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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으로 그린 그림
김홍신 지음 / 해냄 / 2017년 8월
평점 :
장편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
김홍신 신작. 『인간시장』의 작가
해냄. 2017
시대가 정해준 틀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소 낯설기도 한 요즘 시대에 만나본 소설이다.
7살이라는 나이 차이. 26살의 유치원 여선생님과 19살의 신학대학을 목표로 신학공부와 라틴어 공부를 하고 있는 남학생의 담담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 나.... 시집가게 됐단다." (13쪽)
남자 주인공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흐르기도 한다. 때로는 여자 주인공의 관점에서도 이야기는 전해진다. 그렇게 두 남녀가 시대가 허용하지 않는 연상연하 커플의 사랑 이야기는 솔직하면서도 내적 감정을 끝없이 숨기며 이겨가는 과정들도 이야기에서 만나보게 된다.
한국문학을 읽다 보면 깊게 흐르는 종교적 흐름도 마주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도 우리는 문중 어른이 한 집안의 며느리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 인간 망종이여!" 외치는 소리도 듣게 된다. 그 여인이 숨죽이며 가졌을 여러 생각들은 이 작품 속의 남자 주인공에게도 고스란히 스며들게 된다. 신학대학을 목표로 하는 아들을 의과대학으로 보내고자 어머니는 계획하고 다짐하게 된다. 그 집안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녀는 그렇게 아들의 장래까지도 조율하게 된다.
초반부의 이야기를 만날 때는 시대적인 상황들의 답답함에 속이 상하기도 한 작품이다. 어여쁜 딸의 사고와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건들이 펼쳐졌고 그 잔해는 오랜 시간, 오랫동안 어머니의 삶에 깊게 투영되는 딸이 된다. 여자 주인공을 바라보며 죽은 딸과 닮았다는 이야기들이 종종 거론되기 때문이다.
여성을 함부로 대하는 시대의 모습들도 작품 속에서 종종 마주하게 된다. 여자 주인공의 약혼자에 대한 이야기와 편집증으로 집요하게 찾아오고 위협하는 남성은 지속적으로 그녀를 괴롭힌다. 정당방위이지만 검찰 관료라는 지위로 피해자들을 설득하는 과정과 신문기사에 실려서 직장을 잃어야 하는 상황들이 펼쳐진다. 권력으로 휘두르는 횡포가 한 여성의 인생에 너무나도 가혹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읽어간 작품이기도 하다.
두 남녀는 그 누구도 솔직한 감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들이 등장한다.
각자의 인생 속에서 그들이 간직한 사랑 이야기는 36.5도가 되어 마지막 이야기의 결말이 되어준다. 여자 주인공이 드문드문 자신의 존재가 아기를 낳는 기계가 아닌가 싶다고 느끼는 순간을 고백하는 내용도 잊히지 않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여성의 존재 의미에 대해 더 많이 질문하게 하고 정리하게 해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공 수정을 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아픈지도 책은 잘 전달해준다. 막연하게 알고만 있었던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 된다.
아내에게 성모마리아 같다고 고백하는 남편. 또 한번 아내에게 예수를 닮았다고 말하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그 인고의 시간들과 아픔을 이겨낸 여자 주인공을 다시금 떠올려보면서 마지막 책장을 덮은 책이기도 하다.
책 중에서
사랑이란, 그 사람의 모든 것, 병들었거나 말 못 할 사연이 있거나 큰 죄를지었거나 처절하게 몰락했거나 가진 게 하나도 없거나 배운 게 없거나 성격에 결함이 있더라도 덮어주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직자의 삶이 고달프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내 팔자가 왜 이리 고단한가 생각되고 짜증이 난다는 얘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신자들은 그런 신부님의 넋두리를 들으며 위안을 받았다.(중략) 신부에게도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갖가지 고민과 짜증이 넘쳐난다는 것이 재미있게 여겨지고 공감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가진 고뇌는 다른 사람들도 다 겪는 거라고 위로하는 신부님의 강론은 늘 신자들을 웃게 만들었다.