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소한, 지독히 아득한
임영태 지음 / 마음서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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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소한, 지독히 아득한
오늘의 작가상, 1억원 고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
임영태 작가 7년 만의 신작 소설
마음서재.2017



편의점에서 야간에 일하는 중년의 남자의 시선에서 보고, 느끼는 소설이다. 그의 아내도 집에서 가까운 또 다른 편의점에서 주간에 일을 한다. 주인공의 지나온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전해준다. 오늘도 하루를 성실하게 보내는 시민들의 모습들의 일부가 편의점에서 비추어진다. 트럭을 운전하는 사람들, 택시를 운전하는 사람들, 글을 읽지 못하는 손님이 담배를 사러 왔을 때 보이는 여러 모습들, 학생이 주간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경우와 주부가 주간에 편의점에서 일하는 경우도 이야기해준다. 새벽이 밝아오면서 한두 명이 자신의 일터로 향하는 모습들, 일당을 받고 일하는 일꾼의 출근하는 모습도 야간에 근무하는 편의점의 직원에는 이야기가 된다. 첫 버스를 타기 위해 등교하는 학생 3명의 모습도 놓치지 않고 이야기에는 등장하기도 한다.


편의점의 손님과 직원 사이에는 깊은 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불어 편의점 밖의 풍경 속에 보이는 출근하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들은 더욱 깊지 않은 관계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시급을 받으며 일하는 편의점의 일들을 세밀하게 전해준다. 게으름을 피운다면 무한한 게으름이 되겠지만 그의 움직임은 게으름이 아님을 알게 된다. 비어진 물품들을 차곡히 정리하며 분리수거 쓰레기통을 비우고 정리한다. 이외에도 눈이 내리는 날이면 잠시 눈이 멈춘 사이에 싸리 빗자루로 눈을 쓸기도 한다.
부고 소식에 찾아간 인연과의 이야기들, 남동생에 대한 이야기들, 슈퍼를 하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경험한 이야기들과 집주인과의 이사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는 이야기들도 담아낸다. 지극히 사소한 이야기들임에는 분명하다. 책 제목처럼 말이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을 읽어가다 보니 작가가 독자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것인지 서서히 조용하게 알아가게 된다. 그렇게 어느새 지독히 아득한 이야기를 깨달아가는 소설이다.


1장이 넘어가고 2장, 3장으로 넘어갈 때마다 까만 바탕에 달이 떠있는 디자인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내 앞에 비범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먹고사는 것에나 매여 있는 시시한 삶은 결코 살지 않을 것이다. 더 높고 더 고결한, 눈부신 무엇을 꿈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중략)
허술하고 조급하고, 때로 시건방지기가지 했다. 늘 추상적으로 더듬거렸을 뿐 발 딛고 사는 세상의 어느 것 하나 성실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박한 휴식조차 만들어주지 못한 구차한 사내일 뿐이었다.(책 중에서)
젊은 시절의 자신이 가졌던 것들과 지금의 자신이 살아가는 것들과의 괴리는 깊기만 하다. 하지만 타자를 생각하며 어두운 골목을 걸어갈 그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라고 그는 집 앞의 골목길에 등불 하나를 밝히는 남자이다. 그러한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아내는 그에게 '좋은 마음'이라고 말을 건네준다.


동작과 동작 사이에 쉼표를 넣는다.(79쪽)
서두르지 마요. (80쪽)
지금 하고 있는 일에만 마음을 주어요. 그러면 설거지도 명상이 돼요.(80쪽)
순간과 순간 사이에 떠 있는 고요함을 만끽한다. 행복하다.(81쪽)
한글이 가진 어휘에 놀라워하면서 읽은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느낌을 충만하게 느껴가면서 차분히 읽어간 소설이다. 다 읽고 나니 밑줄 친 문장들이 꽤 많았던 작품이다. 골목길을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낯선 여행지에서도 이름 없는 골목길들을 일부러 걷는 것을 좋아한다. 작가도 작품 속에 정겨운 골목길에 대해 이야기를 전해준다. 떠올림들이 많았던 작품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인생이란 무엇인지, 삶이란 무엇인지 차분히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살아가는 한 끝나는 일이란 없다.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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