세상은 내 정신을 흩트리지만, ... 내 몸은 나의 피난처였다. 언제든 그곳으로 돌아가 영혼을 달랠 수 있었다 - P129

코로 가르쳐야 한다. - P139

기억을 깨우는 향기의 힘 - P151

접촉은 스트레스와 혈압, 통증을 줄이고 면역체계, 기분 개선, 수면의 질을 높인다. 축복 치유 포옹 감사 신뢰 공감 - P222

평범한 것에 주의를 주 기울이며 건강하게 즐길거리를 찾아낸다. <오감을 깨우는 실천 가이드> - P2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집에서 나가지 않는 돌멩이
우지현 지음 / 초록귤(우리학교)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협찬

누군가는 겁이 아주 많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는 겁쟁이들도 아주 많다는 사실을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이다. 겁이 많아서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세상은 그저 흑백과 다름없다는 것을 그림으로 전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깊고도 짙은 어둠과 다름없는 겁 많은 주인공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집에서 나가지 않아요.

<미지의 서울>드라마에서도 이러한 장면이 등장한다. 밝고 당당하고 정의로웠던 누나가 좋은 직장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한 후 스스로 퇴사하게 된다. 그리고 누나는 스스로 집안, 자신의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이 된다. 스스로 닫아버린 세상은 이 그림책과 다름없는 어둡고 짙은 어둠만이 공존하는 세상임을 그림의 색감으로도 전달한다.

집단적 괴롭힘, 직장 괴롭힘에 희망을 잃어버린 누나가 예전의 모습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 안타까워 남동생이 누나를 방에서 나오도록 노력하지만 헛수고가 되면서 예전 직장 후배 동료에게 손을 내밀면서 누나의 현재 사연을 전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누나는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던 용기를 후배 직장 동료를 통해서 다시 용기 내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갇힌 방에서 나오는 장면이 생각난 그림책이다.

겁이 많아진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이 그림책 돌멩이의 사연은 자세히 들려주지 않지만 무수히 많은 사연들을 연상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자신만의 공간인 집안에서도 돌멩이는 구석진 곳에서 두려움과 걱정, 눈물을 가득히 담으면서 생활하고 있음을 그림으로 전달하는 그림책이다. 걱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주인공에게 갑자기 누군가의 눈물 소리가 들린다.

길을 잃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집 앞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호소한다. 괴물일 거라고 생각하며 고함을 치지만 자신은 그저 겁 많은 돌멩이라는 답변을 듣는다. 눈물 범벅이 된 또 다른 겁 많은 돌멩이를 문 앞에서 보게 되면서 집안으로 들인 후, 서로가 나누는 음식, 대화들이 전해진다.

난 늘 집에서 혼자 있었거든.

용기 내서 집에서 나오니 세상은 뾰족뾰족 울퉁불퉁하고 따끔따끔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두워지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길을 잃은 돌멩이의 사연을 들은 겁 많은 돌멩이는 "역시 집 밖으로 나가는 건 별로지?"라고 한숨을 쉬면서 묻는데 길 잃은 친구는 "아니야! 그렇지 않아! 네가 문을 열어 줬잖아!" 소리친다.

겁이 많았던 상태로 용기를 낸 겁 많은 친구의 행동이 길을 잃은 돌멩이에게는 부정적인 감정을 지워준 좋은 세상의 빛이 되어주었음을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겁에 질려서 숨어버리는 것보다 용기를 내서 타인에게 다가서는 순간 서로에게 큰 빛이 된다는 것, 희망을 준다는 것, 기쁨이 된다는 것을 두 친구를 통해서 보여준다.

친구가 되어 함께 세상을 경험한 두 친구에게는 세상은 반짝이고 보드랍고 시원한 것임을 만끽하게 된다. 두려움과 걱정, 겁이 많았던 돌멩이들이 서로가 함께 하면서 웃음과 기쁨을 나누는 모습이 전개된다. 함께 즐기고 쉬기도 하고, 요리도 해서 나누어 먹는 두 친구에게 어두운 밤 길을 잃고 도와달라는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자신을 잡아먹을지 모르는 뱀이 길을 잃었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다. 두 친구는 어떤 선택을 할까? 용기를 낼지, 겁을 내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을지 질문을 던지는 그림책이다. 독후활동지와 원화 전시도 참여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보다 : 여름 2025 소설 보다
김지연.이서아.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반려빚』 소설을 통해서 만났던 김지연 작가라 반가움에 가장 먼저 읽은 작품이다. 싱그러운 책표지 그림에 매료되어 머뭇거림 없이 냉큼 주문한 도서이다. 책 사이즈도 크지 않고 무겁지도 않아서 외출할 때마다 에코백에 넣어 다니면서 읽은 책이다. 『방랑, 파도』 이서아,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함윤이 작가의 소설도 함께 하고 있는 소설집이다. 더불어 작가와의 인터뷰도 실려있어서 대면하면서 듣는 기분으로 읽는 재미도 선사해 주는 소설집이다.



『무덤을 보살피다』라는 제목에 이끌렸다. 산속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길을 잃으면서 의문의 장소를 발견하고 한 남자와 대화를 나누는 화수는 이 남자가 막냇삼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어떤 사연이 있어서 이 남자의 존재는 가족들 사이에서 사라졌는지도 의문스럽지만 이 남자와 대화를 나누는 상황도 불편함을 감추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생선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에서 그가 하는 일과 죽은 할아버지의 무덤을 보살핀다는 사연까지도 알게 된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하지만 박정희와 박근혜를 고마워하고 안쓰러워하는 사람이었다. 대선에도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하면서 박근혜를 투표하라고 종용하여 화수는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준 사연을 여자친구에게 말하면서 큰 실망을 안겨주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할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고통스러워서 화수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상황이 펼쳐지면서 화수는 마지막 소원이라는 말을 번복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당혹스러워한다. 그 할아버지의 무덤을 보살피는 이 남자가 막냇삼촌이며 이 남자에 의해 화수가 친척과 함께 산속에 갇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추운 겨울에 얼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두 사람이 모의하는 주제마저도 흥미롭게 흘러가는 상황이다.



이 두 사람이 다시 마주하게 된 막냇삼촌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의미인지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공존해야 하는 삶에 대해서 인터뷰를 한다. 믿었던 세계가 무너진다는 기분이 무엇인지 작가는 두 차례 반복하면서 마무리한다.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비상 계엄 선포가 가장 황당하였던 사건이다. 나라가 망해가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정도의 불투명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을 때 광장을 가득하게 메운 사람들의 자유를 향한 열정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다시 상기하게 된다.



존 르카레 장편소설 『완벽한 스파이』에서 "아빠는 항상 자유를 이야기해요. 자유는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면서, 우리가 직접 쟁취해야 한다고." (386쪽) 1권에 말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과 어떻게 공존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자문해게 된다. 가족의 마지막 부탁이라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정답인지 이 소설의 할아버지의 부탁이었던 두 가지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도 질문을 던진다. 으스스한 분위기에서 이상한 대화가 오가는 상황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는지 비유해 주었던 작품이다.



내 마지막 남은 소원이다. 언제는 박근혜를 뽑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하더니... 탄핵 과정에서 나왔던 말들도, 뽑은 사람도 다 공범이죠. 34

내 마지막 남은 소원이다. 언제는 박근혜를 뽑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하더니... 탄핵 과정에서 나왔던 말들도, 뽑은 사람도 다 공범이죠. - P34

맹목적인 신뢰가 건강한 것 같지는 않고, 부모를 배반하는 일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은 것 같습니다. - P55

물러 받은 세계가 한 번 더 패배할 차례이고, 두 번째 패배는 더욱 괴로울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물리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죽음을 맞이하며 사라졌지만, 남자는 막내 삼촌으로서 화수의 세계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P57

우리가 살아갈 세계는 막냇삼촌들과 공존하는 세계일 테지요.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남았고 그들이 뿜어내는 악의를 견디며 나의 악의 또한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 P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문들이 가득한 1권의 이야기가 2권에서 서서히 드러나면서 작가의 소설을 깊게 조우한 장편소설이다.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진실 앞에서 세계가 구축한 거짓된 역사와 제도, 답습하는 관행에 진중한 질문을 던지게 한 작품이다. 유능한 외교관이면서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충실했던 친구가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사라지는데 영국 정보국 요원이었던 그가 왜 사라졌는지, 어디에 있는지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이데올로기의 시대적 혼돈 앞에서 자신의 이상과 소신이 흔들리는 인물들의 희생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질문하게 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영국, 체코, 티토주의, 조지 오웰, 스위스, 미국 등이 상징하는 의미가 예사롭지가 않다. 넷플릭스 시리즈 <아웃랜드>를 통해서 영국의 민낯을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조지 오웰의 에세이와 소설을 통해서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기에 지금 이 소설에 등장한 나라들은 찌르는 아픔이자 슬픔으로 점철된다. 밀란 쿤데라 작가가 체코를 향한 사랑과 체코의 역사를 유럽과 동일시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89개의 말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 에세이 내용까지 떠올리게 된다.

"소유의 허망함에 대한 경고" (439쪽)가 소설 1에서 언급된다. 영국이 소유한 나라들이 집어삼키기까지 어떤 폭력이 자행되었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우리 역사도 아프게 떠올리면서 독립된 나라,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거듭 확인하게 된다. 밀란 쿤데라가 체코를 떠나 프랑스에서 생활하였을 지난한 날들과 체코어를 향한 애정까지도 또렷하게 부각된다. "아빠는 항상 자유를 이야기해요. 자유는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면서, 우리가 직접 쟁취해야 한다고." (386쪽) 소설 1의 문장이 예사롭지가 않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12월 3일을 떠올리면서 모두가 공포를 느끼면서 자유가 사라질 것이라는 엄청난 불안을 느낀 역사까지 떠올리는 문장이다.

쉽게 흔들리고 쉽게 동조하는 문화와 트렌드 앞에서도 역사와 자유를 먼저 떠올리는 습관이 어느새 생겨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반드시 머릿속에 세상을 집어넣고 다녀야 돼. " (211쪽) 소설 1에서 말하듯이 자본의 힘에 좌우되는 소모되는 기계의 부품이 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이 소설의 예리한 문장들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된다. "톰이 즐거운 얼굴로 ... 고함을 질렀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근심이 가슴 밖으로 사러지는 것을 느꼈다... 언덕 꼭대기에서는 누구에게든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385쪽) 소설 1에서 언덕 위에서 고함을 친 톰의 근심이 사라지는 순간을 함께 공감하게 된다. 김지연 소설 <무덤을 보살피다>을 읽고 나서 그녀의 인터뷰 내용과 소설은 그녀의 언덕 꼭대기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 자유로워졌다.(359쪽)라고 말하는 자유가 얼마나 거대한 의미인지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수수께끼처럼 남겨진 메모들이 향한 인물을 따라가면서 그의 선택들을 살펴보았던 소설이다. 지주 같은 사람이 현대사회에서는 누구인지, 일주일에 하루만 일하는 지주 같은 사람이 누구인지, 고문 도구를 머뭇거림없이 사용하고 싶어하는 지주 같은 사람이 누구인지, 원주민과 다름없는 그들이 누구인지, 가든파티에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누구인지 상기하면서 읽었던 소설이다.















옛날에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인 지주 같은 사람. 일주일에 하루는 시내에서 일하고, 그 외에는 사냥을 하고, 원주민들에게 구슬을 선물로 주고, 초범들에게 쓸 고문 도구를 가져오고 싶어 하고, 그 사람 아내는 가든 파티를 열어. - P132

너를 지금의 너로 만든 모든 쓰레기들, 그러니까 특권, 속물근성, 위선, 교회, 학교, 아버지들, 계급 제도, 역사 속 거짓말, 시골의 하급 귀족들, 대기업의 하급 귀족들, 그리고 그 결과로 벌어진 탐욕의 전쟁, 이 모든 걸 우리가 영원히 쓸어 버리고 있다는 것. 너를 위해서. 우리는 매그너스 경처럼 슬픈 친구가 다시는 나오지 않을 사회를 만들고 있으니까.
- P457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5-08-27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파이소설하면 우린 흔히 007 제임스본를 떠올리지만(실제 작가인 이언플레밍은 잘모름),영미예선 60넨대 냉전시대의 스파이들을 리얼하게 묘사했던 르 까레를 더 늪이 평가한다고 하지요.완벽한 스파이는 오래전에 다른 이름으로 번역된 것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당시 절판이라 상권만 본 기억이 납니다.다시 재간 된것 같은데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